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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관객발언] 우리는 어떻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관객발언]


우리는 어떻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촉구하는 관객운동의 일환으로 관객들의 지지 발언이 온라인(atthecinema2014.wordpress.com)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은 시네마테크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순수한 애정고백들이다. 모든 글의 전문을 실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글들이 있었다. 우리는 관객들의 글이 단지 어떠한 목적을 위한 지지의 발언을 넘어선 시네마테크에서의 영화적 체험에 관한 중요한 기록들이라 생각했다. 지면 관계상 전문을 실을 수는 없지만 그 일부를 소개한다. 전문은 위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 나는 우리 관객들 모두가 ‘영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마주한 ‘그 영화(들)’로 우리 각자의 ‘영화’를 정의내릴 권리가 있다. 멀티플렉스에서만 영화를 보는 것은 그 권리를 누리기도 전에 미리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시네마테크는 ‘영화’라는 권리가 행사되는 장소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정의내릴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친구들의 ‘영화’가 뻣뻣하게 굳어버리지 않도록, 시네마테크는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게 안정된 공간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마루코)

♣ 장 르누아르 회고전에선 <프렌치 캉캉>을 발견했다. 색채와 빛과 소리의 축제 같았던 영화. 가슴 벅찬 설렘으로 극장 문을 나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오직 그 한 편의 영화 때문에 한없이 행복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감독 회고전’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일생 동안 내가 보지 못했을, 잘 알려진 거장의 덜 알려진 작은 영화, 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게 기억과 그리움의 저장고이자 앞으로도 계속 찾아가고 싶은 휴식처이다. 그 공간의 기억과 고유한 감성은 무엇으로도 대체불가능하다. 그 빛과 소리의 감동이 언제나 내 곁에, 우리 곁에 있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정경진)

♣ 지난 몇 년 동안 아끼던 여러 극장을 과거에 두고 왔다. 수건돌리기의 수건처럼 그 위기가 이번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 점점 다가오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만난 영화와 그에 대한 경험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수치화해서 그래프로 그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서울아트시네마가 비효율적인 것이라, 사치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바란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과거에 것이 되지 않기를, 내가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내 몸과 마음 위로해 주기를. (임유정)

♣ 스크린 가까이 앉아서 보는 영화가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앞쪽에 앉아 스크린 아래 위를 그윽하게 쳐다보면 황홀하고 그렇지. 스크린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눈을 옮기다 보면 자막도 막 놓치고 그러면 재밌고. 그냥 나는 그렇게 영화를 본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불이 켜지면, 뒷목을 주무르며 낙원을 나선다. 낙원을 나서며 왜 또 넷째 줄 티켓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낙원을 나선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는가. 밤이 되었네. 저기는 낙원이었는데 이젠 어디로 가지.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길을 건너고 어디든 가게 된다. 어디든 가면 나는 또 낙원에 오겠지. 낙원이 저기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낙원을 뒤로한 채 낙원을 향한 채 어디로 간다. (김홍구)

♣ 위로받고 싶고 온기를 느끼고 싶으면 나는 영화관에 갔다. 그 곳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영화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느끼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그 영화와 내가 서로를 탐닉할 수 있는 그 무언가로 존재한다. 그 어둠 안에서 나는 무엇에 떨렸는지, 울었는지, 혹은 전율했는지. 나는 조금씩 그 감각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유토피아가 어디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실 우리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면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에, 사랑했던 것들이 죽어가는 것에 더 이상 무기력해지고 싶지 않다. (관객 1)

♣ 서울, 도쿄, 상하이… 십 년 넘게 떠돌아다니다 보면 나고 자랐던 곳이나 살아 봤던 곳에 딱히 귀속감일랑 느끼지 않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든 홍대든 서촌이든 이제 여기가 그때 거기가 아니니까. 이쯤 되면 고향이란 나면서 정해진 어딘가가 아니라 마음 속에 품은 어딘가가 된다. 내가 어디에 있건 늘 마음 한구석에 그리는 그런 곳.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게 그런 곳이다.

