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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마이클 만의 '히트'


마이클 만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현재형의 작가다. 지금 전 세계 영화계에 마이클 만 만큼 범죄 묘사를 통해 현대 도시의 속성을 기막히게 드러내는 감독은 없다. 일찍이 <도둑들>(1981)에서 범죄와 도시의 상관관계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던 마이클 만은 <히트>(1995)에 이르러 그만의 작가적 방식을 확고히 하기에 이른다.

닐(로버트 드 니로)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프로페셔널 범죄자다. 일이 수틀리면 미련 없이 몸을 피하기 위해 집에는 가구 한 점 들여놓지 않고 심지어 동료들과 달리 가족은 물론 여자 친구도 사귀지 않는다. 닐을 쫓는 LA 경찰국 강력계 반장 빈센트(알 파치노) 역시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그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이다.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그는 현 부인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 못한다. 빈센트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닐! 그를 검거하려는 의지만이 빈센트를 살아있게 만든다. 그런 빈센트를 바라보는 닐의 눈빛에는 혐오감 대신 동료 의식이 짙게 서려 있다.

이 영화 속 LA는 우리가 흔히 보아온 그곳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태양열이 작렬하는 대신 네온사인이 발광하는 밤거리가,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가 대신 범죄 모의가 빈번히 이뤄지는 뒷골목이 화면을 장식한다. 그러다 보니 LA의 사랑과 낭만은커녕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물론이고, 날로 조직화되어가는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이를 쫓는 경찰 역시도 더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 쫓는 형사와 이어져있기 때문에 쫓기는 범죄자는 고독한 법이 없다. 그렇게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도시에서 닐과 빈센트, 그러니까 범죄자와 형사의 꼴도 구분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마이클 만은 처음으로 한 화면에서 호흡을 맞추는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꿈의 캐스팅이 성사된 후 (<대부2>(1974)에 함께 출연했지만 시대 파트를 달리한 까닭에 현장에서 맞닥뜨린 적은 없다.) 자연스럽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1963)을 떠올렸다. 제목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전히 성격을 달리해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것처럼 <히트> 역시도 닐과 빈센트의 만남을 정확히 중간에 두고 둘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전반부와 본격적인 추격전이 벌어지는 후반부로 짝패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히트>를 통해 범죄자와 경찰, 낮과 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하는 마이클 만은 오락성과 예술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작가다. 그는 이전부터 장르영화를 다루면서도 특히 영화의 현실성(reality)에 대한 자각을 결코 놓지 않으면서 필모그래프를 발전시켜왔다. <히트>로 생생한 거리 총격전의 신기원을 이룩한데 이어 <콜래트럴>(2004)과 <마이애미 바이스>(2006)에서 HD카메라를 도입해 전쟁 뉴스릴과 같은 총격 장면을 선보인 후 <퍼블릭 에너미>(2009)에서 시각적 체험을 넘어 감정의 체험까지 그대로 재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마이클 만의 영화에 대해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 뱅상 말로자는 “마이클 만은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유명한 스타들과 거대 예산으로, 스필버그 영화에 육박하는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낸다. 작가성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하면서, 두 대립적인 것의 행복한 결합을 이뤄내고 있다.”라고 평했다. 우선적으로 관객을 고려하면서 사회의 문제, 미장센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 마이클 만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히트>는 가장 우선적으로 관람해야 할 영화인 것이다.

글/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