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빈센트 미넬리의 '브리가둔'


<브리가둔>은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을 원작으로 MGM 스튜디오 뮤지컬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빈센트 미넬리 감독과 진 켈리의 호흡이 빛나는 영화다. 뉴요커인 토미와 제프는 스코틀랜드 산 속으로 사냥 여행을 떠났다가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 브리가둔에 도착한다. 지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은 마을 브리가둔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소박하며, 피오나의 동생 진의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을 한 채 단결과 화합을 중시하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석연치 않다. 토미는 아름다운 마을 여성 피오나와 사랑에 빠지며 이 독특한 공간의 매력을 느끼지만, 어느 날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곳은 마녀의 주문에 걸려 100년 마다 한 번씩 하루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을이었던 것. 이 마을에서 이튿날 아침은 실제로는 100년 후의 시간인 것이다. 토미는 뉴욕의 삶에서 피오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갈등한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게어슈타커가 쓴 소설 <게르멜스하우젠 Germelshausen>을 원안으로 하고 있다. 마법에 걸린 마을이라는 모티브는 새로운 발상이었지만, 2차 대전 직후 독일의 문학적 전통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이 원작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40년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던 작가이자 작사가인 알란 제이 러너는 이야기의 무대를 스코틀랜드로 번안했으며, 파트너였던 작곡가 프레데릭 로우와의 협력으로 이를 히트 뮤지컬로 만들어냈다. 브로드웨이에서 1947년 오픈해 580회 이상 공연된 이 작품은 미국 서부 지역에서도 680회 이상의 공연 기록을 세웠으며, 1954년 영화화에 이어 1966년에는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영화 <브리가둔>은 뮤지컬 영화감독으로서 빈센트 미넬리의 경력이 과도기로 접어들었던 작품이다. 진 켈리와 협연한 <파리의 아메리카인>(1951)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미넬리는 <밴드 웨곤>(1953)에서 MGM의 여성 뮤지컬 스타였던 시드 카리스를 기용했으며, 이 두 배우를 <브리가둔>의 남녀주인공인 토미와 피오나 역으로 캐스팅했다. 여기에 역시 MGM 뮤지컬에서 진 켈리를 뒷받침하는 조연으로 자주 출연했던 밴 존슨도 제프 역으로 가세했다. MGM 스튜디오의 파워는 1950년대 후반부터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던 만큼, <브리가둔>은 MGM 뮤지컬 후반기 대표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 <브리가둔>은 인공적인 스튜디오 세트에 재연된 스코틀랜드의 산악 지대와 브리가둔 마을의 소박한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신비로운 안개에 둘러싸인 마을 브리가둔과 미스터리를 숨기고 있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면면은 영화 후반부 잠시 등장하는 복잡하고 현대적인 도시 뉴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브리가둔은 기적과도 같은 곳, 또는 진정한 사랑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급격한 현대화와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삶의 리듬이 바뀌어가고 있던 20세기 초, 브리가둔은 누구나 회귀하고 싶어 하는 하나의 이상향 또는 정신적인 낙원이다. 인간의 낭만적 본능을 일깨워주는 여러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탭 댄스를 비롯해 다양하게 등장하는 춤과 노래 시퀀스는 진 켈리 본연의 재능을 감각하게 한다. 토미와 피오나의 러브 테마인 ‘Almost Like Being in Love’은 원작 뮤지컬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도 가장 널리 기억되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글/ 한선희(아트하우스 모모 시네마테크 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