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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에른스트 루비치의 '천국은 기다려준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에른스트 루비치의 성공은 지속됐다. 도회풍의 세련된 코미디가 급격한 변화를 겪던 미국인, 미국 사회와 잘 맞아떨어진 까닭이다. 자기 영화의 성향과 잘 어울리는 파라마운트사와 주로 관계를 유지했던 루비치는 1941년에 폭스 사와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발표한 는 루비치의 유성영화 중 흥행에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남았다. 영화는 헨리라는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상류층 뉴요커인 그는 죽은 뒤 지옥사자 앞에서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비치는 역사물을 다룰 때에도 시대와 무관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곤 했다. 사회와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개인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의 전작인 (1942)를 기억해보라). 그러한 점에서 는 루비치 영화의 기념비에 해당한다. 영화는 19세기 말부터 .. 더보기
자크 베케르의 '현금에 손대지 마라' 알베르 시모닌의 원작소설이 처음 나온 것이 1953년의 일이니, 자크 베케르가 를 영화화한 것은 꽤 재빠른 시도였다. 갈리마르의 ‘세리 누아르’에 실렸던 이 소설은 초판 20만부가 팔리는 인기를 얻었고 유명한 문학상인 되 마고 상(Prix des Deux Magots)을 수상했다. 은퇴를 앞둔 노년의 갱스터가 주인공들이다. 오랜 친구인 막스와 리톤은 마지막 노후를 편하게 보내려 공항에서 금괴를 강탈하는데, 계획과는 달리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정을 너무 과신했던 탓이고, 금괴 강탈에 야심을 보인 눈치 빠른 신흥 갱 안젤로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베케르가 이 소설에 관심을 보였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두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게다가 은퇴를 앞둔 그들의 나.. 더보기
로버트 알드리치의 '피닉스' 사막의 한복판. 무전기도 망가졌고 기체도 불안정한 ‘늙은 새’라는 군용 수송선을 개조하여 승객을 실어 나르는 낡은 비행기가 날아간다. 좁은 비행기 안에는 온통 남자 승객들뿐. 그리고 비행기를 모는 기장. 제임스 스튜어트가 있다. 그는 늙었다. 옛날에는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나는 것 자체에 프라이드가 있었지만, 지금은 조종사들의 실력이 예전보다 나아졌는데도 프라이드란 것이 없어졌다고 한다. 낡고 좁은 비행기 안에는 비행기의 조종간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심약한 부기장 리처드 아텐보로와 정신이 이상한 승객 어니스트 보그나인. 엄격한 영국군 장교와 그에게 불평불만이 가득한 병사. 술을 마시며 만도린을 타는 젊은이.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는 젊은이. 그리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햇병아리 독일인 젊은이가 땀을 뻘뻘 흘.. 더보기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멜빌이 여전히 레지스탕스 시절의 가명을 유지했던 것은 그가 또 다른 레지스탕스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다르가 찬사를 보냈던 열렬한 시네필이었지만 영화는 멜빌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즈네 거리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만들어 저항의 근거지를 삼았던 멜빌은 완고하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브레송, 타티와 더불어 그의 영화 속 인물들(레지스탕스, 경찰, 도박사, 갱스터들)이 과묵한 것은 그들 대부분이 레지스탕스로부터 차용한 행동의 코드를 규율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은밀함, 완강함, 도덕적 견고함, 희생적인 충성은 그들의 미덕이지만 전후의 프랑스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기도 했다. 멜빌의 인물들은 살아 있지만 절멸된 과거의 흔적을 상속받은 시대착오적인 이들.. 더보기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1963)는 그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도전이었다. 몇 번의 TV 출연을 제외하면 연기 경험이 아주 없었던 무명 여배우와의 작업, 살아있는 새와 애니메이션 새를 혼합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특수효과, 식별 가능한 음악 없이 오로지 새의 음산한 울음소리로만 구성한 사운드 트랙, 그리고 그의 연출작 중에서 최고의 제작비에 해당하는 330만 달러까지, 줄곧 작업해 오던 파라마운트를 떠나 유니버설로 회사를 옮겨 처음 작업하는 는 여러 모에서 히치콕에게는 도전이라 할만 했다. 하지만 등으로 경력의 정점을 찍은 그에게 의 여러 불리한 조건들은 완성도를 방해할만한 위험 요소가 전혀 아니었다. “처음부터 특수효과의 난제들을 맞닥뜨리는 것에 절대로 겁을 집어먹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더보기
빈센트 미넬리의 '브리가둔' 은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을 원작으로 MGM 스튜디오 뮤지컬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빈센트 미넬리 감독과 진 켈리의 호흡이 빛나는 영화다. 뉴요커인 토미와 제프는 스코틀랜드 산 속으로 사냥 여행을 떠났다가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 브리가둔에 도착한다. 지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은 마을 브리가둔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소박하며, 피오나의 동생 진의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을 한 채 단결과 화합을 중시하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석연치 않다. 토미는 아름다운 마을 여성 피오나와 사랑에 빠지며 이 독특한 공간의 매력을 느끼지만, 어느 날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곳은 마녀의 주문에 걸려 100년 마다 한 번씩 하루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을이었던 것. 이 마을에서 이튿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