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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흐린 기억 속의 시네마테크

한 달 반 여정의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된 지 딱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왠지 불안해진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 듯’하면서도 ‘일주일 밖에 안 되었나’라는 양가적 감정에 휩싸인다. 이 불안감의 시초는 3년 연속 웹데일리 편집 일을 도와주면서 이 시기만큼은 여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현 시네마테크가 겪고 있는 실상을 눈앞에서 보고 들으면서 갖는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불씨만 남아 있다면...




‘진짜 이번 영화제가 마지막이 되면 어떻하지’, ‘3월이 재계약 시점이라는데 공간이 진짜 사라질려나’,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새로 공모로 선정하겠다던데, 그럼 지금의 시네마테크는 어떻게 되는거지’ 등등.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극장 앞마당 옥상 한켠에서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광경을 목격할 때도, 심지어 같이 만담을 즐기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문득 스쳐간다. 그래서 어쩌면 한편으론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길 바라게 되고, 한편으론 뭐가 되든 빨리 결정이 났음 하는 바람도 생긴다. 만약 공간이 사라질 위기라면 어떻게든 부딪혀 빠른 타개책을 모색할 터이니.



어제 저녁 류승완 감독이 추천한 영화 <열혈남아> 상영 후 시네토크에서 류승완 감독은 “불씨만 남아있으면 되지 않겠냐. 관객들이 시네마테크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상황이 안좋아진다해도 결집력을 새롭게 다지는, 보다 빠른 행보와 결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허나 이 불안초조함을 감출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요즘 나의 정체성을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묻는다. “뭐하시는 분이세요?” 어찌 대답해야할지 감이 안 선다. 현 상태에서는 일을 안 하니 ‘백수’일 수도 있는데. 한 7년 전쯤 까지는 IT전문지에서 일하던 기자였다. 2003년쯤 일을 그만둔 후 나름 ‘프리’ 선언을 하고 프리랜서 기자, 디지털 칼럼니스트라는 명함이 붙여졌다. 간혹 업체 홍보용 동영상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니 시나리오 작가라 칭해지기도 하고 광고 카피를 쓰기도 해서 카피라이터로 불리기도 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사실 분명히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스스로도 잘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거다.  



시네마테크의 기억 되짚어보기



그래서 시작한다. ‘시네마테크에서의 기억 되짚어보기’, 이 글이 불씨가 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글쟁이로서,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보기를 좋아하는 한 관객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네마테크에 응원을 보내고 싶은 바람이랄까 뭐 그런 거다.



내가 시네마테크를 정식으로 영접(?)한 건 2005년경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아트선재센터에 있을 때도 간혹 들른 적이 있긴 하나, 그때는 우연히 삼청동을 지나가다 시간이 맞아 보게 된 경우이고, 사실 뭐하는 곳인지 잘 몰랐다. 당시에는 매체에 묶인 몸이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그다지 많지도 않았고 말이다. ‘뭔가 내가 하고픈 일을 해야지’라며 프리랜서로 나선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였다. 평소 영화를 좋아했지만 영화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했는데 자유로운 몸이 되고 나니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모 문화센터에서 영화평론가 과정을 듣기도 했고, 거기서 영화를 매개로 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현재로서는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된 그들. 시네마테크도 그 중 하나다. 보고 싶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개봉시기에 못 봤던 영화들을, 혹은 어린 시절 TV '명화극장’을 통해 접했던 숱한 고전들. 그 영화들을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영접할 수 있다니 나로서는 진정 영광의 자리이며 황홀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극장을 찾다보니 어느덧 6년째에 접어든다. 개인적인 프로젝트 진행이 없을 때는 거의 출근도장을 찍을 정도였다. 내게 있어 시네마테크는 어느 땐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는 만남의 장소였고, 어느 땐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공간(사실 2007년 개인적으로는 너무 쓰리고 아픈 기억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이기도 했다. 때론 홀로 사색을 만끽하기도 하고, 껄껄거리며 웃기도 했던 그야말로 ‘희노애락’을 몸소 체험하는 장소인 셈이다.



시네마테크에서 만난 경이로운 영화들





2006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처음 열리는 시기였던가, 허오 샤오시엔의 <남국재견>을 보기 위해 극장에 왔는데 매진이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심지어 자주 오가며 이미 얼굴을 알던 극장 관계자한테 복도에서라도 앉아 보겠다며 들여보내달라고 때를 쓰기도 했는데 결국 기다린 덕에 취소된 표로 영화를 본 후 그 배경음악으로 깔린 일렉 음악 소리와 기차, 오토바이, 자동차 등 숱한 탈것들의 질주 장면이 계속 머리 속에 윙윙거려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 그해였던지 그 다음해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고 유현목 감독님의 <춘몽>을 보고 ‘어 한국에도 저런 아방가르드한 분위기의 영화가 있었나’ 싶어 놀랐고 지긋한 나이에도 줄담배를 피시던 유현목 감독님의 모습도 여전히 깊은 감흥으로 남아 있다.



