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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캔자스 시티 재즈의 황홀함을 체험할 수 있는 영화다"

[시네토크] 황덕호 재즈평론가와 손관호 파고뮤직 대표의 선택작 로버트 알트먼의 ‘캔자스 시티’

지난 29일 토요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 특별한 친구들이 방문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친구가 된 황덕호 재즈평론가와 손관호 파고뮤직 대표다. 그들은 재즈 음악이 가득 담긴 로버트 알트먼의 <캔자스 시티>를 추천했다. 상영 후에는 그들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고, 1930년대 중반 미국의 캔자스 시티 재즈의 역사와 함께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영화 이야기에 곁들여 들려주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예전부터 재즈와 관련된 상영을 시도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다가, 올해 특별히 두 분을 친구로 모시면서 진행하게 됐다. 이 영화를 어떤 점에서 좋아하시는지?
손관호(파고뮤직 대표): 30년대 재즈의 정수들이 90년대에 아주 촉망받던 젊은 재즈 연주가들에 의해 재연된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황덕호(재즈평론가): 사실 사운드트랙을 먼저 들었다. 음반이 매우 훌륭했고, 해외에서도 평이 무척 좋았다. 당장 음반사에 연락해서 국내 발매를 하자고 이야길 했더니 안 팔릴 것 같다고 못 내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어느 영화사에서 그 영화 수입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음반도 냈다. 오늘 다시 보니 너무 황홀했고 개인적으로 알트먼 영화 가운데에서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관호: <캔자스 시티> 영화의 배경은 30년대 중반 정도인데, 그 때는 경제 대공황이 끝나가는 시기인 듯한데.
황덕호: 29년에 대공황이 터졌고, 그 이후에 민주당의 루즈벨트가 뉴딜정책을 통해 정부 주도로 경기를 살리려는 노력을 했었다.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캔자스 시티는 교통망들이 연결되는 하나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거기에 여러 가지 사업들이 몰리고 위락 시설이 많이 생기고, 중서부 지역의 재즈가 한 곳으로 집결되는 중심이 된다. 실제로 기록을 보면 재즈 클럽이 24시간 영업을 했다고 한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와도 늘 연주를 했던 것이다. 손님들이 항상 들어오고 성황을 이뤘던 시기였다. 영화중에 탐 펜더게스트라는 사람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캔자스시티 뒷골목의 경제 실권을 쥐고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대던 사람이었다. 문헌에 보면 그 사람은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사이에 모든 돈을 다 벌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그가 그 시간에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펜더게스트가 모든 위락시설을 장악하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업주들이 등장해서 30년대 내내 잘 해먹었고, 민주당도 그로 인해 정치적 이득을 얻는다. 알트먼은 신민주당 쪽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악행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거리를 두고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김성욱: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시간적 맥락도 굉장히 큰 것 같다. 영화 전체는 24시간 정도진행되고, 재즈공연이 계속해서 나온다. 전체적인 음악 편성에 있어 대여섯 번 정도의 구분점이 있고, 이 연주의 흐름과 영화의 흐름과 리듬이 잘 맞는 것 같다. 또한 캔자스 시티는 알트먼의 고향이기도 한데, 소년으로 나오는 찰리 파커의 시선이랑 자신을 어느 정도 동일시 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재즈는 뉴욕이나 시카고가 유명한데, 캔자스 시티 재즈는 다른 지역의 음악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황덕호: 사실 캔자스 시티 재즈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흔치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영화 속 소년이 찰리파커라는 사실을 묘사해주는 부분이 재미있다. 찰리 파커의 어머니가 실제로 그 웨스트 유니언 역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셨고, 찰리 파커는 재즈 클럽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찰리 파커가 55년에 약물 중독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서, 레스터 영이 59년에 예순 정도의 나이로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 시점에, 프랭크 드릭스라는 유명한 재즈역사연구가가 캔자스 시티 재즈에 대해 자세히 연구한 아티클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캔자스 시티라는 지역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 카운트 베이시라는 사람이 잠깐 나온다. 원래 뉴저지 사람인데 캔자스 시티에 왔다가 눌러 앉아, 이후에 빅밴드를 형성하면서 캔자스 시티 재즈의 왕이 된 사람이다. 그의 밴드는 곧 미국을 대표하는 빅밴드 재즈오케스트라가 된다. 거기에서 찰리 파커가 등장하고, 레스터 영, 벅 클레이튼 등 유명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뉴욕이나 동부에 있던 사람들이 얕잡아 보고 클럽에 와서 배틀을 했다가 다 나가떨어지고 가는 곳이 캔자스 시티였다. 재즈 배틀 사건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콜맨 워킨스와 레스터 영 간의 재즈 배틀은 밤새도록 진행됐다고 알려져 있다.
