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후의 사나이> 상영 후 허지웅 평론가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8월 4일, 무더위의 한 가운데 <지상 최후의 사나이> 상영이 끝나고 허지웅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장르 영화에 대한 애착과 사유는 물론이고, 토크만으로 유혈이 낭자하던 즐거운 시네토크 현장을 전한다.

 

 

허지웅(영화평론가): 좀비 이야기는 타자, 혹은 이방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결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다른 것들을 죽이고 없앨 것이냐, 혹은 융합해 살아갈 방법을 모색할 것이냐 하는 두 가지 태도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또한 타자를 없앤다는 선택지를 골랐을 경우 그 과정 안에서 ‘우리는 과연 그것들에 비해 무엇이 나은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보신 <지상 최후의 사나이>는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를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매드슨의 단편들은 굉장히 기발한 설정을 통해 소름 끼치는 결말을 이끌어 내는, 짧은 이야기의 미덕을 가진 작품들이다. 반면 <나는 전설이다>는 중편으로, 기존의 매드슨 소설에서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은 54년 작, 이 영화는 64년 작이다. 이후 80년대에 찰톤 헤스턴을 주인공으로 한 <오메가 맨>으로 다시 영화화되었는데, 우리나라 공중파 TV에서도 자주 보여준 작품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 2007년에 <나는 전설이다>라는 제목으로 나온 작품까지 총 세 번 영화화되었다. 그나마 원작 소설의 내용을 많이 훼손하지 않고 영화화한 사례가 역시 <지상 최후의 사나이>인데, 매드슨이 이 영화의 각본을 직접 썼다. 그러나 오프닝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없다. 완성된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이름을 뺄 것을 요구했고 대신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이 영화를 마냥 싫어했던 것은 아니고, 이 영화가 실망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지점을 지적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타당한 것 같다. 먼저, 주인공 빈센트 프라이스의 캐스팅이다. 프라이스는 B급 호러물의 영웅이자 아이콘인 위대한 배우였고, 많은 비뚤어진 감독들의 유년기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다만 워낙 유명한 스타다보니 약간 ‘꼰대스럽게’ 구는 부분이 있었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 시체들이 널린 디스토피아의 풍경이 펼쳐지며 모건이 트렁크에 시체를 싣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더미를 쓰면 더 많은 시체를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프라이스가 극의 완성도와 사실감을 위해 굳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써야 한다고 우겼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배우들을 쓰게 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프라이스가 극장에서 시체를 옮길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 한다. 시체가 널린 도로를 차로 달리는 부분에서도 굉장히 서행한다. (웃음)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부분이 있었고, 결정적인 문제는 당대의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빈센트 프라이스는 목소리 자체가 브랜드화 되었던 사람이다. 당시 ‘페이머스 고스트 스토리즈 Famous Ghost Stories’라는 TV 쇼의 진행을 맡고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할 대상을 찾기 쉽지 않은데, 굳이 말하자면 ‘전설의 고향’이 끝날 때 ‘이 이야기는 전남 순천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 시어머니가…’ 같은 내레이션을 하는 목소리 같은 것이다. <지상 최후의 사나이>에는 초반 내레이션이 굉장히 많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심각하게 몰입하기는커녕 키득키득 웃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드슨은 미스캐스팅이라고 생각했고, 제작진을 많이 꾸짖었다고 한다.

 

 

영화의 진행은 좀 루즈한 편이다. 당시에 표현할 수 있었던 기술적 한계도 있었고, 연출력의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단계에서 제작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본래는 해머 영화사에서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이태리 합작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어쨌든 64년, 즉 60년대 초반에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해주셨으면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건 엄밀히 좀비가 아니고,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좀비가 아니다. 하지만 좀비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이 영화를 빼놓을 수는 없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괴물에 대한 이미지는 명확한데, 제임스 웨일이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속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의 첫 장면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괴물이 마을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며 풍차에 몸을 숨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괴물은 우리와 다른 존재고, 아름답지 않은 외양을 가지고 있으며 소외 받는 존재다. 또한 우리가 기억할만한 유명한 괴물은 당시의 시대성을 담고 있다. 드라큐라나 미이라 같은 근대의 괴물들은 중세 이전의 세계관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반영하고, 그 이후에는 환경오염이나 핵으로부터 비롯한 괴물들이 등장했다. 이런 소재성 외에 개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더 재미있어진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괴물은 독자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1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좀비가 등장하며 괴물이 다수, 군중, 집단의 모습을 하게 된다. 개체적 공포보다 집단으로부터 오는 공포가 더 유효해진 것이다. 또한 그 좀비라는 유행은 68년도에 시작된 이래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확대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즉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존재는 여전히 개별화된 연쇄살인범보다는 무리와 집단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매드슨의 소설과 이 영화는 뱀파이어들을 다루고 있지만, 기존의 방식과는 굉장히 다르다. 신비주의적인 경로로 탄생하는 뱀파이어가 아닌 병균에 의해 전염되는 일종의 질병의 감염자들이다. 또한 이들이 마늘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비주의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마늘이 함유한 특정 성분 때문이고,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토록 숭배하며 자신들을 지켜주리라 믿었던 신의 존재가 자신들을 내팽개친 것에 대한 무의식적 반감과 공포 때문이라는 것이다. 뱀파이어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한다. 결정적으로 무리를 지은, 군중에 가까운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매드슨의 원작이 최초였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은 후의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조지 로메로 역시 <나는 전설이다>라는 텍스트로부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이미지를 가지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자크 투르뇌르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를 비롯해 좀비가 등장하는 과거의 영화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좀비들은 부두교의 주술에 의해 만들어진 신비주의적 좀비였고, 대부분은 인종차별과 연관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좀비의 컨셉과 원형, 즉 물면 전염이 되고, 느리게 걸어 다니며 사람을 먹는 좀비를 만들어 낸 것은 68년에 조지 로메로가 만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좀비 텍스트를 창조한 결정적인 동력이 소설 <나는 전설이다>와 영화 <지상 최후의 사나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전설이다>라는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정수는 괴물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즉 타자에 대해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대한 문제를 명확히 꿰뚫는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역시 그렇게 뛰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괴물,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언제 어디서든 뒤집힐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지상 최후의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건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인간인데,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인간이 아닐 때 무엇이 정상이 되는 것인가. 저들이 절대적인 다수고, 내가 말 그대로 ‘지상 최후의 일인’이라면 내가 괴물이 되는 것이다. 로메로의 비전 역시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꾸준히 이어지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 같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도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는 좀비의 존재 자체보다는 그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이야기의 정수가 있다. 특히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흑은 벤이 민병대에 의해 좀비로 오인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부분이 중요하다. 당시 사회에서 흑인은 여전히 이방인이며 타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좀비와 다를 것이 없다. 어찌 보면 굉장히 블랙코미디 같은 설정이다.

