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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좋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오승욱 감독 시네클럽 현장중계

지난 1월 29일 오후, 책 냄새와 커피 향기가 함께 어우러진 인사동의 아담한 카페에 하나 둘씩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시네클럽'의 두 번째 주인공인 오승욱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다. 일찌감치 매진된 오승욱 감독의 ‘좋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이뤄진 이 행사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성황리에 . 오 감독은 그 자리에 참석한 30여명의 영화 동아리 학생들과 감독 지망생들의 열기에 압도되어 숨 돌릴 틈도 입을 열었다.



오승욱 감독은 첫 번째 '시네클럽'의 바통을 이어 받기라도 하듯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며 그만의 독특한 시나리오론을 폈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처음으로 한번 시나리오라는 것을 써봤어요. 그냥 소설을 막 옮겼어요. 전혀 모르니까 일단 쓰는 것부터 시작한 거예요. 그 다음에 박광수 감독님 연출부에 들어갔는데, 박 감독님께서 일단 숙제를 하나 내주셨어요. '한 시퀀스를 써와라'라는 숙제요. <그 섬에 가고 싶다>에 과거 장면이었는데, 박 감독님께서 살짝 보시더니 다시 써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시 썼죠. 그리고 굉장히 칭찬을 받았어요. 제가 쓴 대사와 제가 쓴 지문으로 영화가 촬영된 거죠.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시나리오는 누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시나리오라는 것은 써온 시나리오를 두고서 말이 되는지, 재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거 밖에 없어요. 저는 그거 외에 시나리오에 대해서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그런 과정을 통해 배워나가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시나리오는 누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 가르치는 것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같이 말문을 연 오승욱 감독은 이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시나리오에 대한 세 가지 기준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좋은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할 텐데, 그것은 개인이 쓰고 싶어 하는 시나리오의 스케일에 따라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시나리오의 기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나리오를 쓰는 데 가장 기준이 되고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들에 대해서요. 첫 번째는 ‘말이 되는가, 안 되는가’, 두 번째는 ‘재미있는가, 없는가’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새로운가’ 입니다. 이 세 가지가 좋은 시나리오를 판가름하는데 가장 기준이 되는 것들이에요." 또한 오 감독은 좋은 시나리오에 대한 기준을 철저하기 위해 작업 도중 해야 할 일을 명령(!)하기도 했다. "시나리오 작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토론이에요. 시나리오를 완성한 다음에 똑똑하고 예리한 친구들 둘 셋 불러다가 모텔 방 하나잡고 이틀 삼일 동안 죽일 듯한 기세로 토론해야 돼요. 이건 꼭 해야 돼요. 세 기준을 강박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해요. 이 토론이란 시나리오를 쓰면서 말이 안 되는 부분인데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간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거예요. 자기 자신이 쓴 시나리오는 객관화시키기 힘들기 때문에 똑똑하고 예리한 친구들이 필요한 거예요. 정말 멱살 쥐고 싸울 정도까지 토론해야 돼요."
 


좋은 시나리오의 기준 세 가지 기준 - 말이 되는가, 재미있는가, 새로운가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필요한 세 가지 숙지사항들을 거듭 강조했던 오승욱 감독은 문학 작품을 읽는 것 또한 권유했다. "저는 영화는 서사고, 시나리오는 문학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가 영화가 됐을 때는 문학에 가깝다고 말할 수 없지만, 시나리오 그 자체만으로 볼 때 시나리오는 문학에 더 가까운 거죠. 예로부터 인류가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기승전결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 왔어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죠. 그래서 많은 문학 작품들을 읽고, 어떻게 이 문학 작품이 관객들을 휘어잡는 지에 고민하고 분석해 봐야 해요. 그래야 서사적 구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또한 써내려 갈 수 있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관심사나 이야기 하고 싶은 어떤 주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항상 고민해야할 문제예요."

 

2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탓에 질의응답 시간이 가질 여유가 없었지만, 시나리오를 공부하기에 좋은 한국 영화들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오승욱 감독은 간단히 답변하며 끝을 맺었다.

"시나리오를 공부할 때 참고할 만한 한국영화는 <박하사탕>, <살인의 추억>이에요. 그리고 외국 영화는 <차이나타운>이고요. 이 세 영화들은 씬과 씬이 어떻게 조합하고 충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보고입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분석하기에 가장 좋은 예인 거 같습니다."



물론 오승욱 감독은 이 세 영화에 대해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공부할 것을 추천하며, 앞에서 이야기했던 세 가지 기준에 대해서 한 번 더 이야기를 했다. 오승욱 감독은 좋은 시나리오를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감독 지망생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고, 특유의 입담을 통해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해 준 시간이었다. (최혁규_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