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작가를 만나다 -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지난 4월 24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의 대표적인 정기프로그램인 ‘작가를 만나다’ 행사가 열렸다. 상영작은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이윤기 감독은 <멋진 하루>를 필름으로 보는 것은 당분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건넸고 이에 호응하듯 <멋진 하루>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개봉 당시 영화를 보지 못했던 많은 관객들이 함께 했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던 이윤기 감독과의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이곳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다시 봐도 재밌다. 배우들 연기도 재밌고 촬영도 좋고 음악도 포근하고 모든 부분의 밸런스가 잘 맞은 영화 같다. 너무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은 다시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
이윤기(영화감독): 원래 영화를 만들고 나면 확인 작업 때만 보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봉버전을 본 적이 없다. 오랜만에 <멋진 하루>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다고 하니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면 질문을 받아도 모를까봐 오늘만 좀 예외로 영화를 봤는데 감회가 새롭다. 착잡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일기장을 꺼내 다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성욱:
각각의 에피소드도 재밌고 특히 영화를 다시 보면서 공간적인 부분들이 많이 와 닿았다. 단편소설이 원작인데 한국단편이 아니라서 영화를 제작할 때는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들인데 이것을 모두 하루의 시점에 맞추기 힘들었겠다. 영화에 자동차부터 전철, 오토바이는 물론 기차도 지나가고 심지어 비행기까지. 모든 운송수단을 동원해서 공간의 움직임을 만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윤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건 폭탄을 끌어안는 것과 같다. 하루의 이야기를 비교적 많지 않은 예산으로 해결해야하니까. 하루 일과를 일관성 있게 맞추는 건 스태프들을 거의 노이로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옷도 한 벌, 머리도 같게 해야 하고 화장도 그렇고 뾰루지가 나도 안 된다. 준비할 때는 재밌을 것 같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웃음). 그만큼 준비도 굉장히 치밀할 수밖에 없다. 로케이션 준비기간은 다른 영화보다 길었다. 많은 후보지를 둬야하고 매일 토론하고. 스태프들이 할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다른 영화의 몇 배 힘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 힘들어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힘들다.

김성욱: 병운이라는 인물이 참 흥미로운 것 같다. 미워할 수 없는 것 같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350만원을 조달받고 돌려줘야하는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정말 독특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지만 남자 주인공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이윤기: 병운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컨셉은 분명했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병운은 어쩌면 희수라는 여자의 꿈 일수도 있다. 이상까진 아니고 도피하고 싶은 꿈. 팅커벨 같은 천사였으면 좋겠는데 좀 이상한 천사가 나타난 거다. 과장을 시켜도 괜찮겠다 싶었고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들고도 싶었다. 하정우 씨 자체도 병운과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웃음). 대사만 주면 질문도 없고 그냥 가서 마음대로 연기하시는데 거의 캐릭터와 똑같게 하더라.


관객: 감독님과 배우들 간의 연기 디렉션이 궁금하다.
이윤기: 내 영화에 비호감인 분들이 종종 비난하는 게 배우에 기댄다는 의견이다. 근데 실제로 현장이 그렇다. 디렉션도 안하고 이래도 오케이 저래도 오케이 하다 보니 이게 와전되어 배우에 기대는 기회주의자처럼 변모했다(웃음). 발끈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배우들에게 기대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스타일이다. 배우를 도구처럼 할 수도 있고 나처럼 그냥 배우에게 맡기는 사람도 있는 거다.

김성욱: 배우에 기대는 것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적절하지 않은 의견이라 생각된다. 기대는 것 자체가 마음의 소리를 듣는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근래 상황이나 구상중인 계획을 말해 달라.
이윤기: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제작사의 사정으로 미뤄졌다. 지금 준비하는 건 올 여름을 목표로 가고 있는 격정멜로가 하나있다. 아마 깜짝 놀라실 거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진짜 하고 싶은 영화는 마이클 만 영화 같은 것이다. 근데 그런 건 나에게 안 시킬 것 같더라(웃음). 워낙 여성영화감독, 이런 식으로 낙인찍혀서 활동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편견을 갖기 시작하면 그 편견은 사회상황과 비슷한 거다. (정리: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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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작가를 만나다 - 윤종찬 감독의 <나의 행복합니다>

심한 황사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았던 지난 20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궂은 날씨에도 연연하지 않고 3월 작가를 만나다가 열렸다. 상영작은 <청연>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 였다. 이날 끝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무척 암울하다고 알려졌으나 의외로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는 이 영화에 만족했고, 깊고 낭랑한 음성을 가진 윤종찬 감독은 조근조근 자신의 영화와 삶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 작품이 어떤 느낌으로 남아있었는지 그 점을 먼저 묻고 싶은데.
윤종찬(영화감독): 그냥 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촬영 기간도 6주가 안 됐던 것 같고.

