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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장철 특별전

[대담] 장철의 남자들, 그리고 폭력의 핵심! - <대자객> 상영 후 오승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의 대담


 


 

‘장철 특별전’이 막바지에 이른 일요일 오후,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왕우의 장렬한 마지막을 보여주는 영화 <대자객>을 보러 모였다. 영화 상영 후에는 장철 영화에 무한한 애정을 표했던 오승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와의 대담이 이어졌다. 직접 왕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담부터, 장철 영화가 아시아적으로 영향을 준 폭력의 표출 방식에 대해서까지 다양한 주제를 오가며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장철 특별전을 맞아서 특별히 두 분의 대담을 준비했다. 시네마테크의 소식지에 오승욱 감독이 쓴 글을 보시면 영화를 보던 관객이 싸우는 장면이 나오면 깨워달라고 하소연했을 정도로 <대자객>은 장철 영화 중 가장 지리한 영화중의 한 편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느릿함이 장철 영화의 핵심을 오히려 많이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자리에 모신 두 분의 장철 영화, 특히 왕우에 대한 기억부터 들어보며 대담을 시작하겠다.
오승욱(영화감독): 요새 청소년들 중에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운 것도 없고, 중학교 때 퇴학당하고, 할 수 있는 건 싸움밖에 없을 때 <대자객>의 왕우처럼 이러지 않을까 싶다. 자객에 대한 수많은 영화가 있지만 <대자객>은 남다른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금연자(심야의 결투)> 촬영할 때 장철 감독이 왕우에게 “넌 거기서 죽은 거야! 그런데 넌 부활한 거야!”라고 했다고 하던데. 장철은 뭔가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안 되는 것에 대한 원망의 마음, 불만-원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의 원념에 대해 그리고자 했던 감독이라 생각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나는 왕우와 잠깐 인사만 하고 자세한 얘기는 못했는데, 오승욱 감독은 오래 인터뷰를 했다. 동석을 했던 기자의 말에 따르면 오승욱 감독의 디테일에 대해서 왕우 선생이 질릴 정도였다고 하더라.
오승욱: 적룡도 만나고 강대위도 만나보고 한 시간 씩 인터뷰를 했는데 강대위는 전혀 기억을 못하더라. 물어보면 겸손인지 아닌지 “감독이 시켜서 하는 거지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더라. 적룡도 좀 그런 스타일로 얘기했다. 홍콩 배우들이 그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왕우도 그럴까봐 걱정했었다. 그런데 전혀 안 그러고 거의 다 얘기를 해줬다. 심지어 맞을까봐 무서워하면서 “총가지고 다녔다면서요”라고도 물어봤었다. 총을 항상 가방에 놔뒀는데 어딜 가든 가방을 열어두고 한 번에 총을 잡을 수 있게 해놓고, 입구서부터 탈출구를 다 보고 그랬다더라. (웃음) 삼합회 등 적이 정말 많았다고 한다. 하나를 물으면 3~4개 대답을 해줘서 즐거웠다. 그런데 작년 금마장 영화제 사진을 보니 그 몇 년 새에 너무 늙었더라. 말술을 해서 그런지 신장이 안 좋은 거 같다. 강대위만 자기 관리가 잘 된 것 같다. 적룡은 그 잘생기고 멋있는 얼굴이 거의 무턱이 된 걸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대자객>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철의 무협영화에 대한 기대감과는 많이 다르다. 왜 많은 자객들 중에서 섭정인가, 왜 이 인물을 다뤘고, 왜 이 인물의 라스트의 암살 시도까지 가기 위한 느릿한 시간들이 필요했는가, 이런 점이 궁금하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어지는 자객의 설정이 독특하다. 충의나 대의나 국가적인 신의나 이런 것과는 상관없는 폭력을 자행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라스트 씬에서 섭정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이름을 남기지 않고 얼굴까지 훼손해버린다. 그럼으로 해서 그의 이름이 결코 바깥에 알려질 수가 없는 거다. 왜 죽였는지, 무엇 때문인지도 알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된다. 의미가 보태어지는 건 섭정의 누이의 자결 때문에 이루어지는 거지, 그가 수행한 폭력, 테러에 의해서는 아니다. 다른 장철 영화에서도 표면적으로 보면 영웅들의 싸움은 불의에 대항하는 건데, 하지만 죽음이 불의라고 하는 상황을 드러내줄 뿐이지 사실은 불의에 대항하는 대의적인 폭력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자객>에서 섭정이 죽은 장면은 영화의 첫 장면과 비슷하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에 그 혼자 있는 상태에서 거의 절대적인 고독함 안에서 발생한다. 국가적인 폭력이나 대의적인 폭력이라는 것은 사실 사회성을 띄게 되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죽이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혀지는가가 묘사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완벽한 의미에서 절대적인 고독을 안고 죽어가는 것이기에 단순하게 무정부적 폭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을 강렬하게 묘사하기 위해 이렇게 느리고 상당히 긴 정리의 시간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게 장철영화의 핵심적인 폭력의 특정한 면을 이영화가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오승욱 : 우리는 대개 오래 살고 싶어 하지 않나.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언제 죽느냐는 이 친구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죽느냐만 중요한 주인공이더라. 선과 악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생각한 명예, 약속 이것 하나만 중요할 뿐인 주인공이 장철 초기영화들, <금연자(심야의 결투>, <대자객>, <복수>에서 보인다. 재밌는 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사무라이>(Le samourai : 한밤의 암살자)라는 영화가 나왔고 고독한 킬러로 알랭 들롱이 나왔는데 섭정과 그 둘이 좀 비슷하다. 2년 후, 따지고 보면 겁쟁이라는 말 때문에 무의미하게 자살적 행동을 하는 네 명의 주인공이 나온 <와일드 번치>도 있었고, 그 당시에 이런 주인공들이 많이 나왔다. 장철이 이 영화를 촬영하러 쇼브라더스 스튜디오를 갈 때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최루탄 연기를 맡으면서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고 그러더라. ‘이 구닥다리 같은 이런 영화를 누가 볼 것인가. 학생들의 생각과 관심사는 내가 만든 영화와는 다른 건데 누가 좋아할 것인가.’ 그런데 의외로 당시 60년대 말의 젊은이들은 이 영화에 열광했다. 프랑스에서도 <사무라이>같은 영화를 누가 볼 것인가 했는데 많이들 봤고. 