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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동시대 영화 특별전 - 영화의 시간

[동시대 영화 특별전 상영작 리뷰] 암울한 결말, 강렬한 비극성 <온 더 잡>

[동시대 영화 특별전 상영작 리뷰]



암울한 결말, 강렬한 비극성

- 에릭 마티의 <온 더 잡>





장르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탄탄한 세계관을 제공해주지만 이를 잘못 사용하면 지루한 패턴을 반복하는 폐쇄적인 세계를 만드는 데 그칠 수도 있다. 필리핀의 에릭 마티 감독이 연출한 <온 더 잡>(2013)은 누아르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다. 폭력에 익숙한 남성 주인공들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극적인 결말로 향하고, 세상은 이들에게 안식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을 얽맨 질서에 어떻게든 저항하려 하지만 결국 운명이라 불러도 좋을 더 큰 세상의 질서에 무참히 휩쓸려나간다. 이때 발생하는 비극적인 정서는 강렬하지만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장르의 흐름 안에서 주인공 탕과 다니엘이 어떤 사건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낼지 많은 부분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예상은 거의 맞아 떨어진다). 이 경우 영화적 활력은 필연적으로 감소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온 더 잡>에는 낯익은 장르적 코드를 재확인하는 즐거움은 있지만 이를 비껴가는 역동적인 활기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온 더 잡>에 장르의 상투적 전형을 뛰어넘는 활력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기 힘든 건 전적으로 감옥을 묘사한 장면들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누구나 느낄 수 있겠지만 <온 더 잡>이 연출하는 감옥 안과 감옥 밖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영화가 감옥 바깥의 세상을 재현할 때는 장르의 공식을 따르며 쉽게 단조로워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카메라가 감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신선한 영화적 활기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의 대조가 <온 더 잡>의 주목할 만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먼저 탕과 다니엘이 머무는 감옥 안을 보자. 이곳에서 카메라는 다양한 공간들을 빠른 스테디캠으로 훑으며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변화무쌍한 운동성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감옥 내부를 꼼꼼하게 재현한 미술은 생생한 사실성을 더하고 자연광과 인공광을 거칠게 오가는 조명은 공간의 성격을 계속해서 변화시킨다. 그 역동적인 연출로 인해 감옥에 갇힌 주인공들이 더 자유롭게 느껴질 정도다. 나아가 이들은 감옥 안에서 들어왔을 때야 비로소 자신들을 얽매는 장르의 엄격한 질서에서 잠깐 벗어나 한 명의 인간으로서 유의미한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요소들을 통해 감옥 시퀀스는 도드라지는 영화적 활기를 만들어내며 <온 더 잡>의 흥미로운 순간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무대가 감옥 바깥으로 옮겨가면 그 활기는 서서히 사라진다. 특히 탕과 다니엘은 감옥 바깥에서는 전형적인 킬러의 행동 양식을 따르며 익숙한 인물상을 연기한다. 이들은 잔뜩 어깨에 힘을 주지만 종종 독립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저 장르의 부속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감옥 밖의 이야기들은 아무리 긴장 넘치는 상황을 만들어도 단순하고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립에 그치고 만다. 이런 상투적인 설정과 묘사들이 그 자체로 <온 더 잡>의 치명적인 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영화를 나쁜 의미에서 평범하게 만드는 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온 더 잡>의 감옥 안은 감옥 바깥의 세상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감옥 바깥의 세상은 지옥 같은 곳이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부패한 군인들이 잡고 있으며 이들은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들을 암살한다. 또한 소수의 정의로운 사람들 조차 결국 지배층의 논리에 포섭 당한다. 그리고 유일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었던 가정은 결국 부패한 권력을 재생산하는 장소이자 누구에게도 평온한 안식을 주지 못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죄수인 탕과 다니엘이 감옥에서 나올 때마다 조금씩 더 불행해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감옥은 세상의 나쁜 질서가 아직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마지막 피난처 같다는 느낌마저 준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감옥 내부를 그릴 때 장르의 클리셰를 벗어나 영화적 활기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결론은 어디에도 출구가 없는 것 같은 막막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탕은 ‘높은 분’의 지시를 받아 동료였던 다니엘을 살해한 뒤 교도소 간부들의 비호를 받으며 감옥을 나온다. 그리고는 계속 킬러로서 살아가기로 한다. 이 엔딩을 통해 <온 더 잡>의 작은 활력을 만들어내던 감옥은 그 기능을 다하고 만다. 세상의 나쁜 질서는 이미 감옥 안으로 들어왔고, 탕이 만약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더라도 그곳은 다니엘과 우정을 나누던 곳이 아닐 것이다. 탕이 그나마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이제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암울한 결말 뿐이다.


이때 이 결말이 단순히 누아르 장르의 약속된 공식을 충실하게, 또는 게으르게 따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결국 감옥을 묘사하며 보여주었던 그 기묘한 활력 때문이다. 만약 이 활력이 없었다면 <온 더 잡>은 누아르 장르의 클리셰를 지루하게 반복한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감옥 시퀀스를 통해 장르의 폐쇄적인 질서를 교란시키는 활력을 만들어냈고, 이를 비극적인 결말과 효과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뻔한 비극의 얄팍함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파국적 상황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세계가 그나마 유지하던 활기마저 잃으며 완전히 붕괴해버리는 비극적 순간을 생생히 포착하는 것이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