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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6 베니스 인 서울

[시네토크] <알제리 전투> -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환경이 부럽게 느껴진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환경이 부럽게 느껴진다”

- <알제리 전투> 상영 후 태준식, 정지연 시네토크




태준식(영화감독) 꽤 오랜만에 <알제리 전투>를 봤다.


정지연(영화평론가) 이 영화는 80-90년대 당시 한국에서 ‘전설’ 소리를 듣던 작품이다. 왜나하면 영화사에서 늘 언급이 되고, ‘필견’의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에서야 정식으로 개봉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 프랑스에서도 개봉 당시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했었다. 우리나라 역시 물론이었다. 나는 자막도 없는 비디오로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태준식 나는 자막이 있는 걸로 봤었다(웃음). 90년대 대학에서 영화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그리고 ‘공간 1895’라는 곳이 있었고, 그후 ‘씨앙씨에’라는 곳이 있었다. 보기 힘든 영화들의 비디오를 대여해 주는 단체였다. 그곳에서 금지된 영화들, 소위 ‘빨간 영화’들을 봤었다. 야한 영화가 아니라 의식화된 영화(웃음).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서 비디오를 빌린 다음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봤었다.

그때는 한국 사회를 읽는 방식이 비교적 단순했다. 민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식민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본가 계급과 착취당하는 민중의 구도로 사회를 읽었다. 투명하다면 투명한 방식이다. 그렇기에 나도 <알제리 전투>를 보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당시는 ‘광주 비디오’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알제리 전투>처럼 실제 투쟁의 역사를 극화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작품은 영화로 운동을 하려고 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롤모델이자 교본 같았다. <알제리 전투>를 다같이 본 뒤 술 먹으러 가서 열심히 운동가요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정지연 ‘빨간 영화’들의 리스트가 궁금하다.


태준식 <파업전야> 같은 작품들이다. 영화를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면서 소위 ‘3세계 영화’를 많이 봤다. <칠레 전투>(파트리시오 구스만)도 그중 하나였고,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옥타비오 헤티노, 페르난도 E. 솔라나스)도 봤다. 라틴 아메리카처럼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들에서 만들어진 ‘투쟁 영화’를 많이 찾아봤다. 한편으로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도 많이 봤다. 소위 ‘인텔리’들이 형식적인 파괴를 꾀한 영화들과 혁명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같이 본 셈이다.

당시 그런 논쟁이 있었다. 직접적인 사회참여적 작품을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지지할 것인지 같은 문제들. 기억을 돌이켜 보자면 나는 <알제리 전투> 편이었다.




정지연 프랑스에서는 68 혁명을 기점으로 새로운 영화들이 나왔다. 고다르가 대표적이다. 할리우드의 주류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와는 달리 기존의 영화 형식을 파괴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적 모더니즘 영화들이었다. 또한 7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혁명의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소위 ‘해방 영화’라고 부르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런 영화들이 80년대 후반부터 ‘민중 영화’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보기 시작했다. 방금 태준식 감독은 자기가 <알제리 전투> 편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다.


태준식 관객이 해석하기 힘든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관객들이 보는 즉시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창작자가 하려는 이야기, 전달하고 싶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작품들 말이다. 당시 고다르나 트뤼포를 좋아하는 분들은 공부를 계속했던 것 같다. 반면 나는 바로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넘어갔다(웃음).


정지연 지금 밖에서는 열심히 시위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극장에서 혁명을 다룬 영화를 봤다. 이런 상황이 묘하게 느껴진다.

고다르, 트뤼포 이야기를 하니 문득 생각이 난다. 칸영화제가 중간에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는데 68년 5월에 중지된 적이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막 영화를 상영하고 있던 상영관에 고다르와 트뤼포, 장 피에르 레오가 들어와서 상영을 중지시킨다. 그리고 ‘지금 거리에서 혁명이 벌어지고 있는데 극장에서 뭘하고 있냐’면서 선동을 한다. 그리고 극장 안의 사람들과 엄청나게 논쟁을 벌인다. 그런 상황이 지금 한국과도 조금 겹치는 것 같다.


태준식 이건 좀 개인적인 이야긴데, 솔직히 말해 이 영화가 만들어진 환경이 부러웠다. ‘블랙 리스트’를 걱정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정말 부러웠다. 안 그래도 지금 같은 시기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오늘 <알제리 전투>를 다시 보니, 신념에 차 있는 감독과 이런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들의 존재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일차적인 분노가 컸는데 오늘 다시 보니 영화가 만들어진 사회적 조건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알제리 전투>는 모범적인 극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밀정>이나 <암살>과 비슷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중의 봉기를 확실하게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정지연 감독의 이력이 좀 특이하다. 나는 질로 폰테코르보가 프랑스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베니스 인 서울”에서 상영하는 게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찾아보니 이탈리아 감독이었다(웃음). 처음부터 영화를 전공한 감독은 아니다. 처음에는 프랑스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저널리즘을 연구하다가 이탈리아로 돌아가 이탈리아 공산당의 간부를 지냈다. 그리고 공산당 기관지의 파리 특파원으로서 프랑스에 갔다가 영화를 시작했다. 경력 초기에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찍었고 평생 열 편이 조금 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극영화보다 다큐를 더 많이 찍었다. <알제리 전투>에 대해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 이유 중 하나도 분명 극영화인데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드라마적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거리 장면의 촬영은 굉장히 다큐멘터리적이다.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해방된 것이 1962년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1966년에 만들어졌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영화를 베트남에서 직접 찍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게 <알제리 전투>는 알제리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을 했고 정부에서 지원도 받았다. 알제리 군대로부터 탱크, 군인 등의 지원도 받았다. 그리고 알제리 시민들이 엑스트라로 80,000명 정도 참여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 이만큼 뜨거운 지지를 보낸 것이다.


