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작가를 만나다

[작가를 만나다] 이야기는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

'로맨스 조'의 이광국 감독

 

지난 5 19일 토요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5월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이광국 감독의 장편 데뷔작 <로맨스 조>를 상영하고 상영 후 장병원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이광국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영화 속 디테일에 대한 관객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현장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첫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는 이광국 감독과 극장을 찾아준 관객들의 대화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장병원(영화평론가): 포괄적인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다. 영화의 내러티브나 서사 구조의 몇 가지 이야기를 설계하실 때 처음에 가졌던 컨셉이나 목적부분부터 설명해주시길 부탁 드린다.

이광국(영화감독): 시나리오를 쓸 때, 몇 년 전인데 조감독 생활을 오래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보니까 점점 더 뭘 써야 될 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기간이 좀 길어서 절망적인 상황까지 갔다. 어느 순간에 그러면 다른 데서 이야기를 찾을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에 소문에 관심이 있어서 그 남자와 소문을 어떻게 연결 지을까 생각하다가 에셔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주는 뉘앙스를 이야기로 만들면 어떨까, 그런 과정을 통해 시나리오와 영화가 나왔다.

 

장병원: 이 영화를 보면 그룹핑, 예컨대 인물들을 쌍을 짓는다. 다방 레지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인물을 어떤 식으로 설정하신 건지 궁금하다. 순환하는 캐릭터가 있고 엮어주는 캐릭터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광국: 처음에는 어쨌건 천재적인 이야기꾼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는 관련 업계가 아닌 엉뚱한 사람이 오히려 전문가들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레지를 중심에 두고 그룹핑을 하게 되었다. 아까 말씀 드린 에셔의 그림을 보다가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고, 서로를 계속 그리는데 그림이 주는 뉘앙스가 소문이랑 붙였을 때, 소문이랑 유령 같다고 생각하니까 다방 레지가 그 유령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역할이라 생각했다.

 

관객1: 영화 보는 내내 보르헤스, 플로베르도 생각나는 아름답고 유쾌하고 슬픈, 재미있는 영화였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다방 레지가 읽고 있던 책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었는지, 그 책이 모텔 냉장고에서 꺼낸 책이 맞는지 궁금하다. 또 그 책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이광국: 책은 소설 마담 보바리. 계속 등장하는 책은 똑같은 책이 맞다. 처음에 시나리오에는 책을 읽고 있다 정도의 설정만 있었다. 디테일을 만들면서, 맥 빠지는 대답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소설을 골랐다. 고르고 나서 보니 마담 보바리도 약간 구조적으로 실험이 많이 있어서 이런 게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 레지와 초희를 엮어줄 수 있는 고리 같은 걸로 작용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2: 영화를 보면서 국내 소설 중 최제훈 작가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그 소설의 작가에게도, 감독님에게도 궁금한 점이다. 이야기의 틀이 여러 세계가 병행한다고 보여지는데 시나리오를 쓰실 때 틀을 먼저잡고 쓰셨는지, 아니면 하다 보니 틀이 잡힌 건지 궁금하다.

이광국: 틀을 먼저 어느 정도 잡아놓고 디테일을 만지면서 조금씩 변형했다. 만들기 전에는 약간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냥 만들어보고 싶었고, 구조적 낯섦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차용해서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장병원: 문학적인 것이 상당히 많다. 이야기 구조나 이야기 본질에 대해서 계속 질문하고,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계속 이야기를 지어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직업적이든 아니든 스토리텔러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여관에서 어머니도 드라마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흥미로운 진행방식이다.

 

관객3: 소년 배우가 왼손잡이인데 로맨스 조는 오른손을 쓰는 것을 발견했다. 감독의 지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소년이 로맨스 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므로 감독이 그것을 조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광국: 그룹별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제 바람 중 하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초희가 레지의 과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소년이 로맨스 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모호한 지점이다. 이다윗군이 왼손잡이인 것은 늦게 발견했다. 장면을 찍기 전에 늦게 발견했고 연결지점을 맞춰야 하나 고민했다가 다르게 가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의도는 아니었지만 촬영 중에 그렇게 갔던 경우다.

