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별전/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과 만나다

우리는 어떻게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첫 영화를 만들 수 있었나 ❶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봉준호 감독 편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과 만나다’라는 제명 하에 아카데미 출신 감독 4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또 매 저녁마다 아카데미 출신의 선후배 감독들이 만나 ‘우리는 어떻게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첫 영화를 만들 수 있었나’를 토픽으로 한 특별 대담이 마련되어 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지난 16일에는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상영 후 봉준호 감독과 <나는 곤경의 처했다>의 소상민 감독, 그리고 <너와 나의 21세기>를 연출한 류형기 감독이 함께 자리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과 만나다’의 특별대담 행사의 첫 번째 주인공은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봉준호 감독이었다. 이 자리에서 봉준호 감독은 데뷔하기전과 이후에 겪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이 행사는 영화아카데미의 성장과 변화과정을 들여다보고 영화아카데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1995년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봉준호 감독은 5년 동안 충무로의 현장경험을 익힌 후 비로소 데뷔할 수 있었다 한다. 시나리오는 옴니버스 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의 박종원 감독 파트에서 연출부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작업했고, 그 후 박기용 감독의 <모텔 선인장> 연출부로 활동한 바 있었고, 이 때 봉 감독의 단편을 눈여겨봤던 이 영화의 제작자인 우노필름(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가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해오면서 입봉의 기회를 얻었다 한다. 회사에 소속된 처음에는 <유령>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 이후에 본격적인 자신의 작품인 <플란다스의 개>의 각본과 연출을 맡게 되었는데, 배우 캐스팅이 번복되고 투자문제가 겹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2000년 개봉 당시에는 관객과 평단의 많은 지지와 호응을 얻지는 못했었지만, 지금은 재기 넘치고 발랄한 컬트영화로 인정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장편으로 데뷔하기까지 5년이 걸린 데 비해, 함께 대담에 참석한 류형기 감독과 소상민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참신하고 놀라운 작품으로 바로 감독으로 데뷔한 것이 부럽다고 말했다.

 

봉 감독에 따르면 <플란다스의 개>는 이전에 만든 세 편의 단편영화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으로 찍은 영화다. 단편영화를 만들 때 가졌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는 것. 4년 만에 <플란다스의 개>를 다시 봤다는 봉준호 감독은 “지금 보니 영화가 많이 어설프고 샷들도 정돈되지 않은 것 같아서 부끄럽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동창회 모임처럼 진행된 대담에서 류형기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가 샷의 사이즈가 매우 정확한 영화”라고 말했고, 소상민 감독은 “화제가 됐던 단편영화 <지리멸렬>에 있었던 놀라움이 여전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두 감독이 만든 영화야말로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에 대한 견고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며 두 감독의 영화에 찬사를 보냈다.

 

봉준호 감독은 이날 자신이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과 그 이후의 영화작업과정에서 제작자와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들려주며, 돌이켜 보니 그때가 요즘에 비해 더 호시절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제작자가 감독을 많이 보호해 준데 비해 요즘은 감독의 작업이 투자사에 바로 노출되는 환경이 되어 안타깝다는 얘기다. 아울러 봉 감독은 “영화산업이 참신하고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잘 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불거진 영화아카데미의 문제에 대해 소상민 감독은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지만 영화를 보러 온 많은 관객을 보니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다”고 말했고, 류형기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을 볼 수 있도록 관객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아카데미는 작은 조직이지만 오랜 시간 알차게 잘 운영되어 왔다”며 “미디액트와 시네마테크 등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묵묵히 열심히 꾸려온 공간들을 둘러싼 요즘의 문제들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