이번 시네바캉스에서도 90년에 톰 새비니가 리메이크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상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왔고, 로메로가 상당부분을 함께 만들었으니 보시면 좋겠다. 이 리메이크판을 포함해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에 좀비 영화들이 굉장히 각광받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영웅 같은 감독들이 대거 등장했다. 스튜어트 고든, 샘 레이미, 피터 잭슨, 잭 스나이더 같은 감독들은, 어찌 보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나는 전설이다>라는 텍스트 없이는 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반지의 제왕>을 못 봤을 수도 있다는 건 약간 무시무시한 일이다. (웃음) 아무튼 어렸을 때부터 불우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감독들에게 이 텍스트들이 좋은 학습효과를 주었다는 점, 그래서 좀비 영화는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보는 안보든, 싫어하든 좋아하든 영향을 끼쳐 왔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또한 좀비 영화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지속적으로 걸출한 작품들이 나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 중 대니 보일의 <28일 후>도 꼽을 수 있는데, 그 영화에서는 좀비들이 뛰어다닌다. 아, 정말 무서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원래 인터뷰도 잘 안 하는 로메로 선생님께서 여기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비추고 말았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대체 왜 좀비가 뛰는지 알 수가 없다, 좀비는 이미 죽은 시체라 뛰면 당연히 관절이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오타쿠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웃음) 아무튼 이렇게 좀비 영화의 계보 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 실험적이고 멋진 영화들은 좀비 영화에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들, 즉 괴물과 타자에 대한 태도라는 문제를 지금 우리의 현실에 맞는 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영화를 이에 대한 적절한 예로 들 수 있다. 최근에 만들어진 <이웃집 좀비>의 후반부 에피소드는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가 마침내 개발된 백신으로 정상화 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과거에 좀비였던 사람들도 백신을 맞고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흔적이 남아있다. 얼굴이 약간 썩어있다거나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전에 국회의원이고 변호사였던 사람도 일용직 노동자가 되고, 그마저도 고용인이 그가 좀비였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그대로 해고된다. 왜냐하면 좀비였으니까, 괴물이었으니까. 이는 노골적으로 우리가 이주 노동자를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관객1: 오늘 강연의 주제가 ‘좀비의 정치학’인데, 인터넷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 ‘좌빨 좀비’ 등의 좀비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허지웅: 집단은 분명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목소리만 강성하게 들려오는 경우 좀비 영화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가 분명히 있다. 그걸 좌빨 좀비, 수구 좀비, 뭐라고 부르든 아예 맥락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커다란 광풍이 몰아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타자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하나는 선의를 투영할 수 있는 우상으로서의 구루와 같은 아이콘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종류의 공포와 부조리를 덮어씌울 수 있는 괴물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이 이번 정권 들어 여러 가지 상황이나 현실로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2: 괴물이나 타자를 대하는 선택지에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아우르려는 쪽을 선택하는 영화들도 있는지 궁금하다.

허지웅: 있다. 앞서 말씀드렸던 <이웃집 좀비>처럼 영화 속에서 좀비가 취급되는 방식이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취급하는 방식과 명백히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저들이 괴물이냐, 아니면 저들을 괴물로 다루는 우리가 괴물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영화들이 있다. 또는 아예 직접적으로 이야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는 좀비가 된 친구를 쇠사슬로 감아 같이 살지 않나. 또 한국에 <리빙 데드3>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브라이언 유즈나의 영화가 아마 방금 질문하신 의도와 가장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좀비가 되어가는 여자와 그의 연인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피해 함께 도망 다니다 끝내 용광로에 함께 몸을 던지는 내용이다. 좋은 영화니 꼭 보셨으면 좋겠다.

