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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

[Editorial] 와카마츠 코지와 크리스 마르케

지난 10월,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부산에서 그를 만나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지 꼭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시네마테크는 그동안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를 꾸준히 상영했었다. 처음 상영한 건 2004년의 ‘ATG 영화 특별전’에서였고, 그 때의 인연으로 2006년 5월에 와카마츠 코지 특별전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했다. 시네마테크를 방문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당시 강연에서 했던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영화에는 시효가 없다. 범죄는 보통 공소시효가 있지만 영화는 필름이 남아 있는 한 감독이 죽어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시대와 역사에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그의 영화작업이었다. 정치적인 영화의 최전선에 있었고 영화의 테러리스트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특별히 정치적 변화를 위해 시대를 무모하게 살았던 6-70년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메시지를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했다. 가령 세계 변혁을 꿈꾼 전후 시대의 젊은이의 좌절의 기록을 담은 <실록 연합적군>에서 그가 시선을 보낸 대상은 아사마 산장의 다섯 명의 연합적군 대원들 가운데 가장 어린 17세 소년이었다. 소년은 동료대원들에게 ‘우리들은 용기가 없었다’고 울먹이며 말한다. 6-70년대 젊은이들의 집단성에서 사라진 개인을 끌어내려 했던 그의 시도는 종종 '집단을 구성하지 마라'는 그의 발언에서 확인되지만 이는 역설적인 말이다. 세상의 변혁을 꾀한 젊은이를 향한 관심이 실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서 사라진 집단적 저항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 세상을 떠난 크리스 마르케 또한 20세기의 혁명, 역사와 마주했던 시네아스트이다. 그는 에세이 작가, 영화감독, 사진작가, 학자, 시인, 여행자, 조사자, 이미지의 수집가, 텍스트의 제작자였고, 끊임없이 미디어의 경계와 한계를 탐구한 멀티미디어의 작가로 이미지의 새로운 미학적 영토를 개척해 왔다. 이미지의 새로운 창조는 정치적인 작업이기도 했다. 그가 주도해 만든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1967)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베트남 민중에의 연대를 표명한 영화였고, 역작 <붉은 대기>(1977)는 베트남 반전투쟁에서 남미혁명에 이르는 20세기 혁명의 결산적 시도를 담은 작품이다. 2001년의 9.11테러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의 시위대, 2002년의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풍경을 담은 <웃는 고양이>(2004)에서도 마르케의 거리의 시학은 여전하다. 마르케의 정치성은 6-70년대의 뜨거운 시대를 보낸 이후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부재의 감각에서 나온다. 현대적인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 혹은 집합적인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중이 사라진 곳에서 정치적 이미지를 새롭게 사유하는 것이다. 70년대에 그는 메드베드킨과 에이젠슈테인이 만든 정치영화의 틀로써 대중을 영화의 주체로 설정했지만 동시에 들뢰즈가 지적했던 민중의 부재를 인정했다. <웃는 고양이>는 그런 사라진 민중을 새로운 이미지로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와카마츠 코지와 크리스 마르케. 그들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작품 덕분에 우리는 가까스로 지난 세기의 혁명의 역사와 마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글_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