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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

[오픈토크] 정치적 혼란을 지켜보는 숨은 고양이의 시선

<숨은 고양이 찾기> 상영 후 변영주, 이해영, 홍세화와 함께한 토크 지상중계

 

<태양 없이>, <제5단계>, <숨은 고양이 찾기>가 연달아 상영되던 이른바 ‘크리스 마르케 데이’였던 지난 12월 1일,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사로 오픈토크가 열렸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이 진행한 이날 오픈토크의 특별한 손님으로는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가 참석하였다. 영화와 정치에 대해 날카로운 이야기가 오갔던 그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해영 감독과 제가 계속 오픈토크를 하고 있다. 이번 달은 무슨 주제로 해야 되나, 뭔가 대선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이런 얘기를 하던 차에 꼭 모시고 싶었던 분, 홍세화 선생님을 성공리에 모시게 되었다. 먼저 영화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객석 쪽 질문을 받아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다. 제 기억으론 크리스 마르케의 몇몇 작품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됐고, 오늘도 1시부터 계속 상영이 있었다. 오늘 함께 본 <숨은 고양이 찾기>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홍세화(진보신당 전 대표): 이 영화를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영화가 참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원제가 ‘장대에 올라선 고양이’ 이런 뜻인데 그 의미가 뭘까, 이런 생각을 쭉 하면서 봤다. 그 중에서도 저는 파리 광경이 나오니까 그 부분이 더 정감이 갔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 있는데, ‘파리는 항상 이를 드러내고 있다, 웃지 않으면 화를 낸다’고 했다. 그러니까 웃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으르렁거린다는 것이다. 데모현장의 표현도 그런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 것 같으면서 알쏭달쏭하다.

변영주: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그 다음 단계의 시네마 베리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시네마 베리테는 이미지와 이미지가 충돌하고 사운드도 다른 사운드로 구현이 된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가서 개입을 한다. 그로 인해서 갑자기 전혀 상관없는 공간이 주제와 연관이 된 것처럼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마르케는 마치 그 다음 단계처럼, 자기가 만들어내는 영화 안에서도 시퀀스와 시퀀스가 서로 긴장을 하고 서로 교류를 한다. 제가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뭉뚱그려서 얘기하는 걸 보면 저도 되게 어렵게 봤다는 거다(웃음).

이해영(영화감독): 말한 내용 중 핵심은 없었다(좌중 웃음).

변영주: 재미도 있지만 어렵다. 저는 김성욱 프로그래머한테 물어봤다. ‘저 고양이 실제 있는 그림이야? 없는 그림이야?’ 실제로 저 시기에 시위현장에서 자주 보이던 고양이 그림이라고 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말을 빌리자면, 몇 년 동안 이 시기 파리를 중심으로 한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혼란을 흡사 아주 오래 전부터 지켜봐왔던 누군가의 시선처럼 지켜보는 그런 이미지의 영화인 것 같다. <숨은 고양이 찾기>라고 하면서 보이는 프랑스의 현실. 이를테면 좌파들도 결국 시라크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위도 있고, 중간 중간 보이는 우파들의 시위도 있다. 일단 홍 선생님께서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당시의 프랑스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홍세화: 프랑스는 결선 투표제를 채택하여 대통령을 뽑을 때 총 두 번 투표를 한다. 2002년 봄 1차 투표 때 현직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가 20%로 1등을 하고 2등은 사회당 후보인 리오넬 조스팽이 되리라 믿었다. 그리고 극우주의자 장 마리 르팽은 3등을 하리라고 봤다. 그는 프랑스 실업자가 300만이면 이주민 노동자 300만 명을 쫓아내면 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극우 후보가 1차 투표에서 2위를 하게 되는 이변이 일어난 거다. 젊은이들이 당연히 조스팽이 되리라 생각해서 투표 안 하고 놀러갔다는 속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결선 투표에 가게 되니까 우파인 시라크와 극우파인 장 마리 르팽이 결선에 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결국 결선투표가 82대 18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이게 프랑스 당시의 상황이었다.