 

정리: 박예하(관객 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마이클 치미노, 할리우드의 저주받은 감독

지난 5일 저녁, ‘2011 시네바캉스 서울’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현대성’에 대한 영화사 강좌의 첫 번째 시간으로 아메리카 뉴시네마에 종지부를 찍은 전설적 작품,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의 강좌가 있었다. 너무 빨리 성공과 실패를 맛 본 ‘저주 받은 감독’ 치미노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할리우드가 혁신의 에너지로 넘치던 예외적인 시대에 대해 돌아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김영진(명지대학교 교수, 영화평론가): 재밌게 보셨는지? 영화가 좀 우울하다. 하여튼 몇 번을 봐도 지독한 엔딩이다.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이 있는데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고 한다. 왜 꼭 죽여야 했을까? (웃음) 이 영화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상업적 재앙으로 기록된다. 1100만 달러의 예산으로 기획됐다가 총 3500만 달러가 들고 흥행수익은 100만 달러 좀 넘었다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작 배급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영화 한 편 때문에 부도가 났다. 아시다시피 치미노의 두 번째 영화인 <디어 헌터>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굉장한 예술적 권력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디어 헌터>의 결혼식 장면이 굉장히 긴데, 그 삽입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다더라. 헌데 치미노가 우겨서 그 장면을 넣었고 결과적으로 그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성공했다. 이러한 전례 때문에 이 영화는 제어가 안 된 거다. 비사에 의하면 편집할 때 치미노가 사설 경호를 붙여서 편집실 앞에 세워놨다고 한다. 그렇게 최종 편집으로 내놓은 것이 5시간 20분이었다. 이 3시간 40분 버전은 타협 끝에 간신히 나왔다. 3500만 달러는 지금으로 치면 3억 5천만 달러나 같다. 따라서 엄청난 광고에, 관객이 들 때까지 무제한 상영이라는 파격적인 계약을 하고 뉴욕에서 프리미어를 했다. 그런데 인터미션 때 치미노가 리셉션을 꾸려놓은 2층에 올라와보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어디 갔냐’ 물으니 홍보하는 사람 말이 ‘다 집에 갔습니다.’ 그렇게 된 거다.
미국 평론가들도 한 명의 예외조차 없이 경쟁하듯 이 영화를 씹어댔다. 마치 예술적 방종의 사례인 것처럼. 사상이 불순하다 해서 공격받고, 자본주의의 최악의 사례로서 공격받고. 치미노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다. 게다가 1985년인가에 ‘파이널 컷’이라고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쓴 책이 있는데 그걸로 두 번 죽었다. 치미노는 광적인 완벽주의자여서 일주일에 한명씩 자르고 계속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었더라는 에피소드들이 적혀있다. 농담 반으로 사실 약간 술 먹으면서 찍은 느낌도 있다. 도저히 미국 영화에 나올 수 있는 샷들, 엄청나게 광포한 에너지가 있잖나. ‘파이널 컷’에 그 비슷한 증언도 있다. 치미노는 ‘그 책은 전부 픽션’이라고 하며 그 책의 저자를 아직도 증오한다고 한다. 또 이 영화에 대해 한줌의 후회도 없다고 하고 5시간 20분짜리 원판을 자기 집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실패로 말미암아 치미노의 경력은 곤두박질 쳤다. 그는 미국 영화의 이단아 같은 존재이다. 아메리카 뉴시네마 마지막에 나타났다가 반딧불처럼 짧게 빛나고 사라졌다. 비슷한 시대에 등장한 위즈 키드라고 불렸던 영화 신동들, 코폴라, 스콜세지, 스필버그, 루카스 그룹과도 다르고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고전영화에 대한 자의식으로 장르를 일신하거나 수정했던 아메리칸 뉴시네마와도 다르다. 그는 건축과 연극을 전공했고, 연기도 좀 해보려고 기웃거렸다. 글재주가 이스트우드의 눈에 들어서 영화계에 들어왔고 그렇게 찍은 게 이스트우드와 제프 브리지스 나오는 <대도적>이다. 그런데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장렬한 엔딩을 찍은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 이상하다. <택시 드라이버>가 나온 1976년만 해도 스콜세지와, 폴 슈레이더가 마약하면서 굉장히 폭력적이고 어두운 영화를 찍어서 성공했다. <할리우드 르네상스>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폴 슈레이더가 극장에 가보니 어떤 영화의 줄이 엄청나게 서있었다더라. 어떤 놈인지 좋겠다하고 가서 봤더니 자기가 썼던 <택시 드라이버>였다고 한다. 그렇게 어두운 영화가 흥행할 줄 몰랐던 것이다. 불과 3,4년 차이인데 <천국의 문>은 대중들이 바라지 않는 영화가 돼버렸다. 시대는 레이건 시대로 넘어가고. 그 직전에 몇 개의 사례가 있었다. 스필버그는 <1942>라고 진주만 전투를 크레이지 코미디로 찍었고, 마틴 스콜세지가 찍은 <뉴욕뉴욕>도 있다. 재즈시대에 대한 엘레지를 갖고 있는. 역시 언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루카스가 그 영화를 보고 ‘형 결말만 해피엔딩으로 바꾸면 2000만 달러는 더 벌 수 있어’라고 말해서 한동안 절교했었다고 한다.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으로 정말 지옥에 갈 뻔 했다가 깐느에서 상을 타면서 간신히 본전을 했다. 그 뒤 <원 프롬 더 하트>란 영화를 찍고 스튜디오를 무시한 채 자체배급하려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개 중 가장 야망이 컸던 영화는 <천국의 문>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웨스턴에 수정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존 포드 같은 경우 미국의 신화가 이룩되는 모습을 묘사하잖나. 치미노의 관심은 그것이 파괴되는 과정이었다. <천국의 문>은 서부의 역사를 먼저 온 지주들과 이민자들 간의 계급투쟁의 역사로 그려내고 있다. 공권력은 무력하다. 미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치부를 건드린 것이다.
본인은 ‘차마노’라고 발음한다는데 마이클 치미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부 쪽 피고, 아마 필생의 꿈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언젠가 찍어야지 생각했는데, <디어 헌터>로 인해 기회가 너무 일찍 찾아왔고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삼십대 후반에 찍을 수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는 여한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3억 5천만 달러의 돈을 핸들링해서 바라던 대로 찍고. 망하면 어떤가. 몇 십 년 지나 여기 한국에서도 보고 있는데. (웃음) 형식적으로도 굉장히 특이하다. 그에게는 미국 영화에 대한 존경이 없는 것 같다. 베르톨루치가 80년대 말에 한 인터뷰를 보면, 자신은 자타공인 시네필이었고 오슨 웰스 같은 감독의 미국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카메라 워킹을 배웠는데, 요즘엔 거꾸로 미국영화 감독들이 자기 카메라 워킹을 의식하는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게 치미노라는 얘기를 한다. 기본적으로 달리나 트랙을 깔아놓지 않으면 안심 못하는 스타일 있잖나. 아니면 줌으로 밀고 들어가거나. 미국 영화엔 잘 없는 부분이다. 또 굉장히 음영이 짙은 조명을 쓴다.
