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진저와 프레드>

아멜리아(줄리에타 마시나)와 피포(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뮤지컬 배우였던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를 패러디한 ‘진저와 프레드’라는 이름으로 40년대 이탈리아에서 화려한 명성을 떨쳤던 탭댄스 듀오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다가 과거의 명사들을 소개하는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에서 30년 만에 재회한다. 영화 속의 TV 세계는 완전히 상업화된 광고들로 가득 찬, 키치적이고 자극적인 흥밋거리들만 넘쳐나는, 아멜리아의 말처럼 ‘매드 하우스’와도 같은 곳이다. 쇼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매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프란츠 카프카, 마르셸 프루스트, 우디 앨런, 리타 헤이워드 등 다양한 작가, 영화감독, 스타들을 패러디한 분신 연예인들의 존재다. 끊임없는 복제와 흉내내기의 세계. 이것들은 오리지널리티가 실종된 TV의 생리와 닮아있다. 이런 세계에서 여전히 낭만적인 과거에 대해 향수를 갖고 있고 자신들의 프로페셔널리즘과 장인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은 아멜리아와 피포는,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될 뿐이다. 그들의 존엄성은 자본주의적 천박함에 의해 손상된다.

아멜리아와 피포는 오랜 기다림 끝에, 영화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마침내 탭댄스를 추게 된다. 그들은 30년 만에 진저와 프레드로 돌아가 호흡을 맞춘다. 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던 찰나에 갑자기 정전이 된다. 이때 어둠 속의 무대에 덩그러니 남은 그들은, 재회한 후 처음으로 각자의 심경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눈다. 사실 그들은 서로를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나보고 찬란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싶어 이 유치한 TV쇼에 출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기가 돌아오고 재개된 탭댄스는 피포의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더 인간적인 감동을 준다. 탭댄스가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아멜리아와 피포 본인들, TV 쇼의 방청객들은 감정적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공연이 끝나자, 그들은 마지막 포옹을 나누고 담담하게 각자의 길로 돌아간다. “같이 춤출 기회가 더 이상 없을 것 같아”라는 아멜리아의 말은 배우들 자신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펠리니의 대표적인 남녀배우였던 두 사람은 그동안 정작 같은 영화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펠리니와 작업한지 30여년이 되어서야 이 둘은 처음으로 조우했고, 이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진저와 프레드>는 펠리니 자신의 영화 경력과 그의 페르소나인 마스트로얀니와 마시나와의 협력 작업들,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를 기리는 기념비가 되는 영화다.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