2007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추천한 부뉴엘의 <절멸의 천사>를 보고난 후에는 스스로 허걱 놀라며 그 매혹에 매료되어 DVD나 ‘어둠의 경로’로 부뉴엘의 전작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 홀로 다시 영화를 봤을 때는 사실 극장에서의 그 환호와 놀라움의 경이로움은 반감되었다. 아마도 류승완 감독이 시네토크에서 말했듯 영화의 원판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갖는 공감대가 없었기에 그렇다 짐작된다. 그렇게 나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와 함께한 일상은 계속되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내가 봤던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으라면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단연 자크 베케르의 <구멍>이 가장 인상 깊다. 극장에서만 서너 번은 본 것 같다. 그 미니멀한 감옥 안에서 탈옥을 위해 열심히 구멍만을 파고 있던 그 인물들을 잊을 수가 없다. <쇼생크의 탈출>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탈옥영화의 진수를 경험했다. 또한 가장 존경에 마지 않는 얼마 전 작고하시어 무지 안타까운 에릭 로메르의 아름다운 영화들. 12시간이라는 최장 상영시간을 자랑하는 자크 리베트의 <아웃 원>. 셀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영화들을 나는 바로 이곳 시네마테크를 통해 만났고 발견했다.



며칠 전에는 전설로만 듣던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시리즈 완판을 다 봤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그리고 ‘반드시 끊지 않고 봐야지’라고 스스로 목표했던 바를 성사시킨 셈이다.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소리 없이 완전 무성으로 상영되었는데, 처음엔 어떻게 견디지 싶었다. 극장 앞에서 만난 또 다른 관객 한 분은 “CD로 스타세일러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볼까”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웬걸! 백뮤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막식 때 연주상영으로 에피소드 1,2편을 봤던 때랑은 또 다른 체험이다. 훨씬 더 집중이 더 잘되고 갈수록 스토리와 인물들이 흥미진진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특히 마지막 회 에피소드들은 필름 상태가 너무 안 좋았는데(인물 얼굴 형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게 더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영화의 유령들과 맞대고 있는 듯한 꽤나 환상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게랑드 보다도 마자멧 캐릭터가 진정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귀여운 캐릭터로 당분간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기억에 역행하는 시간들





이러한 소중한 기억과 영화라는 매체의 원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게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대부분의 관객이 한번쯤은 아니 수십 번, 수백 번 곱씹어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작금의 실정은 어떠한가. 이처럼 영화문화를 향유하고픈 사람들의 소중한 바람을 져버리고, 그 시간을 뒤로 한 채, 그간 쌓아온 탑을 무너뜨리려는 행위가 진정 일어난다면 그건 시네마테크의 그간의 시간과 역사를 역행하는 행위로 기록될 것이다.



나는 영화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은 물론 아니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그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비록 일상에선 다른 일을 해야 하고 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곳에 닿아있다. 단지 영화애호가일 뿐인 나조차도 그러한데 대략 8년여의 시간동안 시네마테크를 성장시켜온 사람들은 현재의 마음상태가 어떨지 십분 이해된다. 그들은 시네마테크를 통해 영화의 전도사 역할을 충분히 잘 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의 행보가 계속되길 진정 바란다.



개인적으로 유럽여행을 할 때 베르시로 옮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놓인 숱한 자료, 카탈로그만 보고 있어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그림자 형태로 표시된 화장실 팻말까지도 아름다웠다.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다, 읽지도 못하는 카탈로그와 팜플렛을 챙겨 나와 그곳에 있는 영화 스틸 사진을 보면서 앞 공원 벤치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사실 첨에 모르고 가서 방문한 첫날은 휴관일이었기에). 무지 행복하고 부러웠다. 서울에도 저런 공간이 있었으면 하지만 꼭 그런 형상이 아니어도 좋다. 제발 공간을 찾아 동분서주하지 않고, 그간의 노력이 좌초되지 않고, 하루 빨리 보다 안정적이고 안락한 ‘영화의 집’이 마련되었음 한다.



부끄러운 서울



박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어쩌다 없는 게 없는 거대도시 서울에 시네마테크가 없는지, 그건 수치가 아닐 수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허나 이미 불안한 상황을 많이 보고 겪어서인지 꼭 전용관이 아니어도 지금 체재대로라도 그곳에 그냥 서있어 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적어도 지원이 끊겨 제대로 된 전용관이 마련될 때까지 문을 닫는 순간은 오지 말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소문에 듣자니 얼마 전 현 시네마테크의 상황을 보고 들었던 한 배우(개막식 때도 왔던 친구들 중 한명)가 시네마테크에 들어온 후원금 중 최고 금액의 후원금을 보냈다고 한다. 듣자니 한 달 임대료의 절반쯤을 해결될 수 있는 돈이라 한다. 무지 반갑고 고맙고 그가 자랑스러웠다. 헌데 한편으론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의 질투심, 치기어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뭐 꼭 물질화된 ‘돈’이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나름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관객들 스스로 서로 서로 독려한다면 정말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그 불씨가 모여 시네마테크를 지켜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활활 타오르는 관객의 열정으로 불살라지는 시네마테크를 하루 빨리 만나보고 싶다. <뱀파이어>의 마자멧이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스크린으로 불러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여전하길. (신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