 

이해영: 영화에 나온 고양이 캐릭터 이름이 ‘또마’다. 또마를 그리는 화가는 퐁피두 광장에서 거대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화가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제가 이 화가를 만나 본 적이 있는데, 당시 <29년>이라는 영화를 준비 중이던 2008년이었다. 주인공이었던 류승범 씨와 카페에서 술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마침 그 카페 벽에다가 또마라는 분이 고양이를 그리고 있었다. 그때 그분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벽에다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MB정권 초기였고, 이런 민감한 소재의 영화를 과연 만들 수 있을지 불안감과 조바심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자면서 영화를 준비했던 때였다. 어쩌면 프리프로덕션하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그런데 결국 영화는 엎어졌다. 영화가 엎어지니까 갑자기 이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때 그 분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말하자면 한량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의 삶보다 내가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이 나의 삶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더 찾아보니까 홍대에도 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관련 상품도 많이 나와 있어서 제 차에 또마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몇 년이 흘러서 오늘, MB정권 말기에 <26년>이 저와 관계없이 개봉을 했다. 크리스 마르케, 또마, <26년>이 묘하게 겹치면서 환기가 된다. 두 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있다. 지금 정권 말기가 되면서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제가 알기론 어떤 정권 말기에도 이 정도로 영화가 이렇게 집중되어 나온 적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에 이 정권이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 극장에 걸려있는 정치적인 독립영화 혹은 상업영화중에서 혹시 보신 게 있는지 궁금하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 말대로 여타 어떤 정권 말기에도 이렇게 정치적인 영화가 상업영화 독립영화 가릴 것 없이 봇물처럼 나온 적이 없었다. 그중 굉장히 좋았던 영화도 있었다. 사실 독립영화는 언제나 정치적인 소재를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다. 이를테면 <두 개의 문>. <26년>이라든가 <남영동 1985>의 경우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막으려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고, 혹여 그랬을 때 상영이 되지 못할까 봐 개봉시기가 조절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이해영 감독이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미 투자가 얘기되고 캐스팅까지 다 된 영화가 갑자기 엎어진 건 초유의 일이었다.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디액트나 독립영화전용관 등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누군가에 의해 쫓겨나는 건 상상을 못 했었다.

홍세화: 저도 <두개의 문>이랑 <부러진 화살>을 봤다. <화차>는 아직 못 봤다(웃음). 사실 제가 영화를 잘 못 본다. 앞으론 자주 봐야겠다.

이해영: 필요에 의해서 나오는 영화들이고 다음 정권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앞당겨 개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 입장보다 관객의 소비패턴이, 영화를 보는 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의 전부라는 면죄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만 소비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가 수단의 기운에 편승해서 졸속 제작 되었다면 위험한 일일 것이다.

 

변영주: 다시 <숨은 고양이 찾기>로 돌아가서,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누가 몇 프로가 되건 1, 2등이 결선으로 간다는 것인지.

홍세화: 50%가 넘지 않으면 그렇다. 그러니까 1차 투표에선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사표에 대한 우려 없이 찍을 수 있다. 1차 투표는 내가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 것이고, 2차 투표는 내가 싫어하는 후보의 반대편을 찍는 것이다.

변영주: 그럼 우리는 2차 투표만 하고 있는 거다(웃음).

홍세화: 지금 우리 경우처럼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는 일은 프랑스에선 있을 수가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는 결선 투표제를 한다. 대선은 2주, 국회의원은 1주 만에 뽑는다. 투표일이 일요일인데 투표율도 높은 편이다.