김성욱: 이청준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아는데, 원래 소설에서도 간호사 아버지의 설정이 있었던 것인가?
윤종찬: 각색을 통해서 사연을 집어넣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김성욱: 주인공 만수의 치유 과정이라는 건 정신적인 일인데 간호사 아버지의 치료는 물리적 고통이 따르는 항암 치료였고 두 가지가 이렇게 병치될 때 굉장히 이상한 아이러니가 많았던 것 같다.
윤종찬: 기본적으로 조만수와 수경을 가장 짓누르는 것은 물질적인 어려움들이다. 사람들을 가장 짓눌리게 하는 상투적인 이유들이 뭘까, 그 중에 하나가 돈이었던 것 같고. 그 다음에는 아직 봉건적인 가족 구조. 거기에 근거해서 그런 설정들을 했던 것 같다.

김성욱: 두 남녀의 어떤 꼭짓점을 형성하는 게 그 의사인 것 같다. 간호사의 과거 남자친구였던 것 같고 남자에게 있어서는 담당의사이기도 하고.
윤종찬: 소설에서 의사의 생각은, 이 환자를 현실로 돌려보내는 게 나의 소임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각색을 할 때는 간호사 수경에게 아버지 다음으로 고통을 주는 인물로 만들었다.

김성욱: 감독님께서 로또복권 판매 사장으로 출연하시던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지.
윤종찬: 남원의 가게를 섭외했는데 그 배역에 대사가 있었고 남원이다 보니까 배우를 또 서울서 데려올 수도 없었다. 골치 아파 하길래 내가 하겠다고 했다.

김성욱: 정신병동 공간 묘사가 상투적이지 않았다.
윤종찬: 실제 정신병원을 찾아가 환자들을 만났을 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정신병자의 모습과 너무 달랐고 정신병원 자체도 별 특색이 없었다. 일반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김성욱: 배우들과 잘 상의를 하시는 편인지.
윤종찬: 배우들하고 상의를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배우들이 이 작품을 내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다 각오를 하고 오지 않았나 싶다.

김성욱: 엔딩 씬이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상정해 놓은 것이었나?
윤종찬: 그 커트를 딱 엔딩으로 상정하고 처음부터 한 건 아니었다. 편집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뭔가 결론적이지 않은 오픈 엔딩으로 하고 싶어 그렇게 했다.


김성욱:
주인공인 만수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제시하는 건 두 개인데 하나는 백지에 쓰여 있는 백억, 다른 하나는 가족사진이다.
윤종찬: 만수는 사실은 어머니와 형을 지극히 사랑했던 캐릭터인데 현실에서 오는 여러 가지 것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의사는 그런 것을 잔인하게 건드린다. 뿌리를 건드리는 거다.

관객1: 현빈이 이보영과 말없이 헤어지는 장면은 어떤 생각을 갖고 찍은 건가?
윤종찬: 특별히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 보다는, 배우의 감정을 보고 규정하지 않고 찍었다.

김성욱:
개봉 후 관객이나 평단의 반응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윤종찬: 열심히 준비하고 남 시선 의식하지 않고 결과를 미리 상정하지 않고. 이 영화가 내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작업하고 있다. 또한 감독이 어떤 사람이길래 저렇게 어두운 영화를 만들었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삶의 성향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성향이라고 봐 주시면 좋겠다.

관객2:
이번 영화에 혹 <청연> 개봉 후의 경험들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윤종찬: <청연>은 110퍼센트 제 뜻대로 찍은 영화고 평가나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유일하게 <청연>을 생각할 때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장진영이라는 배우다.

김성욱: 요즘은 어떤 고민과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신지.
윤종찬: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되고 어떻게 시나리오를 써야 될 것인가. 어떻게 좀 더 효과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시대가 자꾸 변하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여기서 어떤 얘기를 해야 될까, 감독을 그만두면 어떤 일을 해야 되는 건가 등이다.
김성욱: 그 고민들 중에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우선시돼서 진행이 됐으면 좋겠다.
(정리: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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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작가를 만나다 - 김정 감독의 <경>

2월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두 이름으로 두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 감독의 영화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이에게는 영화감독 김정이라는 이름보다는 영화평론가 김소영 또는 김소영 교수가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특히 이번 자리는 다른 사람의 영화가 아닌 직접 만든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던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독이자 이론가의 모습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그 흥미로운 시간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그 동안 다른 분들의 영화에 대해서 늘 이야기하셨지만, 오늘은 직접 한 편의 영화를 만드신 분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작가 김정과 선생님 김소영이라는 두 가지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계신 김소영 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경>은 김정 감독님의 첫 작품은 아니고 영화사 구경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한국 제목은 ‘경’이고 영어로는 ‘뷰파인더(Viewfinder)’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경'에 굉장히 다의적인 것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경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증이 듭니다. 마지막에 보면 특이하게도 아이디어 제공자, 창작 제공자 분들의 이름이 크레딧에 들어있어서, 한 편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한 권의 책을 에디팅한 느낌도 듭니다. 여러 사람들이 제공한 아이디어와 감독님의 생각들이 전체적으로 <경>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총화된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셨고 ‘경’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시는지.