그런데 치미노는 감정이 과잉이긴 과잉인데, 좀 다른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아무래도 삼각관계 같은 것 좋아하니까 (웃음) 주인공이 처음에 엘라(이자벨 위페르)를 만나는 장면이다. 굉장히 독특하다. 엘라는 기존 서부극에선 절대 주연이 될 수 없는 여자다. 학교 선생이나 클레멘타인 같은 여자가 주연이 되어야지. 이 여자는 포주다. 그러면서 숙녀의 품위도 가지고 있고, 또 자수성가한 비즈니스맨이기도 하다. 아르빌(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어찌 보면 좀 부적절한 래링 관계인데 둘이 만나서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카메라가 움직이거나 인물이 움직이거나 둘 중 하나다. 파이가 왔다 갔다 하고 그 와중에 벗을 건 다 벗고 침대에 들어갔다가 선물을 사왔다니까 바로 뛰어나가고. 그냥 야생이다 야생. 그 사람들은 문명인이지만 그 살고 있는 곳과 행동하는 리듬 자체가 야생이다. 지금으로 치면 선물로 벤츠 뭐를 사준 건데 그걸 보란 듯이 몰고 가는 것 아닌가. 세레모니 중인 교회 앞을 확 지나가고, 분란이 일어나고. 엄청나게 불경한 묘사인데 그것 자체로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이는 어떤 미국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정적이 흐르면서 엘라가 강에서 나체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여성, 자연, 어머니라는 시각적 메타포는 뭐 클리셰일 수도 있고 존 포드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것이지만. 그러고 나서 엘라가 아르빌과 걷다가 하늘을 딱 보면, 맑은 줄 알았던 하늘이 흐려진다. 이런 식의 묘사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게 DVD같은 걸로 보면 그런가 보다하지만, 저는 이 작품을 중고등학교 때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그 큰 스크린으로 봤을 때 이런 감정의 스케일은 전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평단과 관객을 화나게 한 건 고전적인 내러티브의 무시였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없고 덩어리져있다. 지금은 절판 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의 할리우드>라는 책에서 로빈 우드는 제일 마지막 장에서 치미노가 그러한 구성을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한다. 치미노는 건축가다. 캐릭터와 개연성을 촘촘히 설명하지 않고 공간 그 자체에서 벌어진 일을 계속 블록 식으로 쌓으면서 보여주는 형식적 혁신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무례한 영화가 없다. 주인공들이 삼각관계인 것을 한 참 지나서 알게 되지 않는가. 미국 영화 보통의 화술이라고 하면,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을 찍으며 남북 전쟁을 남 출신 북 출신의 연애담으로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집중하더라 이거다. 개인의 로맨스가 전면에 서고 역사는 배경이 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연애담이 주가 아니다. 영화 첫 부분에 하버드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미국이 전통 없는 나라인데 굉장히 전통 있는 척 하지 않나. 총장의 연설도 공허하지만 사회적 의무들을 강조하고. 허례허식처럼 보이는데 엄정한 의식이 있다. 이 틀을 깨는 게 아르빌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그 다음 단락으로 건너뛴다.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하버드 때와는 너무 다른 얘기다. 거기서 맹세했던 것들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는 세계다. 고로 치미노는 로맨스 부분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만큼의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홀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롤러 스케이트 신고 댄스하는 게 어딨나. 지금 보기엔 굉장히 멋진 스펙터클인데, 현장에서는 악명이 높았다. 당시에는 스텝들이 치미노가 드디어 돌았다고 했다더라. 저게 예정으로 5일인데, 실제로 한 3주 찍었던 것이다. 그러니 제작비가 안 늘어나겠는가. 그리고 엘라는 언제 저렇게 저 커뮤니티에 자연스레 들어와 있나 싶다. 심지어 그 댄스 시퀀스의 대미를 장식한다. 전통적인 이야기이라면 뭔가가 있었을 텐데 치미노의 관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게 이어지는 게 또 왜, 쳐들어온다고 할 때 격론이 벌어지잖나. 제가 볼 땐 댄스 시퀀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오스의 에너지. 보통 영화였다면 선악의 대립으로 묘사했을텐데 완전히 카오스다. 이런 식의 형식이 통할 수 있다고 했던 게 <디어 헌터>였고, 아 좀 아니구나 했던 게 이 <천국의 문>인데. 아메리칸 뉴시네마가 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게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약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전통적인 할리우드 시스템이 붕괴되었을 때. 엄청난 세대 교체가 일어난 것 아닌가. 코폴라가 서른두살에 대부를 찍었는데, 이건 신의 은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약관 32세의 감독이 세상 다 산 듯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코폴라는 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 뒤로 더 나은 영화를 만들지 못했고. 스필버그는 심지어 20대에 <죠스>를 찍었다. 영화들이 펑펑 터지니까 경영자들도 잠깐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이게 <디어 헌터>까지 이어지고, <천국의 문>까지 간 거다. 뭐 웨스턴? 존슨 주의 전쟁? 마지막에 장렬한 전투씬이 있겠네. 투자한다. 뭐 이렇게 된 건데(웃음) 끝내는 실패한 거다. 공교롭게도 바톤을 터치한 사람들이 스필버그와 루카스이고.
어쨌든 치미노는 끝내 재기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필생의 프로젝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이나 <죄와 벌>을 영화화하는 거였다고 하는데 누가 투자하겠는가 (웃음) 또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진을 이미 너무 빼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어 오브 드래곤>도 흥미롭고 엄청 격렬한 피로가 있다. 미키 루크하고 존 론인가가 사무실에서 말싸움하는 샷 보면 진짜 미국영화 같지 않게 잘 찍었다. 지금이야 홍콩영화가 한 때 무조건 360도 돌리고 해서 그저 그렇지만, 당시에는 진짜 놀라운 스타일이었다. 그 뒤로 잘 안돼서 유감이지만, 네 편까지는 상당히 흥미롭다. <천국의 문>도 시대적 상황과 잘 만났으면 성공했을 지도 모를 영화다. 저는 TV에서 많이 축약된 버전으로 처음 봤는데 굉장히 근사했고 좋아하는 영화다. 오늘 긴 영화 보시느라 여러분이 수고하셨다. (웃음) 이 여름바캉스 동안 계속 즐거운 영화 감상하시라.