 

관객4: 로맨스 조와 다방 레지가 포장마차에서 술 먹을 때 로맨스 조가 왜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나라고 하는데 감독님은 답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다

이광국: 어려운 부분이다. 명확한 결론은 못 내리지만, 자기 인생은 스스로 정리되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결국은 자기 주위에 같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동질감, 이질감 여러 것들을 보게 되고, 그게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사람들한테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것으로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마음의 안식이나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막연히 생각한다.

 

장병원: 영화 속 한 인물의 동일성, 이 사람이 저 사람인가 하는 것이 뭉개져 있고 허물어져 있다는 특성과 개념을 구원하기 위해 몇 가지장치가 보인다. 그중 두드러지는 것이 이야기가 계속 인물에서 인물 사이로 전파되는 것이다. 예컨대 300만 관객의 이 감독과 입지를 다지지 못한 감독지망생 로맨스 조가 사실 동일인물일 수 있다는 점, 노트북을 주는 행위, 처음에 소문으로 인해 자살한 등장하지 않는 여배우가 죽은 이유가 소문에 의해서라는 점과 어린 시절 초희 역시 추문에 의해 손목을 긋게 되는 형태로 인물들의 동일성이 보인다. 또한 사물의 장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장치들 외에 전체적 인물의 동일성, 시간적 위계를 위한 고안물이 있으면 설명을 부탁 드린다.

이광국: 의도 자체가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려 한 건 아니다. 디테일은 촬영 들어가기 전후에 발견했다. 냉장고 안에서 책을 꺼내는 것은 시나리오에 현장에서 촬영하다가 문득 레지와 초희를 어떻게 묶을까가 떠올랐다. 연출부와 촬영 감독이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오기가 발동해서 했던 케이스다. 친구가 나중에 경찰로 다시 나오는 상황도 시나리오에는 다른 인물이었다. 나중에 친구가 경찰로 나오면 시나리오적으로 그런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막연하게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관객5: 남자의 첫사랑이 계속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다. 감독님에게 로맨스나 사랑은 단지 장치로만 쓰려고 차용하신 건지, 이 영화에서 사랑은 어떤 건지, 감독님의 의도가 궁금하다. 경험담이라면 그것도 말해주시면 좋겠다.

이광국: 구상 초기에는 제목 없이 소문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남자의 이야기였다.그래서 초기에는 제목이 없었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인디 밴드를 하고 있다면서 같이 밴드를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다들 로맨스 조니 다크 박, 드라이 김이니 애칭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로맨스 조였다. 그때 로맨스 조라는 이름에 꽂혀서 그 이름을 제목으로 쓰겠다고 했다. 구조적으로 원형적인 작은 이야기가 하나 있고 그것을 주위에서 뜯어먹는 식의 설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 제목과 맞는 작은 멜로를 넣었다.

 

관객6: 영화를 시작할 때 보면 그림에서 출발한다. 아까 말씀하신 그 에셔의 그림이 처음 그림과 같은 것인지, 처음 그림은동물 말 그림인데 소문과 관련해서 그 그림을 넣으신 건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광국:그 그림은 에셔의 그림은 아니고 시나리오에도 없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영화의 첫 커트인데 고민하다가 이야기가 중요한 소재, 말이 소재라서 말 그림으로 시작을 해볼까, 장난기 같은 것이 있어 말 사진을 포토샵으로 작업했다. 말 사진으로 시작해서 토끼로 영화를 끝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장병원:관객분들을 위해 에셔의 그림을 조금만 설명해주신다면 좋겠다.

이광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손 두 개가 서로를 그리고 있는그림이다. 보고 있으면 이상한 느낌이 많이 든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다.

