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치미노, 할리우드의 저주받은 감독

지난 5일 저녁, ‘2011 시네바캉스 서울’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현대성’에 대한 영화사 강좌의 첫 번째 시간으로 아메리카 뉴시네마에 종지부를 찍은 전설적 작품,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의 강좌가 있었다. 너무 빨리 성공과 실패를 맛 본 ‘저주 받은 감독’ 치미노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할리우드가 혁신의 에너지로 넘치던 예외적인 시대에 대해 돌아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김영진(명지대학교 교수, 영화평론가): 재밌게 보셨는지? 영화가 좀 우울하다. 하여튼 몇 번을 봐도 지독한 엔딩이다.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이 있는데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고 한다. 왜 꼭 죽여야 했을까? (웃음) 이 영화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상업적 재앙으로 기록된다. 1100만 달러의 예산으로 기획됐다가 총 3500만 달러가 들고 흥행수익은 100만 달러 좀 넘었다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작 배급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영화 한 편 때문에 부도가 났다. 아시다시피 치미노의 두 번째 영화인 <디어 헌터>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굉장한 예술적 권력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디어 헌터>의 결혼식 장면이 굉장히 긴데, 그 삽입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다더라. 헌데 치미노가 우겨서 그 장면을 넣었고 결과적으로 그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성공했다. 이러한 전례 때문에 이 영화는 제어가 안 된 거다. 비사에 의하면 편집할 때 치미노가 사설 경호를 붙여서 편집실 앞에 세워놨다고 한다. 그렇게 최종 편집으로 내놓은 것이 5시간 20분이었다. 이 3시간 40분 버전은 타협 끝에 간신히 나왔다. 3500만 달러는 지금으로 치면 3억 5천만 달러나 같다. 따라서 엄청난 광고에, 관객이 들 때까지 무제한 상영이라는 파격적인 계약을 하고 뉴욕에서 프리미어를 했다. 그런데 인터미션 때 치미노가 리셉션을 꾸려놓은 2층에 올라와보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어디 갔냐’ 물으니 홍보하는 사람 말이 ‘다 집에 갔습니다.’ 그렇게 된 거다.
미국 평론가들도 한 명의 예외조차 없이 경쟁하듯 이 영화를 씹어댔다. 마치 예술적 방종의 사례인 것처럼. 사상이 불순하다 해서 공격받고, 자본주의의 최악의 사례로서 공격받고. 치미노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다. 게다가 1985년인가에 ‘파이널 컷’이라고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쓴 책이 있는데 그걸로 두 번 죽었다. 치미노는 광적인 완벽주의자여서 일주일에 한명씩 자르고 계속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었더라는 에피소드들이 적혀있다. 농담 반으로 사실 약간 술 먹으면서 찍은 느낌도 있다. 도저히 미국 영화에 나올 수 있는 샷들, 엄청나게 광포한 에너지가 있잖나. ‘파이널 컷’에 그 비슷한 증언도 있다. 치미노는 ‘그 책은 전부 픽션’이라고 하며 그 책의 저자를 아직도 증오한다고 한다. 또 이 영화에 대해 한줌의 후회도 없다고 하고 5시간 20분짜리 원판을 자기 집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실패로 말미암아 치미노의 경력은 곤두박질 쳤다. 그는 미국 영화의 이단아 같은 존재이다. 아메리카 뉴시네마 마지막에 나타났다가 반딧불처럼 짧게 빛나고 사라졌다. 비슷한 시대에 등장한 위즈 키드라고 불렸던 영화 신동들, 코폴라, 스콜세지, 스필버그, 루카스 그룹과도 다르고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고전영화에 대한 자의식으로 장르를 일신하거나 수정했던 아메리칸 뉴시네마와도 다르다. 그는 건축과 연극을 전공했고, 연기도 좀 해보려고 기웃거렸다. 글재주가 이스트우드의 눈에 들어서 영화계에 들어왔고 그렇게 찍은 게 이스트우드와 제프 브리지스 나오는 <대도적>이다. 그런데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장렬한 엔딩을 찍은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 이상하다. <택시 드라이버>가 나온 1976년만 해도 스콜세지와, 폴 슈레이더가 마약하면서 굉장히 폭력적이고 어두운 영화를 찍어서 성공했다. <할리우드 르네상스>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폴 슈레이더가 극장에 가보니 어떤 영화의 줄이 엄청나게 서있었다더라. 어떤 놈인지 좋겠다하고 가서 봤더니 자기가 썼던 <택시 드라이버>였다고 한다. 그렇게 어두운 영화가 흥행할 줄 몰랐던 것이다. 불과 3,4년 차이인데 <천국의 문>은 대중들이 바라지 않는 영화가 돼버렸다. 