정리: 백희원(관객에디터) 사진: 조유성(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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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 7월 28일~8월 2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

올해로 6회를 맞는 ‘시네바캉스 서울’이 7월28일부터 8월28일까지 한달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데자뷰’란 컨셉으로 기획된 이번 영화제는 ‘클리셰’란 단어를 존재하게 한, 영화사의 위대한 선배감독들의 30여 작품을 소개한다. 이 지면에서 소개하는 작품 이외에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 <싸이코> <새>, 오슨 웰스의 <위대한 앰버슨가>와 자크 투르뇌르의 <캣 피플>, 브라이언 드 팔마의 <드레스드 투 킬>과 마이클 만의 <히트> 등이 상영된다. 자세한 상영시간표는 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를 참조하시길.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두 얼굴
<마이클 치미노 특별전>
마이클 치미노의 장편영화 7편 중 무려 4편이 ‘특별전’ 형식으로 초대된다. 데뷔작인 <대도적>(1974)을 비롯해 출세작이었던 <디어 헌터>(1978), 이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를 문 닫게 만든 저주받은 걸작 <천국의 문>(1980), 그리고 작품성에 비해 연달아 상업적 실패를 안기며 그를 절망에 빠지게 했던 <이어 오브 드래곤>(1985)이 그 목록이다. 이 작품들은 전혀 다른 스토리의 흐름을 보이지만 분명 관통하는 정서의 코드는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 감성을 부각하는 음악 사용, 약간의 연극적 성향과 그를 상쇄시킬 만큼 조화로운 역사적 배경이 그러하다.

치미노가 활동을 하던 당시 미국은 ‘뉴아메리칸 시네마 운동’이 정점에 달했다. 뉴아메리칸 시네마는 우선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는데, 그와 비견되어 미국영화 특유의 고전적 내러티브를 극대화한 사회비판물 역시 쏟아지게 됐다. 치미노의 경우가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존 포드 같은 클래식한 내러티브에서 얻는 광대한 시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고, 샘 페킨파 같은 혁신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영광과 굴욕을 동시에 맞볼 수 있는 이번 특별전 구성은 흥미롭다. 치미노가 활짝 연 천국으로의 문을 명쾌하게 정리할 기회다.

시나리오작가로 일하던 때, 치미노는 <더티 해리2>(1973)의 작업을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만났다.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도적>을 통해 치미노는 경쾌한 리듬으로 버디무비를 풀며 ‘천재 감독’이라 명명된다. 두 번째 연출작인 <디어 헌터>는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으로 그는 스튜디오의 전폭적 지지를 얻는데, 이는 뒤에 양날의 칼이 된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세 친구의 운명을 다룬 이 영화는 전쟁의 이전과 이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스토리의 마지막에 견고한 감동을 전하는데, 작품의 주제 의식 또한 흠잡을 데 없다. 이후 <천국의 문>이 끔찍할 정도로 실패하며 미국에서의 치미노는 완전히 몰락하지만 오늘날 컬트로 불릴 정도로 매혹적인 이 작품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아야 묘미가 살 것이다. 백인전쟁의 끔찍함을 광활하게 다룬 이 극에서 연출자의 미장센은 극대화된다. 이후 5년의 공백 뒤 <이어 오브 드래곤>을 통해 그는 재기한다. 물론 이 영화도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하지만 젊은 날의 미키 루크가 아름답게 새겨진 이 작품에는, 차이나타운의 끈적한 공기와 함께 액션신이 묵직하게 담긴다.