 

관객7: 다방 레지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캐릭터의 쓰임새를 떠나서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여자 캐릭터를 쓰신 건지 궁금하다. 또한마지막 부분에서 경찰관이 하는 말이 생뚱 맞게 느껴져서 설명을 조금 부탁 드린다.

이광국: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캐릭터를 인물 별로 미리 정해 놓고 쓰지 않는다. 이야기의 틀 안에서 씬마다 목표점이 있으니 그 씬에 인물들이 들어갔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해서 그렇게 썼다. 처음부터 레지는 이런 캐릭터여야 한다고 정해놓지 않았고 좋아하는 캐릭터도 아니었다.씬의 상황이 먼저 있었고 그에 맞게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또한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배우가 결정된 후 배우와 캐릭터 잡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처음부터 캐릭터를 정확하게 만들어놓지는 않았다. 경찰 장면은 저도 말씀 드리기 어려운 지점이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처음 구상할 때 남자가 마지막에 경찰한테 검문을 당하면 어떨까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 없이 작업을 했다. 만들면서 목표 지점은 딱 두 개 있었는데 보는 사람들이 보는 내내 호기심을 갖고 다음 장면을 예측하지 못하는 데서 저를 따라올 수 있는지, 두 번째는 보고 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열린 여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왜 경찰한테 검문을 받느냐고 물으시면 저도 딱히 말씀 드릴 수가 없다.

 

관객8: 죽는 방법이 어려 가지인데 왜 하필 손목을 긋는 방법인지 궁금하다. 왜 죽는 데 실패하는지 궁금하다.

이광국: 손목은 시각적으로 사람들이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제 절박한 마음에서 이야기가 출발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가 없으면 죽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제가 죽고 싶어도 결국 못 죽을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캐릭터에 제 성격이 부여되었다. 영화 속에서 너무 무겁거나 잔인한 소재를 다루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어서 명랑한 소재를 다루고 싶었다.

장병원: 서사적으로 보면 손목을 긋는 사람들이 동일한 아이덴티티로 보일 수도 있는 기호다. 자살했던 여배우도 필시 손목을 그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객9: 인물들이 만나는 장소가 주로 여관, 모텔방이다.반면 초희와 소년이 만나는 장소는 숲 속, 배 위, 동굴 앞 등인데 그런 장소에 의도가 있는지, 그들의 만남이 일시적이고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하는 것을 암시하는지 궁금하다.

이광국: 사실은 처음 시나리오와 촬영된 버전이 많이 다르다. 분량이나, 인물이나, 이야기의 골격에서도 다르다. 영화 제작비가 5000만원이었는데 처음 받은 제작비로 찍을 수 없어 대폭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여관 장면을 선택했다. 지방 모텔이라는 곳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가는 곳이고 많은 방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모텔방을 선택했다. 어린 로맨스 조는 그와 반대로 열린 공간을 중시하면서 그런 공간을 찾게 되었다. 

 

장병원: 정리하는 의미로 한 말씀 드리자면, 이 영화는 이야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습성을 가지고 게임을 벌인다. 이야기 안에 어떤 특정한 정보가 있을 때 즉각적으로 우리가 그 이미지들을 보게 되면 앞에 나온 것들과 연결하게 된다. 이것이 앞서 어떤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둘을 연결하려 하는 강박증이 있다. 영화는 그것을 부정하면서 다음으로 나아간다. 이야기에 대한 인식의 습성을 가지고 게임을 벌인다. 굉장히 이런 유형의 영화가 한국 영화에서 희귀하고 신선하고 의미가 크다. 유의미한 시도를 데뷔작에서 하셨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이광국: 이번 여름에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계속 써야 하고 영화 지원 프로그램에 접수를 해서 계속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일단은 여름에 단편 영화를 찍는 것이 확정되었다. 아트 시네마가 대단히 중요한 극장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저의 첫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 분들을 만나 뵈어서 기쁘다. 앞으로도 이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 손소담(관객 에디터)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