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시네바캉스 서울: 작가를 만나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믿고 싶어서 계속 매달리는 인물들의 이야기”

- <독전: 익스텐디드 컷> 상영 후 이해영 감독과의 대화




이해영(감독) 아까 상영관 앞에서 만난 관객분이 <독전: 익스텐디드 컷>보다 개봉판이 더 완성도가 높다고 하시더라(웃음).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컷이 더 많이 붙어 있으니 <독전: 익스텐디드 컷>이 감독의 의도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원래 오리지널 버전이 내 의도가 가장 많이 반영된 버전이다.
사실 처음에는 <독전: 익스텐디드 컷> 제작을 거절했었다. 영화가 두 개의 버전으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고, 특히 엔딩에 다른 컷을 넣는 건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개봉 후 정말 많은 분들이 제안을 해주었고, 그래서 일종의 팬서비스 개념으로 만들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감독판’ 잘 봤다고 하시던데(웃음), 감독판은 아니다. 만약 오늘 “독전”이란 영화를 <독전: 익스텐디드 컷>으로 처음 본 분이 계시다면 굳이 개봉판을 다시 보지는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주변에 아직 <독전>을 안 본 분이 계시면 개봉판을 보라고 권해주면 좋겠다.

모은영(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원작에 대한 얘기를 먼저 물어보고 싶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의 원작은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독전)>(2014)이다. 이해영 감독의 전작을 본 분이라면 <마약전쟁>과 어떻게 연이 닿았는지 궁금해할 것 같다.

이해영 <독전>의 제작사인 용필름 임승용 대표에게 제안을 받았다. 당시 두 가지 제안을 받았다. 하나는 <마약전쟁>의 리메이크였고, 하나는 여성들이 주인공인 스릴러였다. 그런데 내 전작이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경성학교>가 흥행에도 실패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변화에 목 말라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민망하지만 한국에서 데뷔작을 만드는 건 열 명 중 한 명이고, 데뷔작이 흥행에 실패했을 때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열 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나는 세 번째 영화까지 흥행이 안 됐다. 연속으로 흥행이 안 되면서도 네 번째 영화를 만든 사람은 내가 알기로 나밖에 없다. ‘아 드디어 삼진 아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독전> 제안을 받았고, 이제 관성의 고리를 끊고 ‘갱생의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사실 두기봉이란 이름은 영화감독들에게는 너무 대단한 이름이다. 이 사람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건 약간 미친 짓이고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고 그냥 과감하게 달려들었다. 많은 분들이 알겠지만 두기봉은 아주 비정하고 하드보일드한 장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고, <마약전쟁>도 뜨겁고 날카로운 ‘남자 영화’다. 하지만 그런 점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심 나도 즐겁고 관객도 즐거운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기도 했었다. 결국 <독전>을 만난 건 내겐 정말 행운이었다.

모은영 <독전>에는 원작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차승원 배우가 연기한 브라이언이다. 기독교적 요소 같은 이 인물의 몇 가지 설정은 한국적 상황을 드러내기에 적절했던 것 같다.

이해영 먼저 ‘이선생’의 정체를 원작과 다르게 설정했다. 그 과정에서 전반부는 진하림(김주혁)이 이야기를 맡아주었고, 후반부에도 강력한 인물이 하나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브라이언이었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믿음이라든지 종교에 관련된 뉘앙스가 전혀 없었다. 그냥 재벌 2세, 그냥 봐도 돈 많아 보이는 사람, 그런 심심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차승원 배우가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캐릭터가 너무 재미없다고 하더라(웃음). 그렇게 한 30분 정도 캐릭터가 재미없다는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 내가 왜 혼나고 있지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모든 말발을 동원해 굉장히 열심히 이 캐릭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 <더 마스터>(폴 토마스 앤더슨, 2013)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이야기도 했었다. 그렇게 한창 설명을 하니 차승원 배우가 방금 그렇게 말한 그대로 써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무슨 말을 했지 하면서 앓아누웠었다(웃음).

그렇게 차승원 배우에게 맞춰서 시나리오를 고치고, 성경도 참고해 가면서 브라이언을 좀 더 한국적이고 괴상하고 기이한 캐릭터로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차승원 배우가 내가 처음에 썼던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정말 재미없었을 거다. 그만큼 차승원 배우는 어떻게 해야 이 캐릭터가 잘 살아날 수 있고 관객이 더 이입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모은영 이 영화의 제목은 “독전”인데 영어 제목은 “Believer”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 극 중 모든 사람이 믿음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거나 누구를 믿을지 계속 찾고 있다.