언제부턴가 귀국 일정을 잡으면서 꼭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 일정을 체크하게 되었다. 몇 년 이렇게 지내다 보니 서울아트시네마가 없는 서울은 서울 같지 않다. 이런 도시의 실향민이 어디 나뿐일까. 비옵건대, 부디부디 거기에 오래오래 남아 반겨 주시기를, 언제나 그리운 고향, 서울아트시네마. (홍)

♣ 언제쯤 직업인으로서의 영화감독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불확실한 시간들을 살아가며 행복하게 영화를 생각할 수 있는 힘 또한 시네마테크에서 얻었다. 영화학교 졸업 후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를 보고 나오며 ‘맹목적인 어떤 믿음과 사랑에는 이해하기 힘든 아름다움이 있다’ 라는 요지의 메모를 남겼던 일이 기억난다. 지금은 그런 맹목적인 사랑을 시네마테크에 보내줄 때인 것 같다. 앞으로는 ‘바빠서 잘 못 갔어’ 라는 핑계를 줄이고 더 자주 갈 테니 이런 게으른 관객을 봐 주고 조금 더 힘을 내어줘. 그 자리에서 오래 잘 버텼으니 이젠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때도 되었지. 전용관이 생기는 그 날까지 멀리서라도 힘을 보탤게. 사랑한다, 서울아트시네마. (강연하)


♣ 저는 열아홉, 스물에 여기서 영화를 본 게 계기가 되어 영화를 하게 되었고, 제가 아는 꽤 많은 친구들이 그런 계기로 영화에 입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영화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고독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장소였기도 했어요. 아마 많은 분들에게 비슷하면서 또 다른 의미로 영화관이 존재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철저히 혼자였던 시간에 영화관을 다녔어요. 그런데 그 시간을 통해 영화는 장소를 통해 성립된다는 걸, 그리고 그 장소를 지속한다는 것은 결국 ‘나’에서 시작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폐기한다면 결국 그 근원을 찾아 끊임없이 떠돌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폐기할 것인가의 문제가 작아 보이지만 큰 선택들에 달린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준)

♣ 사실 하루종일 같은 영화를 트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누군가를 구원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위로가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에게 같은 조언만 수없이 반복한다면, 듣던 이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세상에 내가 편히 숨을 곳은 없었어!’ 그러니 기껏해야 일 주일에 두세 번 같은 영화를 트는 시네마테크가 부디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어린 청년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응당 정부가 복지 차원에서라도 지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내가 있던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서 빛을 앗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한동균)

♣ 우리는 어느 순간들을 붙들기 위해 기억을 반복한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게 이곳밖에 없다는 듯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던 것은 아마 그 기억들이 이곳에서 나를 항상 기다려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건 기꺼이 그 어두운 공간에 놓여 세상에는 없을 것만 같았던 위안의 시간들을 만나고 싶고 영화가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재차 확인해보고 싶다. 친구와 함께 서툰 고백을 주고받으며 그 영화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온 마음을 다해 이 공간에 우리의 모든 애정을 표하고 싶다. (최미연)

♣ 만약 내가 잠시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자리에, 우리의 극장이 그대로 있어줄까? 이미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슬프고, 때로는 화가 난다. 극장 변두리에서 흘낏거리던 한 명의 관객인 내가 이 공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그것도 다른 관객들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우리의 극장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관객 2)

♣ 영화는 어떤 점에서 저에게 위로를 해 주고 삶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저에게 있어 대부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 한 편에 자리 잡아 불쑥불쑥 튀어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객으로서 저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2014년 관객운동 모임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가치와 소중함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김윤슬)

♣ 사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이미 많이 다르다. 탁 트인 옥상에는 텔레토비 동산이 생겼고, 키 작은 나에게는 까치발을 해야 겨우 보이도록 옥상의 턱은 높아졌다. 주말이면 옆 극장과 위 공연장의 소음과 인파가 조용히 앉아서 책 읽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내 영화 취향의 팔 할을 만들어준 극장을 위해 극장에서 만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물론 관객들의 소리가 어떤 힘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극장은 관객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극장을 위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관객일 것이다. 튼튼하고 견고한 영화의 집에서 불안에 떨지 않으며 친구들과 오래오래 영화를 만나고 싶다. (임미라)

♣ 노스탤지어, 오래전에 어떤 스위스 의사가 병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단어는 장소가 주는 고역 - 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장소에 대한 진한 애착이 만들어내는 슬픔. 나는 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를 생각하면 요즘 마음이 좀 아프다. 정말 막연히 이곳에서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면증’, ‘이상식욕’, ‘발열’을 동반한 깊은 슬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계속해서 극장과 관련된 내 오랜 기억들, 친구들을 내 방으로 밤새 불러들인다. 18세기 의사들은 이 병을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고 불렀단다. 나에게 영원히 돌아갈 영화의 집이 있기를 희망한다. 아주 강하게 희망한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이상한 영화들을 앞으로도 만나고 싶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한다. (임효진)



