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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11월의 레터 오늘부터 서울아트시네마는 전국예술영화관협회와 공동기획으로 “Save Our Cinema -우리 영화의 얼굴”을 시작합니다. 예술영화, 독립영화 상영의 활성화를 위한 행사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네 명의 평론가가 선택한 네 편의 한국 독립영화 상영과 강연이 진행되고, 시네마테크 아카이브 작품인 에릭 로메르의 영화 네 편이 상영됩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판권 기한이 올해까지이기에 아마도 당분간 마지막 상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올해 탄생 백주년을 기념한 상영도 진행했지만, 여전히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소수의 영화 애호가 서클을 넘어서 충분히 전달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메르란 이름 뒤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또 다른 로메르는 영화 작업 외에도 이론적 성찰, 열린 교육학으로서 영화를 통한 교육 활동.. 더보기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QR 코드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QR 코드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극장 직원들이 해야할 일도 늘어나고 있다. 요즘 우리들은 ‘QR코드 체크인’을 실시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개인 정보가 포함된 QR코드를 생성한 다음 극장에 들어가기 전 내가 이곳에 왔다고 ‘신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확진자가 극장에 왔을 경우 다른 시민들에게 빨리 연락을 취해 전염병 전파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관객으로서는 믿을 만한 안전 장치가 하나 더 생긴 셈이며, 직원 입장에서도 이름과 연락처, 주소를 일일이 종이에 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는 관객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들 알아서 척척 등록하고 들어가신다. 하지만 극장문 앞에 앉아 관객을 안내하다가 QR코드 등록이 극장을 찾는 행위의 성격을.. 더보기
Web Magazine「Filmground」2020.5 서울아트시네마의 현재 지난 2월 26일, 서울아트시네마는 2주간 휴관에 들어갔다. 3일 전인 2월 23일, 정부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감염병 확산 차단을 위해 다중 밀집 시설 이용 제한과 집단 행사 자제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극장 휴관이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1월 25일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방문한 멀티플렉스 극장이 임시 휴관에 들어가면서, 영화관은 사람들에게 위험한 장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극장 관객수가 급감했다. 2월 한 달간 관객 수가 총 734만702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감소했다. 예술영화관 관객 수도 지난해 대비 60~80% 감소했는데, 확진자가 발생한 사례는 없다. 극장 휴관은 극장 스태프와 관객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한 선택이다. 3월 초 개.. 더보기
시네마테크는 동굴이다 나는 다른 영화광이나 감독 지망생들과는 다르게 늦게 영화에 빠졌다. 열아홉 살 때 수능 끝나고 논술 준비하러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돈 주고 영화를 봤다. 그때 를 보고 영화의 마술 같은 힘에 빠졌고 영화감독이란 직업에 대해서 호기심과 동경이 생겼다. 그 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나이도 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해선지 영화를 볼 때도 남들이 안 보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진 못해도 보는 취향에서만큼은 개성 있고 싶어서였나보다. 여러 예술 영화관을 전전하던 끝에 시네마테크를 방문하게 됐고 이곳을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관객회원으로 등록해 연회비를 내기에 이르렀다. 시네마테크를 자주 찾은 건 아니어서 발권 받을 때마다 할인 받은 액수가 연회비에 못 미치는 사태를 초래.. 더보기
[에세이] 극장에서 로메르 영화를 본다는 것 문화적 취향으로 사람을 가늠하는 건 오만하고 어리석은 시도지만 어떤 영화들은 분명 그의 성격을 짐작할만한 특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테면 저는 일전에 좋아하는 감독으로 웨스 앤더슨과 알렉산더 페인을 꼽았다가 웃음기 어린 걱정과 우려의 질문을 받았었거든요. “아니, 남자친구도 희원씨가 그런 거 좋아하는 거 알아요?” 과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같아도 그런 여자랑 연애는 하기 싫겠다. 왠지 영 서투를 것 같잖아요.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이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영화를 보고나면 "넌 델핀이 맘에 들어?"(녹색광선)라던가, "레네트랑 미라벨 중에 누가 마음에 들어요?"(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같은 단순한 질문을 심리테스트 하듯 가벼이 건네게 되거.. 더보기
[에세이] 참 좋은 약국 '서울아트시네마' ‘영화는 만병통치약이다.’ 내게 누군가 영화의 정의를 내리라면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상당히 영화를 즐겨봤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가서도 여가시간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매일 두 세편의 영화를 빌려서 봤었다. 하지만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로 인해 어느 순간 영화의 매력에 푹 빠졌고 거의 매일 영화관을 들락거리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내겐 영화 보는 일이 제일 우선이 된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크게 와 닿았고, 지금은 볼 수 없는 영화들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에 조금씩 가까워졌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8살 때의 일이다.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를 주구장창 .. 더보기
[에세이] 영화보기, 내 십대의 특별한 생존기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조금 특별했다. 이상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 공립 대안학교였는데, 갓 한국에서 온 열여섯의 영어가 느린 동양인 여자아이에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지고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 토론하는 수업시간은 신세계였다. 매번 문학시간은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나는 ‘일리야드’를 읽지도 플라톤의 ‘국가론’ 전문을 읽어본 적도 없었는데, 그곳의 아이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미식축구 감독 욕을 하며 인용했고 세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슨 작품들을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드라마에 비유하곤 했다. 그곳의 똘똘한 아이들은 나에겐 거대한 충격이었다. 난 거기서 살아남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다. 우리 학년에서 유행했던 고급 영국식유머를 배우고 즐.. 더보기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시네마테크 사태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의 존재 누구나 영화를 만나는 방식과 방법은 다르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상영되기 위해 태어난 예술이다. 이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속단하는 것은 이르지만 영화로 이루어진 곳이 극장이라는 것은 누구도 쉽게 부정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다.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백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일주일에 서 너 편씩 개봉하는 헐리웃 무비들과 교차상영을 무릅쓰고 상영할 수밖에 없는 작은 영화들, 그리고 멀티플렉스 극장들 간의 미묘한 경쟁의식 등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역사와 충돌을 거쳐 발전해왔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시네마테크(서울아트시네마)는 개관한지 올해로 8년을 맞고 있고, 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