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2일(토), <단추 전쟁> 상영 후 김홍준 감독

김홍준(감독) <단추 전쟁>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건 1962년이고, 한국에서 개봉한 건 1963년 혹은 1964년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부모님과 이 영화를 같이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제목은 “나체 전쟁”이었는데 오늘 거의 50년 만에 다시 본 셈이다. 제대로 된 번역과 좋은 화질로 다시 보니 영화가 꽤 세서 놀랐다. 

이 영화가 개봉한 1962년에 어떤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일식>, 크리스 마르케의 <환송대>, 오손 웰즈의 <심판>,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 구로사와 아키라의 <쓰바키 산쥬로> 같은 영화들이 모두 1962년에 개봉했다.

이런 영화사의 정전들을 시간의 축으로 모아놓으니 전혀 다른 지형도가 그려진다. 내가 만약 당시 프랑스에 사는 관객이었다면 개봉관에서 이 영화들을 모두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기라성 같은 고전들과 같은 해에 개봉한 <단추 전쟁>은 지금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도 내가 옛 기억 속에서 이 영화를 미화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다시 보니 정말 좋은 영화라는 확신이 든다.

이 영화의 원작은 루이 페르고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소설이다. 1882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시도 썼다. 대표작인 『단추 전쟁』을 쓰고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33살인 1915년에 전사했다. 소설 『단추 전쟁』도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소설이 무대로 하는 시기는 19세기 말인데, 당시 분위기가 영화 속에 그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과 마을이 서로 싸우는 게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가 독일군에게 패배하자 프랑스 국내에서 책임론이 일었다. 한쪽에서는 왕당파가 잘못했다고, 한쪽에서는 공화파가 잘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왕당파를 지지하는 마을과 공화파를 지지하는 마을 사람들끼리는 상종도 안 했고,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 어른들처럼 사생결단으로 서로 싸움을 한다. 아이들이 ‘공화파’, ‘왕당파’ 운운하며 싸우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그런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이 소설은 1936년에 “아이들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영화화됐고, 1962년에 이브 로베르 감독이 오늘 본 버전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1년에 다시 한 번 리메이크됐다. 할리우드에서도 리메이크됐는데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브 로베르 감독은 1920년에 태어나 2002년에 사망했고, <단추 전쟁>을 만들었을 때는 42살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영화가 나올 때 갓 데뷔해 한창 승승장구하던 누벨바그의 트뤼포, 고다르 같은 감독보다는 연배가 있는 좀 애매한 나이대의 영화인이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스타일 자체도 고전적이고, 당시 상업영화의 기준에 충실한 영화라 영화사(史)에서 주목을 덜 받은 것 같다. 참고로 <마르셀의 추억>, <마르셀의 여름>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프랑스 코미디의 전통 중 어처구니 없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있는데, 이브 로베르는 그중에서도 조금 ‘수준 높은’ 코미디를 만드는 감독이었다. <단추 전쟁>도 일견 코믹하고 훈훈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뼈가 있는 농담들이 있다. 젊었을 때 무정부주의자들과 가까웠다고 하는데 그런 반골 기질이 있는 감독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감독이 자기 돈으로 제작사를 만들어 영화를 힘들게 완성했는데 프랑스 안에서 배급사를 못 구했다고 한다. 스타도 안 나오고 애들끼리 싸우는 영화를 누가 재밌어 하겠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낙심하던 차에 세계 시장에서의 흥행 가능성을 본 워너브라더스가 배급권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말 그대로 ‘천만 영화’가 됐다. 천만 영화가 한국에만 있는 현상은 아닌 셈이다.

<단추 전쟁>의 시나리오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거의 교과서적이다. 버릴 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아주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 산업의 주류 영화인들이 모여 만든 영화이다. 이런 탄탄한 인프라와 나름의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인디 영화’였던 누벨바그라는 실험이 가능했다고 본다. 즉 프랑스 영화들이 전부 엉망인 상황에서 갑자기 누벨바그 감독들이 나타나 영화의 질을 확 끌어 올린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단추 전쟁>은 영화사의 정전으로 평가받는 작품도 아니고 소위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불릴 영화도 아니라고 본다. 대신 한국에서 개봉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영화인데 이렇게 언급이 전혀 안 되는 상황 자체를 생각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던, 또는 상실된 기억 속에 있던 영화를 다시 꺼내서 보는 두근거리는 경험을 했다. 물론 영화도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서 기뻤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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