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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어떻게 배우와 작업하는가?"

[시네클럽] 김종관 감독의 연기지도법

지난 11일 오후 네 번째 시네클럽이 열렸다. 주인공은 지난 해 <조금만 더 가까이>로 장편 데뷔한 김종관 감독이다. 그간 신선하고 빛나는 배우들과의 다양한 작업들로 주목받아왔던 만큼 “어떻게 배우와 작업하는가?”라는 주제로 관객들과 만났다. 연출을 꿈꾸는 영화학도들의 열띤 질문이 잇따르고 배우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느껴지던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김종관(영화감독): 영화 연출을 단순히 말하자면 시나리오를 영화로 구성화해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몇 가지 연출덕목이 있다. 첫째로 공간을 연출하여 분위기를 만드는 것. 둘째로 연기자와 이야기하는 것. 셋째로 하나하나의 쇼트들을 찍어내는 것. 마지막으로 그것을 연결시키고 어떤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것. 그 중 특히 중요한건 현장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영화화하고 실제로 재현해내며 얻는 감동이 있다. 어떤 공간, 현장 안에 들어감으로써 배우가 기대치 못한 면을 보이며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는데서 오는 감동. 딱 정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공간은 무드를 주고, 배우는 드라마를 만들어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드라마를 주는 배우를 만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일단 연기 연출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해도 나쁜 연기자를 좋은 연기를 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반대로 좋은 연기자를 나쁜 연기로 끌어내릴 수는 있다. 따라서 좋은 배우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좋은 배우와 내가 쓴 시나리오가 만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촬영할 때 오케이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오케이, 킵, 엔지'라는 세 가지 싸인 중에 상황에 잘 맞춰 판단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 외에 대단한 디렉션은 없다. 찍으면 찍을 수록 배우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 같고 그를 더 많이 믿을 때 더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연기패턴의 배우들이 있다. 그에 따라 연출자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배우를 이미지로만 쓰는 사람이 있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기를 통해 뭔가 얻어내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연기자와 만나기 전에 연출자는 스스로와 그 자신의 영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독립영화작업을 하며 배운 것은 우연을 잘 활용해야한단 거다. 배우와 인물이 잘 안 맞을 때는 최대한 그 배우가 할 수 있는 쪽으로 시나리오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연기자는 자기애가 강하고 예민하면서도 예민하지 않은 척 하는, 불확실성 사이에서 모험하는 사람들이다. 연출자는 연기자를 달래고 예뻐하며 그들에게 모든 걸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가 그들을 통해서만 실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솔직하기보단 자기 방어가 많은 편이다. 배우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그리고 영화는 허구다. 그 거짓말이라는 틀 안에서 나도 어떤 해방감을 느끼고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 있고 연기자들 역시 그럴 때가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배우를 사랑한다.

관객1: 시나리오를 쓸 때 정석대로 한 씬을 설계하듯 만드는가 하면 구체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한다. 감독님의 경우에는 어떤 방식이 더 나았는지?
김종관: 구성이 먼저냐 캐릭터가 먼저냐 하는 말씀인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를 텐데, 여태까지 내 경우에는 캐릭터를 먼저 형성하고 그 안에서 알맞은 구성을 찾아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목표이고 거기까지 가는 길을 만드는 게 구성인데, 길이 먼저 있는 경우는 없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먼저 있어야 하고, 그 길을 가는 게 캐릭터니까 캐릭터가 먼저인가... 어렵다.(웃음) 이야기 따라 각각 다르다. 하지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논리적 구성 요소들을 따지는 편이다. 시나리오를 쓰는데 시간이 별로 안 걸리는 편이지만, 실은 그걸 쓰게 되기까지는 2년이고 3년이고 걸린다. 이야기를 해야 하는 어느 순간이 온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경우, 집에 오래있던 낡은 카메라와, 가족에 대한 질문과, 첫사랑이란 이런 느낌이라는 게 어느 순간 맞물려서 만들어졌다. 일전에 이창동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네가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이야기가 네게 말을 걸어줄 때까지 기다려라’란 말을 하셨는데 느낌으로 이해가 됐었다. 처음엔 두루뭉술한 이야기들이 생기고 그걸 가지고 있으면, 개연성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구성이 생긴다. 다만 영화를 보고 공부하면 구성이 만들어지는 몇 가지 길을 알게 되고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한편 캐릭터는 아이디어라는 느낌이다. 어떤 캐릭터로부터 내가 자극을 받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랄까.


관객2: 감독님에게 정말 좋은 배우란?
김종관: 제게 좋은 배우는, 사실 이건 수시로 바뀔 건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멋있다. 부끄러움이 많건, 어떻건 자기에게 창피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내어주는 사람이 젤 고맙다. 못날 때 못나 보일 줄도 알고. 추함과 아름다움을 같이 보여주는 사람. 배우들, 특히 여배우들은 매 컷 아름다움을 유지시키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부끄러운 부분을 보여줘야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는 사람들. 조금은 못난 부분도 보이고 인간적으로 나를 싱크 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배우들이 좋다.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