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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존 카사베츠 회고전

[리뷰] 존 카사베츠의 '별난 인연'

현실에 발붙인 사랑이야기

 

<별난 인연>이라는 국내 제목이 이 영화의 내용을 적절하게 압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주인공 '미니와 모스코비츠 Minnie and Moskowitz'는 진짜 별나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모스코비츠(세이무어 카셀) 쪽은 유아적이다 못해 괴팍하게 비칠 정도다. 주차관리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퇴근 후 혼자 영화를 보고 술집에 들어가 여자를 희롱하는 게 일상의 전부인 노총각이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미니(지나 롤랜즈)는 모스코비츠처럼 개차반은 아니지만 남자 복만큼은 지지리도 없는 여자다. 사랑하는 유부남은 아무렇지 않게 손찌검을 하고 어쩌다 소개받은 남자는 아뿔싸(!) 이런 비호감이 없다. 이때 미니 앞에 나타난 모스코비츠, 이들은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헤드윅>으로 유명한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숏버스>(2006)를 만들 당시 "영화의 톤이나 스타일 면에서 존 카사베츠의 작품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며 특별히 <별난 인연>에 대해서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별난 인연>은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형태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와 관련한 단서는 극 초반 <카사블랑카>(1942)을 관람하고 나온 미니가 동료와 나누는 대화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현실에선 보기(험프리 보가트 애칭)같은 남자를 만날 수 없다고. 하물며 영화에서처럼 로맨틱한 사랑은 언감생심이지." 그러니까 <별난 인연>은 하늘에 붕 뜬 조각구름 같은 로맨스가 아니라 질퍽한 현실에서 벌이는 진흙탕 싸움 같은 사랑영화다.

 

미니는 선녀이지만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이 눈에 거슬리는 모스코비츠는 선남과 거리가 멀고 멋들어진 레스토랑이 아닌 지저분한 거리의 포장마차가 이들 데이트의 배경이 되며 스포츠카에서의 밀담과 같은 낭만 따위는 저 멀리 나빌레라 엔진 소리 요란한 트럭이 '별난' 이들의 인연을 강조한다. 이렇듯 기존의 장르와 미장센 자체의 격(?)이 다르다보니 진행되는 이야기의 양상도 다르다. 외로움에 사무쳤지만 소통에는 미숙해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인 이들의 삶에는 달콤한 환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간신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을 약속하지만, 그럼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해도 됐을 결말을 카사베츠는 굳이 더 들어가 이들의 사랑에 찬물을 끼얹는 에피소드를 마련, 일말의 환상마저도 깨버리는 것이다.

 

존 카사베츠 영화가 갖는 편집의 독특함, 즉 앞뒤 재지 않고 불친절하게 장면과 장면을 뚝 끊어 연결하는 방식은 즉물적인 캐릭터들의 성격과 태도에서 기인한다. 홍상수 영화의 즉흥적인 서술 방식이 극 중 인물들이 그 때 그 때 벌이는 술자리에서의 노닥거림의 반영이듯 존 카사베츠 역시도 미니와 모스코비치의 즉각적인 감정 표현을 편집에 그대로 반영한다. 이는 카사베츠가 사건보다 인물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매번 루저에 가까운 인물이 등장하는 그의 영화는 그래서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인디펜던트 영화가 갖는 특유의 생생함이 카사베츠의 작품에 독특한 매력을 부여하는데 그처럼 <별난 인연>의 미니와 모스코비츠도 결국엔 관객들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자리 잡는다. (허남웅 /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