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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극장 친구들과 예술영화관의 현재를 말하다 - '아트하우스 모모' 편

시네마테크의 극장 친구들과 예술영화관의 현재를 말하다 


2015년, 영진위는 예술영화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이라는 신정책을 강행했다. 독립예술영화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시행된 이 정책은 기존의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의 지원을 중단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기존의 예술영화관 지원 정책이 예술영화관의 공공성을 인정해 극장을 지원하고 그들의 자율적인 작품 선정을 존중한 것과 달리, 신정책은 극장의 자율적 작품 선정을 부정하고 영진위가 선정한 작품을 상영할 때만 지원을 한다는 선별 정책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고, 영진위가 직영하던 독립영화관 인디플러스가 지난해 말 폐관했다. 그리고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은 실패로 끝났고, 여전히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에 대한 지원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에 서울의 대표적인 예술영화관 관계자들과 만나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17년 예술영화관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예술영화관을 공공재로 생각해야 한다

아트하우스 모모



 

관객에디터 지금까지 230여 편이 넘는 예술영화를 국내에 수입, 배급했다. 타르코프스키, 베리만에서 키아로스타미, 타비아니 형제, 누리 빌게 세일란까지 다양하다. 처음 예술영화를 수입, 개봉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수입사도 많고 전보다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오고 있다.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최낙용(아트하우스 모모) 1994년에 수입 개봉했던 작품들은 동시대 영화들보다 영화사 책에 나오는 고전 작품들이 더 많았다. 타르코프스키라든지 몇몇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들, 이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을 중심으로 수입을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동시대의 영화들을 수입했고, 지금은 수입사와 배급사가 많아지면서 한국 관객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그해 나온 중요한 영화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 6개월 정도면 국내 배급이 되는 것 같다.

동시에 아쉬운 부분은, 적절한 대중성이 확보되어야 영화를 수입할 수 있다 보니 미학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거나 정치적인 이슈가 있는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보기 어려워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관객에디터 오히려 예전에는 그런 영화를 수입하기 더 쉬웠다는 건가?

 

최낙용 ‘수입’ 자체는 비슷하지만 개봉하는 건 예전이 더 쉬운 환경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굉장히 많은 예술영화가 들어오는데 관객들이 그 많은 영화를 다 볼 수 없으니 그중 몇 편을 선택하게 된다. 과거 10~20년 전에는 예술영화를 개봉하면 관객들이 그 영화들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개봉 편수가 10배 정도 늘어났는데 관객은 10배 늘어나지 않았다. 당연히 관객들은 취사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예술영화 중에서 비교적 ‘대중적’인 영화들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내용의 영화나 정치적 성격을 띠는 영화들의 개봉을 진행하기가 오히려 힘들어졌다.

 

관객에디터 수입하고 싶었는데 정치적 혹은 미학적 이슈로 인해 들여오지 못한 작품이 있는가?

 

최낙용 당장 생각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영화 수입하는 분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수입사 대표님이 공식적으로 글을 쓰셨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배급하기로 했을 때 바로 계산한 게 ‘이 영화로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볼 것인가’였다고 한다. 켄 로치 정도면 한국에 고정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는데도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입을 수 있는 손해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수입한 건 대단히 놀라운 결정이라 할 만하다.

과거보다 ‘그런’ 영화들이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기 힘들어진 건 사실이다. 예술영화 수입, 배급 역사가 20년 정도 지나면서 과거에 비해 모든 비용이 상승했다. 판권 비용도 상승했고, 마케팅 비용도 상승했다. 영화를 개봉했을 때 손해를 보지 않을 확률이 낮아졌다.

 

관객에디터 씨네큐브에서 아트하우스 모모로 이전한 게 2008년이니 올해로 9년이 지났다. 대학 내 영화관으로는 처음이었는데, 아트하우스 모모로 이전한 후 운영의 어떤 부분에 역점을 두었나.

 

최낙용 아트하우스 모모는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 내 상설영화관이었다. 서구에는 대학 내 영화관들이 지역영화관으로서 기능한다.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지역으로부터 사랑받는 영화관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 역시 학교 안에 거점을 둔 채 지역 주민들도 찾는 영화관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역별로 예술영화관이 생기면 지역 도서관에 가는 것처럼 주민들이 영화를 볼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대문구의 시민사회단체와 영화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서대문구 노동인권 영화제”를 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소통하면서 지역의 영화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학교 안에 있으니 학생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특히 학교와 공동으로 프로그램 기획을 많이 시도했다. 지난 8년간 이 두 가지 목표를 계속 추구했다.