♣ 그러니까 내게 극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 사람들의 지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협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이 생각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끔 한다. 지난날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지를 준다는 사실이 아주 신기하다. 또 다른 사람들이 또 다시 그들만의 지도를 갖게 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게 우리의 지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한, 우리의 극장은 튼튼할 것이다. (김경민)

♣ 개인적으로 시네마테크에서 올해 <사탄탱고>를 본 것이 저에겐 가장 큰 기억으로 자리 잡았네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스크린에서 상영되길 기다리며 <사탄탱고>를 미루고 있었는데 “2014 친구들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더욱더 기쁩니다. 시네마테크라는 곳은 과거 속으로 향한 느낌이 강합니다. 막막한 현실에서 명분 없는 고전 속으로 가는 느낌이 들기에 더욱더 애착이가고요.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잘될 겁니다! (김원태)

♣ 내가 이곳에서 처음 봤던 영화 <충격의 복도>의 주인공 조지는 스스로를 볼모로 삼아 진실에 다가섰다가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진실은 대개 비용이 높고, 그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자신의 존재마저 내던져야 할 때가 있다. 영화는 무엇보다 체험의 행위이고, 관객은 그 체험 속에서 난반사되는 질문들을 통해 인간의 진실과 삶의 의미에 다가서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우리들은 이 체험의 과정을 동행하는 친구가 된다. 모르는 사람과도 공통감각으로 엮여 있다는 믿음은 우리를 하나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던 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상영하기 위해 애를 썼던 이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서울아트시네마에 앞으로도 계속 가고 싶다. 그리고 먼 미래에도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 내 연약한 무의식의 공동체가 저항의 진지가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굳은 마음으로 동참하고 싶다. 우리의 꿈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의 소망이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관객 3)

♣ 세상의 모든 영화를 볼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여전히 도스토예프스키와 포크너를 찾듯 영화도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볼 기회와 공간이 우리는 필요하다. 나는 오늘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지도 모르는 채 서울아트시네마에 간다. 꼭 무엇을 보기 위해서보다는, 말 그대로 영화의 집에 놀러가는 기분으로 간다. 자본주의는 비어있는 공간을 참지 못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텅 빈 공간이기에 더없이 아름답다. 언제나 감사하고 언제나 소중한 나의 아름다운 서울아트시네마. (이승원)

♣ 아무튼 그 인간들한테 붙잡혀 끌려간 곳이 안국동(인지 소격동인지 원. 둘 다 써서 늘 헷갈린다) 시절 서울아트시네마였다. 천성이 무지하여 “아트”라는 말에 지레 겁부터 먹었던 나이니, 정말로 마지못해 끌려갔던 셈이다. 그때 그렇게 가서 최양일의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를 보다가 조용히 잠들었을 때 당장 때려치우고 하던 공부나 해야 했는데. 망할 구로사와 기요시, 버스터 키튼, 에른스트 루비치, 장-피에르 멜빌에게 붙잡혀 오늘에 이르렀다. 세상에 그런 영화들이 있을 줄 어디 알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그놈의 극장까지 나를 배신하고 손 털고 가버릴 수는 없는 거다. 나도 너만큼 미래가 잘 안 보이거든? 제발 하나쯤은 도의를 지키며 좀 같이 계속 망해보자. “너 죽으면 확 죽여 버린다!” 2009년 사무엘 풀러 회고전에서 상영한 <철모>에 나오는 대사다. (홍지로)

♣ 일을 하지 않는 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정말 기분이 좋다. 아늑한 의자에 파묻혀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볼 때면 모든 고민을 잊는다. 사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사람이다. 영화관에서 일하면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요즘도 서울에서 처음 일한 곳이 이곳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우제인)

♣ 처음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건 2007년 여름이었다. 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진해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해 말 상경했고, 극장은 내가 서울에서 유일하게 안도하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영화들이랑 그 공간이랑 이렇게 십대의 말을 지나쳤다. 그 공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는, 그때도 그렇게 썼지만, 내내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할 수 있는 온갖 지랄을 다 했다. 2014년이다. 열다섯이었고, 열여덟이었고, 이제 스물셋이 되어서 다시 이 짓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역겹고 화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오래 알아온 사람들이 아주 익숙한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주 오래 이미 스러진 시공간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한없이 흔들리는 우리를 어쩌면 유일하게 안도케 하는 곳에서. 그 스러진 시공간이 머물러 줄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을 시네마테크라고 부른다. 서울아트시네마라고. (박예하)