변영주: 르팽이 처음 출현했을 때는 지역정당으로 시작을 했었다. 당시 프랑스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그런 정당이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이젠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도 많이 보수화되었고 우익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 숫자도 그만큼 늘어난 거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보면서 우경화되어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르팽처럼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공격적인 언설도 분명 있다. 분명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도 동시적으로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홍세화: 아무래도 보면서 견주게 된다. <르몽드>는 사설에서 극우파가 결선에 나오게 된 상황 자체가 “프랑스의 수치”라고 했었다. 거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동안 좌파, 지식인, 문화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배경도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은 노동의 분업체계 안에서도 위계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소위 중도좌파들은 조직된 노동이나 상층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노동이 위계화 되면서 하층들이 좌파들로부터 버림받는 상황이 됐다. 이때 이들에게 접근한 게 바로 극우파였던 거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북유럽에서도 극우세력이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받고 있는 게 그런 문제에 있다. 보통 20대 80의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상위 20이 80을 갖고 있고 하위 80이 나머지 20을 갖고 있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이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만 제대로 작동하면 된다. 왜냐면 80만 제대로 투표하면 되니까. 그런데 지난 4.11 총선에서도, 월 소득 100만원이 안 되는 층에서 투표한 사람들 중 새누리당 지지율이 71%였다. 그만큼 서민층 내지 극빈층이 오히려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이다. 비록 역사적 배경이나 층위는 다르지만 이렇게 견주어 볼 수는 있다.

 

 

관객1: 이 영화를 보면서 68혁명과 <몽상가들>이란 영화를 떠올렸는데, 시위에 참가하려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 친구가 ‘네가 화염병을 던지려고 달려 나가는 순간 넌 네가 적대시하는 사람과 동일해져’라고 말한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병을 들고 뛰어나가는 사람도 아닌, 어떻게 보면 어정쩡한 자리에 있다. 사람들이 제게 ‘너는 누구와 연대하고 있어?’라고 물어볼 때 ‘나는 모두와 연대하고 있다’고 답하는데 그들은 그걸 ‘아무와도 연대하고 있지 않다’는 말로 듣는 것 같다. 두 사람 이상이 같은 꿈을 꾸려면 그 방법이 무엇일지 질문 드리고 싶다.

홍세화: 우선 68혁명이 갖고 있는 사회적 변혁의 추진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것이 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려면 회사에 남편의 동의서를 제출했어야 했다. 그만큼 가부장적인 사회였는데 68혁명 이후에는 엄청난 격변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하게 활동들이 있을 텐데, 이것이 문화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핵심은 사회적 존재인 ‘나’가 그 안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건 자기 능력에 따라, 자기 적성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다르다. 그리고 화염병을 던지는 순간 저들과 똑같이 된다는 얘기는, 싸우는 과정 자체가 싸움을 통하여 우리가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를 닮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사실 한국 같은 사회에서 그걸 지킨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건 각자가 고민 속에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속에서 스스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관객2: 두 분 감독님께, 요즘 나오는 정치적인 영화, 정치적인 엔터테인먼트, 새누리당이나 MB를 희롱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저소득 계층들에게 정말 설득력을 가지고 손을 내밀 수 있을지, 그럴 수 있다면 그 영화들이 제안해야 할 바가 뭔지 궁금하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은 정치인으로서 느끼셨던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홍세화: 제가 지난 1년 동안 진보신당 대표 자리를 맡았다. 글 쓰는 서생으로서 정치를 보았을 때와 현실 진보정치는 역시 다른 것이었다. 현실정치를 겪으면서 알게 된 모든 것이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걸 알게 되어서 또한 좋은 일이다. 제 삶에 있어서 현실 진보정치에서의 1년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1년이었지만, 결국 유의미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고통이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의미 없는 고통이다.” 힘들었지만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해영: <26년>도 <남영동 1985>도 <MB의 추억>도 아직 못 봤지만 이런 생각은 든다. 실제 역사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희생자나 유족 분들이 아직 살아있는 사건을 다루는 영화라면, 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만이 목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분노를 같이 공유하자, 그것만으로 소비되면 굉장히 위험한 것 같다. 감정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는 영화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장 적절하게 이상적인 답안을 준 영화가 <두 개의 문>이라고 본다.

