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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사라진 미래가 빚어낸 이탈리아 영화의 현재 -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





<고모라>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비장하고 장엄한 일대기를 그려온 갱스터 무비의 전통을 거스른다.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고모라>는 안티 갱 영화에 가깝다. 소수의 갱스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나폴리 범죄조직 카모라의 강력하고 광범위한 사슬아래 놓인 인물들의 선택을 교차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독립되어 보이는 플롯이 결국 하나로 모이는 타란티노식 서사마저 거부한 나열의 내러티브는 상당히 불친절해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비전문 배우의 기용과 일상적인 세팅 같은 네오리얼리즘의 전통, 확고한 문제의식을 갖고 집필된 르포르타주 원작에 힘입어 손쓸 새 없이 부식되어가는 나폴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전 방위적으로 조명한다. 나아가 평범한 나폴리 주민과 세계 곳곳의 사람들까지 범죄에 연루시키는 카모라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고발한다. 이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조직원 일부가 태닝을 하는 사이 배신한 조직원들이 그들을 총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죄악의 도시'라는 의미가 함축된 '고모라'라는 성서적인 제목이 올라간다. 이제 살인이 일상인 나폴리의 풍경이 그려질 차례다.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것은 카모라 조직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존법이다. 살육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는 돈 배달부와 약간 얼떨떨해 보이지만 카모라에 편입되길 갈망하는 소년은 박탈된 나폴리의 과거와 미래를 암시한다. 반면 카모라를 배후에 둔 영세한 공장의 재단사 파스콰레(살바토레 칸탈루포)와 유독성 폐기물 처리업자의 비서 로베르토(카민 파테노스테)는 죄악의 늪에서 기어코 빠져나온다. 그렇다고 '나폴리의 현재'인 이들의 앞날이 희망적일지는 의문이다. 할리우드 스타의 드레스를 재단하던 (본인은 몰랐던) 파스콰레는 무급 잔업과 박봉에 못 이겨 트럭 기사를 하게 됐고 로베르토는 보스의 말대로 피자나 만들게 될지 모른다.


인물을 클로즈업하면서 배경의 초점을 흐리는 단도직입적인 카메라는 때로 익스트림 롱숏의 활용으로 잊히지 않는 명장면들을 빚어낸다. 선택을 강요받고 사람 죽이는 일에 동참한 소년의 일그러진 표정 뒤로 그를 보러 나온 여자를 향해 총구가 겨눠지고 이후 슬럼가 전체로 총성이 울려 퍼진다. 배신을 망설이던 돈 배달부는 겁에 질리고 관객은 절망한다. 한편,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를 흉내 내며 객기를 부리던 마르코(마르코 마코르)와 치로(치로 페트로네)는 예상보다 오래 생을 부지하기는 하지만 끝내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시체가 실린 채 지평선을 향해 가는 포클레인이 오랫동안 비춰진다. 희극은 롱숏이고 비극은 클로즈업이라고 하지만 엔딩 장면에서 관객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고모라>가 안티 갱 영화인 것은 카모라가 비애를 불러일으킨다거나 멋있기보다 범죄 집단임을 명백히 보여줘서이다. 동시에 토니 몬타나를 흉내 내는 얼치기 갱스터들의 최후를 냉담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카모라의 비극은 나폴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절멸시키는 가운데 평범한 주민들과 나라 전체를 범죄에 연루시키는 데 있다. 가난 때문에 다수의 주민들이 자신의 토지에 독극물을 폐기하는 것을 자처한다. 로베르토의 말대로 이는 북부의 공장 노동자가 사는 대신 남부의 농민들을 죽이는 사태를 초래한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각성을 유발하는 <고모라>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라는 점이다. 극영화에서 사실적 연출이 갖는 힘을 <고모라>는 증명하고 있다.(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1월 26일(수) 16:00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 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