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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진실과 그들의 소통에 초점을 맞췄다”

[시네토크]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지난 29일 저녁 <파수꾼>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윤성현 감독과 배우 분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위하여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상영관을 가득 매운 관객들은 <파수꾼>의 감독 윤성현, 배우 배제기, 박정민이 극장에 들어서자 일제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그들을 반겼다. 엄청난 몰입도로 관객들의 깊은 감정이입을 끌어내고는 영화 밖에서도 관객들이 집중을 놓지 않게 만든 그들의 말끔한 외모와 더불어 펼쳐진 깊은 영화에 관한 대화. 영화만큼이나 몰입도가 높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고등학교 물을 가장한 갱스터 영화가 아닌가 싶다(웃음). 파멸에 이르는 서툰 남자들의 이야기인데 영화가 작동하는 느낌은 또 느와르적인 면이 있다. 아버지가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 희준 그리고 다른 주인공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전체적인 것을 구상해 나갈 때 어떤 점을 염두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는지 궁금하다.
윤성현(영화감독): 갱스터 영화를 좋아하지만, 찍으면서 따로 갱스터의 느낌을 주려고 생각하진 않았다. 워낙 좋아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굉장히 장르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소재다. 아버지가 죽은 아들의 과거를 찾는 느와르적 느낌을 전하려고 했으나 점차 구성을 해나가면서 학생들에게 초점을 옮겨서 이야기를 전개하게 되었다. 죽음이란 것이 단순한 장치적인 소재에 불과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을 더 가지게 되어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처음에 초점을 둔 소재들이 아닌, 나중의 것들이 주가 된 셈이다. 원래는 주인공은 아버지였다.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아버지의 얘기를 하다가 이야기의 주가 바뀌었다. 남자아이들의 미숙한 소통의 방식을 다루고 싶어던 것 같다. 일종의 실험이었을 수도 있다. 일단 이야기를 풀 때, 플래시 백 구조를 더 복잡하게 했다. 시간순서대로 되어있지 않고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옮겼다. 진실에서 가장 먼 사람부터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희준은 진실에 가까우나 자각을 못하고, 기태라는 인물이 표면적인 인물이었으나 감정은 진실성이 없다. 진실과 그들의 소통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김성욱:
곽경택 감독의 <친구> 보다 더 묵직한 남자고등학생의 이야기다. 이런 묵직한 남자고등학생의 연기를 한 배우들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윤성현: 기태 역의 배우 이제훈은 한 단편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줬다. 말끔하고 잘생긴 얼굴에서 날카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배우였다. 배우 박정민 같은 경우는 <세상의 끝>이란 단편에서 주인공이었다. 대사도 별로 없었는데, 이 친구가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었다. 배우 배제기 같은 경우는  필름메이커스에 공개 오디션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조성하 선배님은 맨 처음부터 아버지 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황해에 캐스팅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한번 찔러보자고 해서 말씀을 드렸다. 너무나도 흔쾌히 하시겠다고 하셨다.

김성욱:
희준 역은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병태 같은 느낌을 줬다. 기태와의 리액션을 할 때 쉽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눈빛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다. 감독과 인물설정을 어떻게 해 나갔나?
박정민(배우):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 역할에 마음을 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 역할이기 때문에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감독님은 내적으로 강인한 모습이 나타났음 좋겠다고 하셨다. 눈빛 같은 경우, 뿜으려고 노력해서 나온 게 아니라, 강임함을 표현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김성욱: 기태 역은 배우 류승범 같은 느낌이 있었다(웃음). 영화 곳곳에서 충돌할 때 어떤 느낌이었나?
박정민: 배우 이제훈은 집중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내 연기 경력이 긴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함께해온 배우 중 몰입도가 가장 높았다. 처음에는 그 힘에 압도당했다. 그와 함께한 첫 촬영은 엄마 없다고 하는 씬이었다. 처음엔 제훈 형이 너무 몰아 붙여서 너무 힘들었다. 그 촬영 이후,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나온 것 같다.
배제기(배우): 나는 내 캐릭터가 철저하게 이용당하다가 버림받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연기했으나, 많은 이들이 기태에게 더 많이 감정 이입을 하시더라. 재호는 비굴한 인물이다. 제훈 형은 뛰어난 몰입도로 내 미숙했을지 모르는 연기에 많이 도움을 줬다.

