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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네마테크공모’는 논리적으로 모순투성이다! 「종횡가는 춘추전국시대에 나타난 제자백가의 일파이다. 그들의 특징은 공로와 이익, 관직과 지위를 최상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관직에 오를 수만 있다면 옛날에 어떤 일을 했든지, 또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모두 성공한 자로 취급된다. 소위 ‘성공한 자가 왕이고 패배한 자가 도적이다’는 말은 이러한 것을 가리킨다.」 렁청진 著 『智典』 중 지난 글에서 나는 을 통해 시네마테크 공모제를 전면 거부하고 그 결과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주장하는 ‘시네마테크 공모’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궤변이고 논리적 오류로 가득한지를 밝히려고 한다. 공모란 공모의 주체가 있어야 하고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 예컨대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공모하겠다고 한다면, 주체는 영진위이고 대상은.. 더보기
내일도 시네마테크로 가야지 일주일간 제천 산 속에 박혀 있다가 서울에 와 인터넷을 켜고, 믹싱 작업을 위한 녹음실 대관을 위해 미디액트 홈페이지를 여니 아뿔싸! 놀란 가슴 달래며 여기저기로 서핑을 하니 똥내 가득한 말과 소식들이 바다 위에 둥둥. 영진위, 시네마테크, 미디액트라는 태그를 안고 있는 포스트가 한 무더기. 그리고 도착한 네오이마주에선 비참한 사실들로 초토화 되어있고, 이글 저글 사이에 팽팽하게 서려있는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그래 그러니까 한 시간도 안 되서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을 내 눈으로 쉴 새 없이 봐버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이리도 무거우니, 산속에서 도닦는 바보 같은 짓은 농담이라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한다. 사태가 이 정도로 참혹해지니 슬프고 슬프고 슬프다. 항상 있을 것이라.. 더보기
영진위는 시네마테크를 공모할 권리가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에 이어 기어이 시네마테크전용관 공모제를 시행할 모양이다. 이미 지난 1년간 유보시킨 사안이라 그 의도에 대해 중언부언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몇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먼저 ‘영진위는 시네마테크를 공모할 권리가 있는가?’ 라는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공모란 특정사업의 주체되는 자가 그 분야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운영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행위이다. 여기서 방점은, ‘주체’에 찍힌다. 주인 말이다. 시네마테크공모제의 논란 역시 주인 아닌 자가 주인행세를 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드는 의문, 즉 어찌하여 영진위는 자신들이 시네마테크의 주인인줄로 착각하게 되었을까. 혹은 얼마나 시네마테크가 탐났으면, 아이를 바라는 여인의 상상임.. 더보기
그만 떠돌고 우리들의 집을 짓고 싶다 에서 로버트 미첨은 '돈'의 출처를 알기 위해 아이처럼 아이같은 방식을 구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을 꼬드기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는 신과 상의하여 새로운 카인의 기독교를 만들어낸다. 증오가 있고, 그제서야 선이 도래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나서야 세상의 선이 도래한다고 믿는다. 급조된 단체들이 그럴 듯한 계획안을 냈고 그것이 채택되었다. 그들은 여태껏 영화의 생명을 보존해온 울타리를 침범하고자 한다. 세상은 오래전부터 양을 탈을 쓴 늑대를,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지 못했다. 지도자에서부터 군중들까지 모두 실패했다. 진실을 보지도, 감각하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것을 지켜내지도 못했다. 우리는 시대 속의 우리를 세밀하게 지속적으로 다듬지 않았다. 우리는 진정한 비판은 선을 위한 궁극적인 것이.. 더보기
나와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자! 때 아닌 슬럼프가 왔었다. 어언 6개월 정도 지속된 것 같다. 스스로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2년 여 전의 날이 바짝 선 글들이 내게는 더 좋은 작용을 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다소 거칠고 투박하고 저돌적이어도 그만한 애정과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글쓰기였다. 그래, 방점은 지속적이라는 것에 찍혀있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친밀한 글들보단 확고하게 호불호를 가릴 수 있는 특정 글들을 옹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뭐 그렇다. 블로그를 계속 하고는 있지만 몇 개월 전부터 지금까지는 쭈욱 슬럼프에 놓여있다. 이제 헤어나올 때도 되었는데 그만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하나 있다. 그 '헤어나올.. 더보기
흐린 기억 속의 시네마테크 한 달 반 여정의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된 지 딱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왠지 불안해진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 듯’하면서도 ‘일주일 밖에 안 되었나’라는 양가적 감정에 휩싸인다. 이 불안감의 시초는 3년 연속 웹데일리 편집 일을 도와주면서 이 시기만큼은 여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현 시네마테크가 겪고 있는 실상을 눈앞에서 보고 들으면서 갖는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불씨만 남아 있다면... ‘진짜 이번 영화제가 마지막이 되면 어떻하지’, ‘3월이 재계약 시점이라는데 공간이 진짜 사라질려나’,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새로 공모로 선정하겠다던데, 그럼 지금의 시네마테크는 .. 더보기
상상의 시네마테크? 상상한다는 것은 질문하는 것이다. “만약 00을 한다면…?” “00이 되면 어떨까?” “왜 이렇게 하면 안 되지?”와 같이 세상에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창조한다. 하나의 작은 질문조차도 관성적인 세계를 두드려 깨워내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질문을 품지 않고 살아온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잃고 살아 왔던가? 사회를 억압하는 힘과 당연한 듯 요구된 부당한 ‘당연함’속에서 우리는 가능한 수많은 질문들을 습관처럼 삭제했다. ‘대학 진학’을 ‘대학 진학?’으로, ‘취업’을 ‘취업?’으로 바꿔보자. 정언명령처럼 주어진 단어에 물음표 하나만 붙여도 달아난 가능성들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잃어버린 질문들, ‘현실감각’과 ‘경제력’이라는 .. 더보기
시네필의 향연, 2010 친구들 영화제 ‘완전정복’ 즐감 백배의 시간표 이렇게 짜보세요! 한 해 영화제의 시작점이 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대망의 막을 열었다. 아마 시네필이라면 상영작들이 발표되자마자 목록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터이다. 말로만 들었던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시리즈를 비롯해서, 존 포드, 니콜라스 뢰그, 조셉 로지, 장 으스타슈, 오즈 야스지로, 장 엡스텡, 존 부어맨, 버스터 키튼, 더글라스 서크, 프리츠 랑, 칼 드레이어 등등. 그야말로 성찬이다. 그렇다보니 시간표 앞에서 형광펜을 꺼내든 자세가 사뭇 비장해진다. 더구나 다섯 번째인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든 상영작을 보기로 다짐한 탓에 스케줄 짜는 일이 더 고민된다. 필자의 경우, 이제껏 친구들 영화제에 빠짐없이 참여하긴 했지만, 관람 목록은 듬성듬성 빈틈이 많았다. 미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