손관호: 알트먼 영화에는 일반적인 영화문법이 적용이 안 된다. 재즈계에도 화성이나 하모니의 기본적인 틀들을 다 무시하고 나타난 워냇 콜맨이라는 색소폰 주자가 있는데, 알트먼 영화의 전개방식은 마치 이 사람의 연주 같다. <캔자스 시티>도 처음에 갑자기 납치가 벌어지고 그 이후에 이전의 시간대가 나오는데, 특별한 논리적 맥락 없이 수많은 인물들이 파편화되고, 사건들이 가지를 치는 것처럼 퍼져나가다가 그것이 연결된다. 여기서 나오는 힘이 있다. 이런 점에서 알트먼 영화가 가장 재즈적인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김성욱:
알트먼 영화를 그랜드 호텔 영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야기적으로는 일관적이지 않지만 구조적으로는 일관된 면도 있는 것 같다. 아까 말씀하신 두 명의 재즈 배틀이 극적 맥락과도 접점이 잇는 것 같다. 블론디와 캐롤린이 티격태격 하며 벌이는 사건의 전개와 재즈 배들 장면을 의도적으로 교차하여 보여준 것 같다. 영화에서도 초반 15분 정도는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납치극이 벌어지면서 재즈 배틀이 벌어지고, 마지막에 인물들의 죽음과 함께 'Solitude'라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부분의 전개가 캔자스 시티 재즈의 역사가 가진 단명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캔자스 시티 재즈는 결과적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갔나?
황덕호: 50년대 재조명되기 이전까지 잊혀졌다는 점에서 분명 단명으로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년대 미국이 전반적으로 갖고 있던 거품경제가 30년대 캔자스 시티 한 곳에서 정치적 음모와 맞아 떨어지며 확 불탔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상황과 재즈의 역사가 맞물린 것이다. 말씀하신대로 캔자스 시티의 역사와 이 납치사건의 결말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트먼은 왜 이렇게 다양한 인물이 나와서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다.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시공간적으로 한 도시나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국인들의 삶의 풍속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극적인 네러티브보다는 그런 것들을 영화적으로 잘 얽어내는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김성욱: 알트먼이 인터뷰에서 영화에는 사람 수만큼의 관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을 등장시키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예술영화처럼 보이면서도 대중문화에 대한 관점이 많이 드러난다. 재즈의 역사와 향락산업, 부정부패와 같은 것들을 서로 연관 지을 수 있는 뿌리 깊은 속성이 있었던 건가?
황덕호: 뉴욕의 클럽 소유주들 중에는 마피아가 많았다. 재즈는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예술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예술이라는 것이 아주 순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든다.
손관호: 생각해보니 마지막 장면에서도 재즈연주 뒤편에 셀덤 신이 돈을 세고 있는 등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관객1: OST가 두 장으로 나왔는데, 두 번째 디스크는 무엇인가?
황덕호: 두 번째 디스크는 B사이드 트랙들을 모은 것이다. 또한 이 영화의 연주 씬만 따로 모은 <로버트 알트먼 재즈 '34>라는 이름의 영화가 있다.
손관호: 캔자스 시티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온 걸로 아는데.
황덕호: 캔자스 시티 재즈를 상징하는 이름인 '블루 데블스'라는 밴드가 있다. 브루스 릭커스라는 감독이 70년대에 블루 데블스 멤버를 포함한 전설적 인물들을 모아 <The Last of the Blue Devils>(1979)라는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인터뷰를 하고 연주도 하고, 과거에 활동했던 자료화면들이 나온다. 가장 늦은 시간에 옷을 잘 차려입은 카운트 베이시가 나타나서 같이 연주한다. 밤을 꼬박 샌 연주 후, 아침에 클럽에서 나오는데 밖에 눈이 내려서 하얗게 쌓여 있다. 그 할아버지들이 서로 악수하며 뿔뿔이 흩어지면서 영화가 끝난다. 참 감동적이 다큐멘터리였는데, 기회가 되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관객2: 재즈음악이 배경이 되는 영화가 많은데 왜 특별히 알트먼을 선택하셨는지?
황덕호: 음악이 단지 사운드 트랙으로 사용된 것만이 아니라 뮤지션들이 영화의 극적인물로 등장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연주자들이 평소에 각자 모여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음악 스타일도 다 제각각이다. 알트먼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주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고 싶었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 재즈적인 입장에서도 기록적 가치가 있을 것이라 본다.
손관호: 알트먼 영화에 사람들이 놀라는 것이 화려한 캐스팅인데, 이 영화에도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 받았던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등장한다. 사실 이 자리에 재즈 뮤지션을 불러서 짧은 공연을 할 까도 기획을 했는데, 사정상 못하게 됐다.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여름 정도에 음악 영화제를 해보자고 했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영화를 상영하고 인디밴드에 모여서 연주도 하면 좋겠다. (웃음)
김성욱: 이번에는 여러 문제로 못했지만, 올해 여름에는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노력해 보겠다. 즐거운 시간들을 많이 마련하자는 모토도 있고 하니. 두 분을 객원프로그래머로 모셔서 올해는 음악 영화제를 꼭 실현하도록 하겠다.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