김정(영화감독, 영화평론가 및 교수): 한국어는 동음이의어가 많아서 의도하지 않게 다중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언어의 다중성이 한국문화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경’은 ‘경계’, ‘경관’, ‘경전’, ‘구경’ 등의 많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경’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다의적인 의미를 좋아하고, 이미지와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경’이라는 단어가 풍요로움을 가져온다고 생각한 듯해요. 영화는 여자 주인공 이름을 정경, 정후경으로 지으면서 시작했습니다. 작년, 재작년 어린 소녀들 혹은 십대 청소년들의 가출, 실종, 유괴, 죽음 등이 많았는데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애도 못하는 어린 소녀들의 죽음 등이 힘들었고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습니다. 동시에 어머니의 죽음과 디지털 시대에서 끊임없이 서치(검색)를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윈도우의 창처럼 제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것이 ‘경’이었고, 영어로는 정확히 번역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뷰파인더’가 가장 가깝겠다고 생각하여 영문 제목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김성욱: 저는 이 영화가 <아바타> 이전에 나온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한편으론 이 영화의 공간이 거대한 아쿠아리움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아쿠아리움 안에서는 유리벽 때문에 바깥세상이 투명하게 열려있다고 생각되지만 경계로 가면 유리벽에 막혀서 실제로 거대한 내부 안에 있습니다. 경계의 문제, 안과 밖의 문제가 이 영화에서는 남강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흥미로운 지리적인 탐색을 통해 나타납니다.

김정: 수족관이란 비유는 좋은 비유인 것 같습니다. 사실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는 전자 수족관이 되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신드롬이 생겨난다고 봅니다.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감시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감시를 컴퓨터로 보는 ‘창’이란 캐릭터가 있습니다. 또 디지털로 인해서 내부, 외부라는 경계들이 새롭게 조율되고 이 안에서 새로운 커넥션들이 발생한다고 생각됩니다.

 

김성욱: 영화 속에서 남강 휴게소는 중요한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엔딩부분에서는 남강 휴게소를 베이스캠프라고 표현하더군요. 남강 휴게소는 뒤쪽 문을 통하면 강이 펼쳐지며 끊임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유령 같은 느낌의 독특한 공간성을 갖고 있는데 남강 휴게소라는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정: 제가 <거류>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부터 굉장히 오랫동안 운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거류>를 찍었던 고성으로 가려면 당시에는 대진 고속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덕유산을 넘어서 갔습니다. 그래서 폭설이 내리면 길을 돌아서 남강 휴게소를 들리곤 했는데, 그곳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공간성과 정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제가 왕가위 영화에서 혹하고 반했던 것이 24시간 편의점이었는데 고속도로에서는 휴게소가 그런 느낌입니다. 12시간씩 운전하고서 새벽 4시쯤에 휴게소에 들리면 휴게소가 절대절명의 위안을 줄 때가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이 죽은 소녀, 가출한 소녀, 집을 나간 엄마에 대한 애도가 있는데,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실제로 휴게소에서 많이 생깁니다. 이런 측면에서 휴게소는 폭발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강 휴게소는 완전히 발전 된 곳이 아니라서 그대로의 정취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습니다.

 

김성욱: 인물들이 말하는 것이 독백이기도 하고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뷰파인더라는 영화 제목을 떠올리면 영화 안에는 또 다른 뷰가 있으면서 말과 보기라는 것이 묘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특히 후경이 엄마의 과거에 대해서 말하는 공간의 세트와 인터뷰를 보면서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통상적인 구어체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밀도 높은 대사들이 보여 지는 모습들이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묶여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말을 하는 장면들을 포착하는 방식이 굉장히 색다르다고 느껴지는데요.

