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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시공간의 혼란, 사악한 시선에 의해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영화읽기] 니콜라스 뢰그의 의 초반부에 이런 문제가 나온다. 지구가 둥글면 왜 얼은 호수는 평평한 것인가(If the world is round, why is a frozen lake flat)? 영화 초반부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호수는 미국의 온타리오 호수인데, 어떤 책에 따르면 이 호수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3도쯤 구부러져 있다고 한다. 얼은 호수가 평평해 보이더라도 그게 진짜 평평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보이는 그대로인 것은 없다(Nothing is what it seems). 이 문제는 대부분 물과 가까운 곳에서 전개되는 의 공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문제의 답이 곧 이 영화의 주제라는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인 것이 없다면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진실.. 더보기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 - 마성에 맞서 삶을 지킬 수 있는가 걸작이 당대에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은 예사이다. 찰스 로튼의 에 가해진 박해는 이런 생각을 확증으로 굳혀준다. 피카레스크 소설과 잔혹동화, 심리 스릴러가 두서없이 섞인 이 영화는 발표 당시 평론가들의 이해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었다. 박스오피스에서의 실패와 가차없는 혹평으로 인해 로튼은 이후 다시 연출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훔친 돈을 노획하기 위해 고아가 된 남매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연쇄살인마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데이비스 그럽의 1953년 소설을 각색하면서 찰스 로튼은 작가 제임스 에이지가 작업한 대본을 계속해서 고쳤다. 초기 미국의 시골 풍물이 물씬 풍기는 영화를 원했던 로튼은 그 방면의 대가였던 그리피스의 무성영화들을 참조했다. 그리피스의 위대한 아이콘이었던 릴리안 기쉬가.. 더보기
왕가위의 <열혈남아> - 암울한 홍콩의 미래를 이야기하다 (1988)는 왕가위 감독의 첫 번째 영화다. 홍콩 느와르가 인기 절정을 누리던 80년대는 한편의 히트작에 관한 속편과 아류작들이 대량으로 제작되어 영화감독과 스태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왕가위도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나섰다. 당시 왕가위는 흑사회를 소재로 한 ‘홍콩 느와르’ 장르를 정착시킨 등광영 밑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친구인 유진위가 왕가위를 추천하게 되면서 등광영의 지원, 제작으로 연출하게 되었다 한다. 는 줄거리 상으로는 80년대 홍콩영화의 주류장르였던 홍콩 느와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왕가위는 느와르 혹은 갱스터 장르의 정석적인 틀만을 유지하고 있다. 구룡의 어두운 뒷골목을 방황.. 더보기
기이하나 매혹적인 도착자들의 세계 그린 존 워터스의 <디바인 대소동> 존 워터스의 ‘쓰레기의 제왕’. 23세에 만든 첫 극영화로 인해 영화가 아직 개봉도 되기 전에 음란죄로 체포되기도 했으며, 자신의 작품이 아무런 사회적 가치도 되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 볼티모어 출신의 괴짜 감독 존 워터스를 일컫는 말들이다. 그는 70년대에 괴팍한 농담과 괴이한 상상력으로 저예산 영화들을 만들어내면서 대표적인 컬트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1974)은 그의 대표작으로 전작 (1972)의 속편이자 (1977)과 함께 소위 ‘쓰레기 3부작’을 이룬다. 크리스마스 아침, 던 데븐포트는 부모님께 하이힐을 선물 받지 못하자 분노해서 충동적으로 가출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던 데븐포트는 존 워터스의 페르소나로 잘 알려진 거구의 드랙퀸 디바인이 연기했으며, 그녀는 첫 .. 더보기
'68년 5월의 잃어버린 아이들, 장 으스타슈의 <엄마와 창녀> 클래식 음악과 실존주의 철학을 신봉하는 인텔리인 알렉상드르는 직업도 없이 애인인 마리에게 빌붙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날 그는 옛 애인인 질베르트를 찾아가 청혼하지만 거절당하고,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베로니카와 사랑에 빠진다. 마리와 베로니카는 각자를 질투하고 알렉상드르는 두 여자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63년 첫 영화를 만든 후 10년만에 처음으로 만든 장편극영화에서 으스타슈가 다루고 있는 것은 68혁명 이후 프랑스를 점령한 절망적인 분위기다. 장 피에르 레오가 연기하는 알렉상드르는 이 시대의 완벽한 페르소나다. 그는 자신을 양육해주는 엄마(마리)에게 의존한 채, 때로 갑작스러운 각성이라도 한 듯 옛사랑(질베르트)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고 부도덕하게도 이 희미한 옛사랑의 대역으로 창녀.. 더보기
물질성과 정신성의 조화, 그리고 사랑과 믿음의 회복 칼 드레이어의 (1955)는 카이 뭉크의 희극을 칼 드레이어가 각색하고 연출한 영화다. 드레이어의 세계와 뭉크의 세계는 분명 닮은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뭉크와 드레이어는 항상 사랑을 찬미한다. 그들에게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육체적) 사랑은 다르지 않다. 드레이어는 “카이 뭉크에게 있어 훌륭한 것은 신이 이 두 가지 형태의 사랑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가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을 드러내듯 에서 아버지가 미켈에게 “잉거는 이제 천국에 있으니 놓아주라”라고 말하자, 미켈은 “자신은 잉거의 육체도 사랑했다”고 대답한다. 이와 같은 사랑에의 인식을 억압하는 것은 결국 종교이다. 영화의 배경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덴마크의 기독교는 두 종파로 분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선 영화에.. 더보기
인간과 자연 사이의 살벌한 전투 [영화읽기] 존 부어맨의 영국 출신의 존 부어맨은 18살에 신문에 영화평을 쓰는 평론가로 시작해 예고편 편집기사, BBC 다큐멘터리 감독을 거쳐 1965년에 첫 연출작 으로 데뷔했다. 그 후 1967년경 친구 리 마빈의 소개로 할리우드에 진출, 출세작 를 찍는다. 이후로도 계속 부어맨은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작업했는데, 성공과 실패를 오르내리는 필모그래피를 보여주었다. 1970년 할리우드 제작사와의 갈등으로 영국으로 돌아와 만든 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타면서 비평적 성공을 얻었으나 동시에 대중적으로는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 후 2년 뒤 만들어진 은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이 되었으며 미국신화를 해체한 최고작으로 평가되었다. (1972)은 미국 시인이자 소설가인 제임스 디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 더보기
불안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세기말적 풍경, 마이크 리 <네이키드> 마이크 리는 영국사회의 보수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밑바닥 삶의 불안함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특히 정해진 각본 없이 배우들과 협업하는 즉흥 연출과 더불어 영국민의 변두리 삶과 생활 태도에 근거한 자기반영적 유머에서 나오는 풍자적 연출은 그만의 장기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는 전작까지 이어지던 블랙 유머가 완전히 휘발됐다는 점에서 마이크 리의 가장 어두운 작품이라 할만하다. 그런 조짐은 이미 오프닝에서 선언적으로 제시된다. 주인공 조니(데이비드 두윌스)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강간에 가까운 섹스를 마친 후 도망치듯 고향 맨체스터를 떠나는 것. 곧이어 카메라는 런던으로 향하는 운전석의 조니에게로 옮겨가지만 그의 시선에서 한없이 이어지는 메마른 도로 풍경은 목적지도 없고 희망도 없..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