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영화 특별전 상영작 리뷰]



삶을 대하는 영화의 방식

- 매튜 포터필드의 <그런날 사이에 어떤날>




극장 스크린과 미술관의 갤러리를 오가며 활동 중인 매튜 포터필드 감독의 2013년 작품 <그런날 사이에 어떠날>은 가출, 별거, 실연, 원치 않은 임신 등의 소재를 재료 삼아 만든 영화이다. 주인공인 십대 소녀 타린은 영국의 집에서 가출한 뒤 프랑스에서 만난 남자 친구와 원치 않는 임신을 한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결국 타린은 충동적으로 미국의 이모네 집으로 떠난다. 그런데 마침 이모는 이모부와 별거 중이었고, 이런 애매한 상황 속에서 타린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사촌인 애비와 함께 놀거나 싸우고, 이모와 이모부의 집을 번갈아 방문한다. 또한 새로운 남자 친구를 잠깐 사귀었다가 다시 헤어지기도 한다. 누구 하나 죽거나 심하게 다치는 사람은 없으니 그리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든 그런 상황이다.

어떤 영화들은 이런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큰 진폭의 감정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날 사이에 어떤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매튜 포터필드 감독은 이 모든 에피소드들을 별 과장 없이 차분하게 다룬다. 싸울 때도 몇 번 언성을 높일 뿐이고 사랑의 순간도 간단하게 묘사하고 넘어간다. 슬퍼할 때는 조용히 앉아 무표정을 보이고, 기뻐할 때는 조용히 미소를 짓는 식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의 시작과 끝을 굳이 자세하게 묘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스케치하듯 간략하게 묘사하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런날 사이에 어떤날>을 단순한 ‘일상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분한 일상에 몇 개의 우발적 사건을 게으른 연출로 적당히 조합한 상투적인 작품들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일상의 평범한(또는 약간 특별한) 사건을 잔잔한 태도로 그리면서도 그때 발생하기 쉬운 상투성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의 방법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영화가 사건들을 묘사하며 굳이 어떤 결론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타린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지, 배 속의 아기를 어떻게 하는지, 사촌 애비와 계속 친하게 지내는지 등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모가 이모부와 다시 사이가 좋아지는지, 애비가 부모와 화해를 하는지에 대한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이야기의 완결을 의식적으로 피한 채 관찰자로서의 카메라가 본 것을 전달하는 것에만 머무르려고 한다. 즉 여기에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묘사는 있지만 그 사건들을 ‘인과 관계’나 ‘개연성’으로 묶어 완성된 결말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다. 이는 각 사건의 고유성을 해치지 않으려는 시도이며, 그 결과 이 영화 안에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각 사건에서 발생했던 각각의 감정들이 희미하게 섞인 인상만이 남는다.




이런 연출은 소위 ‘열린 결말’과도 다르다.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열린 결말’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결론을 내리기 피하는 연출자의 무책임 가운데 만들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방식은 오히려 반대의 경우에 속한다.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이 살아온 삶의 모든 걸 보여줄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한다. 이때 감독이 취한 방식은 특정한 시간대를 설정한 채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 섣불리 판단을 할 수 없으며, 단지 지금까지 본 것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제맘대로 행동하는 타린을 섣불리 비난하기 보다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그녀의 삶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짚어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연출자가 자신의 영화 속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좋은 방법이자 좋은 ‘열린 결말’의 예라고 생각한다.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놓고 그 안에 가치 판단의 태도를 교묘히 숨겨 놓은 뒤 단순히 결말만 생략하는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상투적인 이해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막아버리는 것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런날 사이에 어떤날>은 한 편의 영화가 현실을 대하는 존중할만한 방식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감정을 억지로 증폭시키는 연출 방식을 지양하고, 인위적인 인과 관계를 통해 닫힌 의미 구조를 만들지 않으며, 영화 속 사건에 대한 섣부른 가치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말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조금은 심심하지만, 집중해서 볼 수록 삶을 대하는 감독의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로 남는다.


김보년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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