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16일(토), <용쟁호투> 상영 후 오승욱 감독

오승욱(감독) 거의 45년 만에 <용쟁호투>를 극장에서 다시 봤다. 어려서 처음 봤을 때 잔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봐도 잔인하다. 앞에 찍은 다른 이소룡 영화들과 비교해 봐도 더 잔인하다. 애초에 B무비로 기획된 영화라 더 잔혹한 장면이 많은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영화에 대한 반대 급부로 훗날 성룡이 탄생한 것 같기도 하다.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동양의 모습을 그린 이상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아시아 국가나 동양인들의 행동을 서양인의 시선에서 눈요깃감처럼 보여주는 영화들이었다. <용쟁호투>에도 한의 섬이 그런 이상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홍콩 바닷가에서 주인공들이 주민들과 함께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는 신처럼 꽤 근사한 장면도 만들어졌다. 그렇게 흔들리는 배에서 촬영하는 게 정말 힘든 일인데, 풍경과 인물들을 멋지게 잘 찍었다. 

이소룡에 대한 너무 많은 신화들이 있고 그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도 많다. 하지만 오늘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연출자로서의 이소룡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알다시피 이소룡은 할리우드로 진출했지만 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다. 패배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후 <당산대형>을 찍으며 다시 시작했다. 나는 이때 이소룡이 웨스턴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웨스턴 중에서도 특히 <셰인>이 생각난다. 셰인은 미지의 곳에서 왔고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인물이다. 그의 과거는 어머니에 대한 사연으로 얽혀 있고 현재는 고아와 같다. 이소룡도 그렇다. 이소룡도 바깥에서 왔고 결정적인 순간까지 폭력을 쓰지 않으려고 하며 어머니가 주신 목걸이를 소중히 여긴다. 또한 <정무문>에서는 이소룡이 고아로 그려지고 <맹룡과강>에서는 외부에서 온 다음 상황이 정리되자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이렇게 이소룡은 영화를 직접 만들기 전부터 자신이 원하는 나름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김보년(프로그래머) 액션 장면 연출이 정말 멋있었다. 물론 이소룡이니까 가능한 부분도 있겠지만 이소룡이 액션을 펼칠 때는 몸이 프레임을 꽉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가 버린다. 이렇게 프레임을 넘나들며 빠르게 액션을 하는 연출이 정말 박력이 넘친다. 배우들이 무술 연기를 할 때 그걸 전부 한 화면에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멋있지만, 이 영화처럼 과감하게 촬영하니 그때 발생하는 속도감이 엄청나다.

오승욱 숏을 크게 해서 이소룡의 움직임을 다 보여주는 게 <맹룡과강>(1972)까지다. 이후 <용쟁호투>(1973)에서는 이소룡이 프레임을 막 빠져나간다. 그리고 때리는 장면을 보여줄 때도 이소룡이 때리는 건 보여주는데 악당이 맞는 리액션은 전혀 안 보여준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박력과 잔혹한 느낌을 잘 살린다고 생각한다. 이소룡과 로버트 클라우스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이전의 영화나 이후의 영화를 보면 이런 연출을 찾기가 쉽지 않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을 한 화면에 다 보여주면 위험하니까 주먹을 쓸 때도 액션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오늘 <용쟁호투>를 큰 화면으로 보니까 이런 압도적인 폭력이 더 잘 느껴진다. DVD로 볼 때는 부족함이 있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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