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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민중들의 투쟁에 대한 애정과 위로의 긴 호흡의 영화-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전투>

리뷰


민중들의 투쟁에 대한 애정과 위로의 

긴 호흡의 영화


-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전투>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의 감독인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옥따비오 헤띠노가 1963년에 했던 3영화를 위하여라는 선언에 따르면, 3영화는 할리우드 방식의 영화와 유럽의 작가주의 영화와는 다른 투쟁의 도구로서 행동하는 영화이자 해방영화를 의미한다. 이 선언은 영화를 혁명의 수단으로 여겼던 많은 영화들에 중요한 이론적 지침이 됐다.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전투>도 군사 쿠데타로 인한 사회주의 정권의 전복과 그 과정에서의 민중의 투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제3영화의 영향력하에 있는 작품이다. 


 <칠레전투>는 역사상 유일하게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부 시절의 칠레를 보여준다. 1973 2월부터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9월까지를 기록하고 있는 영화는 선형적인 시간 구조로 진행되지 않고, 1부 부르주아의 봉기, 2부 쿠데타, 3부 민중의 힘, 이렇게 총 세 부분으로 나눠진 채 각자의 시간 구조로 진행된다. <칠레전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 거리 집회와 시위, 연설과 토론, 노동 현장, 의회 풍경 등을 기록한 풍부한 영상들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극도로 절제된 설명적 내레이션을 통해 최대한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무장한 민중들의 투쟁을 과격하고 강압적으로 선동하지 않고 차분하고 고요하게 풀어놓는다.


 사실 <칠레전투>에서 새삼 다시 언급해봐야 할 건 이 영화가 3부작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제작팀은 촬영을 마친 1973 9월에 피노체트 정권의 탄압을 피해 불가피하게 쿠바로 망명했고, 쿠바의 국립영화제작소에서 6년이라는 긴 편집 기간을 가졌다. 영화의 세 부분은 1975년, 1976년, 1978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세상에 공개됐다. 그래서 영화 각각 3부를 전체의 부분으로서 통일되게 다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칠레전투>를 세 편의 영화로 나눠서 이질적인 부분들을 다뤄봐야 할 필요도 있다.


  1부르주아지의 봉기는 비행기 소리와 폭격 소리로 시작한다. 뒤이어 건물이 폭파되고 붕괴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짧은 장면이 지나가면 내레이션은 군부 쿠데타에 의해 대통령궁이 폭격당한 9월의 사건에 대한 간략한 정황을 설명하며, 6개월 전의 총선 현장으로 돌아가 그 경위를 추적한다. 1부의 시작을 알리는 폭격 씬은 2부까지를 관통하는 모티프다. 2쿠데타의 후반부에 똑같은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2부의 '쿠테타'의 끝에 가서야 그 폭격의 실체를 명확히 직시할 수 있게 된다. 1부가 폭격으로 인한 연기의 주변을 서성인다면, 2부는 그 연기를 헤집고 들어간다. 


 3민중의 힘은 앞의 두 부분과는 조금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흔히 <칠레전투>의 형식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시네마 베리테적 스타일에서 어긋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편집의 과정에 감독의 주관이 개입하고 있지만, 서정적인 음악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민중들 스스로 산업벨트를 형성해서 투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을 통한  제도적인 혁명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를 꾸려가는 자율주의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지를 통해 역사에 접근해가는 방식에서 1,2가 다소 객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면, 3부는 민중의 힘에 대한 구즈만의 연가이자 일종의 진혼가인 것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비무장한 민중들의 투쟁에 대한 애정과 위로를 담은 긴 호흡의 작품이다


최혁규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