♣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는 요즘이다. 늘 언저리만 헤맸던 나였지만, 그래서 조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쑥스럽지만 그래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뜻한 마음으로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변명하자면, 내가 늘 영화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그 순간들은 이곳이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늘 있어줄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생겨난 게으름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고 있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그곳에 있어주는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 옥상도, 스크린도, 사람들도, 영화가 끝나고 걸어 나오며 나누던 반가운 인사도, 영화를 보러 온 건지 끝나고 술을 마시러 온 건지 모르겠던 순간들도, 아련한 추억이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릴 기회가 사라지길 바란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모두의 마음으로, 모두의 마음처럼 남아주길. (이상준)

♣ 나에겐 그리고 ‘우리’에게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라는 이름에 담기엔 넘치는 뭐랄까, 하나의 문화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기획전을 챙기는 일, 낙원상가로 향하는 걸음, 그곳에서 스치는 인연들, 그 순간이 나에겐 모두 ‘서울아트시네마’이다. 이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우리가 있다는 ‘사실’과, 지금 서울 종로라는 땅에서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라는 ‘현상’은 잊지 말아야 할, 기록해 두어야 할 내 20대의 사건! (이영인)

♣ 사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영화 안에서 친구를 만나고, 함께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된다. 본래 쉽지 않은 일인지, 나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영화에 힘입어 맺어지는 관계를 꿈꾼다.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 공간에서 경험한 가장 반짝이는 기억들이다. 그래서 극장이 위태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해진다. 어느 날 극장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내 이십대의 기억들이 한순간에 부서져 헐리는 것만 같은데, 그렇게 헐리는 것이 단지 ‘과거’만은 아닐 거다. 서울아트시네마와 관객을 두고 서로를 보살피는 관계 같다던 말이 맴돈다. 오랜 시간 아트시네마를 다니며 절절하게 느꼈다. 영화도, 관객도, 극장도 친구를 필요로 한다. 이제는 함께 불안이 아니라 행복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줄의 관객)

♣ 우리 극장, 극장 친구. 우리는 우리 극장을 시네마테크라든가 영화관이라고 잘 부르진 않는다. 극장이라고 하면 으레 낙원에 있는 극장으로 통했다. 마치 ‘극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는 것처럼.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몇 년이 지나도 극장 친구였다. 그런 극장이 사라질 수도 있다니 친구가 많은 친구의 장례식 소식을 들은 기분이다. 부디 비통한 심정으로 육미에 모여 옛 친구를 회상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김성주)

♣ 서울아트시네마를 통해서 우리가 오랫동안 기뻐할 수 있는 관객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스크린 앞에 앉아서 보낸 많은 시간들을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들로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영화 탄생 이후의 인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 중 하나라고 나는 확신한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그러한 믿음을 주었다. 부디,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지해 주세요. 영화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영화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한상희)

♣ 나의 일정보다 너의 시간에 맞춰야 마주할 수 있는,

나는 애가 타도 너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시네마테크의 모든 영화들!

서울아, 내 사랑을 지켜줘(곽혜원)

♣ 일직선 고속도로에 네비게이션까지 붙인 채로 달리던 자동차를 빼앗고는, 드넓기 짝이 없는 망망대해에 나를 내팽개쳐 버리고는 ‘이게 인생이다 바보 멍청아’라고 말하며 약 올린 것도, 영화였다. 쉽진 않지만 그래도 즐겁지 아니한가.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어야 나 같은 바보멍청이가 더 나와서 같이 바보짓하고 놀 텐데, 걱정이 많다. (이또킹)

♣ 나는 여전히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몸이 건너게 될 한강의 다리 이름을 알지 못한다. 허나 서울아트시네마가 계속 나를 도와준다면 언젠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해서, 이기적인 목소리로 부탁한다 : 아직은 사라지지 말라. 내 집을 마련하여 그럴듯한 서울의 특별시민이 되는 날까지만 내 곁에 있어라. 근데 어쩐지 너 때문에 나 돈 못 벌 것 같거든? 그러니 내가 내 집 마련을 못 하거든 네 놈이 나를 책임지고는, 내 방에는 없을 게 분명한 베란다 노릇만큼은 계속 해주어라. (홍은진)

♣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고마운 공간들이 있다. 내게 종로에서 그런 공간을 꼽으라면 서울아트시네마를 들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경관 속에서 오랫동안 제 자리를 지키며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곳. 내가 그곳에서 본 영화는 많지 않지만 종로 거리를 거닐 때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세련됨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 듯한 무심함과 고집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공간. 그리고 그런 공간을 닮은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영화를 보고 소소한 위안을 얻어가는 곳. 이곳을 지켜야 할 이유는 이미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최철웅)