태준식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는 극영화처럼 서로 합의된 룰이 현장에 없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 <알제리 전투>에서 인상적인 건 중심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리에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봤을 때 그건 누가 시킨 게 아니다. 그냥 우연히 ‘얻어 걸린’ 순간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장면이 그렇게 깊은 인상을 주는 건 감독과 스탭, 나아가 그 자리에 모인 배우들 사이에 합의된 어떤 ‘분위기’가 충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시대, 그 장소,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 힘이 만들어진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는 ‘사회적인 연기’라고 생각한다.


정지연 다시 보니 <알제리 전투>에는 많은 클로즈업이 등장한다. 배우뿐 아니라 알제리 시민들의 얼굴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거리 장면에서 그들의 표정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가 네오 리얼리즘의 스타일을 따른 요소 중 하나는 소위 ‘전문 배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티유 대령만 프랑스의 기성 배우(장 마르탱)였고 나머지는 알제리에서 캐스팅한 비전문 배우라고 한다.

명대사가 나온다. 벤이라는 혁명가가 하는 말이다. “혁명을 이끌기는 힘들다. 혁명을 지속하기는 더 힘들고, 승리하기는 너무나 힘들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어려움은 혁명 이후에 닥칠 것이다.”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태준식 대사를 곱씹어보면 만드는 사람의 의도가 담긴 ‘선동적인’ 대사들이 나온다. ‘혁명 이후에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자’와 비슷한 대사들이다.



정지연 알제리는 130년 정도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영화가 다룬 시기인 1954-62년은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이 전국적인 투쟁을 벌였던 시기다. 이 영화는 FLN의 리더가 썼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영화에는 잘 안 다루어졌지만 FLN 내에서도 노선의 차이로 싸움이 격렬했던 걸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들과 노선이 다른 알제리인 200명가량을 학살하는 비극도 있었다.

이 영화에서 깊이 생각해 볼 지점이 세 가지 있는데, 먼저 내부를 정화하자면서 마약, 매춘, 부랑자들을 배척하는 장면이 있고, 두 번째로 부역자를 청산하는 장면이 있고, 세 번째로는 프랑스 경찰들, 유럽인들에게 테러를 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런 방법론은 항상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다시 말해 ‘저게 맞는 방법일까’라고 질문해야 한다. 당시 프랑스는 알제리와 전쟁을 치를 때 알제리 용병들을 고용해서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결국 알제리가 독립했을 때 의도적으로 그 용병들을 알제리에 버리고 갔다. 그 용병들은 결국 알제리인들에게 잔인하게 처벌을 당했다. 이런 역사의 문제들은 단순하게 답을 찾기 힘든, 어려운 지점이다. 고민해야 할 문제다.

알제리는 당시 프랑스에서도 지식인들의 트라우마였다. 60년대 프랑스 영화를 보면 고다르의 <작은 병정>(1960) 같은 영화들이 이 문제를 다룬다. 실제로 고다르, 트뤼포, 레네 같은 감독들은 알제리인들에 대한 가혹한 진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프랑스에서는 알제리를 다루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간접적으로나마 거의 최초로 알제리를 다룬 영화가 바로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1964)이다(*고다르의 <작은 병정>은 정부의 상영 금지로 뒤늦게 공개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물론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이 연인과 헤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남자의 알제리 전쟁 참전 때문이었다.


크리스 마르케가 1963년에 만든 <아름다운 5월>도 알제리 전쟁을 다룬 영화 중 한 편이다. 이 영화는 1962년 5월에 촬영했다. 1962년 5월의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터뷰하며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 중 하나가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자행한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1961년에는 ‘파리 대학살’이라고 해서 프랑스에서 알제리인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프랑스에 거주하는 알제리인들은 통행에 제한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제한을 풀어달라는 평화 행진을 벌였는데 프랑스 정부는 그 시위대를 토끼몰이하듯 가둔 뒤 총으로 쏴서 200명 정도를 죽였다. 그리고는 시체를 제대로 수습도 하지 않고 세느강에 그냥 버려버리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5월>이 이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시민들의 반응이 차갑다. ‘알제리 사람들은 더럽고 불편하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크리스 마르케는 프랑스 민중이 어떻게 권력자들의 지배 논리를 따라가는지 보여준다.

또 알제리를 다룬 유명한 영화로는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2005)이 있다.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영화의 표면에 드러난 미스테리를 따라가다 보면 방금 이야기한 파리 대학살이 그 근본적인 원인에 깔려 있음을 암시한다.


관객 1 알제리 내에서도 투쟁 노선이 달라서 서로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영화에 대한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입장에 따라 진실이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태준식 기본적으로 한 사람은 여러 가지 입장을 동시에 갖고 있다. 시민, 노동자, 종교인 등. 나는 기본적으로 나를 창작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동시에 정당의 당원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속한 단체에서 있을 수 없는, 상식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폭력이나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그 단체에서 발을 빼는 것을 고민할 것 같다. 나는 창작자이자 당원으로서 여러 입장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집단이 어떤 행동을 한다면 나는 창작자로서 항상 비판적인 입장을 지키려 노력할 것이다. 열정, 또는 열정이 지나쳐 생기는 오만함 같은 건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인 동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덩어리’로 묶여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지만 그로부터 일정 정도 거리를 두는 건 항상 필요하다.


정지연 다큐멘터리를 얘기할 때 이론에서는 소위 ‘객관적 시점’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나는 ‘객관성’이란 건 존재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객관’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주관적 입장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미세한 입장들의 다양성은 존중하되 커다란 차원에서의 윤리 같은 건 항상 고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참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일시 l 12월 17일(토) 오후 6시 <알제리 전투> 상영 후

정리 l 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 l 주민규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