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베트남 전에 대한 메타포를 담은 선구적인 영화다"

[시네토크] 김영진 평론가가 추천한 로버트 와이즈의 '산 파블로'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시네토크는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함께했다. 그는 자신의 유년기 추억이 새겨진 영화 <산 파블로>를 이번 영화제에 추천했다. 필름 수급이 확실치 않아 불안했다는 말을 하며 시작한 시네토크는 영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로 차려진 소담스러운 식탁과도 같았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에서 내가 누리는 호사는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재미있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 선택으로 <산 파블로>를 골랐는데 재미있게 봤다. 필름수급이 될지 확실치 않아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시네토크도 마지막으로 잡은 거다. 그런데 예상보다 어려움 없이 필름수급이 되어서 상영을 하게 되었다. 오늘 보신 것은 개봉 당시의 버전이다.

로버트 와이즈감독은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이걸 대표작으로 생각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서운했다고 한다. 얼마나 이 영화를 좋아했는지 감독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크리스마스마다 <산 파블로> 출연진과 스탭들을 모두 초대해서 파티를 했다고 한다. 스티브 맥퀸도 이 작품에 애정이 많았는데 알아주지 않아서 낙심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영화 중에 유일하게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다. 그래서 내심 기대를 했었지만 노미네이트 된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그런 것들에 상심해서 1년간 영화를 찍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영화는 1년 반 정도 촬영된 영화다. 그리고 미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대만과 홍콩 로케이션을 했다. 이 영화에는 군중 씬이 많다. 사람 통제도 안되고 기후나 여러 가지 때문에 어려웠다고 한다. 원작소설은 베트남 전에 대한 메타포를 집어넣은 이야기고 로버트 와이즈도 확실하게 이러한 자의식을 가지고 만들었다. 소설이 나왔을 땐 그런 말이 없었는데 영화가 나오니 확실하게 베트남 전에 대한 은유가 강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대사가 너무 유명했다. 집에 다 왔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 대사가 히트를 쳤다. 아무튼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개입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에 대해 로버트 와이즈가 힘을 주어 말했는데 평가를 잘 받진 못했다.

어렸을 때 스티브 맥퀸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셜리역의 캔디스 버겐을 좋아했다. 그야 말로 환상의 캐스팅이다. 스티브 맥퀸을 보면 연기가 미니멀 하다. 간결하고 액션이 없고 굉장히 특이한 독자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 캐스팅 할 때 5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후보 중 제일 아래가 맥퀸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와이즈는 맥퀸을 뽑고 싶었다고 한다. 1순위가 폴 뉴먼이었다. 근데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결국엔 맥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폭스에서 반대를 했다고 한다. 대작인데 스티브 맥퀸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맥퀸이 출연한 <대 탈주>와 <황야의 7인>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맥퀸은 이 영화에 애착을 가진 이유가 영화의 주인공 제이크 홀맨이 자신과 너무 닮아서, 라고 한다.

오늘 보신 영화는 길다. 요즘 이렇게 시나리오 쓰면 아무도 투자 안 할 거다. 정석대로라면 역사적 사건 안에서 휘말리는 제이크와 셜리의 사랑으로 압축돼야 한다. 그런데 가지가 많다. 프렌치와 메일리의 이야기, 제이크와 포한의 이야기, 산 파블로 내에서 장교와 병사들의 이야기도 있고, 또 미국인과 쿨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자르라고 했는데 그대로 갔다. 가만히 보시면 홀맨이 가장 사랑하는 게 셜리가 아니고 기계, 엔진이다. 그리고 영화가 공들여서 묘사하는 게 엔진이 나오는 장면이다.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보듯이 엔진을 본다. 그 점에서 로버트 와이즈와 맥퀸의 해석이 일치한 거다. 보통 극영화에선 그런 걸 길게 찍지 않았을 거다. 홀맨은 맥퀸과 유사하다. 굉장히 단독자 적인 성격이 있고 어느 조직에 가도 그 조직에 속하지 않는 유형이다. 캔디스 버겐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 갇힌 맹수와 같은 사람이 스티브 맥퀸이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 하는 거에 대해서 역겹다는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인데 그런 게 너무 잘 맞았다. 그래서 감독이 맥퀸을 좋아했다. 영화에서의 연기가 심플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준비를 했다고 한다.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에 맥퀸이 정오쯤에 와서 자기 의상에 마름질이 안 돼서 계속 입었던 느낌이 안 난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건 의상담당에게 말하라고 했는데 2시에 다시 와서 말하자, 감독이 화를 냈다고 한다. 화를 내자 맥퀸이 삐져서 감독하고 말을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싶다가 제작자의 중재로 미군기지 극장에서 일주일 동안 찍은 러시필름을 보러 같이 갔고, 그래서 감정을 풀었다고 한다.