김정: 뷰와 인터뷰를 연결하신 것은 비평가로서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대사가 서로 네트워크는 되어있지만 씽크가 되지 않는 것, 특히 정경과 창이 대사를 주고받는 방식이 그러합니다. 요즘은 검색이 일상화 되어있어서 대화를 할 때도 검색을 하는 방식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화가 잘 되지 않기도 하면서 오해하고 의미들이 미끄러지는데 이런 것을 대화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인터뷰는 영화에서 중요했습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인물인 오나와 세화는 20대 중후반에 서비스 직종에 있는 여성들입니다.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오나가 얘기한 것처럼 이들은 서비스 직종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웃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실제 인터뷰를 토대로 많은 대사들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방식에 다른 중요한 것은 TV의 영향입니다. 한국은 TV드라마가 사람들의 심리와 관계, 삶의 방식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엄마가 돌아가셔서 엄마 고향을 찾아간다고 간 곳이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던 TV드라마의 세트장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모성, 자연 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것들은 제가 평소에 하는 생각들, 한류 TV드라마가 오랫동안 사람들을 지배했을 때 모녀와 관계와 같은 가장 원초적인 관계는 어떻게 바뀔까 라는 의문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TV가 사람들의 마음을 인공적이고 인위적으로 성형수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김성욱: 남자의 이야기 중에 남성의 아이덴티티를 군대와 연결시키는 창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매우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김정: 일단 창 캐릭터는 크레딧에 나온 것처럼 얼 잭슨 선생님이 쓰셨습니다. 얼 잭슨 선생님이 일본문화 특히 애니메를 연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셔서 쓰셨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친구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하였는데 그 때 그 친구가 창의 그 부분이 좋다고 했고 애니메이터로서 동의하며 굉장히 사실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남성의 아이덴티티를 창이 경남 고성의 칠공주 능에서 말한다는 것이 어떤 아이러니를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김성욱: 윈도우, 창, 프레임들이 있을 때 시선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키노아이 같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카메라가 남강 앞에 세워져 있는데, 이 카메라가 누구에 의해 세워져 있고 누구에 의한 시선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이 부재한 카메라의 시선, 기계에 의해 포착된 시선 같기도 합니다.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카운트다운에 나타나는 뷰파인더도 그런 느낌을 주었습니다. 영화의 시선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정: 전에는 사실 그런 식으로 시선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삶 자체가 유비쿼터스 방식이 되면서 표식 되지 않은 시선이 누구의 시선인지 정당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누구의 시선인지 정당화 되어야 하지만 카메라를 그냥 세워두면서 지금은 시선이 편재해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1: 엄마의 화장 문제를 어떻게 보고자 하신건지.

김정: 영화가 굉장히 좋은 작업인 것은 협업을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에너지와 탤런트를 모아서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오케스트레이션 한다는 것이 굉장한 작업입니다. 마지막 크레딧에도 나오지만 엄마에 관한 이 에피소드도 문화미래 이프의 엄을순 씨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몇몇 부분들이 제 이야기거나 제 견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들이고 여기서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할 수 있죠. 그리고 딸이 컴퓨터상에 엄마의 추모관을 만드는데 이것에 어떤 아이러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2: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디지털 퇴마사의 의미가 궁급합니다.

김정: 옛날 민담을 보면 조력사가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창이 디지털 시대의 조력자입니다. 오나에게는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디지털 요정 세화가 있는데, 세화에게 디지털 스토거가 생긴 것입니다. 조력자인 창은 도와주기 위해서 어떻게 퇴마를 하는지 알려줍니다. 주술은 가장 오래된 사람들의 기원을 푸는 방식인데,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도 창이라는 인물을 통해 나타납니다.


김성욱:
영화배우 고 신일선 씨를 어떻게 엄마로 설정하게 되셨는지.

김정: 신일선이라는 여배우의 행로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신일선 씨는 여기서 딸들이 말하는 삶들을 실제로 살았었던 인물이죠.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국민 여동생이라는 위치에 있다가 나중에는 파출부와 매춘까지 하게 되는 인생역전을 겪었지요. 이 시기에는 배우 신일선 씨뿐만 아니라 많은 여배우들과 당시의 어머니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었다고 해요. 그랬을 때 굉장히 잘난 딸들이 이러한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봤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그 중 담배 피는 신일선 씨의 사진을 택하게 되었지요. 매우 도발적이고 매우 이상하다고 여겨지는데 그만한 모습을 연출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서 신일선 씨의 사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정리: 신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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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김정 감독의 <경 Viewfinder>