시대는 레이건 시대로 넘어가고. 그 직전에 몇 개의 사례가 있었다. 스필버그는 <1942>라고 진주만 전투를 크레이지 코미디로 찍었고, 마틴 스콜세지가 찍은 <뉴욕뉴욕>도 있다. 재즈시대에 대한 엘레지를 갖고 있는. 역시 언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루카스가 그 영화를 보고 ‘형 결말만 해피엔딩으로 바꾸면 2000만 달러는 더 벌 수 있어’라고 말해서 한동안 절교했었다고 한다.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으로 정말 지옥에 갈 뻔 했다가 깐느에서 상을 타면서 간신히 본전을 했다. 그 뒤 <원 프롬 더 하트>란 영화를 찍고 스튜디오를 무시한 채 자체배급하려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개 중 가장 야망이 컸던 영화는 <천국의 문>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웨스턴에 수정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존 포드 같은 경우 미국의 신화가 이룩되는 모습을 묘사하잖나. 치미노의 관심은 그것이 파괴되는 과정이었다. <천국의 문>은 서부의 역사를 먼저 온 지주들과 이민자들 간의 계급투쟁의 역사로 그려내고 있다. 공권력은 무력하다. 미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치부를 건드린 것이다.
본인은 ‘차마노’라고 발음한다는데 마이클 치미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부 쪽 피고, 아마 필생의 꿈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언젠가 찍어야지 생각했는데, <디어 헌터>로 인해 기회가 너무 일찍 찾아왔고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삼십대 후반에 찍을 수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는 여한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3억 5천만 달러의 돈을 핸들링해서 바라던 대로 찍고. 망하면 어떤가. 몇 십 년 지나 여기 한국에서도 보고 있는데. (웃음) 형식적으로도 굉장히 특이하다. 그에게는 미국 영화에 대한 존경이 없는 것 같다. 베르톨루치가 80년대 말에 한 인터뷰를 보면, 자신은 자타공인 시네필이었고 오슨 웰스 같은 감독의 미국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카메라 워킹을 배웠는데, 요즘엔 거꾸로 미국영화 감독들이 자기 카메라 워킹을 의식하는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게 치미노라는 얘기를 한다. 기본적으로 달리나 트랙을 깔아놓지 않으면 안심 못하는 스타일 있잖나. 아니면 줌으로 밀고 들어가거나. 미국 영화엔 잘 없는 부분이다. 또 굉장히 음영이 짙은 조명을 쓴다.
그런데 치미노는 감정이 과잉이긴 과잉인데, 좀 다른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아무래도 삼각관계 같은 것 좋아하니까 (웃음) 주인공이 처음에 엘라(이자벨 위페르)를 만나는 장면이다. 굉장히 독특하다. 엘라는 기존 서부극에선 절대 주연이 될 수 없는 여자다. 학교 선생이나 클레멘타인 같은 여자가 주연이 되어야지. 이 여자는 포주다. 그러면서 숙녀의 품위도 가지고 있고, 또 자수성가한 비즈니스맨이기도 하다. 아르빌(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어찌 보면 좀 부적절한 래링 관계인데 둘이 만나서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카메라가 움직이거나 인물이 움직이거나 둘 중 하나다. 파이가 왔다 갔다 하고 그 와중에 벗을 건 다 벗고 침대에 들어갔다가 선물을 사왔다니까 바로 뛰어나가고. 그냥 야생이다 야생. 그 사람들은 문명인이지만 그 살고 있는 곳과 행동하는 리듬 자체가 야생이다. 지금으로 치면 선물로 벤츠 뭐를 사준 건데 그걸 보란 듯이 몰고 가는 것 아닌가. 세레모니 중인 교회 앞을 확 지나가고, 분란이 일어나고. 엄청나게 불경한 묘사인데 그것 자체로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이는 어떤 미국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정적이 흐르면서 엘라가 강에서 나체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여성, 자연, 어머니라는 시각적 메타포는 뭐 클리셰일 수도 있고 존 포드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것이지만. 그러고 나서 엘라가 아르빌과 걷다가 하늘을 딱 보면, 맑은 줄 알았던 하늘이 흐려진다. 이런 식의 묘사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게 DVD같은 걸로 보면 그런가 보다하지만, 저는 이 작품을 중고등학교 때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그 큰 스크린으로 봤을 때 이런 감정의 스케일은 전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평단과 관객을 화나게 한 건 고전적인 내러티브의 무시였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없고 덩어리져있다. 