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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시네마테크 마스터클래스3] ‘시네마테크는 특별한 곳이고, 이곳에서 영화를 보면 당신도 특별한 사람이다"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특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카르트 블랑슈: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특별전'을 맞이하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 장 프랑수아 로제가 내한했다. 그와 함께하는 세 번의 행사 중 마지막 순서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의 오성지 큐레이터가 패널로 참여하여 장 프랑수아 로제와 함께 시네마테크에 대해 논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패널들뿐만 아니라 관객들 각자의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과 견해가 오가던 그 시간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관계자와 함께 하는 오늘은 특별한 자리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2002년에 공식적으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전용공간을 빌어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을 때, 아니 이미 90년대 초부터 비디오테크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 우리에게는 당시 70년의 역사를 갖고 있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정신을 다른 차원에서 한국에서 구현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 때 우리의 질문은 세 가지였다.
첫째, 우리는 영화를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우리가 결코 보지 못한 영화들, 극장에서 필름으로 만나지 못했던 영화들일 것이다. 이름으로만 전해졌던, 교과서에만 등재된, 혹은 결코 교과서에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고다르가 <영화의 역사>에서 앙리 랑글루아를 수태고지의 대천사 가브리엘이나,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처럼 묘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제 영화가 왔다는 것, 또한 그것은 과거에서 온 미래의 영화라는 것을 알려주려 했다. 루이스 부뉴엘, 에릭 로메르, 장 르누아르, 스즈키 세이준, 나루세 미키오, 프리츠 랑, 장 뤽 고다르, 로베르 브레송, 칼 드레이어, 그리고 이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특별전에서도 상영된 필립 가렐, 장 으스타슈의 영화들이 2002년에서 2003년 사이에 소개되었다. 간헐적인 상영이나 몇 작품의 소개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그것도 회고전과 특별전의 형태로 작가들의 가능한 작품들을 수급해, 작품들의 관계의 역사를 통해 불타는 필름의 새로운 영화사를 구성해보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영화가 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쉽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우리의 활동은 영화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둘째, 우리는 과거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한국영화문화, 그리고 새로운 영화관객들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90년대 잠시 풍요로웠던 영화문화의 시대가 막 끝나고 있던 시대, 우리는 극장에서 새롭게 영화비평문화의 활력을 만들어보려 했다.
셋째, 우리는 처음부터 작은 시네마테크의 영화관을 영화역사의 박물관, 혹은 도서관으로 생각했고, 새로운 영화의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인들을 위한 집이 아니라, 영화를 위한, 영화 역사를 위한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특정한 시대의 영화를 결정짓는 요인 중의 하나가 영화를 보는 새로운 방식과 장소라 생각했다. 새로운 관람환경의 변화, 영화관의 변모에 따라 영화 또한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질문이 제기됩니다. 더 이상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이 특권화 될 수 없고, 도처에 영상이 범람하고, 어디에서든 영화를 볼 수 있을 때 영화에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영화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장소적 질문으로 전환했고 영화의 집, 새로운 영화의 박물관으로서 시네마테크를 생각했다.
시네마테크는 예술의 박물관이자, 영화역사의 박물관이자 동시에 현실의 박물관이기도 하다. 진정한 기억은 과거의 어떤 사실을 고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기억이 떠오르게 된 장소를 표지하는 것, 발굴되고 탐색되었던 지층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듯, 우리는 시네마테크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영화 역사의 기억의 장소가 되길 원했다. 이 세 가지 소망은 여전히 우리가 숙지하고 있는 문제로 남아 있으며, 시네마테크는 여전히 우리의 아름다운 근심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한정된 예산, 제한된 공간, 정치적 관료적 외부적 간섭 안에서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고, 미래는 여전히 석연치 않다. 그러나 시네마테크의 설립 초기의 영혼은 여전히 이 극장에 남아 있고, 우리는 이 일들이 사라지기 쉬운 영화의 생명만큼이나 약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지속될 것을 믿고 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래서 특별하다. 우리는 가장 모범적인 시네마테크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관계자와 함께 시네마테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장 프랑수아 로제(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 즉 필름을 보관한다는 문제는 유성영화가 무성영화를 대체해가던 30년대에 굉장히 중요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에는 엄청난 기술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영화 프로듀서들이 무성영화는 이미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고 필름들을 내다버리기 시작했다. 모든 무성영화가 산업 영역에서 삭제되었고, 장엄한 규모로 파괴되어갔다. 그 결과, 필름을 파괴로부터 보호한다는 문제는 30년대 세계 각지의 젊은 영화 애호가들에게 굉장히 긴박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앙리 랑글루아, 장 미트리, 나중에 감독이 된 조르주 프랑주 등은 필름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제작사들을 돌며 필름들을 가져오거나, 심지어 쓰레기통에서 주워오는 방식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은 영화가 예술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으며, 지켜져야 하는 예술의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모든 예술의 형식은 각자의 박물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화의 박물관 역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영화의 박물관을 만듦으로서, 영화를 예술의 한 형태로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36년에 창립되었는데, 이는 세계에서 최초로 생긴 필름 아카이브 중 하나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스웨덴에도 시네마테크가 생겨났고, 미국의 MoMA에도 관련 부서가 생겨났다. 세계 각지에서 빠르게 수많은 필름 아카이브가 개설되었으며, 그 이듬해인 1937년에는 FIAF라고 불리는 국제필름보관소연맹이 창립되었다. 필름 아카이브의 영년이자 시네마테크의 영년인 이 시기는 일종의 첫 번째 황금시대였다고 생각하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게는 분명한 황금시대였다. 