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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이 세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 <귀>의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감독


“이 세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 <귀>의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감독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 내내 부조리한 상황들이 연속으로 펼쳐지며 웃음을 주다가 마지막에는 묵직한 깨달음의 순간을 준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감독과 함께 방금 본 <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영화감독) 일단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돼서 너무 감동스럽다. 나는 한국 영화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한국 영화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내가 얼마나 한국 영화를 좋아하냐 하면, 과거 LA에 있을 때 알지도 못하는 한국어로 된 단편 영화를 만들 정도였다(웃음). 앞으로 미래의 영화들은 한국 영화를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너무 의미가 크다.


허남웅 감독님이 첫 번째 장편을 2010년에 만들었으니 이 작품을 만드는 데 6년이나 걸린 셈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기억해주어서 고맙다. 6년 전에 영화를 만든 뒤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했었다. 하지만 다들 잘 알고 있듯이 영화계에서는 진행 도중 작품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 중이고, 그 기간 동안 다른 감독의 작품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을 했었다. 나는 그런 시나리오 작업도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사람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 역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글을 쓰고, 그 글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영화를 제작하는 건 나에게 바캉스를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귀>의 경우는 희극으로 시작했다. 60-70년대에는 이탈리아에서 코미디 영화가 특히 많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따르면서도 좀 더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장면은 말이 굉장히 짧고 어떤 장면은 말을 엄청 많이 하면서 부자연스러운 순간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그리고 흑백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비엔날레컬리지 덕분에 그런 시도를 운좋게 할 수 있었다.

 

허남웅 이탈리아의 코미디 영화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영화의 첫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코믹하면서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특히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한번은 웃음의 요소가 많은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장례식을 진행하는 목사님이 말을 계속 더듬고 물건을 계속 떨어뜨리며 코미디 영화 같은 순간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그 장례식이 내 어머니의 장례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장례식의 상황이 너무 웃긴데, 그날은 나에게 가장 슬픈 날이었다. 이런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경우는 코믹하거나, 진지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삶에는 우리가 보는 영화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요소가 담겨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허남웅 <귀>는 화면비가 중간에 변하기 때문에 실험적인 느낌을 준다. 화면비에 변화를 준 이유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영화의 화면비를 바꾸는 아이디어는 촬영 감독과의 협의 과정에서 나왔다. 영화 중간에 화면비가 변하는 건 내가 알기로 이탈리아에서 시도된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한 번 시도를 하고 싶었다. 비엔날레컬리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상업적인 요소를 비교적 덜 고려하고 우리가 실험하고 싶은 걸 다 시도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세상에 마음을 닫고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주인공의 마음이 열린다. 어떤 개인이 아무리 잘났고 똑똑하더라도 그가 속한 세상은 지금 이곳 하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화면비를 점차 확장시켜 나갔다. 

 

허남웅 이 영화의 흑백 화면은 차갑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귀>는 처음부터 흑백으로 찍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각본을 쓰는 도중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흑백 이미지만 떠올랐다. 가끔 색깔을 넣어서 생각해 보려고 하면 아예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귀>는 처음부터 흑백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내 머릿속에서 태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사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흑백이라고 생각한다. 흑백으로 세상을 보여주면 관객은 색상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배우들의 얼굴, 시선, 말에만 집중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흑백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가 비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나는 세상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영화 자체는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세상의 본질에 가깝게 보여주는 데 가장 적합한 건 흑백 촬영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1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대해 얘기했는데 혹시 이 이야기가 감독님 본인의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나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른 길로 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또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 같은 고민들 말이다. 이런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허남웅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다음 작품도 혹시 6년 뒤에 나오는 건가(웃음).


 

알레산드로 아로나디오 그렇다(웃음). 농담이고, 내년에 새로운 작품을 촬영할 예정이다. 6년에 한 번씩 영화를 찍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기는 하다.



일시 12월 9일(금) 오후 7시 30분 <귀> 상영 후

정리 김보년 l 프로그램팀

사진 최재협 l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