김정 감독의 신작 <경>(viewfinder)은 다소 딱딱한 어투와 고도의 지식적 틈새를 이용하여 초반부터 스스로의 범상한 입지화를 거부하는데, 보는 이들에겐 어느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이러한 난해함들이 방해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고전의 '거리'와 사이버 '세계'와 애니메이션의 '무대'를 상상적으로 넘어다닐 때 영화는 그것에 명확한 인식의 경계점을 긋지 않는다. 이것은 포스트모던한 사고라고도 볼 수 없다.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의 통로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절망하는 회유적인 정서를 깊게 깔고 가지만 그 비관적인 것을 결코 시선화하거나 확대, 재생산하지 않는다. 정서는 쓸쓸하나 그것을 담아내는 시선은 결코 관조적이지 않다. 이것은 영화 미학적인 실험이 목적인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오프닝, 남강 휴게소의 간판이 보인다. 어둔 밤 고속도로 위의 한 차에 실려 그를 따라가던 카메라가 2차선 도로에서 깜박이등을 켜며 서서히 속도를 멈춘다. 순간적으로 헤드라이트 앞에 개 한 마리가 보이고 옆으로 같은 색의 비슷한 차가 무서운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함께 달렸으면 몰랐을 괴물적 속도가 상대성의 원리로 재현될 때 이 흰 색의 차와 개에 투영된 우리의 근심은 마치 우리 자신에게로 전도되는 듯 하다. 차에서 내린 젊은 여자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나서, 불도 켜지 않은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다 뒷문을 열고는, 남강의 풍경을 향해 걸어들어간다. 새벽의 풍경은 검지도 밝지도 않은 적막한 푸른 색이다. 이 어둠 속의 디지털 촬영기술의 미세함,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재현될 때 보는 자로서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날이 밝아오자 여자는 모자를 쓴 안내원들이 일하는 관광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 정보를 검색한다. 다시 길을 나서던 여자는 남자 '창(window)'과 우연히 스쳐지나간다. 이 '창'이란 이름의 남자는 IBM 노트북 하나가 전 재산인, 그야말로 디지털 유목민같은 행색을 하고 있다. 영화는 이 남자를 등장시키면서부터 종종 그의 관망적인 나레이션을 인서트하면서, 영화 자체를 마치 웹의 공간에 타이핑하는 듯이 밖으로 완전히 빠지는 프레이밍을 보이기도 한다. '창'을 통해 이 영화 자체를 window 시스템과 같은 '매체'로 다루려는 의식이 영화 속 인물들에게 종종 투영되기도 하는데 그의 혼잣말에 가까운 '대화', 혹은 이미지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진 작업을 하는 여자가 인터뷰라는 명목상으로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보이는 인터뷰이들의 '혼잣말(고백)'등에서 그러하다. 영화의 모든 대사는 타자(대상)가 없는 상태에서 오직 뷰파인더와 자신과의 대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의 이름은 전경(前鏡)이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49제 후) 집을 나간 동생 후경(後鏡)을 찾아 나선다. 전경은 초반 휴게소에서 스친 전직 에니메이터이자 현 사이버 퇴마사를 자칭하는 남자와 이후에도 몇 번을 인상적으로 스쳐가고, 그녀가 찾는 후경과도 우연히 스쳐지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아이덴티티(ID)가 없는 상태로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영화는 디지털을 이용하여 사람의 자취를 찾는 것의 맹점에서 헤매인다.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는 여자의 경우도 그러한데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 속 아바타와 소통하며 CMA통장까지 만들어 언젠가 이 도시를 벗어나 함께 아시아 하이웨이를 타고 새로운 세계로의 이주할 꿈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무언가를 찾고자(find) 그것을 들여다보고(view) 있다. 하지만 PC, 핸드폰, PDP, 네이게이터의 화면을 통해 찾으려는 사이버상의 좌표들은 찾는 자의 아이덴티티(ID)를 먼저 묻는다. 아이디가 없으면 말해주지 않는 진실들. 그것을 위해 만들어지는 가상의 아이덴티티(ID). 그 가상에게 전달되는 가상의 정보. 그들이 실제로 서로의 지표를 확인하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부조리한 현상들. 영화는 아이덴티티를 확인받지 못한 채 정착하지 못하는, 안정된 위치를 결코 확보하지 못하는 메트로시티 속 현대인들의 고독, 그들의 정처없는 좌표를 그린다.
 
무엇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경(viewfinder)의 view+finder라는 단어 자체의 결합성. '보는 것(view)'과 '찾는 것(find)'의 결합. 거울(鏡)의 실재계와 상상계. 전경(前鏡)과 후경(後鏡). 결국 상상 이미지 속에서 찾아 헤매는 자아상. 마치 차이밍량의 영화를 떠올리게도 만드는 정체성이 부유한 상태에서 또 다른 곳에 존재할지 모르는 정체, 혹은 존재했었던 기원성의 정체를 찾는 행위로서의 영화. 고독과 불소통과 각자의 '창'에 갇힌 인물들. 그 '창'은 그들이 몸에 장착한 채 그들이 찾는 정체성과도 같은 경은 finder로서의 viewer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이미지 거울같은 폐쇄적 창일지 모른다. 멀리 간 것 같은데 결국 돌아 다시 그 자리. 마치 자크 타티 영화의 거대한 교차로에서의 차들의 운동처럼 온통 거리로 나온 차량들의 트래픽 상태에서의 원형운동. 영화는 멀리 나아갈 듯 하다 막힌 지점에서 늘 턴을 한다. 정지, 그 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돌기, 전진과 후진. 들어가고 빠져나오고 창을 열고 스스로 창을 닫고 나온다. 스스로 충전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늘 충전하러 들러야만 하는 휴게소, 충전소, 웹의 공간. 그곳들의 인간 군상. 구심점 없이 떠돌아다니다 아시아 하이 웨이로 들어서는 도로에서 일직선으로 늘어선 밤의 자동차들. 그들의 행렬. 그 곳은 또 다른 세계를 열리게하는 길목일까.

