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고전/기타노 다케시 회고전

기타노 다케시, 웃음과 폭력으로 빚은 삶의 이중주

[기타노 다케시 회고전]

 

 

기타노 다케시, 웃음과 폭력으로 빚은 삶의 이중주

 

 

1990년대 중반, 한국 대학가에서는 국내 개봉이 금지(?)된 영화를 비디오에 복제하여 돌려보는 게 유행이었다. 일본 문화가 전면 금지되었던 시기라 일본 영화가 특히 인기였다. <감각의 제국>의 오시마 나기사,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러브레터>의 이와이 슌지, <철남>의 츠카모토 신야, <링>의 나카타 히데오 등이 전설 같은 감독으로 회자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 바로 ‘기타노 다케시’가 있었다.

기타노 다케시의 <3-4X10월>(1990)은 개인적으로 처음 본 일본 영화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 대사보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캐릭터들의 반응,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폭력 묘사 등 영화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본에서도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출현은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으로 매일같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시시껍적한 농담이나 내뱉던 그가 영화를 만들었다고? 그것도 웃고 떠드는 코미디와는 달리 선혈이 낭자한 형사물을?



그 남자의 영화, 별나다

기타노 다케시가 <그 남자, 흉폭하다>(1989)를 통해 연출자로 데뷔한 일화는 유명하다. 내정됐던 감독(<의리 없는 전쟁>(1973)의 후카사쿠 긴지!)이 연출직을 포기하자 제작진은 급하게 대안이 필요했고 배우로 출연하기로 했던 기타노 다케시가 계획에도 없던 연출까지 맡게 됐다. 오시마 나기사의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를 비롯하여 배우로서 몇 편의 영화 현장을 경험한 적이 있던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의 비전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 남자, 흉폭하다>에는 제목에 걸맞게 툭하면 폭력을 행사해 문제를 일으키는 형사 아즈마(기타노 다케시)가 등장한다. 동료의 죽음을 계기로 마약밀매 조직을 쫓던 중 경찰 일부가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은 그리 새롭다고 할 수 없다. 그런 편견은 접어두라는 듯 기타노 다케시는 아즈마를 소개하는 첫 장면부터 파격을 선사한다. 나이 든 노숙자를 린치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그러하거니와 그중 주동자의 집을 찾아간 아즈마가 아이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듯 주먹을 휘둘러 자백을 받아내는 장면은 당혹스러운 데가 있다.

영화감독으로 첫발을 디딘 기타노 다케시의 입장에서 이 장면은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TV에서는 코미디언으로 웃음과 같은 밝은 면을 부각한다면 영화에서는 폭력으로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겠다는 의지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는 TV와 스크린으로 오가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리한 전략이기에 앞서 그의 삶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기타노 다케시가 본격적인 코미디 활동을 위해 대학교를 그만두고 아사쿠사의 코미디 극장에 들어간 것은 1968년이었다. 일본 현대사에서 1968년은 학생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였다. 미일 안보조약의 개정을 놓고 학생들은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고 이에 대학마다 전공투가 결성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학내 분위기와 달리 기타노 다케시는 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듯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생애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의 이력은 TV와 스크린을 시계추처럼 오가는 현재의 작품 활동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모순(?)으로 점철된 그의 삶처럼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의 리듬은 ‘역설’이다. 이번 기타노 다케시 회고전의 부제가 ‘웃음과 폭력’이듯 그의 작품에는 장면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감정들이 모순의 리듬을 만들어 영화의 결을 쌓아간다. 예컨대, <그 남자, 흉폭하다>의 중반부에는 아즈마가 동료 경찰에 상해를 입히고 도망가는 범죄자를 쫓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할리우드의 형사물과 다르게 썩 볼품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시야에 들어온 먹잇감은 놓치지 않는 아즈마의 면모와 더불어 쓸쓸한 색소폰 음악을 배경에 깔아 악명 높은 이 폭력 경찰의 애잔함을 노출하는 각성 효과를 이뤄낸다.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의 젊은 시절을 토대로 <아사쿠사 키드>(2002)를 만들고 <소나티네>(1993)에 대해 감독과 직접 장시간 인터뷰를 나눈 시노자키 마코토 감독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한다. “인간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갖고 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형사물과 야쿠자물을 만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인데 그게 굉장히 영화적이다.” <그 남자, 흉폭하다>로 인상적인 데뷔를 마친 기타노 다케시의 세계관을 완성한 작품을 꼽자면, <소나티네>와 <하나비>(1997)다.

