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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부쳐

시네마테크, 영화, 그리고 친구들!


내게 시네마테크는 지금의 영화 친구들을 만난 곳이다. 나는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익숙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이 곳에선 그러한 존재들을 꽤 많이 마주쳤다. 초반엔 경계심이 작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를 알아 챘다. 그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의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교신하려는 신호로서 이루어졌다. 내가 찌리릿한 이것을 너도 느꼈니? 너의 그 표정은 내 것과 같은 그것 맞지? 우리 같은 것을 본 것 맞지? 나는 어느 날인가부터 이 무언의 신호를 해석하고, 해석받고 싶어졌다. 온라인 회원 까페를 찾았고 무식한 티를 벗지 못한 어설픈 생각들을 감흥에 취한 채 나열하기 시작했다. 주업과는 관련 없는 공부를 들척이게 된 것 또한 이 곳의 영화들, 친구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까페 회원들이 반응을 해주는 날엔 세상이 밝아질 정도로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비 시네필이 시네필과 과연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늘 자괴감에 빠져 있던 나에게 시네필들은 하나 둘씩 말걸어 주었다. 나는 카페에서 지금의 친구들을 얻었다. 2008년 친구들 영화제 때에 트뤼포의 <녹색방>에 대한 글을 처음 썼는데 그 때에 한 10년 지기 시네필이 나에게 처음 반응해주었다. 믿기 어려웠다. 이어진 배창호 감독 특별전에서 알게 된 일본영화광이자 종교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는 심지어 내 글이 좋다며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 이후 역시 까페를 통해 만나게 된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영화에 도전하고 있는 영화광 그 자체가 정체성인 씩씩한 언니, 공포와 슬래셔 무비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눈망울 굴려가며 보는 귀여운 소녀, 그리고 지금 여기 네오 이마주까지 이어진 사람들까지. 이 모든 친구들과의 영화적 인연은 순전히 시네마테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은 영화가 생소하던 나에게 고전 영화의 개봉관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로 인해 제2의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매너리즘의 낮 다음의 삶, 그 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흥분을 선사해주었다.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닐까, 나만 혼자 멀리 온 것은 아닐까 싶은 순간마다 변함없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상영되었다. 불이 꺼지는 상태는 암흑이었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빛이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어둠은 절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막을 알리는 장면 전환효과로서의 암전이었다. 멀리 떨어진 오래된 시대의 영화들이 깜깜한 공간을 뚫고 빛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멀리 돌아온 현재의 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둥글게 둘러 싼 거대한 원형극장 같았다. 그것은 혼란에 빠져있는 나를 포용해주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들은 대개 한 두회 상영으로 끝이 나게 되어 있었다. 나는 꽤 긴박한 사명감이라도 띈 것처럼 극장을 밤마다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타인에게 말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약속 있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며 무척 바쁜 척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실상은 '시네마테크에 영화 보러 간다'는 것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나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이것은 점차 내 삶의 은밀한 행위가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인지되고 싶었다. 이곳에서는 일상과는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시네마테크의 영화들과 나는 예정된 운명처럼 만나고 있었다. 이 만남은 시기상으로, 시선 상으로도 늘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미 알려진 유명한 고전을 나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처럼 보았고, 이미 지나간 영화적 표현 방식들을 나는 현대적인 방식으로서 수용했다. 이것은 시선의 오류를 낳기 시작했다. 그 날의 기록들은 엉뚱하고도 이해 불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충분히 들떠있었고 영화도 이런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영화는 어긋난 시간과 인식을 탓하지 않았다. 영화는 생각보다 관용이 깊었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환영이었으므로 나 같은 시선을 통과하는 것쯤은 별 문제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작은 움직임에도 온 몸을 통째로 반응하는 일은 영화도 나도 서로 즐거운 일이었다. 어쩌면 나의 영화에 대한 감정은 중세인들의 신에 대한 숭고심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흠모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을 찬양하기보다 그것을 닮고 싶었고 따라하고 싶었고 닮아가고 싶었으며 훔쳐내고도 싶었다. 나는 내 안의 경직된 종교성을 버려가고 있었다. 