지금은 절판 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의 할리우드>라는 책에서 로빈 우드는 제일 마지막 장에서 치미노가 그러한 구성을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한다. 치미노는 건축가다. 캐릭터와 개연성을 촘촘히 설명하지 않고 공간 그 자체에서 벌어진 일을 계속 블록 식으로 쌓으면서 보여주는 형식적 혁신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무례한 영화가 없다. 주인공들이 삼각관계인 것을 한 참 지나서 알게 되지 않는가. 미국 영화 보통의 화술이라고 하면,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을 찍으며 남북 전쟁을 남 출신 북 출신의 연애담으로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집중하더라 이거다. 개인의 로맨스가 전면에 서고 역사는 배경이 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연애담이 주가 아니다. 영화 첫 부분에 하버드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미국이 전통 없는 나라인데 굉장히 전통 있는 척 하지 않나. 총장의 연설도 공허하지만 사회적 의무들을 강조하고. 허례허식처럼 보이는데 엄정한 의식이 있다. 이 틀을 깨는 게 아르빌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그 다음 단락으로 건너뛴다.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하버드 때와는 너무 다른 얘기다. 거기서 맹세했던 것들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는 세계다. 고로 치미노는 로맨스 부분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만큼의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홀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롤러 스케이트 신고 댄스하는 게 어딨나. 지금 보기엔 굉장히 멋진 스펙터클인데, 현장에서는 악명이 높았다. 당시에는 스텝들이 치미노가 드디어 돌았다고 했다더라. 저게 예정으로 5일인데, 실제로 한 3주 찍었던 것이다. 그러니 제작비가 안 늘어나겠는가. 그리고 엘라는 언제 저렇게 저 커뮤니티에 자연스레 들어와 있나 싶다. 심지어 그 댄스 시퀀스의 대미를 장식한다. 전통적인 이야기이라면 뭔가가 있었을 텐데 치미노의 관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게 이어지는 게 또 왜, 쳐들어온다고 할 때 격론이 벌어지잖나. 제가 볼 땐 댄스 시퀀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오스의 에너지. 보통 영화였다면 선악의 대립으로 묘사했을텐데 완전히 카오스다. 이런 식의 형식이 통할 수 있다고 했던 게 <디어 헌터>였고, 아 좀 아니구나 했던 게 이 <천국의 문>인데. 아메리칸 뉴시네마가 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게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약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전통적인 할리우드 시스템이 붕괴되었을 때. 엄청난 세대 교체가 일어난 것 아닌가. 코폴라가 서른두살에 대부를 찍었는데, 이건 신의 은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약관 32세의 감독이 세상 다 산 듯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코폴라는 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 뒤로 더 나은 영화를 만들지 못했고. 스필버그는 심지어 20대에 <죠스>를 찍었다. 영화들이 펑펑 터지니까 경영자들도 잠깐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이게 <디어 헌터>까지 이어지고, <천국의 문>까지 간 거다. 뭐 웨스턴? 존슨 주의 전쟁? 마지막에 장렬한 전투씬이 있겠네. 투자한다. 뭐 이렇게 된 건데(웃음) 끝내는 실패한 거다. 공교롭게도 바톤을 터치한 사람들이 스필버그와 루카스이고.
어쨌든 치미노는 끝내 재기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필생의 프로젝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이나 <죄와 벌>을 영화화하는 거였다고 하는데 누가 투자하겠는가 (웃음) 또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진을 이미 너무 빼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어 오브 드래곤>도 흥미롭고 엄청 격렬한 피로가 있다. 미키 루크하고 존 론인가가 사무실에서 말싸움하는 샷 보면 진짜 미국영화 같지 않게 잘 찍었다. 지금이야 홍콩영화가 한 때 무조건 360도 돌리고 해서 그저 그렇지만, 당시에는 진짜 놀라운 스타일이었다. 그 뒤로 잘 안돼서 유감이지만, 네 편까지는 상당히 흥미롭다. <천국의 문>도 시대적 상황과 잘 만났으면 성공했을 지도 모를 영화다. 저는 TV에서 많이 축약된 버전으로 처음 봤는데 굉장히 근사했고 좋아하는 영화다. 오늘 긴 영화 보시느라 여러분이 수고하셨다. (웃음) 이 여름바캉스 동안 계속 즐거운 영화 감상하시라.

정리: 백희원(관객에디터) 사진: 조유성(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