디지털 유목민. 도시의 플라네르(flaneur). 구경자(영화사 '구경'의 첫 작품)로서의 인물들은 과거로부터의 죽음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절망의 현재를 벗어나려 미래의 세계를 재탐색하려는 듯 끊임없이 리셋(reset)하며 스스로를 새롭게 디자인하는데 몰두한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마치 과거라는 구심점을 두고 계속 같은 자리를 빙빙도는 부유하는 시간, 즉 단 한번도 현재와 만난 적이 없는 미래의 까마득한 시간을 불러들인다. 영화에서 전경이 어느 순간 영화의 구가지에서 만나는 낯선 이미지는 까마득한 과거이면서 동시에 미래에서 들여다 본 현재의 유곽화된 거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화의 현재, 그 현장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영화 바깥에서 미래에서 도착한 자로서 과거의 영화를 지켜본다. 그것은 우리가 영화에서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자취들을 찾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증거이다. 도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우리는 도시 속을 여행한다. 그러나 도시는 우리가 찾는 것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도시는 현재라는 구심점으로부터 우리를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내몬다. 도시 속의 여행자인 우리들은 사회의 구심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한 채 그저 집을 나갔다 다시 돌아 오는, 그런 빙빙 도는 운동으로 밖에 작금의 정처 없음과 좌표 없음을 증명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오늘도 거대한 무리에 속한 채 그들과 함께 끝임없이 어딘가로 가지만 결국 갈 곳이 없다. 우리는 그 '정처 없음'의 자리로 매번 되돌아 온다.

현재의 자취가 없는 우리는 그것을 찾는 여행을 하게 된다. 현재의 부유함은 다른 시간의 장에 존재하는 존재들을 만나게 한다. 과거라는 사진적 형상으로, 지면의 땅 속으로 사라진 자, 곧 죽은 자는 오늘의 실재적 흔적이 없다. 우린 현재 속에서 상상적인 디지털 창을 그려넣고 결국 그들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떠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상상의 창을 통해서만 현재의 단절된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지로서의 상상력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만 과거의 존재를 찾고, 채 애도 못한 죽음을 애도할 수 있도록 허락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이주할 꿈을 꾸는 디지털리스트들이 된다(되었다).

PC방에서 어머니의 추모제를 드리는 딸, 묻힐 땅이 없어 현재를 떠돌고 있는 과거의 유령들. 한 번도 자리를 내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HD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이 땅의 작가 감독들. 완전히 매혹된 영화를 PC방에서 홀로 화면을 향해 밤새 써내려가고있는 지금 내 모습까지. 우린 지금 어쩌면 다 같이 주인없는 땅. 나 없는 내 인생. 바로 그 거울을 보고 있다. 나는 결국 이 영화에 설득당했다. 민숭 맨숭한 채 영화를 보다가 후반부에서 눈물이 흘렀다. 화면 안엔 전경과 후경이 그토록 부정하려 했던 과거의 정신병적 어머니도, 과연 인간의 정서가 남아있을까 의심스러웠던 오타쿠적 디지털리스트들도 아닌, 완전히 발가벗겨진 스스로의 현재상이 있었다.



김정 감독의 전작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이 땅에서 잊혀진(미발견의) 과거(여성의 구술로써의 역사), 그 기원의 팩트들이 사이버의, 가상의 세계에서 만나 사장되고 단절된 현재의 역사성을 카메라 트래킹으로써 '이야기한다' 카메라를 실은 전경의 차는 오토바이에 탄 후경의 뒷 모습을 발견한다. 후경이 전경을 돌아다본다. 그들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아무런 발견도 하지 않으나 핵심은 그들의 시선이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마주친' 것이다.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의 앞과 뒤를 탐사하는 카메라, 앞에서 리드하다 뒤로 빠져나와 지켜보는 그 카메라의 움직임. 제 각자의 층에 존재하는 시간성과 시대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것 자체를 사유하려는 움직임. 이 '영화의 움직임'이 아름답지 않다면. 도대체 현재, 이 도시 속에서 무엇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김시원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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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작가를 만나다 - 배창호 감독의 신작 <여행>