이해영 각 인물들을 대표할 수 있는 말이 결국 어떤 것을 믿는다, 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가 믿는다고 믿는 것에 매달리는 자들이다. 원호와 락은 물론 진하림과 브라이언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믿고 싶어한다. 사실 믿음을 커다란 주제로 잡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촬영이 다 끝난 후 후반작업을 할 때 임승용 피디가 “Believer”라는 영어 제목을 제안했다. 처음에 그 제목을 듣고 ‘에? 신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좋은 제목 같았고, 지금은 이 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표현이자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대만에서 <독전>이 개봉했을 때 제목이 “신도(信徒)”였다.

모은영 이 영화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보여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첫 장면을 보면 노르웨이의 설원을 향해 쭉 들어가는데, 마치 정말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고 보면 <경성학교>의 첫 장면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해영 일단 조진웅 배우가 노르웨이의 설원에서 운전을 하는 얼굴이 너무 좋아서 내가 옆에서 계속 찍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카메라를 들고 메모리를 끊임없이 썼고, 조진웅 배우는 직접 운전을 하면서 노르웨이의 설원을 굉장히 오랫동안 달렸다. 그렇게 했던 게 조진웅 배우에게도, 나에게도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막상 갖고 와서 보니 다 쓸 만하지는 않았지만(웃음), 그래도 이 순간들로 영화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오연옥(김성령)과 이학승 회장, 그리고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브라이언의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원호의 얼굴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이 얼굴로 영화를 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원호의 입장에서 보는 플래시백 구조가 만들어졌다. 즉 원호가 이 지난한 여정들을 반추한 다음 락을 대면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엔딩의 뉘앙스가 더 풍성해지기를 바랐다. 역시 엔딩은 익스텐디드 컷보다 오리지널 버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높은 곳에서 찍은 촬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일단 자동차를 드론으로 찍으면 너무 멋있게 느낀다. 약간 설레기까지 한다. 어렸을 때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산길을 달리는 자동차를 카메라가 따라가는 것만으로 이렇게 영화적인 황홀감과 긴장감이 발생하다니. 그래서 <경성학교> 때 이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그런 느낌의 길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웠다. 한국은 전봇대가 안 걸리는 데가 없다. 그래도 정말 어렵게 그 장소를 섭외해서 찍었는데 나중에 다른 영화에서 그 컷 조금만 잘라달라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웃음).
노르웨이에서는 드론 촬영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바람이 굉장히 세게 불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심하게 흔들렸다. ‘스테디’하게 팔로우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찍었다. 여담을 하나만 얘기하자면, 노르웨이 스탭들이 정말 열심히 일을 하더라. 원호의 차를 현지에서 렌트했는데 헌팅을 다니다 보니 차가 자연스럽게 더러워졌다. 흙탕물이 묻어 있는 그 느낌이 참 좋았는데, 다음 날 현지 스탭들이 너무 깨끗하게 타이어까지 세차를 해놓았더라(웃음). 지금 영화를 보면 희한할 정도로 차가 깨끗하다. 원래 NG인데 어쩔 수 없었다.

모은영 용산역은 매우 일상적인 공간인데 이 영화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사실 기차역이라고 하면 서울역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영화에서는 용산역이 나온다.

이해영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곳에 마약 본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브라이언이라면 마약 공장을 어디에 차리고 싶을까? 나는 돈과 권력이 있고, 마약 제조 기술자야 얼마든지 불러올 수 있고, 모든 걸 선택만 하면 되니까 제일 중요한 건 유통이 아닐까? 이런 고민의 결과 교통의 핵심 지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서울역이 아니라 용산역인 이유는... 용산역은 원래 뿌리가 없던 곳에 거대한 건물을 도시에 콱 때려박은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나는 한국 특유의 멋없는 느낌을 정말 좋아한다. 용산역도 그렇고 왕십리역도 그렇고, 그런 거대하고 못생긴 건물에 대한 ‘향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 시청 같은 건물도 그렇다. 처음에는 원래 있던 예쁜 건물을 뒤에서 덮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라 뜨악했는데, 보면 볼수록 저게 바로 서울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그런 맥락에서 용산역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관객 1 용산역 장면에서 처음 여름 장면에서는 기둥이 연두색이었는데, 나중에는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다.