개척자들의 시기, 영화를 보존하겠다는 목표와 영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개척자들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상영을 시작했던 시기는 두 번째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40년대 말경부터 시네필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영화 애호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랑스의 시네필리아를 탄생시킨 요인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리베트, 로메르, 샤브롤, 고다르, 레네 등의 젊은 평론가들은 그리피스, 채플린, 무르나우 등의 무성영화의 고전들을 포함한 각국의 명작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세대의 평론가들은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바로 ‘누벨바그’였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영화학교가 없었다. 그들의 영화학교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였다. 그러므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시네필 영화감독의 첫 번째 세대를, 정확하게는 의식적으로 시네필릭한 영화감독을 최초로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60년대에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국가 간의 관계에 중대한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민간 기관이지만, 운영을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했다. 랑글루아는 대단히 훌륭한 관장이었고, 대단히 훌륭한 프로그래머였지만 훌륭한 재정 관리자는 아니었다. 정부는 그의 재정 운용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68년 무렵 그를 해임하고 조금 더 친관료적인 인물로 그 자리를 대체하려고 했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거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당시 가장 중요했던 영화인들은 랑글루아가 복직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프린트를 제공하지 않겠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그 결과 그들은 승리를 거두었고, 랑글루아는 당해에 관장직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이전보다 더욱 적은 예산을 받게 되었다. 그 무렵 랑글루아는 영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는데, 그는 영화를 보관하고 프로그래밍하고 상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와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70년대에 그는 샤이요 궁 안에 영화 박물관을 개관하게 되고, 영화와 관련된 의상과 포스터 등을 연대기적이고 시적인 순서로 전시했다. 랑글루아는 77년에 사망했고, 그 이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5년 전까지 정부와의 불화와 화해를 거듭했다. 91년에 도니미크 파이니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디렉터로 취임하게 되면서 정부와의 관계가 안정되었고, 05년에는 파리 동남쪽에 위치한 새로운 건물로 이사하게 되었다. 지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연간 2000회 이상의 상영을 하는 4개의 상영관, 상설전을 할 수 있는 전시관과 연간 2번의 특별전을 개최하는 특별전시관, 그리고 도서관을 구비하고 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가장 큰 목적은 단 하나다. 영화를 보존하는 것. 영화를 모으고, 보관하고, 상영하고, 영화에 관련된 전시를 함으로써 영화를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동안, 필름을 물리적인 파괴로부터 보존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지만, 제작사들이 필름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최근에 들어서 그런 부분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제 영화는 인스턴트적인 기억으로부터 보존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도 필름 아키비스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지점이 있다. 일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를 보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영화를 모으고, 지키고, 보관하는 일이지 영화를 상영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너무 자주 상영하면 프린트에 무리가 가게 된다. 그들은 영화를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필름을 아카이브 안에 보관해두고 너무 자주 상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랑글루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프린트를 상영하고 다른 시네마테크나 영화제에 대여해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관객들이 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보존되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필름의 보존과 상영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에서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것은 영화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프로그래밍은 일종의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감독의 특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어떤 감독의 특별전을 여는 것은 그 감독이 위대한 문학가나 화가만큼이나 중요한 작가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은 영화와 영화인들에게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정당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은 종종 일종의 내기의 성격을 띠게 된다. 물론 작가의 특별전을 여는 것 외에도 프로그래밍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배우나 테크니션의 특별전을 개최할 수도 있고, 국가별로 영화를 묶어 프로그래밍 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일반적인 주제를 통해 여러 시대와 여러 국가의 영화들을 묶어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우리 프로그래밍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주요한 관점이 미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결국 영화를 예술의 한 종류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역사나 과학, 기술이나 사회적인 부분들을 통해서도 영화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언제나 미학적 접근이 가장 중요하다.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프로그램 큐레이터): 한국영상자료원 역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처럼 전시를 할 수 있는 한국영화박물관이 있고, 3개 상영관을 운영 중이다. 프랑스에는 30년대부터 필름 아카이브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굉장히 척박했다. 70년대에 영화진흥공사가 있었고, 74년에 영상자료원이 창립되었는데 당시에는 상영의 기능 없이 필름보관고로만 운영되었다. 90년대 예술의 전당에 있었을 때 시네마테크 활동을 처음 시작했고 그때까지 전시실은 없었다. 2007년에 상암동으로 이전했고, 2008년에 시네마테크 3개관과 한국영화박물관을 열었다. 아마도 지금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프로그래밍에 대해 고민해왔던 여러 부분이 떠올랐는데, 몇 가지를 여쭤보겠다. 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해지고 접근성도 용이해졌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극장 상영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관객들이 너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이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요즘의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인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
