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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없는 필름 -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오성지 시네토크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필름 없는 필름

-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오성지 시네토크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시네마 퓨처>를 보면서 생각난 것들을 자연스럽게 얘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35mm 필름으로 영화를 봤고 사진을 찍을 때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뒤 사진관에서 현상-인화를 했다. 사진과 영화를 물질로 경험한 세대다. 그런데 요즘은 어릴 때부터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디지털 세대라서 경험 자체가 다를 것이다. 먼저 필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겠다.


- 질산염 필름에서 폴리에스터 필름까지

상영용 필름을 7~8 프레임 정도 잘라서 가져온 걸 나눠주려 한다. 지금 나눠드린 걸 보면 모든 장면이 거의 같은 장면일 것이다. 24프레임이 1초에 해당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꽤 긴 필름이 필요하다. 컬러 필름의 경우 R-B-G로 나뉜 세 개의 레이어가 있고, 이 부분을 물리적으로 지탱하는 베이스 부분이 있다. 1950년 이전에는 이 베이스가 질산염으로 된 필름(Nitrate Film)을 많이 썼다. 하지만 이 필름은 불이 붙기 쉽다. 당시 극장에 불이 났다는 뉴스가 많은 건 다 이 필름 때문이었다. 이후 아세테이트 필름(Acetate Film)이 등장했다. 안전 문제를 개선했기 때문에 다른 말로 ‘안전 필름 (Safety Film)’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이 필름은 ‘초산화 신드롬’ 문제가 있다. 필름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데 이 필름은 한번 초산화 반응이 시작되면 시큼한 냄새와 함께 필름이 약해졌다. 영사기 안에서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보존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등장해 지금까지 쓰이는 게 폴리에스터 필름(Polyester Film)으로 좀 더 튼튼하고 안정적이다.

참고로 한국은 질산염 필름을 딱 한 벌(<청춘의 십자로>(1934)) 갖고 있다. 현재 따로 보관 중이며, 운반도 조심해야 하고 별도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상영할 수 있다.


- 네거티브, 포지티브

영화 촬영이 끝나고 제일 처음 만들어지는 프린트는 색상이 반전된 네거티브 필름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을 포지티브 필름으로 현상한다. 우리가 보통 ‘프린트’라고 부르는 건 포지티브 필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거티브는 사운드 네거티브와 이미지 네거티브가 나뉘어져 있는데 이걸 합쳐서 상영용 프린트로 만든다. 김기영 감독의 <죽엄의 상자> 같은 경우는 이미지 네거티브만 수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성영화가 아니지만 무성영화로 상영하게 된 안타까운 경우다.

오늘 <시네마 퓨처>를 보면서 ‘제네레이션(generation)’이란 표현을 들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스타워즈> 같은 경우는 세계 곳곳에서 상영을 하는 작품이라 수백 벌의 프린트를 만들어야 한다. 이걸 오리지널 네거티브에서 만들면 결국 손상이 된다. 프린트라는 건 한 번 기계에 걸 때마다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중간 단계를 거친다.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를 만들고, 이 포지티브에서 ‘듀프 네거티브 필름(Dupe Negative Film)’을 만든 다음 일반 상영용 프린트를 만든다. 이런 네 단계를 거친 프린트를 보고 ‘네 번째 제네레이션’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 한국은 제작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오리지널 네거티브에서 직접 극장용 프린트를 만들었다. 그래서 80년대 작품도 오리지널 네거티브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심지어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없다는 얘기도 들었을 것이다. 이건 해외 영화제에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바로 보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프린트를 따로 만들 비용이 없어서 해외에 보냈다가 다시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생겨 분실되고 만 것이다. 이럴 경우는 최대한 상태가 좋은 상영용 프린트를 수집해서 복원을 한다. 대표적으로 <오발탄> 같은 경우가 오리지널 네거티브 없이 해외 영화제용 상영 프린트를 복원한 사례다. 영어 자막이 이미지의 절반을 가린 상태였지만 그걸 지우는 기술을 개발해서 지금은 깨끗하게 만날 수 있다.


-obsolete

‘obsolete(폐기, 구식)’ 란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금 보여드리는 필름들은 과거에 실제 상영됐던 필름으로 지금 사용하는 필름과는 퍼포레이션(perforation, 필름에 뚫려 있는 일정한 크기와 간격의 구멍) 형태가 다르다. 옛날에는 이렇게 둥근 퍼포레이션도 있었고, 퍼포레이션의 갯수와 위치도 달랐다. 이렇게 다양한 포맷이 있었지만 지금 이 포맷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지금 ‘표준’ 형식이 있다는 건 그 외의 형식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필름을 사용했던 카메라와 영사기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금은 필름 매체 자체가 사라지고 있고 국내에는 필름 상영이 가능한 극장도 얼마 없다. 한때 표준 매체였던 35mm 필름이 obsolete가 된 것인데, 과연 필름 매체와 필름 상영이 사라질 것인지 질문을 할 수 있다. 나도 정확하게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 기억