올해 첫 ‘작가를 만나다’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가운데 좀 특별한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주로 고전영화를 틀고 즐기는 이곳에서 배창호 감독의 신작 <여행>의 프리미어 상영이 있었던 것. 올해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에서 열정적인 축사로 관객들을 감동에 빠지게 만들었던 배창호 감독이기에 이 시간은 더 각별했다. 배창호 감독은 “2008년에 특별전을 하면서 다음 작품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첫 시사를 했으면 했는데, 원한바대로 여기서 상영하게 되어 기쁘고 첫 데뷔처럼 가슴이 설렌다”며,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작고 소박한 이야기가 담긴 제주도로의 즐거운 여행을 같이 떠나자”고 말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펼쳐진 배창호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 짧아 아쉬웠으나 진실한 감동으로 교감했던 그 만남의 순간들을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면서 세 편의 에피소드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생각했다. 한편으로 보면 제주도가 삼다도라 돌, 여자, 바람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구성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에피소드를 구성하면서 어떤 점에 착안하셨는지, 그리고 영화를 만든 배경도 간략히 밝혀주신다면.

배창호(영화감독): 우선 좋은 기획을 해준 오동진 대표, 회사 분들, 무엇보다도 내 짜증을 묵묵히 받아준 스텝들의 노고가 아주 컸다. 지난 3월에 영화사 대표로부터 한국의 자연이 소개되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완전히 자유로운 영화를 저예산으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원래 나는 자연을 넣는 것을 좋아해서 흔쾌히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상의 끝에 제주도로 의견이 모아졌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자연 중에서 가장 독특하며,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서다. 곧 여행이라는 제목과 가장 보편성 있게 제주도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첨엔 세 편을 다 여행이야기로 구성할까도 했다. 세대를 달리하여 20대의 여행, 신혼부부의 여행, 중년여성의 여행으로. 그러나 1부를 찍고 나서, 세 편 다 여행이면 모두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2부는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부는 같이 각본을 썼던 제자들의 체험이 바탕이다. 제목처럼 큰 욕심 없이 산뜻한 제주도의 경관을 보면서 추억도 남기고, 티격태격 싸움도 하고, 사랑도 하고 하는 과정을 만들자는 거였다. 2부는 아침 촬영 전 산책을 하다가 한 해녀가 물질하고 나오는 것을 보고, 여기 사람들을 찍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2부 여중생의 대사는 딸의 상상력을 통해 썼고, 3부는 나의 아내 김유미 씨랑 같이 썼다.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다!

김성욱: 시간이 짧게 준비돼 있으니, 곧바로 영화를 보신 관객 분들의 이야기와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다.

관객1: 영화 너무 잘 봤다. 1부에 스쿠터 여인이 나온다. 갑작스럽게 정체불명의 여인이 나타나서, 그녀가 3부에서 김유미 씨가 연기한 여인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맥거핀 효과를 노린 것인가.

배창호: 맥거핀적인 효과를 주려고 한 것에 대해서라면 반은 맞다. 남녀 둘만 가면 밋밋한 구조니까 궁금증을 주려 했다. 특별히 미스터리가 있는 여자는 아니지만, 그런 여자의 삶을 우리가 가까이 들여다보면 3부의 여인 같은 삶처럼 될 것이다. 만약 프리프로덕션을 1년 정도 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했더라면 그렇게 출연이 겹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2부와 3부는 은희가 빵집에서 울고 있는 여중생을 만나는 장면을 통해 연결하려 했는데, 너무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될 것 같아 뺐다. 우리가 여행 중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느끼면 그러한 삶이 있고, 우리가 수수께끼로 여기는 여자의 삶도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쓴 거다.

 

관객2: 와 닿는 대사가 많았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자는 디카를, 여자는 필카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데, 그렇게 나눈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여자가 디카, 남자가 필카의 감성이 더 잘 어울린다 생각 했는데. 그리고 한 가지 영화 속 인물들이 전부 전문 배우들 같지는 않은데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제주도 현지 사람 얘기라 제주도 출신 비전문 배우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캐스팅을 한 건지.

배창호: 디카와 필카의 문제는 많은 회의 끝에, 젊은 스텝들의 판단에 맡겼다. 심리구조의 깊이까진 생각 못했지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 연극배우는 있지만, 영화출연 경험자는 김유미 씨를 제외하곤 거의 전무하다. 나는 집중력과 편안함을 주면 모두 다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자기와 비슷한 삶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의 체험밖에 없다. 2부의 해녀와 여중생의 경우 두 팀으로 나눠서 캐스팅을 했었다. 연기 경험자를 오디션해보니 감정이 깊고 좋았으나, 제주도 사람 같은 사실감의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비경험자의 진짜 제주도 느낌이 나오는 덜 가공된 느낌으로 가기로 한 거다. 캐스팅은 일종의 용병술로, 영화 영화마다 다르다.