 

 

관객3: 두 분 감독님이 크리스 마르케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두 분께서는 마르케의 어떤 면모를 좋아하시는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께서 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허무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하셨다. 그런 얘기들은 한국사회에도 많이 나오는 얘기인 것 같다. 진짜로 젊은이들의 무관심이 현실 제도정치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는지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변영주: 개인적으로 크리스 마르케뿐만이 아니라 시네마 베리테 감독들을 좋아한다. 우리가 현실세계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건 극영화로 만들건, 결국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세계관, 취향, 영화적인 관점, 그 모든 것들에 의해 반영된 현실이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과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 현실이 아닌 것과 현실, 자기의 주관 또는 세계관과 현실세계의 어떤 것들이 부딪히면서 생기는 긴장감, 이런 것들이 시네마 베리테 영화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공부가 된다.

이해영: 저는 크리스 마르케의 사진 작업들을 많이 봤다. 사진 작업들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건 사람을 바라볼 때 아무런 편견 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같은 태도였다, 크리스 마르케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를 이따금 찾아볼 때마다 그런 태도가 환기되는 것 같다. 즐기기보단 교과서 같은 작품들인 것 같다.

홍세화: 프랑스 정치에선 시위상황이 굉장히 유희적이다. 한편 한국에선 요즘 시위도 거의 없고, 모순이 의식을 통해 엄청나게 통제되거나 물리력에 의해서 억압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수평적으로 비교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사회적 모순이 첨예한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모순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정치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은 대단히 두려운 거다. 아예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차라리 누가 좋고 싫고, 이렇게 접근이나 가능하면 모르겠는데, 아예 담을 쌓는 현상은 그 분들 대다수가 혐오하는 정치를 계속 혐오스럽게 놔두는 가장 강력한 정치 현상이다. 한마디로 탈정치라는 건 그 혐오스런 정치를 계속 혐오스럽게 놔두는 강력한 정치적 행위다.

변영주: 마지막으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떠오르신 몇 가지 생각이 있으시다면?

홍세화: 투표 잘 해야겠다. 영화운동, 문화운동, 정치운동, 뭐든지 운동이라는 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현실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피치 못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 또 하나는 지금 제가 강조하려는 것인데, 바꾸어야 할 현실로서의 의미다. 똑같은 현실이란 말에서 우리의 경우는 전자의 의미가 너무 강하다. 그만큼 현실을 변화시키는 게 어렵기 때문에 운동을 말하는 사람들은 좀 더 적극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는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사이에 장벽 같은 것이 있다. 선거판만 보더라도 엄청난 단절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와의 관계가 적대 관계지 경쟁 관계가 아니다. 소통, 소통 하지만 장벽 내에서의 소통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정말 사유하는 존재라면 이 장벽을 어떻게 깰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나름대로 사회비판의식을 갖게 되고 세상 보는 눈을 얼핏 뜨게 되는 경우는 스무 살 안팎에서, 선배 잘못 만나면 길이 열리게 된다(웃음). 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장벽을 뚫어서 어떻게 하려는 시도보다는 비판에 머무는 건 그것이 제일 쉽기 때문이다. 어떤 작업이든 벽을 뚫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과제가 아닌지, 그렇게 생각한다.

변영주: 요즘 극장에서 독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영화가 다양하게 상영되지 못한다. 정말 이게 상영이냐. 많은 분들이 대기업 욕을 하신다. 그러면 그들이 영화를 그만두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이건 영화계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질서의 어떤 리얼한 단편이다. 단순히 대기업이 정신을 차리는 걸로 끝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뭘 해야 하지?’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작은 영화들은 여전히 설 자리를 잃고 말 거다.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정말 투표를 잘 해야 하는 건 개개인의 삶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은 단순히 불쌍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면 우리는 어떤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건지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정말 놀라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과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내 삶 안으로 다가오는 순간 세상이 또 한걸음 전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해영: <두 개의 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연분홍치마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 친구들 영화 하는 걸 보면, 다음 정권은 독립영화인들이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정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정권이었으면 좋겠다.

변영주: MB정권 들어와서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 정말 힘들어졌다. 갑자기 지원이 끊기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행되기도 했지만, 그걸 지켜줬던 유일한 힘이 관객들의 관심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고, 오늘 자리해주신 여러분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