칸영화제 상영 버전 그대로
<카를로스> Carlos
올리비에 아사야스/ 330분/ 프랑스, 독일/ 2010년

무려 5시간30분이다. 칸영화제에서 <카를로스>(2010)가 얻은 유명세는 무엇보다 그 긴 상영시간에 있을 거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는 여느 전기영화보다 훌륭하다. 처음 이 작품은 카날플러스의 TV판 ‘3부작 미니시리즈 영화’로 기획되었다. 당시 전체의 길이는 550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버전은 칸영화제 당시의 것과 동일한 330분이다. 혹시 나중에 국내 개봉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미국과 독일에서처럼 반으로 편집될 확률이 높아 이 영화의 진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길 권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자칼’이란 호칭으로 유명한, 전설적 테러리스트 카를로스(암호명)의 일대기를 침착하게 영화에 담아냈다. 냉전기의 상징과도 같은 그를 묘사하며 아사야스는 조급함 대신 관조를, 그리고 ‘차라리’ 명백해지지 않을 것을 선택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세 파트로 묘사되는 카를로스의 캐릭터는 상당히 광적이지만 또한 매우 복합적이라서 결국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닌다. 범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비현실적 상황을 그는 록스타처럼 당당하게 헤쳐나가고, 반면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오히려 몽환적 자태로 나르시시스트적 기질을 드러낸다. 주인공을 맡은 에드거 라미네즈는 이 역을 위해 무려 15kg를 살찌웠다. 사진과 비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카를로스가 된 그를 래리 로흐터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약간의 악마성과 몽상가적 기질, 그리고 이상주의적 성향과 더불어 암살범으로서의 적의가 묻어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섞어놓은 모순 덩어리의 캐릭터.” 물론 캐릭터도 뛰어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감독의 미장센일 것이다. ‘1975년 비엔나 석유수출기구(OPEC)에서의 인질극’ 시퀀스에서 아사야스의 솜씨는 보기 좋게 드러난다.

거장이 본 유럽의 현재
<필름 소셜리즘> Film Socialsm
장 뤽 고다르/ 102분/ 프랑스/ 2010년


장 뤽 고다르의 최신작, 이 짧은 문구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히 설명된다. 하지만 여타 영화제를 통해 관객이 전한 것처럼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필름 소셜리즘>은 한마디로 매우 현대적인 작품이다. 총 세 갈래의 흐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 영화는, 각각 ‘이것과 같은 것들’,‘신이시여 어디로 가나이까?-우리의 유럽’,‘우리의 휴머니티’란 소제목을 달고 있다.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촬영되었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나열돼 있다.

첫 번째 부분, 이 파트에서 카메라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거대한 여객선 안에 있다. 이 부분의 에피소드는 고다르가 지중해를 여행하며 생각한 유럽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담는다. 바캉스를 즐기려는 승객이 각자의 언어로 다양한 화젯거리를 내뱉는데, 이들의 말은 때로는 화면과 매치되고 때로는 분절된다. 굳이 내러티브로 이를 연결할 필요는 없다.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2002)처럼 이 영화는 천천히 주제에 접근한다. 이윽고 밤이 되자 두 번째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이는 첫 번째와 다르게 실험적 극영화에 가깝다. 한 소녀와 그녀의 남동생은 자신들의 부모를 마치 재판하듯 닦달하는데, 이들이 집중하는 유년기의 기억에는 ‘자유와 평등, 형제애’가 담긴다. 챕터의 제목처럼 이는 마치 유럽의 과거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화는 여섯개의 장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상자료를 펼쳐 보인다. ‘이집트, 팔레스타인, 오데사, 헬라스, 나폴리, 바르셀로나’가 그 배경인데, 그곳엔 각자만의 전설이 있다. 개중에는 진실된 이야기도 있지만 얼토당토않은 거짓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세 에피소드가 당도하는 곳에서 고다르는 2010년의 유럽, 세계의 모습을 말하고자 한다.

<브리가둔> Brigadoon
빈센트 미넬리/ 108분/ 미국/ 1954년


‘브리가둔’은,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환상 속 마을을 가리키는 단어다. 어느 날 두 미국인이 길을 잃는데, 그들이 고생 끝에 발견한 곳이 브리가둔이다. 놀랍게도 그곳은 18세기 중엽의 어느 지점에서 시간이 멈췄다. 게다가 그들이 도착한 날은 결혼식 준비로 분주한 상황인데, 이같은 동화적 배경에서 진 켈리가 연기한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며 영화는 더욱더 로맨틱해진다. 이 작품은 <2000 매니악>(1964)이라는 호러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이와 비견할 때 <브리가둔>의 독특함은 장르적 특성에서 배가되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같은 소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영화의 색은 달라진다. ‘결혼식과 환상의 마을’이라는 코드를 미넬리는 ‘뮤지컬과 판타지’에서 찾았고, 그 선택은 옳았다.