환영들의 움직임에 따라 굳은 신념들이 부드러운 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절대적 진리에 정죄되어온 상대적 진리들이 유예상태를 벗어나고 있었다. 해방감이었다.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오류가 시작된 지점에 늘 재차 도착했다. 그 곳에 서지 않고는 그 너머를 볼 수 없었다. 시네마테크가 아니고는, 스크린이 아니고는, 감독의 카메라가 아니고는, 나의 한계를 도저히 넘을 수 없었다. 결국 난 그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영화는 그 지점에 나를 세워주었다. 그는 고마운 내 삶의 인도자였고 그 이후 가는 길을 배반하지 않은 동지였다.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얼마 전 진행되었던 '헐리우드 고전 특별전'에서 만난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오퓔스의 영화관과도 같은 영화다. 마치 멜빌의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리사는 자신이 이미 죽은 시점으로부터 남자 주인공인 스테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영화의 내레이션을 시작한다. 리사는 영화 바깥에 처한 존재로서 영화 안에서 상상화(이미지화)된다. 오퓔스의 영화는 전체가 회상의, 원형의 구조이다. 그것은 환상적이면서도 물리적인 구조이다. 회상은 영화의 시선을 새롭게 배치한다. 리사의 회상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드라마적 전개와는 별도로 시점과 메세지와 감정을 부과해간다. 거리에서 스테판에 의해 발견되는 리사의 이미지는 오퓔스가 영화에서 여성을 보여주는 방식의 전형적인 것이다. 그것은 거리의 여자, 창녀의 그것이다. 하지만 오퓔스 영화에서 이것은 관음적 시선이 아니다. 스테판이 리사를 보는 이미지는 스테판의 시선이 아니라 영화 바깥에서 내레이션하고 있는 리사의 시선이다. 이것은 스테판이 자신을 봐주길 바라는 상상적 이미지면서 동시에 리사가 쓰고 리사가 연출하고 있는 자신의 인생 극장같은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리사가 스테판과 첫 데이트를 하는 환영열차 신에서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제시된다. 그들은 환영열차를 타고 마치 세계일주를 하는 것처럼 들뜬 채 실제 가보지 않은 여행지의 풍경을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이것은 영화의 환영성에 대한 반영적인 장치로 영화 이전의 파노라마를 연상시킨다. 리사는 자신의 스테판에 대한 운명적인 사랑을 철저히 판타지에만 의존한 채 재연한다. 그녀는 스테판과의 예정된 어긋남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녀는 좌절하지도, 자신을 설명하지도,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리사와 스테판이 만나지 않은, 만날 수 없었던 시간을 재현한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가 도착하여 읽혀지는 그 시간은 마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와 겹친다. 우리는 미지의 여인이 보낸 편지를 본다. 그녀는 철저히 자신의 상상적 이미지들을 우리에게 투영시킨다. 영화에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목도할 수 있는 이미지란 없다. 우린 그녀를 통해서만, 그녀의 상상력에 의존해서만, 그녀의 욕망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 편지가 읽혀지며 보여질 때에야 그녀는 미지로부터 벗어나 우리에게 인식의 존재가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우리는 이제 그녀가 누군인지 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다른 세상에 있다. 그녀는 어찌 보면 순진함을 가장해 우리를 속였고, 조롱하기도 했으며, 이런 그녀는 부도덕하기도 했다. 그녀가 다른 세상으로 갔을 때(죽었을 때)에야 스테판이 그녀를 보기 시작한다. 이 또한 상상의 이미지다. 현실에서의 만남과 사랑의 맺음은 처음부터 리사의 의도로 인해 불가능했기에 치명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은 예정된 것이었다. 리사의 피학적 판타지와도 같은 이 영화는 필름의 릴이 돌아가며 상영해내는 고통스러운 영화의 상영을 상대적으로 느끼게 한다. 고다르와 세르주 다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푸코의 철학, 어떤 고통에 근거를 둔 윤리적 선택으로서 영화, 그 구제할 수 없는 오욕의 각인, 아니 오욕에 대한 윤리적인 구조 그 자체. 사물에 대한 감금이 해제됨과 동시에 해방과 감시가 교차하는 영역, 망각되어 있는 것의 오욕이 기억되어 있는 것의 오욕과 교착하는 영역의 그 영화. 영화는 개념적 망각의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빛으로 끌어 내는 것이었다. 여기엔 망각의 자유 속에서 안주할 지 모르는 것을 기억속으로 감광하는 오욕의 고통이 있다.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것의 윤리적 요청과 고통. 고다르에게 영화를 계속 찍는 다는 것의 윤리적 고통은 곧 스스로의 망각 속에 두어야 했을지 모르는 기억의 시선 속에 끊임없이 영화를 각인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스테판은 현실(결투)에 나가기 전 망각 속에 있었던 그녀의 영화를 봐야만 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시네마테크에서는 미지의 혹은 망각된 영화를 끊임없이 상영하고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서 본다. 영화를 꿈꾸는 자들이 영화를 계속해서 찍듯이. 이것은 멈추지 않는 윤리적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의 예정된 반복이자 그 운명이다. 이 강박은 운명에 힘을 싣는다. 관객은 압도된다. 새로운 응시들이 계속해서 이 운명을 우연처럼 목격한다. 응시의 대상으로, 기억의 대상으로서 탄생한 영화를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봐야하는 사회적인 윤리가 우리 안에 암묵적으로 형성되어가고 있다. 이것에 동의하는 이들이 영화에 매혹된다. 그들이 시네필이요 그들이야말로 영화의 친구들일 것이다. 시네마테크가 이 사회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적 근거는 어쩌면 여기에 있다. 영화가,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보여주는 동지들이, 그것의 목격자인 우리들이 이렇게 계속해서 있기에. (김시원 네오이마주 스태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