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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100편의 시네마오디세이2-친밀한 삶

[Cinetalk] 진실이 가장 강력한 힘이다

<철의 사나이> 상영 후 신동일 감독과의 시네토크

 

4월 1일 오후 <철의 사나이> 상영 후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의 진행으로 신동일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폴란드 자유노조의 이야기가 담긴 <철의 사나이>는 1981년 작임에도 현재 한국의 현실과도 많은 접점을 갖고 있었던 작품이다. 다른 세기, 다른 국가의 영화가 현대 한국에 주는 의미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던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영화 <철의 사나이>와 관련해서 신동일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다. 예전에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신동일 감독이 스무 살에 대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보고 기억에 남아서 초대하게 됐다. 먼저 이 영화를 어떤 계기로 어떻게 보셨는지 듣고 싶다.

신동일(영화감독): 이 영화를 87년 5월경 작품에 대한 정보도 모르고 봤는데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가 전두환 정권이었고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학생들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문에 전국이 들끓고 있을 때 마침 한 학교의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사회를 잘 모르던 때였지만 영화를 보면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현실과 부합되면서 역사와 호흡할 수 있는가 하는 영화의 힘을 느껴서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 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25년이 흘렀다. 꼭 언젠가 필름으로 보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보게 됐다. 다시 봐도 피가 솟는 듯한 감흥을 느꼈다.

 

김성욱: 정치적 현실과 영화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라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뒤늦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당대 현실에 직접 개입해서 픽션을 만든다는 것이 놀랍단 생각을 했다. 그런 점이 갖고 있는 긴밀함, 시대와 연착된 느낌이 좋았다. 감독님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신동일: 엔딩크레딧에 보면 엑스라는 당시 필름 무브먼트가 있다. 일종의 영화운동 집단이라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영화에 꿈을 가진, 영화로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긴밀히 연관 돼 있던 것 같다. 당시엔 CG도 발달 되지 않았을 땐데 어떻게 실재하던 인물이 출연할까 싶었는데 그만큼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구분을 하기 힘들 정도로 결합이 잘 돼 있다. 비슷한 사례가 한국에도 있다.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같은. 이런 사례들을 극영화 식으로 기민하게 만들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지금 봐도 극과 다큐적 현실이 잘 결합된 사례라고 생각한다.

 

김성욱: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것에는 영화가 가진 정체성의 특징도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150분간 진행되는 전체적 이야기는 당시에 있었던 자유노조 대한 왜곡된 것을 만들려는 정부에 대항하는 역정보의 형태로 영화가 구축됐다는 생각이 든다.

신동일: 지금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제 나이 또래 분들은 들어보셨을 수도 있다. 주로 자유노조라고 번역 되는 연대노조의 이야긴데 사실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국내 뉴스에도 많이 나왔다. 맥락이나 내막은 더욱 복잡한데도 공산주의국가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자의 운동이라고 반공주의적 시선으로 알려졌다. 나에겐 영화를 보면서 진실을 알아가고 각성되는 과정이 있었다. 잘 몰랐던 폴란드 역사에 대해서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 광주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았는데 증언들을 통해 실체를 알게 되는 과정이 훨씬 더 영화를 흥미롭게 했던 것 같다. 숨겨진 것을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이 더 영화를 힘 있게 하지 않나 싶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 강조되는 말이 두 개인 것 같다. 하나는 진실이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런 말이 초반에 나왔던 것 같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갖는 정치성의 힘들이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이런 식의 사회 문제나 정치문제를 다루게 될 때 어떤 점을 좀 더 주의 깊게 봤는지 궁금하다.

신동일: 여기 나온 주인공이 언론인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KBS나 MBC가 파업을 하고 있고 격렬하게 언론문제가 있는데 감독들 개인의 성향은 다르겠지만 당대의 현실을 담고 싶은 욕망이랄지 의욕이 클 것 같다. 물론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선 시의성 있게 접근할 수 있지만 극영화는 극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동문제나 이런 언론문제에 관한 영화를 꼭 만들고 싶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예산이 많지 않더라도 뜻 맞는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서 만들고 싶은 의욕이 오늘 영화를 보면서 다시 생겼다.

 

김성욱: 후반부에 가면 이 사람이 보고서 같은 것을 슬쩍 놓고 가려다 체육관에서 몽둥이 들고 샌드백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식의 몇 개의 설정이 있는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보시면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면.