지금 보여드리는 사진은 BFI 보관고의 일부다. 필름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여있다. 이 필름 안에는 우리들의 기억이 들어 있다. 1930년대 영국의 거리가 있고, 1940년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1950년대에 유행했던 옷이 들어 있다. 즉 우리의 일상이 저 필름들 안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아카이브는 기억의 저장고로서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필름은 온도와 습도만 잘 맞으면 100년 넘게 보존할 수 있는 안전한 매체다. 1895년에 처음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우리에겐 100년이 넘는 기억이 있다. 지금은 영화외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도 필름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미몽>(1936)이 발굴됐을 때 그 안에는 당시 서울의 거리, 모던걸들의 모습,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일상의 모습, 유명한 무용가인 조택원의 무용 영상도 담겨 있다. 역사적 자료로서도 큰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 복원의 기준

모든 영화를 복원하는 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보통 ‘빅 타이틀’을 우선적으로 복원한다. 예를 들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거의 매년 복원이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사운드가 바뀌거나, 몇 장면이 더 들어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한 버전의 복원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덜 유명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복원이 잘 시도되지 않는다.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필름 중에는 ‘고아 필름(Orphan Film)’이라고 해서 정말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연출한지도 모르는 짜투리 필름들이 있다. 어떤 영화를 복원하고 다시 상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

복원의 기준도 문제다. ‘오리지널’에 가깝게 복원한다고 했을 때 원본은 과연 무엇일까? <시네마 퓨처>를 보면 원본에 존재했던 먼지까지 디지털 기술로 지운 <아라비아 로렌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런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디까지가 원본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너무 깨끗하게, 너무 높은 선명도로 복원하면 당시 상영된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 필름 체험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사람들에게 디지털과 필름의 차이는 크게 다가온다. 영화가 무거운 박스로 오는 것과 작은 USB에 담겨 오는 것은 당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필름과 디지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옛날에는 ‘극장 구경 간다’라는 표현을 흔히 썼다. 가족들과 극장에 가서 함께 영화를 보고 짜장면을 먹고 돌아오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영화 감상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 <매그놀리아>를 35mm로 본 분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다.


김보년(프로그래머) 말씀하신 <아라비아 로렌스> 부분이 흥미로웠다. 나는 편집을 바꾼 감독판이 나왔다든가, 색감을 더 개선시킨 블루레이가 나왔다고 하면 챙겨보려 한다. ‘원본’의 존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시대에 영화의 원본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 같다. 복원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질문일 것 같다.

오성지 35mm 필름이 사라지고 나면 나중에는 우리가 세잔의 그림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 것처럼 35mm 상영관을 찾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필름은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복제 예술이자 상업 매체이다. 여기에서 원본성을 찾다 보면 결국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이게 쉽지 않은 문제다.

이를테면 60~7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 감독 중 자신의 영화를 나중에도 계속 편집한 분이 있었다.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편집한 것이다. 그렇게 새로 편집을 해오면 우리는 개봉 당시 버전의 ‘오리지널’과 몇십 년이 지나 만들어진 새로운 편집본을 갖게 된다. 또는 디지털 복원을 하며 색감을 조정할 때 감독과 촬영감독의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게 원본일까? 정말 대답하기 힘든 문제다. 또는 무성 흑백영화의 경우에도 나라마다 컬러 틴팅(tinting)을 전부 다르게 했다. 멀티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중 무엇이 오리지널인지 답을 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복원 자체를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관객 오래된 필름을 복원할 때 어떤 영화를 먼저 복원하는지 궁금하다.


오성지 여러 기준이 있는데 일단 그 작품이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많이 본다. 필름의 상태도 중요하다. 상태가 안 좋은 필름일수록 복원의 우선 순위가 올라간다. 상영했을 때 관객이 얼마나 올지도 따져봐야 한다. 복원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윤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필름이 유일본인지 아닌지다. 프린트가 딱 한 벌 남아 있는 영화들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작업을 하려 한다.


김보년 주로 필름 복원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영사기 노후화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오성지 옛날에는 한국에 현상소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 문을 닫았다. 영사기 중에서도 16mm 영사기는 이미 거의 사라져버렸다. 고장이 나면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고, 8mm 영화는 국내에서 복원할 수 있는 곳이 아예 없다. 35mm 영사기를 쓰는 곳이 갈수록 줄어들다 보니 부품을 구하기도 힘들어지고 영사 인력도 많지 않다. 영사기사 교육은 앞으로 많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일시 4월 14일(토) 오후 6시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정리 하수정 홍보팀장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