 

그 남자의 삶과 죽음

<그 남자, 흉폭하다> 이후 <3-4X10월>과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1)를 만들며 감독으로서 일본 내에 입지를 굳히던 기타노 다케시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작품은 <소나티네>다. 그리고 그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작품은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하나비>다.

<소나티네>는 원래 일본판 <다이 하드>를 만들어 보자는 프로듀서의 권유로 시작한 작품이었다. 기타노 다케시는 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소나티네>로 삶과 죽음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예능 활동을 하며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삶이 허무하게 다가왔다.

<소나티네>와 <하나비>를 최고 작품으로 치는 건 기타노 다케시가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까닭이다. 그중 하나가 ‘불꽃놀이’의 이미지다. 화려하게 피어났다 곧바로 사그라지는 불꽃놀이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삶과 죽음의 관계를 연상한다. <소나티네>는 조직의 명에 따라 오키나와로 갔다가 음모에 빠지는 내용을 다룬다. 음모를 피하고자 은신하는 동안 주인공 야쿠자들은 해변에서 상대방을 향해 폭죽을 쏘아대며 노닥거리는 등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이는 후에 중간보스 무라카와(기타노 다케시)가 음모를 꾸민 조직의 보스를 찾아 총을 난사할 때 불 꺼진 건물 밖으로 비추는 점멸하는 불빛, 즉 유사 불꽃놀이 이미지로 변형된다.

기타노 다케시가 폭력과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은 과장하거나 부러 축소하는 법이 없다. 직접적이되 어떠한 수식도 가미하지 않아 일상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죽음은 보통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온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은 삶에 허무를 덧씌운다. 기타노 다케시가 <소나티네>에서 야쿠자를 등장시키고도 종이 인형을 만들어 놀고, 스모 시합을 하는 등 사소해 보이는 시간에 많은 장면을 할애하며 웃음을 주는 이유다. 별 의미 없이 흐르는 시간에 역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배경이다.  



‘꽃’(花)과 ‘불’(火)을 합성한 <하나비(花火)>는 제목 자체가 ‘불꽃’이다. 이 영화의 불꽃놀이 이미지는 그림으로 제시된다. 니시(기타노 다케시) 형사와 짝을 이뤄 야쿠자를 소탕하던 호리베(오스기 렌)는 잠복근무 중 총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된다. 이에 가족이 떠나고 자살 시도까지 하는 호리베는 니시가 보내준 화구로 그림을 그리며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호리베가 그리는 그림 중 하나는 불꽃놀이다. 화려하게 피었다 사라지는 실제 불꽃놀이와 다르게 그림에는 불꽃이 터지는 순간이 담겨 있다. 불꽃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호리베에게 있어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시노자키 마코토의 질문에 “나의 역사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TV에서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솔직한 감정으로 영화에 임한다. 내 영화를 구성하는 건 나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어둠이다.” <하나비>를 만들기 전 기타노 다케시는 오토바이를 타던 중 큰 사고를 당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은 삶과 죽음의 관계를 더욱 깊이 사유하도록 했는데 그 결과로 이어진 작품이 <하나비>다.

이 영화에는 죽음의 입구에서 삶으로 유턴하는 호리베의 대척점에 죽음을 향해 가는 니시 형사가 있다. 생과 사가 그렇게 짝을 이뤄 인간의 삶을 구성하듯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폭력과 웃음, 도시와 자연, 땅과 하늘, 빛과 어둠 등 두 개의 개념이 대립하는 가운데 결국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개별 영화뿐 아니라 기타노 다케시의 필모그래피에서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 남자의 가장 조용한 영화

기타노 다케시는 확고한 연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대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설명을 하면 할수록 영화는 더 나빠진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기타노 다케시의 철학을 극명한 형태로 보여주는 작품이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다.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청년 시게루(마키 구로도)가 여자 친구의 응원을 받으며 서핑을 독학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A4 한 장 분량도 안 되는 듯한 대사만 등장하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인물의 감정을 유발하는 건 반응숏이다.  

