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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Feature

[특집] 젊음의 건강한 육체와 자아실현의 꿈 - 1980년대의 댄스 영화 <페임>과 <플래시댄스>

특집

 

젊음의 건강한 육체와 자아실현의 꿈

- 1980년대의 댄스영화, <페임>과 <플래시댄스>

 

 

<토요일밤의 열기>(1977)나 <그리스>(1978)와 같은 작품들이 이미 70년대 말에 나오긴 했지만 80년대에 알란 파커의 <페임>의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계보를 그려보자면, 정확히 1980년에 화려하게 성공한 <페임>에 이어서 ‘MTV’가 등장하게 되고, 1983년 애드리안 라인의 <플래시댄스>가 만들어졌다. 순서대로 보자면 <페임>, MTV, <플래시댄스>. 이 세 국면이 1980년대의 대중문화를 이끄는 선구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는 미국의 대중문화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다. 레이건의 신보수주의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기운이 거세어져 가는 가운데, 이른바 ‘블록버스터 문화사업’의 돛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영화 산업에서는 <E.T>, <스타워즈>, <백 투 더 퓨처>, <인디아나 존스>에 이르기까지 공상 과학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옮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포문이 열렸다. 한편 대중음악 산업에서는 MTV의 등장과 함께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80년대의 마이클 잭슨, 마돈나, 프린스와 같은 대형 팝 뮤지션들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타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1981년 24시간 뮤직비디오를 보여준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MTV는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시청자들이 뮤직비디오의 아방가르드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동안의 영화가 쌓아온 관습들은 뮤직비디오에 의해 순식간에 무력해졌다. 뮤직비디오 시청자들은 실험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과 장면 사이의 급격한 이동이나 논리의 부재 등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뮤직비디오는 할리우드 영화 장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는 고딕, 호러 장르를 가져왔고, <빌리 진>은 스파이 영화를 도입했다. 뮤직 비디오가 영화 장르를 모방하는 경우의 예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MTV의 무서운 열풍 속에서 만들어진 애드리안 라인의 <플래시댄스>의 경우는 뮤직비디오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모방의 모방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성이기도 했다.

 

 

 

 

 

<플래시댄스>에는 노골적인 클로즈업이 등장한다. 춤을 추고 있는 제니퍼 빌즈의 엉덩이와 허벅지에 시선을 떼지 않는 장면은 춤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그 지속성은 제니퍼 빌즈라는 스타를 향한 페티쉬적인 시선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뮤직비디오에서 볼 법한 클로즈업이다. 뮤직비디오는 본디 광고와 결탁한 것이어서 스타를 상품으로서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서 이 같은 클로즈업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조각조각난 이미지들을 한데 모으는 것은 인간의 얼굴이다. 많은 뮤직비디오들이 시청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인간의 얼굴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플래시댄스>의 경우에는 제니퍼 빌즈의 매력적인 얼굴이 그 역할을 해낸다. 제니퍼 빌즈가 얼굴을 드러내는 그 순간부터 관객은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용접 마스크를 벗을 때 쏟아져 나오는 풍성한 머리카락과 땀에 젖은 얼굴, 그 또렷한 눈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80년대의 미국은 ‘화려함’과 ‘긍정적 확신’의 기운으로 넘쳐났다. 두 편의 댄스영화 흥행작인 <페임>(1980)과 <플래시댄스>(1983)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자장 안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영화가 내세우는 기치는 ‘건강한 육체’와 ‘자아실현’이다. 이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새파란 젊은이들이다. <페임>은 아직 스무살이 되기도 전의 젊은이들이 예술학교에서 4년 동안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동시에 유일한 무기는 자신의 몸이다. 연기 지도 선생은 “너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느끼는지를 관찰해라”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의 몸은 자신을 표출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다. 모두가 거리를 메운 채 「Fame」에 맞춰 혼 들린 듯 춤을 추는 명장면은 물론이고, 리로이가 선생님에 대한 반항으로 서재 유리를 모조리 깨부수는 장면이나 코코가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은 젊은 육체의 날 선 에너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플래시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따라붙는 제니퍼 빌즈의 표정과 몸동작은, 이 영화가 가진 신체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처럼 화면 안을 방방 뛰어다니는 젊음의 기운은 ‘자아실현’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파고든다. 두 영화의 내러티브는 모두 ‘꿈은 이루어진다(혹은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확신 아래 흘러간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꿈을 이룬다는 스토리는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화려한 대중문화와 맞물린다. 번쩍이는 도시의 밤풍경, 극장에서 다함께 떠들며 <록키 호러 쇼>를 보는 영화관람 문화와 함께, 두 영화에서는 특히 ‘춤’과 ‘사운드트랙’이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페임>의 학생들은 고전무용인 발레를 전공함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막론하고 춤을 춘다는 설정에서 자유로움을 한껏 뽐낸다. <플래시댄스>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다. 그녀는 밤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길거리에서 흑인들의 춤을 관찰하고 따라하며, 결국엔 발레 학교 시험을 보는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무용 실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기묘하게도 사운드 트랙은 모두 ‘현대 팝 음악’이라는 것에서 80년대 특유의 정서가 녹아있다. 공교롭게도 <페임>에서 「Fame」을 부르며 일약 스타가 된 아이린 카라는 <플래시댄스>의 주제곡인 「What A Feeling」까지 ‘80년대 대표적 송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 영화 이후에도 <더티 댄싱>(1987) 등 댄스영화의 열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페임>과 <플래시댄스>만큼 레이건 시대의 미국을 잘 드러내는 영화는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성장에 대한 기대, 그에 대한 흥분을 고조시키는 문화사업의 팽창 등 미국문화의 반짝이던 시절이 이 두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마도 미국 스스로가 기억하고 싶어할 얼굴인 일련의 댄스영화들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덩달아 웃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자극적인 감각만 잔뜩 안은 채 향수병에 시달리지는 않을까.

 

배동미 · 지유진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