<피닉스> The Flight of the Phoenix
로버트 알드리치/ 142분/ 미국/ 1965년


1965년작인 이 영화의 오프닝은 TV시리즈 <로스트>의 시작점과 꽤 흡사하다. 드라마의 첫 번째 시즌이 방영되던 2004년, <피닉스>라는 동명의 영화로 이 작품은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그만큼 이 플롯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어느 날 비행기가 사막의 중심부에 불시착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황상태에 빠진다.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남는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맡은 ‘파일럿’은 이들의 정서적 리더가 되는데, 이후 독일인 ‘비행기 디자이너’가 등장하면서 극은 새로운 전개를 맞게 된다. 사람들이 부서지지 않은 비행기의 몸체를 이용해 ‘피닉스’라는 이름의 경비행기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고, 그들은 더욱 곤란해진다. 당시 유명한 스턴트맨이었던 폴 만츠가 피닉스호의 항공장면을 찍다 사망하는데, 이 사건으로 영화는 더 유명해졌다. 2차대전 당시 제임스 스튜어트가 ‘봄바디어’사의 항공기 조종사로 있었던 것과도 그의 배역이 특이하게 맞물린다.

<뮤리엘> Muriel ou Le temps d’un retour
알랭 레네/ 115분/ 프랑스, 이탈리아/ 1963년


때는 1962년이다. 불로뉴쉬르메르에서 고가구상을 운영하는 엘렌은 남편과 사별한 뒤, 알제리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온 아들 베르나르와 함께 산다. 젊은 시절 그녀의 연인이었던 알퐁스가 알제리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프랑스로 귀환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한 것이 배경이다. 이렇게 알퐁스는 조카딸이라며 ‘프랑소와즈’란 젊은 아가씨를 대동하고 나타나는데, 그녀는 연기자 지망생이다. 4명의 캐릭터가 모이자 영화는 본궤도에 오른다. <뮤리엘, 혹은 귀환의 시간>(1963)이라는 원제를 지닌 이 작품에서 알랭 레네는 특유의 시간에의 탐구를 주제로 다룬다. ‘뮤리엘’은 베르나르의 기억을 잠식하는, 고문과 전쟁으로 숨진 알제리 소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직접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와 인물간 의사소통 불능의 상징으로 승화되어 영화에 기록된다. 프랑스 개봉 당시, 난해한 주제와 스토리의 탓으로 개봉된 지 15일 만에 극장에서 내린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다.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프랭클린 J. 샤프너/ 112분/ 미국/ 1968년


<혹성탈출>(1968)은 <콰이강의 다리>(1957)의 원작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디스토피아 소설가 피에르 바울러의 SF소설 <원숭이들의 행성>(1963)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할리우드 시리즈는 올해 8월, 그 일곱 번째 작품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68년작 오리지널 카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스토리의 시작은 2673년 3월이다. 주인공 테일러를 실은 우주선이 18개월간의 항해를 마치고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는데, 광속 여행 탓에 실제로 흐른 시간은 2천년이나 지났다. 그곳에서 인간은 원숭이에게 사육되는 동물이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퇴화된 존재다. 전쟁을 포함한, 인류의 이기적 집단의식 배척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글: 이지현(영화평론가) 제공: 씨네21

*이 글은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21 814호(2011. 7. 27)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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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객 조셉 페리를 만나다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비에 앉아있으면 영화를 보러 혼자 극장을 찾는 외국인 관객들이 종종 눈에 보인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시네마테크의 ‘외국인 친구들’은 자국의 영화, 혹은 한국영화를 영어자막으로 보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다. 연중 가장 대표적인 행사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더욱 그렇다. 그들 중 유독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자주 눈에 띄는 외국인 관객 조셉 페리(Joseph Ferry)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강민영(웹데일리팀):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조셉 페리(Joseph Ferry, 관객): 현재 동두천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말은 거의 못 한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영화이론을 전공 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와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서 필름테크닉을 공부했고 매거진에디터, 프리랜서 라이터, 영화의 역사에 관한 리뷰 등을 작업했다. 장 콕토와 살바도르 달리의 영상들 그리고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와 <아스트로 보이>에 관한 리뷰가 가장 최근의 작업이다.

민영: 언제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 다니기 시작한 건가.
조셉: 처음 서울아트시네마에 온 것은 2008년 5월 즈음이었다. 여기 얽힌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오기 전 미국에서 정보를 찾다가 어떤 웹사이트를 발견했는데 그곳에 한국 영화관에 대한 가이드가 있었다. 시네큐브나 서울아트시네마 등 예술영화전용관에 관한 가이드였다. 이후 서울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인사동에 가기 위해 종로3가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탑골공원을 걸으면서 우연히 큰 영화포스터를 봤는데, 나는 동료에게 ‘저건 뭐지?’라고 물었더니 그는 아마도 그곳은 영화관일거라 답했다. 그 후 생각했다. ‘아, 이게 서울의 시네마테크로군.’ 집으로 돌아와 다시 웹사이트를 뒤져 이곳이 바로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민영: 그때 처음 봤던 영화를 혹시 기억하고 있나.
조셉: 시네바캉스의 직전의 특별전이었는데 지금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시네바캉스에서 보았던 영화는 확실히 기억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였다. 이건 미국에서 도저히 큰 스크린으로는 볼 수 없었던 작품이다. 많은 영화를 잉글리시 서브 타이틀이 있는 상태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았다. DVD로 볼 수 없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민영: 언제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나.
조셉: 아마 처음 영화를 봤던 건 3살 때 ‘곰돌이 푸우’였겠지. (웃음) 매주 영화를 하나씩 보며 자랐다. 부모님이 보여주신 건 아니었다. 그분들과 함께 영화를 본 건 내 생애에서 딱 3번 뿐 이었고 주로 혼자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같이 봤다. 말하자면 스스로 영화를 찾아본 거다.