이해영 용산역은 공사를 정말 많이 한다. 헌팅을 갈 때마다 주차장 모양이 바뀌어 있고, 한 번 찍으러 갈 때마다 외관이 변한다. 영화의 처음 부분을 찍을 때는 주차장이 연두색이었는데, 나중에 엔딩을 찍으러 갈 때는 다시 페인트칠을 해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중에 CG를 써서 연두색으로 다시 바꾸었는데 방금 지적하신 부분은 내가 놓친 장면이다.
찾아보면 그런 장면들이 꽤 많다. 어딘지는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의 몸에 화약이 연결된 선이 보이는 장면도 있다. 그게 마치 줄넘기처럼 움직이는데(웃음)... 그런 장면들이 여전히 있다.

관객 2 영화를 보며 속도감 있는 편집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늘 네 번째 봤는데 감독님이 소리로 어떤 리듬을 살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를테면 오연옥이 라이터를 켜는 소리, 진하림이 볼펜을 놓는 소리, 보령(진서연)이 소독약을 흔들면서 뚜껑을 여는 소리 같은 것들. 이런 부분이 영화의 리듬감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해영 그런 부분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편집할 때 그런 리듬이 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컷이라는 게 그냥 막 넘길 수 없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의 감정이기 때문에 일단 감정에 맞춰 리듬을 만든다. 그런데 가끔은 어떤 소리가 포인트가 되면 좋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바람을 갖고 편집을 한 다음 음악감독이 음악을 붙이면 정말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방금 말한 라이터 소리 같은 건 실제 동시녹음이 아니다.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소리를 섞고, 거기서도 하이(High)를 높이고 로우(Low)를 깎아서 만들어낸 소리다. 다 어떤 의도가 반영이 된 결과물이다. 마지막에 원호와 형사들이 탄 차가 내려가다가 “지원 요청해!”라는 대사가 나오고 그때 딱 맞춰서 자동차가 끼익 소리를 내면서 설 때,  이런 소리와 컷에도 어떤 박자를 맞춘다. 이런 건 나뿐 아니라 많은 감독들이 신경 쓰는 부분일 것이다.

관객 3 <독전>의 시나리오는 정서경 작가와 함께 작업한 걸로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주로 박찬욱 감독과 작업을 했던 정서경 작가에게도 의미가 큰 작품이 아닐까 한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독전>의 제작사인 용필름에서 정서경 작가와 함께 <아가씨>를 제작했었다. 임승용 대표와 정서경 작가가 먼저 <독전>의 시나리오 초고를 만들었다. 그후 내가 <독전>을 연출하기로 결정한 후 정서경 작가의 2고를 받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먼저 시나리오를 다 쓴 다음 다른 작가와 함께 고쳐가는 작업을 했었는데, 이렇게 작가와 처음부터 각본 작업을 함께 한 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서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정서경 작가와 대화를 많이 했다. 함께, 그리고 서로 번갈아가며 4고까지 썼고, 다음에는 내가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거의 1년 동안 13, 14고까지 썼다.
정서경 작가에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영화 전체를 바라보는 정서를 구현하는 방법이었다. 장르물 안에서 정서를 어떻게 놓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들. 그리고 락의 캐릭터도 정서경 작가가 만들었다. 그런 부분이 <독전>만의 유니크한 정서라고 생각한다. 캐릭터 구축과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모은영 거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이해영 <독전>은 장르물을 처음 만든 신인 감독의 영화라서 흠결도 많고 채워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그런 부분들을 여러분의 생각으로 많이 채워주어서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과 소통을 할 때 영화가 진짜 영화가 된다는 걸 글로만 알다가 이번에 처음 몸소 느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곳 극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어떤 분에게는 고루하고 어려운 영화, 옛날 영화만 트는 곳으로 느껴져 오기 꺼려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목도, 감독도 모르고 그냥 시간만 맞춰 와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분명 좋은 영화를 상영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면 좋겠다.


일시 8월 25일(토) <독전: 익스텐디드 컷> 상영 후

정리 권세미 관객에디터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