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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자존심의 강박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강렬한 초상 -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로버트 알드리치의 (1973)은 에이 넘버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무임승차로 미 전역을 떠돌았던 레오 레이 리빙스턴의 「잭 런던과의 대륙횡단 From Coast to Coast with Jack London」과 잭 런던의 「길 The Road」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로버트 알드리치는 이 무임승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명성과 자존심을 유지하는 데 사로잡힌 인물들의 초상을 강렬하게 그려낸다. 1933년,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대공황으로 인해 속출한 부랑자들은 달리는 기차에 무임승차하여 미국을 떠돌아다닌다. 무임승차 실력으로 명성을 얻은 에이 넘버원(리 마빈)은 악명 높은 차장 샤크(어네스트 보그나인)가 운행하는 19호 열차에 오르게 된다. 시가렛(케이스 캐러다인)은 그를 따라 열차에 오르다 샤크에.. 더보기
사치와 격정에서 비롯한 처연한 슬픔 - 막스 오퓔스의 <롤라 몽테스> 1800년대 초중반, 유럽은 롤라 몽테스라는 예명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떠들썩해진다. 이 무희는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를 포함한 수많은 고위층 인사들과 연애 사건을 일으켰으며, 심지어 바바리아 왕국의 루드비히 1세의 정부가 되어 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그 결과 루드비히 1세는 결국 퇴위하고 만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비극적인 여성의 생애를 그려낸 막스 오퓔스가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러티브의 대부분을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대신, 혁명 이후의 그녀의 삶을 각색한 오퓔스는 영화 를 바바리아에서의 혁명 이후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일생과 연애사를 공연으로 선보이는 서커스 무대에 선 롤라 몽테스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화려함을 넘어서서 사치라는 단어.. 더보기
장 르누아르의 만년의 걸작 - <탈주한 하사> 장 르누아르 만년의 걸작 (1962)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지역에서 포로로서 수용된 프랑스 군인들의 생활을 그린다. 뉴스릴 필름을 통해 간략하게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고 영화는 곧바로 수용소 내부와 그 주변 지역에서의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주된 인물은 파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하는 하사(장 피에르 카셀), 그의 절친한 친구이며 몽상가처럼 보이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다니는 바롤셰(클로드 라쉬), 그리고 가장 쾌활하면서도 현실의 씁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인 파테(클로드 브라쇠르)다. 군인이 되면 이전의 신분이나 직업들은 지워진다. 전쟁터 혹은 수용소는 그들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는 장소가 된다. 그러나.. 더보기
시원적인 공간, 인간의 신체 - 필립 가렐의 <내부의 상처> 모든 것이 비워진 새하얀 풍경, 시간과 공간을 추측할 수 없는 신화적 혹은 시원적인 느낌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곳을 돌아다니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이가 있다. 성서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 같기도 하며, 그보다도 이전의 인류 태초의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인간들은 그곳을 무작정 걸어 다니거나 울부짖고 다투거나 무언가 알 수 없는 행위를 한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불과 물이라는 질료, 양과 말 등의 동물들, 그리고 원형의 구도는 영화의 시간성을 자꾸만 태곳적으로 이끌고 간다. 모든 것이 새하얗고 흐릿한 풍경에서 지평선은 무한히 확장되며 하늘과 땅의 경계조차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영화 (1972)는 필립 가렐이 니코와 결혼한 후 만든 첫 작품이다. 영화음악을 담당.. 더보기
현대 코미디 역사의 전위 - 테리 길리엄의 ‘몬티 파이튼의 성배’ 1975년에 가 공개되었을 때, ‘몬티 파이튼’은 TV 시리즈를 통해 이미 하나의 컬트 현상이 되었다. 골계미마저 느껴지는 풍자와 비틀린 유머로 점철된 저예산 소모성 코미디인 ‘몬티 파이튼’ 시리즈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코미디 역사의 전위로 불리고 있다. 는 그 중에서도 이 우상파괴적인 코미디 시리즈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특히 여기에는 시리즈의 골수팬들이 열광하는 전설적인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들어가 있다. 는 TV 시리즈에서부터 이어진 코믹한 패러디 각본을 모델로 삼고 있다. 왕 중의 왕이 되기 위해 성배를 찾으려는 아더 왕의 이야기를 패러디 한 스토리는 특별한 중심 모티프 없이 제멋대로 전개된다. 서기 932년 잉글랜드, 아서 왕(그레이엄 채프먼)은 카멜롯으로 성배를.. 더보기
폭력의 피카소 - 셈 페킨파의 '겟어웨이' ‘피 흘리는 샘’ 혹은 ‘폭력의 피카소’라 불린 샘 페킨파는 1960,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의 감독들 중에서 서부의 신화를 의문시하면서 가장 전복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 작가이다. 페킨파 영화의 독특한 시학은 베트남 전쟁, 정치적 암살 등으로 표출된 아메리카의 폭력적 에너지를 역사의 죄의식과 연결하는 것이다. 미국적 프런티어는 이제 물리적 여정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이며 움직임의 선 또한 내부화된다. 방황하는 인물들의 폭력 또한 몸을 파괴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영화적 이미지, 즉 표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의 경향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69)의 말미에 보이는 극단적인 커팅, 수천 개의 쇼트로 구성된 장렬한 총격전은 줌 렌즈와 느린 화면들의 활용으로 폭력의 잔.. 더보기
재미로 치면 으뜸가는 서부극 - 혹스의 ‘리오 브라보’ 할리우드가 거대 에픽에 현혹되어 있을 당시, 하워드 혹스도 왕과 왕비와 유사 역사가 뒤섞인 이야기에 도전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혹스의 친구인 윌리엄 포크너를 비롯해 수많은 혹스 사람들이 동원됐고, 이집트 로케이션을 감행한 영화엔 막대한 물적 자원이 투입됐으며, 만 명 가까운 엑스트라가 출연한 어마어마한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러나 장르영화를 주물러온 혹스라 한들 모든 장르의 걸작을 만들 수는 없었다. 은 흥행에 실패한데다 평단의 혹평까지 들었다. 데뷔 이후 1년 이상 쉰 적이 없던 혹스가 4년이란 긴 시간을 할리우드와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유는 그러하다.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평단들의 애정 공세로 그나마 마음을 달랜 혹스는 1958년 봄에 드디어 애리조나의 촬영 현장으로 복귀한다... 더보기
순수와 영혼의 구원 - 로베르 브레송의 <블로뉴 숲의 여인들> 의 흥행 실패는 제작자가 파산하고 브레송 자신도 칠 년 동안 메가폰을 잡지 못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이후 누벨바그리언에 의해 재발견된 이 작품은 사실 브레송 특유의 금욕적인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감옥’이라는 모티브와 영혼과 구원에 관한 그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선악 대립 구도라는 장르적 요소를 차용했지만 기존 멜로드라마와 차별되는 여러 지점들로 당대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까지 호소력을 갖는다. 남편의 사랑을 시험해보는 헬렌(마리아 카사레스)은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자유롭게 놓아주자는 장(폴 베르나드)의 말에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다. 한을 품은 헬렌은 은둔하며 조용히 살아가려는 전직 창녀 아녜스(엘리나 라부르데)에게 접근해 장과 결혼시킬 음모를 꾸민다. 아녜스는 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