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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나는 어쩌다 영화를 하게 되었는가" - 류승완 감독 시네클럽 현장중계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건
재능이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처음 카페에서 선보인 ‘시네 클럽’ 첫 번째 시간이 1월 21일 인사동의 한 ‘북 카페’에서 류승완 감독이 참여해 진행되었다. 이번 ‘시네 클럽’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친구들과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빼곡하게 앉은 30여 명의 영화동아리 학생들과 감독 지망생들 앞에서 류승완 감독은 슬며시 자신의 이야기 제목에 대해 운을 띄우며 자리를 시작했다.  



“이번 행사의 제목을 이렇게 짓게 된 건 제가 지금 제 영화 제목 짓는데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보통 감독들이 제목을 짓는데 애를 많이 먹거든요. 제일 힘들었을 때가 <주먹이 운다>를 찍을 때였는데, 당시 제가 하도 고민을 많이 하니까 박찬욱 감독님이 좋은 제목이 생각났다고 말씀하시면서 ‘1999, 주먹대장과 맷집왕’이 어떠니 하시더라구요. 이번 시네 클럽 제목도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거창한 건 못되고, 로저 코먼의 자서전 제목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 푼도 잃지 않았는가’가 떠오르면서 그냥 제가 어떻게 영화를 하게 되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영화 현장의 조수 생활과 힘든 연출부 생활을 거치면서 입봉을 준비를 하는 동안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재능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그때 그를 지탱해준 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건 재능이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믿는 것’이라는 박찬욱 감독(자신도 <달은 해가 꾸는 꿈>을 찍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의 격려였다고 한다. ‘어쩌다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짧은 이야기 이후 참석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 중 일부를 간략하게 옮겨본다.



관객질문1: 디지털 영화와 필름 영화에 대한 차이, 그리고 향후 디지털 영화에 대한 전망은?  류승완: 사실 나는 아직 디지털 룩look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작업을 디지털로 해보았는데 디지털과 필름의 선택은 영화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3D영화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3D영화를 선호할 장르는 에로티시즘 영화들과 <파고>처럼 리듬이 매우 느린 영화들일 것이다. 나같이 액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3D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관객질문2: 시나리오 작성 시 중요한 점은?
류승완: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건물을 지을 때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설계도의 기능적인 측면을 간과해서 시간에 대한 계산을 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나는 영화가 시간과 싸우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시간에 따라 영화의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어디서 배우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그대로 복기를 한 뒤 그 플롯 구조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체크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시나리오에서 한 페이지가 어느 정도 시간이 나오는지 감이 있어야 한다. 나는 보통 한 페이지 당 1분 30초에서 2분 정도가 나온다. 이 때 평균 20분에 한 번씩은 플롯에 포인트/서스펜스 요소들을 넣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어떠한 영화도 이러한 서스펜스(꼭 히치콕 방식의 서스펜스만이 아닌 더 넓은 의미의)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시나리오에서의 한쪽 측면인 스토리에 관한 것이라면 다른 한쪽은 그 위에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람’, 즉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를 잘 구축하려면 그 세계에 대해서 전문적인 수준으로 알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이클 만의 영화 <히트>의 시가전 장면은 SWAT팀의 교본으로 쓰일 정도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네 조기 축구회도 가보고, 사회부 기자도 무작정 찾아가 만나보면서 직접적으로 자신이 쓰고자 하는 세계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시나리오는 발로 쓰는 거다. 눈과 머리, 그리고 몸이 따라가는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계속 영화작업을 하려는 태도를 갖아야 합니다"



 

잠시의 쉬는 시간도 없이 2시간 동안 진행된 류승완 감독과의 자리는 ‘대한민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그의 대답으로 마무리되었다.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으려면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하는 것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행동을 못하는 건 사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권투 신인왕전을 보면 지는 선수의 특징이 맞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맞는 걸 무서워하면 때리지 못하니까요. 갑자기 오손 웰즈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기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꾸준하게 계속 무언가를 하면서 영화 작업을 하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혜경: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