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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스타일의 혁신: 닛카츠 창립 100주년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

[리뷰] 이마무라 쇼헤이 <인류학 입문> 수컷과 암컷의 관계, 그 풀 수 없는 삶의 비밀 수부는 음화(淫畵)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내다. 그는 미망인 하루의 집에 하숙 들어 살며 그녀와 애인 사이로 지낸다. 하루의 아들 코이치는 엄마 품에 안겨 수부에게 돈을 뜯어내려 한다. 딸 케이코는 수부의 음탕한 시선을 거절하지 않는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예상하겠지만, 사실상 가족처럼 살아가는 이 네 사람 사이에 어떤 일정한 질서는 없다. 그가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을 거쳤으나, 사부의 정연한 세계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 만의 길을 찾아 떠났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세계는 어지럽다. 인간의 욕정 때문이다. 그 욕정이 오즈의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무라의 세계에서는 종종 자연적 .. 더보기
[리뷰] 이치카와 곤 <나 홀로 태평양> 거기에 영화가 있기 때문에, 전진 1962년 5월 12일 밤, 니시노미야 항구에서 한 사내가 몰래 배에 오른다. 분명한 목적 없이는 출국이 금지되었던 시기다. 그렇다면 남자는 몰래 어딘가로 도피하려는 중일까. 아니면 비밀리에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일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남자는 혼자 힘으로 태평양을 건너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목표가 아주 절대적이어서, 이 영화에 충분한 동력을 제공한다. 짐작하겠지만 거기에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남자가 배에 오르기까지 거쳐 온 시간을 되새김질한 것들일 따름이다. 심지어 이야기는 때때로 한 자리를 맴맴 돌고 있는 듯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남자의 배처럼 말이다. 모터가 달려있지 않은 배의 운명은 오직 바람의.. 더보기
[리뷰] 구라하라 고레요시 <치사한 놈> 태양족 전통의 계승과 극복 의 감독인 구라하라 고레요시는 한국에는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지만 1957년에 감독으로 데뷔한 후 90년대까지 3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며 오랜 기간에 걸쳐 일본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1927년생으로 같은 세대의 감독 중에서는 드물게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쇼치쿠에 입사했으나 1954년에 닛카츠로 소속을 옮겨 1967년까지 닛카츠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태양족 영화’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린 나카히라 코우 감독의 (1956)에서 조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그 후로는 젊은 감수성의 톡톡 튀는 영화에서 블록버스터까지 연출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1983년에 만든 는 다음 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 더보기
[시네토크] “이마무라 쇼헤이, 일본영화사에서 전무후무한 감독” 상영 후 유양근 박사와의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10일, 이마무라 쇼헤이의 상영이 끝난 후 유양근 박사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스즈키 세이준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닛카츠 100주년 특별전 가운데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특별한 자리였다. 50년대 전후 신세대 일본 감독들의 특징과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의 디테일을 짚어보던 현장을 전한다. 유양근(니혼대학 예술학 박사): 이번에 함께 상영한 을 보신 분들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대략 어떤 유형의 영화를 찍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사실 이마무라는 어느 정도 일관된 작품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보신 안에 그런 공통점들이 상당부분 드러나 있다. 50년대 중후반은 일본에 굉장히.. 더보기
[Editorial] 이마무라 쇼헤이의 광기의 여행 이마무라 쇼헤이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영화는 광기의 여행’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광기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1968)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혼신이 담긴 괴작이자 최고의 작품이며 전환점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는 일본 열도 남단의 오키나와 근처의 가공의 섬. 일본이 가진 낡은 습속이 이곳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낡은 샤머니즘이 여전히 있어서 무녀가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신의 소리를 들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고지하면 주민들은 그 말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외딴 곳에도 산업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섬에는 비행장을 만들고 관광객을 들이는 계획이 진행된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은 본토에서 떨어진 작은 섬마을 공동체의 성스러운 의식들을 지극히 느리.. 더보기
[시네토크] 전후 일본 점령기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신체 상영 후 황미요조 프로그래머와의 시네토크 지상중계 닛카츠 창립 100주년 기념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이 한창이던 지난 9월 23일, 상영 후 황미요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 날의 강연은 세이준 영화 중 상대적으로 많이 이야기되지 못했던 을 일본의 역사와 문화사적인 맥락에서 접근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황미요조(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말씀드릴 많은 부분은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의 사이토 아야코 선생님과의 토론과 이란 글에서 많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은 스즈키 세이준의 육체 3부작 중 한 편이다. 일본에서는 스즈키 세이준의 전후 여성 3부작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 3부작 중.. 더보기
[Feature] 폭력과 과잉의 대가 우리에게 스즈키 세이준은 결코 익숙한 이름이 아니었다. 60년대, 오시마 나기사나 시노다 마사히로 같은 동세대 일본 감독들이 이른바 '쇼치쿠 누벨바그'라는 이름으로 영화사의 한 장을 채워가고 있을 때, 그는 동시상영용 B급 영화를 만드는 그렇고 그런 액션 감독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오랜 세월, 스즈키 세이준이라는 이름은 스튜디오에서 퇴출당한 비운의 감독이라는 꼬리표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희귀한 스타일로 영화광들의 전설로 전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2001년, 마치 예기치 않은 손님의 방문처럼 그는 8년만의 신작 를 들고 베니스 영화제에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열렸던 두 차례의 회고전에는 젊은 관객들이 몰려들어 환호성을 울려댔다. 한때 미국 독립영화의 정신이었던 짐 자무쉬.. 더보기
[Feature] 내가 만난 스즈키 세이준 2002년 ‘문화학교 서울’의 주최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의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이 열렸다. 기획자로서 나는 이미 팔순에 접어들고 있던 세이준 감독을 만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의 창조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모두들 무모한 시도라고 여겼지만 결국 세이준 감독이 서울을 찾았다. 3박 4일 동안 그는 ‘삶의 원칙을 위반하는 예외적인 사건’이라면서도 기자회견과 강연, 그리고 그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감독들과 대담을 했다. 회고전은 성공적이었다. 2월18일부터 25일까지 8일간 아트선재센터(아직 정식으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하기 전이었다)를 대관해 개최한 회고전은 평균 객석점유율이 80%였고 6천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렸다. 단순한 흥행 성적이 중요한 것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