이것도 연결시키면 우스울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내일의 죠>가 학생들한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이 주인공들이 다 비슷하게 결말을 향해 가는데 그런 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 홍콩에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학생들 운동이 있었는데 홍콩이라는 여건이 특수하다. 데모를 한다고 해도 식민지에서 정권을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장철이 대륙출신인데 문화혁명 광풍이 불 때고, 장철 감독 세대는 그런 것에 대한 체험이 많기 때문에 하여튼 좀 양가적인 입장이 있는 거다. 중국 공산당 피해서 왔던 입장에서 보면 뭔가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고.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 같다. 원래 무협 전문 감독이 아니고 멜로감독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뭘 할까 이런 입장도 반영되어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반영된 게 과잉의 폭력이라는 것이다. 꾹 눌려 있다가 폭력으로 분절되는 방식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들이 불구의 형상이나 지나치게 과잉된 폭력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동아시아 영화에서 특이한 점 같다. 동아시아의 히어로들은 뭔가 불구의 형상이고 서부 웨스턴의 매끈한 형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서양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대의가 분명하지 않고 사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그런 특징이 있다. 그래서 대중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이쪽의 정서는 장철이 핵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방향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출되는 폭력으로서 레토릭이 나온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장철 같은 영화의 폭력의 레토릭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승욱: 또 오늘 큰 화면으로 적룡-강대위 주연의 <쌍협>과 왕우 주연의 <대자객>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적룡, 강대위는 감독이 하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하는 느낌이 있다. 왕우는 잔 디테일들을 2~3개 정도를 만들어서 가져온다. 자기를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강대위에게 기억나는 게 있냐고 물어봤을 때, ‘시나리오에서 서라면 서고 앉으면 앉는 거였다’ 이런 얘기를 했었다. 왕우는 감독이 무슨 말을 해도 일단 자기가 이해가 안 되면, 왜 그래야 하냐고 물어본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던 게 <대자객>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무리 내가 철검을 갖고 있고 이게 보검이고 저쪽은 동검이라도,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하고 싸워서 이겨요” 그랬다고 하더라. 그랬더니 감독이 “넌 슈퍼맨이니까 이겨. 널 슈퍼맨이라고 생각해”라고 해서, 촬영 전날부터 자기는 슈퍼맨, 슈퍼맨, 슈퍼맨 그러면서 촬영장에 갔고, 걸음걸이도 슈퍼맨처럼 걸으라고 해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마지막 액션장면에서 왕우의 걸음걸이나 칼 쓰는 것들이 주눅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장철 감독은 적룡하고 강대위한테 롱테이크를 많이 안 쓰는 반면, 왕우한테는 굉장히 많이 썼다. 왕우를 좀 믿었던 것도 있을 거다. 얼마 만에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왕우가 첫 테이크를 시작해서 다음 씬으로 넘어가면서 계속 지치고, 지치고, 지치고 육체가 소모되는 것이 촬영시간하고 같이 가는 듯한 느낌이 있고, 왕우는 그걸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대자객>의 롱테이크는 그러니까 영화의 실시간(판타지의 시간)과 주인공이 감정이입과 육체적 소모를 같이 가져가게 한다. 자결 할 때는 왕우가 거의 섭정이 되어있더라. 장철 감독과 왕우는 서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에너지, 이런 것들의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김성욱: 왜 왕우가 장철의 영화들에서 신속하게 빠졌을까?
오승욱: 싸움 장면이 나오면 이건 거의 실제와 똑같은 거다. 순간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가는 건데 아무리 나무로 만들었다 해도 저렇게 많은 창을 가지고 한다는 건 배우에게 무식하게 많은 걸 요구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왕우는 당시에 톱스타가 되면서 너무너무 커져버리면서 장철이 제어하기 힘든 사람이 돼버렸다. 마음에 안 드는 배우를 빨리 죽이는 방법은 돈 많이 주고 신인 감독 붙여서 영화를 찍게 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1년에 7~8편 찍게 하는 면 그 배우는 완전히 죽는다. 그런데 왕우는 장철의 배려인지, 누구의 배려인지 감독데뷔를 해버렸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도 만들게 되고. 또 재밌는 건 이 사람이 살인 교사(敎唆)도 하고, 폭력도 하고, 탈세도 했었나 보더라. 70년대 후반인가 71년에 대만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자기 왕국을 만들고 영화를 굉장히 많이 만들었다. 왕우가 똑똑한 사람인 게 신인이나 재능이 없는 사람과는 안하려고 하고, 그냥 자기가 해버렸다. 그럼 평균은 나왔다. 자기도 연출에 대한 게 있으니까. 쇼 브라더스에 계속 있었으면 신인감독들하고 붙으면서, 감독 놓고 자기가 여기 찍고 저기 찍고 이러다가 영화도 망하고 자기도 망하는 길을 갔을 텐데 대만으로 가서 운이 참 좋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너무너무 커 버렸었다고 한다. 누구도 제어가 안 되는 배우였다. 그러니 자기가 감독을 할 수밖에. 첫 영화 <용호투>도 잘 나왔다.
김영진: 쇼 브라더스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다. 굉장히 큰 회사이긴 한데,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회사는 아니었고, 계속 있으면 망한다,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장철 감독에 대해서 스티븐 테오가 쓴 ‘추락한 우상’인가 그런 제목의 글이 있다. 계속 뽑기 하듯 뽑아내는 무지막지한 시스템인데 장철은 쇼브라더스의 요구에 한번도 ‘No’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호금전은 굉장히 까다롭게 ‘No’를 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가 쫓겨났다. 그 구조에서 보면 왕우도 5~6년 만에 동남아를 좌지우지하는 스타가 됐는데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거다.