장 프랑수아 로제: 30년대 필름 아카이브 개척자들의 ‘영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시로써는 미친 생각에 가까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산업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 같다. 시네마테크나 필름 아카이브가 처음 생겨났던 3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광경이지만, 이제 DVD나 TV 또는 아트하우스 상영관들에서도 고전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당시의 개척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실천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제 너무 쉽게 너무 많은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 시네마테크의 목표는 이 다양한 영화들 사이에서 특정한 영화들을 선택하고 프로그래밍하여 상영하면서 영화사의 비전을 만들어가고 어떤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시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가져온 영화들은 일반적인 프랑스 영화사를 보여준다고는 할 수 없다. 여기에는 나의 개인적 취향과 프랑스 영화에 대한 비전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를 통해서 이를테면, 장 르누아르와 장 으스타슈의 연결 고리를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영화들을 함께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성욱: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90년대부터 이전과 관련해 수없이 많은 디렉터들이 교체되는 상황을 맞았다. 도미니크 파이니 이후에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이었던 세르주 토비아나가 관장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정부와 대타협을 이루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정부 관료들을 설득해서 그 예산과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었는지, 그러면서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장 프랑수아 로제: 정부가 가장 집착했던 문제는 돈이었다.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초과되지는 않는지 하는 부분이며 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에서 내내 존재했던 문제다. 지금은 운영 체계를 바꾸었고, 정부는 우리의 예산 사용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에는 절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예산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관객1:
프로그램 디렉터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영화들을 발견해내고,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가치를 대중들은 이해하고 공유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런 부분을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장 프랑수아 로제: 우리는 ‘action culturel’이라는 이름의 부서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영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강의나 대담,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한다. 그리고 교육을 위해 마련된 부서도 있는데, 여기서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들과 여러 방면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한다. 프로그래밍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프로그래밍으로 작품이나 영화인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왜 그 이야기를 했는지 설명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대담이나 마스터클래스와 같이 그 설명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또 하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3개월마다 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거기에 실리는 각각의 프로그램에 대한 짧은 글들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성지: 요즘 환경 자체가 디지털로 바뀌고 있다. 여전히 35mm 프린트로 상영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비용이 상당하다. 아까 언급하신 FIAF에서도 2년 전부터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때 시네마테크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장 프랑수아 로제: 디지털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화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로 촬영되고, 디지털로 상영되는 영화를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두 번째는, 디지털화가 보존에 더욱 적절한 방법일 것인가, 오래된 35mm 필름들은 보존을 위해서 디지털로 모두 변환되어야 하는가.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35mm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35mm로 상영되어야 한다. 물론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는 것은 안다. 이 부분에서는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영화가 만들어진 원래의 포맷으로 상영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판본의 35mm 프린트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우리 역시 디지베타나 블루레이로 상영을 한다. 더 나은 선택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김성욱: 시네마테크의 미래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는 비관과 낙관이 교차하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런 공간들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를 위해서 어떠한 준비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들으면서 이 자리를 마감하고자 한다.
장 프랑수아 로제: 내가 그 답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시네마테크의 관장들이 '해마다 관객을 잃고 있으며, 기존 관객들은 나이를 먹고 있고, 젊은 관객들은 고전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사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운 좋게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2005년에 새로운 장소로 옮기면서 새로운 관객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관객을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가장 적절한 방식은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그 프로그램에 대해 가르쳐주고,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왜 이것을 보여주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관객들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객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10대에게 히치콕을 극장에서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분명 다시 극장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관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우리 자신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래야 한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최근 들어 젊은 층은 고전에 관심이 없다, 시네마테크는 일반대중들을 위한 곳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렇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네마테크로 영화를 보러 와야 한다. ‘이곳은 특별한 곳이고, 특별한 영화를 상영하므로 이곳에 와서 영화를 보면 당신도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인식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 관객들을 유지하고 불러 모으는 데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