쓰레기 수거일을 하다 서프보드를 발견한 그가 처음 바다로 나가 서핑을 하는 광경에 관한 주변의 반응이 그렇다. 서핑이 능숙한 이들의 얼굴에는 서핑에 대한 지식도 없이 바다로 뛰어든 시게루를 향한 황당한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에 반해 여자 친구의 얼굴에는 도전에 나선 남자 친구를 향한 응원과 사랑하는 마음이 카메라에 한가득 향기롭게 묻어난다. 이처럼 대조적인 반응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시게루의 서핑에 대한 주변의 감정이 변화해 가면서 여운을 남기는 식이다.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편집 방식은 인물을 말이 아니라 행위로 규정한다. 기타노의 서정적인 영화 중 한 편인 <키즈 리턴>은 청춘물이 으레 그렇듯 요란하거나 호들갑스럽지 않다. 영화는 한 명은 권투선수로, 한 명은 야쿠자로 승승장구하다 미끄러지는 과정을 거리를 둔 채 바라본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만이 극 중 청춘을 향한 감독의 애정을 드러낼 뿐이다. 과도한 의미 부여 대신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운에 맡기며 좌충우돌하는 과정 자체를 청춘으로 바라본다.


혼란하다는 면에서 실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 자체가 정신적으로는 청춘이다. <기쿠지로의 여름>(1999)의 기쿠지로(기타노 다케시)는 계획에도 없이 엄마를 찾아나선 아이와 여행길을 떠난다. 과묵한 아이 옆에서 시종일관 장난질을 멈추지 않는 기쿠지로에게 여행의 목적지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 따위 안중에도 없는 그에게 더 중요한 건 그 사이를 잇는 길 위의 시간 그 자체다. 목적지를 향하는 동안은 무료하다. 기쿠지로에게 지루한 시간에 변화를 가져오는 건 장난질이다.

볼품없어 보이는 기쿠지로의 삶이 주는 교훈은 위대한 인물의 그것보다 더 의미 있어 보인다. 성공과 실패로만 규정되는 유한한 삶보다 더 무한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의도다. 기타노 다케시는 기쿠지로와 같은 여전히 청춘인 자신의 영화 속 인물에게서 바다를 느낀다.

바다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이후 기타노 다케시의 세계관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 중 하나다. 물에 몸을 담그긴 싫어도 멀리서 바라보는 건 좋아하는 기타노에게 바다는 우리네 삶의 은유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바다 위의 파도는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매번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유한한 것 같아도 무한하다. 바다는 그런 무한의 시간을 품고 있다. 기타노 역시 <소나티네>로 대표되는 야쿠자물과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같은 서정적인 작품을 파도처럼 오가며 자신만의 영화의 바다에서 무한으로 나아간다.   

 

기타노 다케시, 만세!

<기쿠지로의 여름> 이후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특유의 독창성을 잃은 듯한 행보를 보인다. 물론 <자토이치>(2003)처럼 일본 영화 역사에서 반복되는 소재를 변형하여 재미를 준 작품도 있다. 하지만 <아웃레이지>(2010)처럼 자극적인 묘사로 일관하거나 ‘도저히 분류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기염(?)을 토한 <다케시즈>(2005)처럼 소재의 참신함에 그친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최신작 <8인의 수상한 신사들>(2014) 역시 전직 야쿠자 할아버지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지만, 그냥 평이한 코미디물 수준이다. 앞으로의 작품 또한, 그렇지 않을까 예상이 되지만, 그런데도 기대하게 되는 건 그가 기타노 다케시이기 때문이다.



<소나티네>의 원래 제목은 ‘오키나와 피에로’이었다. 극 중 배경 오키나와와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삐에로>를 변형시킨 제목이었다. <소나티네>로 변경한 건 당시 피아노를 배우던 기타노 다케시가 한창 연습 중이던 곡이 ‘소나티네’인 것과 관련이 있다. 피아노를 배우고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소나티네’를 연주한다고 한다. 다만, 그 이후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아 반복 연습이 필요한 곡이라고 하는데 영화도 계속 만들다 보면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에 ‘소나티네’라는 제목이 탄생했다.  

어쩌면 기타노 다케시의 최근 작품목록은 다음 단계의 영화로 넘어가기 위한 연습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꾸준히 만들다 보면 <하나비>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를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3-4X10월>은 야구를 함께하는 젊은이들이 탱크로리를 타고 야쿠자에게 복수하는 내용의 영화다. 제목의 ‘3-4’는 9회말에 날리는 역전 홈런을 의미하는 일본의 야구 용어라고 한다(10월은 그때 영화를 촬영했기 때문에 붙인 거라고!). 2000년 중반 이후의 필모그래프를 두고 한물 갔다고 놀려대는 이들에게 기타노 다케시가 멋지게 복수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실제로 그런 날이 온다면 이렇게 외치겠다. 감독 만세! 기타노 다케시 만세!

 




글 l 허남웅 영화평론가

그림 l 허남준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