신동일: 25년 전에 볼 때는 못 느꼈는데 다시 보니 영화가 은근히 유머가 있더라. 할머니가 자기 손자에 대해 회상을 할 때 처음엔 이해를 못했지만 요새 폴란드 역사에 대한 책을 읽다가 할머니께서 어떤 계획적 각성이라고 해야 하나, 알아가는 과정. 나 자신도 새로운 것을 깨달을 때의 감동이 전이가 돼서 그 장면에서 울컥하는 감동을 느꼈다. 할머니가 고백을 하실 때.

 

관객1: 안제이 바이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 감옥에 갔다고 들었는데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도 받았다. 그 당시에 이 영화가 어떻게 제작이 되고 유통이 됐는지 궁금하다. 제작비는 노조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정부의 탄압을 받던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상영이 됐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87년에 이 영화를 보셨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에 함께 영화를 보셨던 분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같은 당시의 분위기를 듣고 싶다.

신동일: 안제이 바이다 감독이 가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망명 비슷하게 외국으로 가서 <당통>이나 <아이 원트 유> 같은 영화를 만들고 몇 년 만에 귀국할 정도로, 계엄령이었기 때문에 국내 활동을 못했다. 이 영화가 칸에서 상 받고, 우리나라는 군사정권이었고 87년에서야 간신히 학생들이 볼 수 있었지만 많이 반향을 일으킨 것 같은데 폴란드에서 얼마나 관객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듣기론 이 전 영화가 <대리석 인간>이라고 주인공 아버지의 이야긴데 폴란드에서 170만명 정도 봤다고 들었다. 엄청난 대중적 호응을 얻은 것으로 봐서 <철의 사나이>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았을까싶다. 나는 당시에 혼자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기들과 이야기를 한 기억은 없다. 89년도에 동아리 회장을 할 때 학생들에게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관객2: 자유노조는 CIA의 사주를 받은 파업이고 반공노조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노동입장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노동운동가는 아니지만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신동일: 고민을 했던 부분이다. 이 영화를 보고 감독의 꿈을 가지고 몇 편 안되지만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됐는데 내가 반공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감독이 되겠다고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약간 긴장감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건 아니었구나 확신했다. 당시 경직된 관료주의에 대한 폴란드공산당에 대한 영화일지는 몰라도 반공영화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프롤레타리아, 노동자의 권리나 힘과 어떤 그런 것이 침해 받는다면 어떤 체제라도 싸워야 한다고 봤을 때 여기서 묘사된 것은 CIA나 사회주의와 싸워야하는 노동자들이야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당히 노동자들이 싸워야할 권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한국에 와서 전달되는 과정에서 그런 식으로 필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려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김성욱: 처음에 말씀 드렸듯 동시대 영화가 갖는 직접적 효과가 있는 것 같고 신동일 감독이 말씀 하셨듯 픽션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거리, 시간이 필요한데 거기에 있는 실체를 정확히 드러내는 부분에는 거리가 충분하진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형식이 왜곡된 정보를 조작하려는 사람이 실체에 접근하려는 형식이 유효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었다.

신동일: 나는 이 영화가 상영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쁘면서도 25년 전에 봤을 때 일어자막을 번역한 것이었지만 노동가요 가사가 계속 나오길 바랐다. 다행히 나왔는데 가사의 내용이 작품의 주제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감동적인 가사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것이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싶다. 흥미로운 것이 이 노래를 주인공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얀다르, 심판이란 영화로 칸느 여우주연상도 받은 배우인데 직접 노래를 부른다. 출연한 배우들도 당시 인민들의 삶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김성욱: 아무래도 이런 영화는 회고적으로만 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상영도 있었던 거고. 예전에도 얼핏 광고했지만 재정적 지원을 조금 더 받는다면 대선 전에 정말 틀고 싶은 영화들이 있다. 한 번도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았던 영화들 포함해서 정치사회 문제 다룬 영화들을 상영하고 싶다. 현실과 영화를 어떻게 엮어서 이야기할 것인가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신동일 감독님을 또 자리에 모셔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인사와 개인적인 근황을 듣고 이 자리를 마치겠다.

신동일: 열심히 준비하는 작품이 있다. 마르크스에게 앵겔스란 굳건한 친구 있었던 것처럼 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만들려고 하고 있다. (웃음) <철의 사나이>를 이 시기에 상영한 깊은 뜻을 좀 느꼈고 말씀 하신 것처럼 10월 경 그런 영화들의 상영회가 꼭 개최되길 바란다. 나도 그동안 열심히 만들어서 언젠가 개봉도 했으면 좋겠다.

 

정리: 이정아(관객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