오승욱: 전에 김영진 평론가께서 점액질이라는 얘기를 되게 재밌게 해주셨는데 말 좀 해 달라.
김영진: 그 이야기를 처음 제기 된 게, 예전에 관금붕 감독이 게이인데 영화 백주년 홍콩 다큐멘터리 할 때, 장철 영화를 그런 식으로 해석해 보려고 필름을 요청했었다. 결국 쇼 브라더스가 한 편도 안내줘서 나중에 독립프로덕션에서 찍은 거 몇 개로 코멘트를 했다. ‘전 세계 게이들에게 황홀한 엑스타시를 제공해준 게 장철 영화였다’라고. 찌르면 뭐가 줄줄 흐르고 끄집어내고 이 과정 자체를 진짜 섹슈얼적으로 볼 수 있겠더라. 이에 과도하게 집착한 게 이유가 뭘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장철 감독이 게이이지 않았을까)라고 관금붕 감독이 말을 하는데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폭력이 일종의 소통이지 않나. 관계 맺기에 굉장히 서툴고, 결국 온전하게 성적으로, 사회적으로 표현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유일하게 분출되는 통로가 폭력인데 이걸 어떻게 묘사할까, 했을 때 장철의 영화방식이나 레토릭이 상당히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관금붕 감독도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한 거고.

