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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특집기획

[특집1] 올해의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①     
 
새해가 밝아오고 찬바람이 극성을 부릴 때 즈음 항상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는 등불을 밝히고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보러 오기 위해 관객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들의 목록을 기다린다. 올해로 5주년을 맞은 ‘2010년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에 상영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선택작은 총 13편이다. 영화감독과 배우, 그리고 평론가로 이루어진 올해의 친구들이 선택한 13편의 영화 중 5편의 영화와, 관객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관객들의 선택작 2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불온하고 기괴한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쳐다보지 마라>와 <서바이벌 게임>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는 심령 호러물이다. 영국의 추리작가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영적 체험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시종일관 시간을 거스르는 영화의 이미지들은 원작을 뛰어넘을 정도의 음습한 공포를 유발한다. 특히 극 중 부부로 설정된 도널드 서덜랜드와 줄리 크리스티의 안정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광기 넘치는 연기는 영화의 모토가 되는 초자연의 세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더욱 확고하게 굳혀준다.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은 2대의 카누만을 이용해 댐공사로 인해 침몰되기 직전의 지역을 탐험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그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을 거두기도 했던 작품이다. 제임스 디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서바이벌 게임>은 인간의 생존 투쟁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광활한 자연을 적절히 활용한 작품이다. 액션과 어드벤쳐 무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건국과 개발이라는 이면에 놓인 인간의 횡포를 효과적으로 파헤쳐낸 정치적인 영화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쳐다보지 마라>와 <서바이벌 게임>은 서로 다른 주제와 공간 속에서 풀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영화들이 주는 잔혹함은 웬만한 공포영화를 뛰어넘는 영화다. 주목할 것은 두 영화 모두 특정 사건이나 인물로 인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섭게 전환되는 것을 잡아낸다는 것이다. 정적인 장면들로만 구성되어진 <쳐다보지 마라>와 평화롭고 잔잔한 자연을 비춰주며 시작되는 <서바이벌 게임>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앞뒤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긴장을 선사한다.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추론해볼 수 있는 재미가 넘치는 기괴한 영화들이다.

충만한 B급 영화의 기운, <디바인 대소동>


음탕함의 제왕’, ‘쓰레기의 제왕’이라 불리는 존 워터스는 각종 사회적 문제들을 일으키며 문제시되어왔던 B급 컬트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감독이다. 가는 곳마다 물의를 일으켰던 감독이었던 존 워터스의 <디바인 대소동>은 전작 <핑크 플라밍고>와 함께 그의 최고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름다움과 명성에 집착하는 던 데븐포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적나라하게 비튼다. 주인공 던 데븐포트는 B급영화애호가들이 열렬하게 환호하는 존 워터스의 페르소나 디바인이 열연했으며, 그녀의 주변에는 섹스, 강도, 살인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끊임없이 돌아간다. 극 중 디바인이라는 캐릭터와 그녀의 외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는 탐욕과 음란함의 정점을 시각화한다.

영화에서 소개되는 온갖 도착적이고 광기 넘치는 범죄들이 더 이상 전진할 곳이 없다 생각되는 바로 그때, 존 워터스는 관객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지속적인 비윤리의 충격으로 인해 한껏 마음이 무뎌진 관객들은 단순 난잡한 B무비가 아닌 신선한 블랙코미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철저한 미국식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는 존 워터스의 말처럼, <디바인 대소동>은 일그러진 미국사회에 관한 비판도 빼놓지 않고 있다. 저급 키치아트의 애호가 혹은 존 워터스의 전작 <핑크 플라맹고>의 후일담이 궁금하다면 반드시 관람해야 할 영화다. 

1970년대의 가장 실험적인 걸작을 만나다, <엄마와 창녀>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놓으며 데뷔했던 장 으스타슈는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감독이었으며 실제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장 으스타슈에게 영화를 찍는 것은 항상 자본과 투쟁하는 것의 연속이었으며 그는 가공된 이야기들보다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을 원했다. 1973년에 제작한 영화 <엄마와 창녀>는 장 으스타슈의 대표작인 동시에 스크린을 통한 그의 실험정신이 얼마나 철학적이고 심도 깊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엄마와 창녀>는 프랑스 68혁명 이후의 공황을 알렉상드르라는 젊은이에게 투영시켜 보여준다. 영화는 하루를 때워나가기에 바쁜 한량인 알렉상드르와 그의 주변에 위치한 두 여인에 관한 농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롱테이크도 서슴지 않는 영화는 놀랍도록 현실적이고 차갑다.

<엄마와 창녀>에서 주목할 것은 약 4시간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쉴 새 없이 흐르고 넘치는 대사(텍스트)들로, 주인공 남녀의 입에서 쏟아지는 진한 농담들은 시대를 비판하며 사회를 정면으로 조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라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인 장 피에르 레오와 베르나데트 라퐁 등의 연기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온전히 언어의 유희와 텍스트만으로 스크린을 지배한 <엄마와 창녀>는 1970년대의 최고걸작이라는 수식어에 저절로 동의하게끔 만드는 마력을 가진 영화다.

시네마테크에서 만나는 오즈 야스지로의 따듯함 <동경이야기>


<동경이야기>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대표작이다. <동경이야기>는 ‘평범’이라는 단어로 인해 제한되거나 보편화되어버리는 개개인 삶의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로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의 다다미숏을 통해 낮고 단조로운 시선에서 일관적으로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관찰한다. 때문에 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은 극 중 인물들에 동화된다는 느낌보다 영화에 초대되어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손님 같은 느낌을 받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진 위치에서 영화의 인물들을 보게 되는 관객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사색적인 분위기에 매료된다.

독특한 기교 없이 화면을 잡아내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구성되어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옷가지나 가방, 책장은 별다른 사건 없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뿐이지만 이러한 소품들은 그의 영화에 회화적인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반복되는 인물들의 대사나 흘러가는 구름을 지긋이 잡아내는 오즈 야스지로의 카메라는 쉽게 지나쳐가는 수많은 대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다. 익숙함 뒤에 찾아오는 사라짐의 시간들이 더욱 가혹하고 애처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서술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는, 꾸밈없는 시선으로 인생의 교훈을 건네는 아름다운 영화인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네필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마음 속 고전으로 자리 잡는 작품이다.

관객들의 선택: 다시 보고 싶은 무성영화 <어셔가의 몰락>과 <항해자>


올해 투표를 통해 선정된 관객들의 선택작인 장 엡스탱의 <어셔가의 몰락>과 버스터 키튼의 <항해자>는 모두 1920년대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로 고전을 회고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에드가 엘런 포의 소설을 완벽하게 각색했다는 찬사를 받는 <어셔가의 몰락>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었고. <항해자>뿐 아니라 <제너럴>, <셜록 주니어>등을 통해 뛰어난 연출과 연기를 보여주었던 버스터 키튼은 무성영화 시기의 가장 뛰어난 작가였다. 초기영화의 위대한 시네아스트들, 그들이 개척해놓은 영화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극장에 앉아 스크린으로 투영되는 환상에 젖어들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사의 시작이자 영화의 언어와 문법을 창조했던 무성영화, 그 중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상영되는 <어셔가의 몰락>과 <항해자>는 관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과거로의 여행을 선사해줄 것이다.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