김성욱:
윤성현 감독의 연기 지도 스타일은 어떤가?
박정민: 오디션 때 너무 연기를 못해서 캐스팅 연락도 늦게 왔다. 그러곤 저를 격일로 사무실로 부르셔서 연기 톤을 잡는 부분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굉장히 많이 배운 것 같다. 그만큼 굉장히 집요하시다. 많이 준비를 시키고는 촬영장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디렉션을 거의 안주시고 알아서 해보라는 식으로 지시를 주셨다. 그렇게 노력을 해서 쌓아놓은 것을 촬영장에서 풀 수 있게 해주셨다.

김성욱: 어떤 원칙으로 영화 촬영에 임했나? 간헐적인 롱샷이나 핸드헬드 카메라 이용이 인상 깊었다.
윤성현: 콘티대로 했을 뿐이다. 나는 프리단계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촬영장에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준비를 잘해가서 그대로를 펼치자는 주의이다. 각 콘티를 어떤 마음으로 짰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우선 나는 일관된 촬영 방식을 좋아한다. 이 영화를 할 때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가장 맞을 것 같아 핸드헬드 카메라를 주로 썼다. 배우의 감정과 동선에 자유를 주고 싶었다. 카메라 워크도 배우 중심으로 돌아갔다. 진심이 느껴지게 행동을 하라고 연기 지시를 했다. 배우들이 카메라 동선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게 촬영하다보니 핸드헬드로 간 면도 있지만, 감정적인 면,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핸드 핼드 카메라가 적절할 것 같았다. 막역히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과 그들의 주저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배우들을 따라 가는 장면에서 긴장감을 주고 싶었다. 차곡차곡 정서적인 고뇌를 쌓는 방식으로 촬영을 하고자 했다.


관객1: 영화 제목 ‘파수꾼’은 어떻게 정했나?
윤성현: 영화 제목에 관한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아왔다. 많이들 국방을 지키는 파수꾼을 생각하시더라. 하지만 내가 제일 처음 파수꾼이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소설책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어떤 비평가께서 지켜지지 못한 아이들, 거짓말을 해야 성장할 수 있는 모습들이 그 단어에 내포되어 있다고 했다. 나 또한 내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지만 지키려고 한 행위들이 오히려 상처를 남기는 아이들의 얘기라서 제목을 그렇게 하였다.

관객2: 너무나도 실감 나는 남자들의 대화법과 배우들의 몰입도가 인상 깊었다. 그리고 연기를 위해 연신 피워대던 담배도 인상 깊었다.
윤성현: 기태 역을 한 친구는 담배를 너무 피다가 병원에까지 실려 갔다. 원래 안 피우던 친구 인데 너무 많이 피워서 그렇게 됐다. 그래도 계속 하겠다고 했다. 영화를 찍을 때 담배를 배워서 지금 까지 끊질 못하고 있다. (웃음) 이제훈 팬에게 미안하다. 대화법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남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남자들 특유의 미숙한 소통방식이 있다. 내면은 연약하면서도 겉으로는 강해보이고 싶은 부분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공허한 대화를 한다. 한명도 진심을 얘기 하질 않는다. ‘내가 안했다’ 라고 하면 될 일을 ‘내가 했으면 어쩔건데’ 라고 말하는 모습들이 보여 진다. 실제로도 덜컹대는 남자의 소통방식과 서투른 고등학생 아이들의 대화법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자 했다.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