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 죽음과 패배의 공포를 넘어서는 대립의 유희 -존 카펜터의 <화성의 유령들>(2002)


 

생존을 넘어서는 목적을 염두에 둔 싸움이 있다면, 그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화성의 유령들>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화성으로 이주를 택하고 과학과 경찰을 통해 새로운 식민지를 장악하지만 그 과정에서 쾌락, 활기, 재미 등 목적 이외의 요소들은 잃어버린 듯하다. ‘샤이닝 캐년광산으로 파견된 경찰대 역시 정체불명의 에너지에 감염된 무리로부터 벗어나 살기 위해 다시 열차를 타고자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찰과 광기어린 무리 간의 대립은 생존 의지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이는 광산의 교도소에서 죄수를 이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멜라니경위의 변화에서 두드러진다. 멜라니는 샤이닝 캐년의 수색 과정에서 살해당하는 지휘관 다음으로 경찰대를 이끄는 지도자로 구심축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죽은 지휘관과 부하 경찰 제리조가 욕망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저마다 조금씩 억눌린 욕망을 지닌 경찰들은 광산에서 이성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참상 앞에 필사적인 방어로 대응하지만 점차 그 노력이 생존 너머의 것을 가리킨다는 인상을 준다.


이 영화에서 반복되는 이미지 가운데 문의 운동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 등장하는 이미지가 주는 충격 효과를 언급하고 싶다. 경찰대가 처음 광산에 도착해 인기척 하나 없는 고요한 분위기에 방심하면서 교도소 내부로 진입하는 문을 여는 순간, 날카로운 흉기를 엮은 섬뜩한 조형물과 목이 잘린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시체들의 이미지는 건조하기까지 했던 상황을 일순 바꿔놓는다. 무방비 상태의 경찰들은 끔찍한 광경에 치를 떨거나 할 말을 잃는다. 교도소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곳곳의 문을 하나 둘 열 때마다 갑작스레 등장하는 생존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위기를 느낀다. 더구나 자해와 사람의 시체를 절단해 그 일부로 몸을 치장하는 무리를 발견하고 생존의 위협에 동요한다.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손에 들고 괴성을 지르며 광기에 들뜬 이들은 공포를 유발한다. 교도소를 폐쇄하고 이상 행동을 보이는 죄수들을 감옥에 가둬놓고 감염 여부를 분리하지만 감옥의 창살 너머로 죄수를 바라보는 멜라니의 시점에 비참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별개로 다른 관점이 개입한다.


손톱으로 피부를 갈라 상처를 내고 피로 흥건한 죄수의 얼굴은 희열로 가득하다. 감염된 이들은 단지 그들을 구금하고 감시하는 경찰들에게 전시되는 데 그치지 않고 에너지의 시점으로 경찰을 마주보곤 한다. 혹자는 유령의 공격을 피식민자의 분노로 해석하지만 경찰을 바라보는 에너지의 시점은 무차별적인 욕망으로 가득하다. 멜라니 역시 죽은 숙주의 몸에서 빠져 나온 에너지의 표적이 되지만 제리조가 입에 넣어준 마약의 영향이 그녀로 하여금 에너지를 거부하도록 이끈다. 덕분에 에너지의 성격을 이해하게 된 멜라니가 이전과 비교해 주목하는 대상, 그녀의 변화를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장면은 교도소 밖에서 맞닥뜨린 감염된 광부를 쓰러뜨리고 그의 무기를 집어 드는 순간이다. 그 순간 울려 퍼지는 강렬한 헤비메탈은 이전까지 에너지에 감염된 무리의 광기를 북돋기 위한 것이었으나 경찰과 죄수들의 목과 팔다리를 가르는 무자비한 톱날은 공포가 아닌, 유희를 예고한다. 록스타를 연상시키는 무리의 지도자가 그를 따르는 숙주를 이끌고 멜라니 일행에게 다가오는 장면은 더 이상 공포를 유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쾌감에 앞선 흥분을 고조시킨다.




에너지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핵발전소를 파괴하고 다시 열차에 올라탄 죄수 윌리엄스가 다이너마이트가 가득한 칸에 무리의 지도자를 몰아내고 열차를 분리하는 장면은 엄청난 화염을 동반한 폭발과 함께 원초적인 쾌감을 안겨준다. 비록 윌리엄스는 멜라니에게 수갑을 채운 채 열차에서 탈출하지만 에너지의 공격이 경찰 당국까지 미치자 다시 멜라니를 찾는다. 그녀에게 총을 건네는 윌리엄스의 얼굴은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표정이 아닌, 다가올 전투에 대한 흥분이 만연하다. 해임된 멜라니는 윌리엄스와 경찰과 죄수가 아닌, 마약이나 에너지의 영향을 빌리지 않고 유령에게 맞서는 순간의 쾌감에 몰두한다. 지구에서의 문명 사회를 모방한 기지의 점령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이미 에너지의 확산으로 인한 아비규환은 범죄자 윌리엄스의 호송 임무와 멜라니의 해임을 묵살함으로써 제도 권력을 조롱하기 때문이다. 남은 건 당장 죽어도 상관없는 전투뿐이다. 이는 <뉴욕 탈출>(1981), <LA 탈출>(1996) 등에서 반()체제적 성격을 드러낸 바 있는 존 카펜터의 계보와 상통하면서 결국 그의 반체제주의가 끝이 없는 쾌락의 추구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멜라니가 착용하던 목걸이는 그녀가 복용하는 마약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멜라니의 목걸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우려하던 에너지의 파급은 이뤄졌지만 멜라니는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경찰의 시선에서 이성을 넘어선 숙주의 행적은 끔찍하고 섬뜩한 잔해로 보이지만 감염되지 않은 자를 정복하고자 하는 힘에 맞서는 의지 자체는 멜라니에게 결여됐던 동력이 된다. 존 카펜터가 상상한 화성엔 지구의 문명사회 이상 지식 체계를 갖춘 외계인 대신 정의할 수 없는 행성 고유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그것은 위협적이지만 악이라 단정할 수 없다. 에너지에게 지배당한 숙주를 바라보는 멜라니처럼 에너지는 멜라니를 마주 본다. 서로의 존재가 정복을 거부하는 순수한 대립 항이라는 점을 인지했을 때, 죽음과 패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신체 절단과 총격, 폭발로 이뤄진 그들의 전투를 하나의 유희로 바라볼 수 있다.

 

권세미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