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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리뷰] 클레르 드니의 <35 럼 샷> 부조리한 삶의 조건을 드러내는 시선 클레르 드니 감독은 어린 시절 서아프리카에서 자랐다. 거주지역이 세네갈, 카메룬 같은 주로 과거에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들이었는데, 공무원인 부친이 이곳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갈 때쯤 프랑스로 돌아왔으니, 그의 정체성은 아프리카와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다. 아니, 유아기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드니는 아프리카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드니의 영화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탈식민주의 테마는 이런 성장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008)도 프랑스에 사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이야기다. 감독 자신이 밝혔듯, 이 영화는 그가 흠모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1949)을 응용한 작품이다. 곧 아버지와 딸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다. 아버지(드니 감독의 아이콘인 알렉스 드카)는 기차의.. 더보기
[리뷰] 이마무라 쇼헤이 <인류학 입문> 수컷과 암컷의 관계, 그 풀 수 없는 삶의 비밀 수부는 음화(淫畵)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내다. 그는 미망인 하루의 집에 하숙 들어 살며 그녀와 애인 사이로 지낸다. 하루의 아들 코이치는 엄마 품에 안겨 수부에게 돈을 뜯어내려 한다. 딸 케이코는 수부의 음탕한 시선을 거절하지 않는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예상하겠지만, 사실상 가족처럼 살아가는 이 네 사람 사이에 어떤 일정한 질서는 없다. 그가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을 거쳤으나, 사부의 정연한 세계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 만의 길을 찾아 떠났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세계는 어지럽다. 인간의 욕정 때문이다. 그 욕정이 오즈의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무라의 세계에서는 종종 자연적 .. 더보기
‘오즈 영화에서의 감정에 관하여’ [영화사 강좌] 오즈 야스지로를 말한다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기간 중에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세 차례의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었다. 그 마지막 강좌로 지난 9월 30일 저녁 상영 후 영화평론가 김영진 교수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오즈 영화에서의 감정에 관하여’란 주제 때문인지 흥미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 강연 현장을 여기에 싣는다. 김영진(명지대학교 교수, 영화평론가): 이라는 영화는 잘 아시듯이 오즈 야스지로의 후기작 중 하나로, 이후에 을 찍고 돌아가셨다. 개인적으로 오즈의 후기작들도 좋아한다. 보통의 나이 든 감독의 영화 같지가 않다. 주인공인 만베이라는 캐릭터는 이전까지의 오즈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노인의 캐릭터와는 다르다. 철없는 노인의 모습인데, 나이.. 더보기
‘오즈의 이면’ [영화사 강좌] 오즈 야스지로를 말한다!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기간 중에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세 차례의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었다. 그 첫 번째로 지난 9월 18일 오후 상영 후 시네마테크부산 관장을 맡고 있는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오즈의 이면’이란 주제로 펼쳐진 열띤 강연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문영(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부산 관장): 에는 오즈 야스지로의 유성영화 중에는 유일하게 겨울이 배경이고, 눈이 내린다. 오즈는 포커스 잡는 게 어려워지거나 하는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들 때문에, 영화에서 비나 눈이 오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오즈의 대부분의 영화들은 봄, 여름, 가을에 찍혀졌고 굉장히 밝다. 분위기나 주제에 있어서 밝다는 것이 .. 더보기
오즈의 컬러 영화를 보셨는가 가정과 결혼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탐구해온 오즈 야스지로 감독 자신은 평생 독신이었다. 일본 소시민 가정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는 평가는 맞는 말이지만 이것만으로 오즈 영화의 세계를 설명하기는 무리다. ‘무리’(無理)라는 단어는 오즈의 대사에 자주 등장하는데 어쩌면 오즈가 ‘이치’(理致)란 무엇인지 항상 고민했던 증거인지도 모른다. 평범한 삶에서 그가 발견한 이치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 인간 조건이다. 단지 일본적인 삶의 풍경만을 잘 그려냈다면 오즈가 이토록 오래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오즈는 인간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조건을 존중하고 예의 바르게 그 표면과 이면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도 결코 그 조건에 매몰된 적이 없다. 그의 유작 (1.. 더보기
가족의 의미, 삶의 원형을 탐구한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오즈 야스지로는 가장 일본적인 감독이자 소시민극이라 불리는 독특한 미학적 스타일로 이후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친 감독이다. 또한 그는 현대사회 속 가족의 의미와 해체에 대해 가장 깊이 천착하고 생각했던 감독으로 거의 모든 영화에서 일관되게 가족을 다룬다. (1953)는 그러한 오즈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잘 알려진 명실상부한 오즈의 대표작으로 내러티브나 스타일 모든 측면에서 그의 전략이 고스란히 농축된 작품이다. 스토리라인은 이보다 더 단순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조롭다. 영화는 시골에 사는 노부부가 오랜만에 자식들과 손자를 보기 위해 동경에 온 여정을 그린다. 하지만 사는 게 바쁜 자식들은 그들의 방문을 귀찮아하며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오히려 전쟁 중에 남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