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24일(일), <베라 드레이크> 상영 후 전고운 감독 시네토크

김숙현(프로그래머) 사실 <베라 드레이크>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한 적 없는 작품이다.

전고운(감독) 나도 극장에서는 이번에 처음 봤다. 느낌이 크게 다르다. 좋은 감독이 되고 싶어서 공부할 때부터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들을 봤는데 너무 훌륭했다. ‘연출’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그중 배우에게 좋은 연기를 끌어내는 것도 연출의 일인데, 물론 좋은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하지만 감독의 연기 지도도 중요하다. 그런데 좋은 연기가 좋은 연기로 보일 수 있게끔 이야기나 감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몇 숏 안에 만들어지게 하는 것도 감독의 큰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놀라울 정도의 세공법이라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마이크 리 감독의 연출 방법이 특이하더라. 완성된 대본을 배우에게 주지 않고 기본적인 설정만 알려준다고 한다. 그래서 주연을 제외하고는 다른 배우들이 <베라 드레이크>가 낙태에 관한 영화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현장에 도착한 뒤 리허설을 매우 오랫동안 한다고 한다. 그 결과 이렇게 자연스럽고, 마치 스크린이 살짝 벗겨진 것 같은 생생한 기운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런 방법을 안 건 얼마 안 됐지만 정말 부러웠다. 나도 리허설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소통을 통해 많은 것을 함께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베라 드레이크>의 준비 과정이 여섯 달 정도였다고 하는데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돈이 더 들어간다.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보통 3개월 안에 찍어야 한다고 했을 때 배우와 오랜 기간 뭔가를 함께 준비하는 게 아직은 좀 힘들다. 그리고 경제적인 조건을 떠나서 감독이 배우와 빛나는 무언가를 끌어낸다는 건 어떤 감독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이크 리 감독의 연출과 그 결과물에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여성 캐릭터를 여성인 나보다 더 통찰력 있고 깊게 다룬다는 점에서 감사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

김숙현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친구들영화제에서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추천해준 친구들도 모두 여성이었다(박찬옥 감독-<네이키드>(1993), 윤여정 배우-<커다란 희망>(1988)). 오늘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사실 아직도 얼떨떨하고 먹먹해서 무슨 장면부터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이 영화를 ‘낙태’ 또는 ‘여성’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요약하기 쉽지 않다. 사회 구조적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 너무 많은 레이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그전에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언제 갖춰질지 모르겠다는 슬픈 생각도 들었다. 일단 지금 생각나는 장면은 너무 많다(웃음).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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