로버트 와이즈에 대해 말씀 드리면 대개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많이 기억된다. 이분은 굉장한 작가적 야심이 있었다. 그래서 세속적 명예와는 별개로 자신의 커리어에 불만이 많았다. 원래 공부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서 할리우드에 가서 편집실 심부름을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퍼스트가 아파서 와이즈를 시켰는데 잘해서 조수에서 금방 편집기사가 된다. 그래서 편집한 게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이란 작품이다. 그 이후에 <위대한 앰버슨 가> 등을 편집하는데 잘 아시는 대로 스튜디오와의 갈등 때문에 고충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이 된 계기가, 영화의 편집을 맡았는데 그 영화의 감독이 해고당해서 와이즈가 하게 되었다. 자기 의지대로 감독이 된 사람이 아니라 일 잘해서 감독이 된 케이스다. 데이비드 린과 비슷하게 편집기사에서 감독으로 성공한 사람인데 이 감독의 취향은 어떤 건지 모르겠다. 자기 작가적인 세계가 있었던 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주문한 영화만 찍은 감독이라서 그렇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엄청난 주류 감독이 되었고 <사운드 오브 뮤직>은 윌리엄 와일러가 찍다가 해고당한 상태에서, 뮤지컬장면만 남겨놓고 중간에 추가로 찍어서 대박이 났다. 그 이후 자신이 욕심을 내어 찍고 싶은 영화를 찍었는데 그게 <산 파블로>다. 그에게는 이 영화가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같은 영화다. 엄청나게 진지하고 감동이 있는 영화. 자기가 정말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은 거다. 그러나 아쉽게도 반응이 열광적이지 않아서 크게 실망했다. 감독은 자기 스스로 이 영화를 대표작으로 쳤다. 역사적으로 이 영화를 크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60년대 이후, 뉴 아메리칸 시네마 시대에 웨스턴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영화들이 베트남 전에 대한 메타포를 가진 영화가 많았는데, 그 중에 가장 선구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면에서 과소평가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닥터 지바고>처럼 방향을 잡아서 거대한 격변에 휘말린 남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파워 넘치는 클래식이 되었을 텐데, 너무 많은 걸 보여줘서 대중성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가치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식으로 많은 레이어가 있는 영화를 찍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관객들도 잘 따라오는 시대가 있었다.


관객1: '산 파블로'가 '샌드 페블스' 인데 혹시 특별한 뜻이 있는지 궁금하다. 영화가 당시 베트남 전에 대한 은유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보는 내내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이 불편했다. 감독이 베트남전과 미국에 대해서 느끼는 시각이나 입장이 뭐였을지 애매해 보인다.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영진: '산 파블로'는 스페인전쟁부터 있던 배라서 그런 것 같다. 두 번째 말씀하신 것은 제3세계의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다. 최근에 나온 <007 어너더 데이>를 보면 느낄 수 있다. 북한 애들이 저렇지 않은데 왜 저렇게 그려지고 있나? 그런 것처럼 이 영화에도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이 왜곡 되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기분은 나쁘다. 시각이 정형화 되어있다. 초첸 같은 캐릭터들을 보면 인간처럼 묘사 되지 않는다. 그게 미국이 보는 한계다. 어쩔 수 없는 부분 인 것 같다.

관객2: 어려서 맥퀸을 좋아해서 맥퀸 영화를 많이 봤다. 이 영화 이후에 73년 <빠삐용>을 찍고 80년대 <헌터>에 출연하고 죽었다. <빠삐용>과 <헌터> 사이에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그 기간에 영화 출연 했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이분은 영화를 찍는 걸 그렇게 즐거워하진 않았던 것 같다. 카 레이싱을 더 좋아하여 이에 열중했다. 몸매도 <타워링> 이후로 통통하게 바뀌어서 대중에게 노출이 되지 않았다. 영화복귀에 대해서 많은 제의가 있었는데 검토만 하면서 미루다가, 병에 걸린 상태에서 <헌터>를 찍은 거다. 맥퀸은 나 아닌 자기로 산다는 것에 혐오감이 있었다고 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던 거다. <산 파블로>에서 홀맨이 자신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발가벗겨진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힘들었다고 한다.

(정리 : 정태형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