♣ 서울아트시네마를 더 오랫동안 열렬하게 사랑해온 분들에 비하면 내 모습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나만의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추억이 존재하며,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홀로 극장을 처음 찾았을 때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준 영화들, 그리고 극장에서 새롭게 만난 소중한 인연들, 어느 날은 친구와 함께 영화 보면서 둘 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술 한 잔하며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나는 앞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며,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가야만 한다. 나에겐 이미 소중한 공간이 되어버렸고 나 이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아직 데려오지 못한 친구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 집 밥을 못 먹게 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봉수지)

♣ 더 이상 서울아트시네마 근처에서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근래 들어 좀처럼 빈 시간을 내지 못하거나 게을러져 한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나에게 있어 더 가야 할 곳, 더 담아둘 곳이고 아직 더 많이 찾아가야 하는 그런 곳이다.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싶고 좋은 영화들을 보고 싶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곳의 그 자리에는 내 기억들이 아직까지 쌓여 있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짱큰콩)

♣ 귀찮음 때문에 영화를 보고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사람들이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이제 많이 없는 것 같다. 영화를 조금이라도 귀찮게 익숙하지 않게 볼 수 있게 하는 곳 중 하나가 나에게 시네마테크였다. 계속해서 귀찮게 그리고 익숙하지 않게 영화를 보고 싶다. (강민호)

♣ 나는 극장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을 한다. 생각지도 못한 여러 시대에서 사랑하고 고민하고 배신도 당했다가 또 여러 나라에서 한바탕 어울려 논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보다 단단한 나로 살 수 있는 힘을 얻고서.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는 낙원상가 옥상에는 지금 막 같은 꿈을 꾸고 나온 사람들이 서성인다. 일행이든, 얼굴만 몇 번 본 사람이든, 처음 보는 사람이든 이들에겐 왠지 알 수 없는 동질감 또는 공모감이 감싸고 있다. 각자의 하루가 시작되면 그 꿈은 희미해지겠지만 근사한 경험을 한 것임은 분명하다. 종로 한복판 이 작은 극장의 존재가 서울을 조금은 더 낭만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에 서울아트시네마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지원을 요청한다. (나캉)

♣ 한국을 알고 싶어 하고 서울의 생활을 궁금해 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서울과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해 자랑스럽게 애기했다. 그곳에서 만났던 영화와 친구와 이야기들은 정말 평범하지만 매우 특별했던 것이다.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든 곳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번엔 어떤 영화를 만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레어하며 발걸음하는 그 길이 부디 추억 속에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외국인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소개시켜 줄 수 있는 곳이 사라진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황선영)

♣ 집 밖을 나서면 언제든 손쉽게 멀티플렉스에서 최신 영화를 챙겨볼 수 있다. 참 내 입맛에 맞게 러닝타임도 짧고 쌈박하기도 하다. 그렇게 테트리스처럼 틈새 시간에 영화를 끼워 맞추다, 친구 따라 서울아트시네마를 처음 만났다. 서울아트시네마에는 느리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강처럼 긴 러닝타임의 영화도 있었고, 짧게 들이마신 숨처럼 압축적인 영화도 있었다. 정말이지 다양한 시간의 기록들이 서가에 꽂혀 있었다. 그때 조막만한 친구 따라 종로 가기를 참 잘했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간을 들여 영화를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도 시네마테크의 시간들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관객 4)

♣ 혼자서 극장을 찾았던 날, 약속도 없이 두 명의 친구를 그곳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비가 내렸고, 우리는 우연한 만남이 조금 쑥스러워서 웃었습니다. 한때 좋아했던 것들, 그리고 여전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기억을 차곡차곡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친구들과 그런 기억을 펼쳐 보이다가 그래, 그럼 다음엔 거기서 만나, 그렇게 약속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기억이고 우리들의 기억일 테니까요. 시네마테크를 지지합니다. (차한비)

♣ “존재는 그 자체로 숭고하지는 않다. 그것을 숭고한 것으로 만드려는 의지에 의해서만 숭고해진다”고 시인 김정란은 말했습니다. 오늘도 전 이미 숭고한 ‘영화’에 제 의지의 꼬리표를, 사랑의 꼬리표를 달아주러 ‘거기’에 갈 것입니다. 달다가 누군가가 이미 달아놓은 수많은 꼬리표를 보면서 오히려 더 감동받을 게 분명하지만요. 오늘 못 가면 내일, 내일 못 가면 모레 가서 ‘친구들’과 같이 눈물 흘릴 겁니다. ‘영화’를 사랑합니다. ‘거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합니다.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저의, 그리고 우리들의 변치 않는 ‘지지성명’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