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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마이클 치미노의 '이어 오브 드래곤'


마이클 치미노의 경우, 영화의 본질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외적인 이유로 인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박하게 매겨진 것이 <천국의 문> 만이 아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뉴욕의 다혈질 형사와 악명 높은 차이나타운 갱단의 전쟁을 다룬 <이어 오브 드래곤>은 치미노의 불운을 입증하는 또 다른 예시가 되기에 충분하다. 로버트 달리의 원작소설에 기초해 제작된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영화계를 달군 이슈는 성차별적 폭력에 대한 태연한 재현과 동양인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태도였다. 베트남전에서의 상한 기억으로 동양 사람들에 대한 적의를 품게 된 주인공 스탠리 화이트(미키 루크)는 그 자체로 왜곡된 시각을 내면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인종적 편견과 영화의 태도는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미노의 진의(眞意)는 이해받지 못했고, 영화는 또 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마이클 치미노의 단속적인 영화 이력을 놓고 본다면 <이어 오브 드래곤>은 <디어 헌터>와 <천국의 문>의 교묘한 믹스처럼 보이는 영화이다. 이들 영화에서 타자들에 대한 공포와 그로부터 파생된 폭력은 치미노의 일관된 관심사이다. 베트남전의 여파를 1980년대 미국 사회의 심부로 가져와 풀어내는 이 영화는 장르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장르의 클리셰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경찰과 마피아의 커넥션이라는 묵계를 깨고 중국인 갱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돈키호테적 히어로의 고독한 투쟁을 다룬 스토리와 시각적인 스타일은 노골적으로 누아르 풍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형사 누아르 장르의 서사와 스타일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베트남전의 망집에 사로잡힌 스탠리를 통해 드러나는 미국 사회의 신경증적 불안이다. 조이 타이(존 론)라는 야비한 악한으로 대표되는 차이나타운 갱 조직과 맞서면서 스탠리가 점차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히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떠난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거대한 악행의 뿌리를 제거해가는 장르적 영웅의 풍모를 스탠리에게 찾아보기란 어렵다. 분열증적 주인공인 그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복잡다단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핸섬하고 샤프했던 30대의 미키 루크가 역할을 맡아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어 오브 드래곤>은 한 때 비디오 렌탈 숍의 액션 코너에 놓였지만 ‘액션’장르 안에 이 영화를 가둘 수는 없다. 액션은 있지만 액션영화가 아닌 것이다. 처음부터 장르영화를 만들 의도가 없었던 치미노는 각색 과정에서 10년 간 <플래툰>의 영화화 작업에 매진해왔던 베트남전 참전군인 출신 감독 올리버 스톤을 공동각본가로 끌어들였다. 스톤과 치미노는 차이나타운 갱단의 범죄 실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인터뷰를 거쳐 인물과 사건을 창조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천국의 문>에서 정점에 달한 치미노의 옹고집과 완벽주의는 이 영화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총상을 입은 사람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게 위해 앰뷸런스에 앉아 밤을 새우거나 값비싼 고급 승용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숴버리는 대담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영화 속 폭력 묘사는 아주 사실적이고 생생한데, 액션 시퀀스들은 착 가라앉은 톤이지만 총상으로 벌어진 자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따위를 대담하게 보여준다.


치미노의 완벽주의에 더하여 올리버 스톤의 실체험으로부터 나온 각본, 알렉스 톰슨의 촬영, 데이빗 맨스필드의 아름다운 음악이 더해져 프로덕션의 완성도는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베트남에 대한 기억과 싸우는 한 인물의 강박을 미국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치환하는 연출은 아주 파워풀하다. 스탠리는 현재 완악한 범죄자들과 싸우고 있지만 자신의 육체에 침전되어 있는 폭력의 지배로부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자괴와 절망에 무너져 간다. 영웅은 승리할 것이나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는 거대한 피로와 무력감이 끝내 불모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괴작이다.

글/장병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