 

삶의 한 때를 되돌아보는 정서적 느낌 주고파!

 

관객3: 2부에서 엄마가 수원에 있다가 제주도로 돌아온 이유가 궁금하다.

배창호: 엄마 캐릭터는 내가 비금도라는 섬에서 민박을 했을 때, 실제 그 민박집의 집나간 며느리의 사연을 들었는데, 그 이야기와 접목한 것이다. 섬이란 곳은 외부인들에게는 들어와서 아늑한 곳이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지로 나가더라도, 귀소 본능이라는 것이 있고, 삶이라는 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여자의 삶을 그렸다.

 

관객4: 감독님을 다시 뵙게 될 날을 2년간 기다렸는데, 다시 이렇게 영화로 만나 뵙게 되어서 감동적이다. 김유미 씨는 너무 아름다웠다. 3부에서 김유미 씨가 ‘긴 머리 소녀’ 노래를 부를 때 타원형의 거울을 본다. 이때 그것이 거울이 아니라 사진을 포착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학창시절 사진으로 넘어간다.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사진이나 메모를 하는 것들이 중요한 매개체로서 서로 회복시키고, 관계를 개선시키고, 추억하는 역할로 나오던데, 그런 장면을 넣은 의도가 있으신지. 개인적으로 사진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거울처럼 현재의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반영하는 매개물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배웠다. 감독님이 오래오래 사셔서 오늘 이 영화처럼 우리를 항상 회복시키고 치유해주는 영화들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배창호: 고맙다. 나도 그 사진장면을 좋아한다. 영화에서 본질적으로 하려고 한 이야기를 잘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까 누구든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삶의 모든 것이 다 영화화 될 수 있다. 이번에는 사진 자체의 느낌들이 영화의 성격에 맞는다고 느껴서 의도적으로 넣었고, 3부의 여주인공 사진은 삶의 한 때 모습을 되돌아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삶을 드라마틱하게 인위적으로 구성하지 않더라도, 일상에 있는 것을 잘 선택하여 배열하면 우리에게 정서적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김성욱: 오늘 객석에는 여러 감독 분들이 관객으로 와 계신다. 봉준호 감독도 오셨는데 한마디 하신다면.

봉준호: 영화 너무 잘 봤다. 여중생 연기한 학생의 얼굴이 인상적이고 좋았다. 물론 학생이니까 비직업 배우겠지만, 학생 극단 같은 것도 아닌 평범한 여중생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 어떻게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여중생 지은 양은 제주도 연기학원에 몇 년간 다닌 친구다. 연기 경험은 처음이었고, 극중 할머니는 모노드라마를 하는 민속극 배우셨다. 연출부에게서 지은 양이 두세 시까지 대본연습을 하고 잘 때도 시나리오를 배에다 올려두고 잤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정도로 열의가 있었던 것 같다.

 

허물을 벗고, 인물 그대로 소박하게 그리려 했다!


 

김성욱: 나는 이 영화가 굉장히 젊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 이름이 없다면 대사나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 학생이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거 같았다. 예전의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색다른 ‘젊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작업하신 소회를 말씀해 달라.

배창호: 대학교수직을 사임하고 나의 연출적인 면을 많이 뒤돌아 봤다. 연출자적인 것을 좀 버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런 소재를 만나서, 내가 보는 시선보다는 그냥 인물이 느끼는 대로 소박하고 겸손하게 가려고 했다. <황진이> 이후의 작업들이 사실 화려하고 멋있게 연출해보고 싶은 욕심을 버려오는 과정이었는데, 이번에는 허물을 벗듯이 확 벗어버리려 했다. 사실 내가 동시대의 영화, 동시대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열등감, 어둡고, 비겁한 면들을 냉소적으로 그리는 영화들이 유행처럼 많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데 같이 일한 사람들을 통해 아직 우리 영화계가 건강한 구석이 남아 있듯이 인간에게도 그것이 남아있다는 자신감을 얻어서 영화를 할 수 있었다. 이번에 고집을 많이 버렸다. 많이 열어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소중히 들으니, 소박하고 보다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언젠가는 밋밋하지만 생수 같은 영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은 양념을 많이 치고 자극성이 강한 영화들이 많은데, 결국 탈이 나면 찾는 것은 물이고, 물맛은 밋밋하지 않은가. 이 영화가 제주도의 삼다수와 같은 영화가 되길 바랐고, 여기 계신 분들이 그 영화를 좋아하셨다면, 앞으로 이런 분들의 숫자가 더 많아져서, 자극적이지 않고 밋밋하지만 우리 몸에 좋고 시원한, 물리지 않는 생수 같은, 물 같은 깨끗한 영화가 더 나오기를 바란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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