오승욱: 맞는 말씀인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봤다. 장철감독이 60년대 중반 쯤 영화 일 안할 때, 외국영화가 오면 그것을 소개하는 글을 많이 썼는데, 제일 많이 쓴 것이 구로사와 아키라,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였다. 기존의 서부극에서는 폭력묘사나 폭력이 행해진 후의 결과물을 그냥 넘어가버렸는데,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최초로 이마에 총을 쏘고, 이마에서 피가 나오고, 총을 쏘면 피가 앞으로든 뒤로든 터져 나오고, 이런 것들이 관객들한테는 상업적으로 굉장히 어필을 하는 요소였다는 생각이 든다. 장철영화도 역시 그것과 무관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호금전 영화가 가는 길과 장철의 길은 달랐다. 가령, <외팔이>에서 왕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데, 주막에서 탁자를 치고 칼을 뺐다가 다시 넣는 두 컷인가 세 컷으로 연결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경우에도 가만히 있다가 탁 하고 턱 하면 피가 줄줄 나오는 식으로 두 세 컷을 연결해버리면서 액션의 역동감을 준다. 장철은 이런 걸 가져왔고 좋아했던 것 같다.
김영진: 말씀하신 거 들어보니까 진짜 <츠바키 산주로>의 마지막 장면이 영화 역사를 갈랐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번 <붉은 수염> 볼 때도 말씀드렸는데, 일본에서도 처음이었다. 스태프들도 아키라 감독이 그런 것을 할 줄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열심히 계획을 짠 다음에 시키는 대로 했는데, 미후네 도시로와 나카다이 다스야하고 하다가 자기들도 놀랐다. 놀란 티 안내려고 다시 찍었다는데, 그 장면 이후로 일본영화도 판도가 바뀌었다. 레오네도 보면 대결장면에서 굉장히 시간을 아키라랑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아키라는 그 한 장면을 통해서 자기의 천재성을 보여줬지만 그 이후의 감독들은 그 그림자를 느끼고, ‘아키라가 1분 했으면, 나는 3분, 5분’ 이런 식으로.
오승욱: 장철 감독도 초기영화에서 그런 부분에 경쟁 심리가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권 안에서 장철의 영화가 한때 엄청난 성공을 거뒀던 것에 문화적 현상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한때 있었던 사건으로 지나가 버렸다는 생각이다. 지금에 있어서 장철영화의 어떤 점들을 되새겨볼 수 있을까, 아니면 액션영화에 어떤  영향력이 남아 있을까 이것도 궁금하다.
오승욱: 외국 평론가들은 우리나라 감독들, 우리 세대가 만든 영화를 보면 왜 이렇게 폭력적인지 거의 질린다고 한다. 피가 많이 나와서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적인 상황까지 끌어갈 때의 폭력성이나 분위기 이런 것들이 그렇다. 임권택 감독 영화나 그 당시 깡패영화를 보면 <외팔이> 때문에 나온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신체훼손이 굉장히 많더라. 폭력도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과도하게, 아무리 검열이 심했어도 그 눈을 피해서 나온다. 이런 폭력들은 어떻게 보면 일본과 홍콩영화에서 나온 것과는 다른 한국만의 폭력인데, 이게 유교 때문에 그런 건지, 일제강점기 때문에 그런 건지, 우리민족이 폭력적인건지 잘 모르겠다. 이런 폭력성에 대해서 좋은 글을 쓰셔서 깨닫게 좀 해 달라. (웃음)
김영진: 토니 레인즈가 그런 글을 썼는데, 처음엔 호금전이 소개가 됐고 깐느에서 뒤늦게 상 받고 이러면서 런던에서 엄청나게 홍콩영화 붐이 불어서 자신도 미친 듯이 봤다고 한다. 그리고 80년대 홍콩에 관심을 갖고 드나들면서 ‘아 내가 본 홍콩영화 속의 것과 홍콩의 리얼리티하고 전혀 상관이 없구나’라고 느꼈단다. ‘그건 쇼 브라더스의 인공정원에서 찍은 판타지일 뿐이었구나’하고 급 실망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적어도 장철 정도의 영화는 판타지긴 한데 그것들이 굉장히 현실하고 긴밀하게 종합한 판타지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씀드린 것의 연장이긴 한데 실제로 정치적 개혁의 가능성이 완전히 막혀버린 사회였지 않나. 남한도 그랬고. 홍콩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서구 민주주의 제도를 가져오긴 했지만 막부랑 똑같았다. 실제로 굉장히 폭력적인데 겉은 평온하고 그런 사회였다. 어떻게 보면 여전히 봉건적인 것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게 있다. 그런 데에서 오는 반작용이 아닐까. 장철이 급진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런 걸 민감하게 느끼고 잘 반영해서 그런 식으로 나타났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홍위병 같은 것도 보면 동시대에 진짜 가공할 풍경이 일어났던 거 아닌가. 그런 사회에서 무협영화를 찍을 때 저런 것들이 반영되어서 나온 게 아닌가 희미하게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욱: 잔혹한 폭력이라는 양상 그 끝까지 가서 더 이상의 폭력을 종결짓겠다는 의지가 장철 영화의 폭력적인 것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장철 영화를 보면서 그런 점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60년 대 말까지 이어졌던 장철 영화들이 그런 성격이 컸던 것 같다. 오늘 이 자리는 그런 면에서 과도하게 묘사된 폭력에 대한 하나의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장철 감독이 거의 10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소개한 영화는 기껏해야 15편밖에 안 된다. 소개되지 않았던 장철의 다른 영화들도 흥미로운 것이 많더라. DVD로는 볼 수 있는데, 다른 기회가 된다면 다른 목록들로 또 한 번 보여 졌으면 좋겠다. 오늘 자리해주셔서 감사하다.



정리: 김휴리(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