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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Feature

[특집] 미국사회의 내밀한 관찰 -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에 대하여

특집

미국사회의 내밀한 관찰

-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에 대하여

 

윤종빈 감독이 추천한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은 <카지노>와 <갱스 오브 뉴욕>, 그리고 <디파티드>로 이어지는 일련의 갱스터 연작의 시작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마피아 조직의 중심에 진입하지 못하는 주변부적인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장르적 틀 안에 머물지 않고, 미국 사회에 대한 가장 흥미롭고 빼어난 관찰을 이뤄낸 그의 갱스터 연작을 살펴본다.

 

 

 

<좋은 친구들>(1990)의 헨리(레이 리요타)는 내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난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갱스터가 되고 싶었다.” 소년에게 갱스터란 멋진 구두와 양복을 걸치고, 남들처럼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모두가 자신을 알아보는 그런 존재이며,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다. 갱스터의 세계, 그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헨리는 법정에서 동료들을 배신한 뒤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갇혀 갱스터의 세계에서 이탈하게 되는 순간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씁쓸하게 읊조리고 만다.

 

사실 헨리와 그의 ‘좋은 친구들’은 모두 갱스터 세계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을 뿐인데, 비非시칠리안인들인 그들은 정통 시칠리아 출신의 마피아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주변부적인 특징은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들이 갖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카지노>(1995)의 에이스(로버트 드 니로)와 니키(조 페시) 역시 라스베가스라는 사막의 도시에 이주한 외부인들로 라스베가스라는 공간에서 그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군림하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에서 에이스가 카지노에 대해 묘사하던 중에 “여기는 나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며 화면에서도, 내레이션에서도 사라져버리는 순간이 존재한다. 이처럼 ‘외부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으로 인해 진입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디파티드>(2006)에서 경찰이 되고 싶었던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어쩔 수 없이 갱 행세를 해야 했던 것 역시 그의 ‘출신’ 때문이다. 내부로 진입한 외부인의 위치에 선 인물들의 양상은 <갱스 오브 뉴욕>(2002)에서 뉴욕 혹은 미국의 근간을 이루는 이주민들의 역사로 확장되기도 한다.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에서 인물들은 강렬하게 무언가 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갱스터가 되고 싶고, 카지노 왕국의 제왕이 되고 싶고, 경찰이 되고 싶다. 그러나 ‘혈통’이라는 인물들의 운명적 조건은 그들이 동경하는 세계의 내밀한 곳까지 가닿는 것을 막아선다. 이런 상황이 인물을 두 유형으로 가른다. “난 환경의 산물 따윈 되고 싶지 않아. 나 스스로 환경을 만들면서 살고 싶은 거야”라는 <디파티드>의 코스텔로(잭 니콜슨)의 말처럼, 한편에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가려는 시도가 있다. 특히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에서 조 페시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러한데, 물론 이러한 시도는 곧장 처참한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변부만을 맴돌며 그럭저럭 자신의 삶을 유지해가는 인물들도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동료들을 배신하거나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상반되는 듯하지만 결국 이 둘은 동일한 곳에서 갈라져 나온 두 얼굴인 셈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비열한 거리>(1973)의 찰리와 자니, <좋은 친구들>의 헨리와 토미, <카지노>의 에이스와 니키, <디파티드>의 빌리와 콜린과 같은 짝패가 이루는 분열증적인 초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 가운데 폭력이 존재하게 된다. 이때의 폭력은 고전적 갱스터 영화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던 폭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스콜세지의 영화에서 폭력의 묘사는 그런 점에서 ‘극’적이라기보다 ‘다큐멘터리’적인 것에 가깝다. 이로서 갱단이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카지노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 더 나아가 뉴욕 혹은 미국의 역사로 확장되는 스콜세지의 갱스터 연작은 단지 장르적 틀 안에 머물지 않고, 미국 사회에 대한 가장 흥미롭고 빼어난 관찰을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다.

 

장지혜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