민영: 주로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나.
조셉: 모든 영화들을 좋아하지만 특히 필름느와르, 고전호러무비를 좋아한다. <어셔가의 몰락>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무성영화도 좋아한다. 1960~1970년대 코미디 필름도 좋아하는 편이다.

민영: 무성영화와 코미디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버스터 키튼도 좋아하실 것 같다.
조셉: 키튼 엄청 좋아한다. 미국에서 키튼의 영화를 많이 봤다. DVD나 비디오보다 큰 스크린을 좋아하기 때문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좋다.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 5~6개의 레퍼토리시네마(소극장)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문을 닫고 하나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미국에는 주로 큰 도시에만 레퍼토리시네마가 있다. 그래서 서울에 시네마테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 영화는 큰 스크린으로 볼 때에만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이곳에서 영화를 볼 때 영화적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흥미롭다. 코미디나 호러영화들은 집에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지 않나.

 

민영: 한국에 있으면서 한국영화들은 많이 보았는지 또 어떤 한국영화들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조셉: 김기영 감독을 좋아한다. <하녀>와 <화녀>를 10년 전에 시카고의 레퍼토리시네마에서 보았다. 그때 ‘한국영화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김기영의 영화들을 만났다. 그리고 2008년에 한국으로 온 후 <하녀>의 복원버전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 밖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괴물>, 박찬욱 감독의 <박쥐>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 세 편은 <박쥐>와 <마더>, 그리고 <하녀>다.

민영: 미국에 잠깐 있을 때 근처에 레퍼토리시네마가 있어서 거기서 하루 온종일 영화만 보며 지냈다. 그렇게 두 달 정도를 보낸 것 같은데 덕분에 박물관이나 건축물 등 관광요소들은 다 지나쳐버렸던 기억이 난다.

조셉: 나도 그랬다. 동부 쪽의 영화관을 간적은 없지만 많은 영화들을 레퍼토리시네마에서 보며 시간을 보냈다. 시카고에 갔을 때와 거의 모든 시간을 레퍼토리시네마에서 보내며 지냈는데, 당시 그곳에서는 1950~1960년대의 TV쇼를 필름으로 상영하고 있었다. 영화의 박물관에 온 것 같아 놀라웠고 흥미로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가는 영화제다. (웃음)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 나는 꿈이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천음악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부산영화제 등등 한국에는 굉장히 많은 영화제가 있지 않나. 물론 나는 서울아트시네마를 제일 좋아하지만 말이다.

 

민영: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혹 아까 말씀하셨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가장 좋았던 작품인가.

조셉: 시네바캉스에서 상영했던 러닝타임 3시간 정도 되는 프랑스영화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 정확히 영화의 제목을 모르겠다.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도 너무 좋았다. 오리지널 버전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볼 때 미국과 한국의 관객들이 실제적으로 굉장히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로 인해 하나가 되는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우디 앨런의 <맨하튼>도 좋았다. <맨하튼>은 가장 좋아하는 10편의 영화들 중 하나다. 이번 영화제에서 <뱀파이어>를 보고 싶지만 영어자막이 없기 때문에 볼 수가 없어 아쉽다. 며칠 전 내 생일에는 <항해자>와 <사냥꾼의 밤>을 봤다. <동경이야기>도 보고 싶었지만 매진이더라. 시네마테크에서 이런 영화들을 보는 게 일생에 단 한번뿐이라 생각하면 모든 영화들이 다 보고 싶어진다.

 

민영: 외국인 무비고어들의 커뮤니티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조셉: 나는 트위터 대신 페이스북을 가지고 있는데 그곳에 ‘나 오늘 무슨 영화 보러간다, 조인할 사람?’이라고 글을 남겨놓으면 페이스북 친구들이 반응을 하긴 한다. 어떤 커뮤니티가 있는 건 아니고 이런 식으로 텍스트를 주고 받다보면 자연스레 모일 때가 있다.

 

민영: 혹시 한국에서 영화를 보면서 영화진흥위원회(KOFIC)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조셉: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볼 때 간간히 나오는 걸 보기도 하고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잘은 모른다. 한국의 상영시스템에는 전무하다. 궁금하다.

 

민영: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진흥위원회라는 곳에 위탁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이건 쉽게 말하면 후원과 같은 의미다. 극장 운영비의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는데 지금 그들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소유권을 자체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셉: 신기하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그런 상황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작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얼핏 듣긴 했었고 시네마테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여 엄청 걱정을 했었는데 지금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건가 보다. 시네마테크가 없어지면 내가 갈 곳이 없는데 말이지. 심각한 건가.

 

민영: 사실 지금 영화진흥위원회의 주장 때문에 극장은 위기에 놓여있다. 극장 로비에서 관객모금운동을 벌이는 것도 극장을 지키기 위해서 관객들이 움직인 것이다.

조셉: 나는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안다. 시네마테크가 어떤 형태로든 365일 언제나 오픈되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큰 스크린으로 고전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보존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뿐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경험을 나누는 게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과 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민영: 마지막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 하고픈 말이 있다면.

조셉: 나는 이 극장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때문에 이곳을 지키려는 관객들이나 모금운동을 하는 친구들, 사무실 직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시네마테크는 다른 큰 영화제들 사이에서 고전영화들을 매일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내가 한국영화나 고전영화들을 영어자막이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 나에겐 시네마테크는 너무 완벽한 공부방이자 많은 한국영화들에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강민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