 

관객에디터 현재 이화여대와 함께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낙용 가장 높은 수준으로 협력했던 것이 2014년 정규과목 편성을 한 것이었다. 아트하우스 모모와 이대 교양교육원의 공동 기획이었고, 그때 여성영화제도 같이 했었다. 강의 이름은 “여성의 눈으로 본 세계영화사”였다. 남성의 시각과 다른 시각으로 영화사를 보고 싶었다. 마침 교육부에 지원제도가 있어서 예산을 받고 진행을 했다. 그런데 강의가 개설됐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폐강됐다. 강의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던 것 같다. 좋은 감독들을 섭외하려다가 해외에 체류하던 한국계 감독들을 초청했는데 그분들이 영어 강의를 한 거다. 처음에 흥미를 보이며 수업을 찾았던 학생들이 중간에 다 나갔고, 결국 수강인원이 적어 폐강됐다. 아쉬움이 남지만 강의를 할 수 있는 틀을 만든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극장이 있는 학교였기 때문에 한 주는 강의실에서 강의하고 한 주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모 영화학교”를 이대 인문학연구원과 함께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언론홍보영상학부와 특정 주제로 영화제를 기획하는 등 협력 기회를 가지려 한다. 북한여성영화제 같은 기획을 계속하고 있다. 학교와 극장이 유용한 파트너쉽을 맺는 사례를 보여주고자 한다.

 

관객에디터 수업 내용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최낙용 강의를 진행하는 감독들에게 미리 목록을 받아 영화를 상영했다. 그중에는 한국에 수입이 안 된 영화도 있었다. 아무래도 학교 정규과목으로 개설된 것이었기 때문에 학생들만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학교 측과 사전에 상의했다면 영화 상영은 외부에 개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보기 쉬운 영화들이 아닌데,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외부 관객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영화사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초창기 영화사를 보면 당시 활동하던 여성 감독들에 대한 기록이 꽤 많다. 지난해 여성영화제에서도 초기 프랑스 여성 감독의 작품들을 상영했다. 많은 연구자가 여성의 눈으로 본 영화사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들을 모아서 강의로 만들어보려 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계속 갖고 있고, 그런 의지를 가진 파트너와 이야기만 잘 된다면 또 그런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관객에디터 대학이라는 특수한 공간 안에서 극장을 운영하는 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최낙용 학교의 아카데믹한 역량과 예술영화를 결합해 새로운 영화 공부의 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극장 운영자로서 느끼는 단점은 극장이 학교의 부속기관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영화관이 아니라 학생들만 오는 특별한 영화관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극장의 정체성을 알리고 인지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했다.

 

관객에디터 ‘모모 큐레이터’나 팟캐스트 운영, 모모 영화학교 등의 프로그램이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최낙용 모모 큐레이터는 올해 8년째 운영 중이다. 한시적인 의미의 자원활동가보다 더 많은 범위의 일들을 한다. 1년 동안 활동하면서 여러 기획을 준비한 다음, 모모의 기획자처럼 활동하는 게 최종 목표였다. 적극적 관객이면서 모모의 운영자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모모 큐레이터분들이 모모 영화학교와 여러 영화제, 모모 팟캐스트와 같은 기획에 참여했다. 관객들이 극장이 차려주는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운영 주체가 되는 과정을 만들어나가려 한다.

 

관객에디터 대학 내 극장이다 보니 젊은 관객이 많을 것 같은데, ‘시니어 큐레이터 기획전’을 진행해 중년 관객을 끌어들이려 시도하기도 했다.

 

최낙용 과거 예술영화의 주 관객층은 주로 2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다. 최근 4~5년 사이에 새로운 관객층이 만들어졌는데 바로 50대 이후에서 60대 초반의 여성 관객이다. 그분들은 문화적 욕구가 있다. 그리고 70년대에 청년 세대였던 분들인데, 한국에서 처음으로 뚜렷한 ‘세대문화’를 가졌던 분들이기도 하다. 그분들이 의미 있고 좋은 영화를 찾으면서 유의미한 예술영화 관객층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러면서 관객 구성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모의 경우 낮 시간대는 50~60대 관객들이 훨씬 많아졌다. 기존 관객과 비교하면 비율이 5:5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기획이 대체로 젊은 층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50~60대 관객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처음으로 작년 하반기에 모모 시니어 큐레이터를 모집했다. 그분들이 현재 11분 정도 된다. 대한민국 관객 기획자 중에 시니어 그룹은 처음인 것 같다. 이분들이 기획해서 영화제를 한 번 개최했는데 아직 발전시킬 부분이 많다. 2017년, 2018년에 어떤 역할을 할지 흥미롭게 기대하고 있다.

이건 아트하우스 모모뿐 아니라 일반적인 예술영화 관객의 변화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씨네큐브, CGV 압구정 같은 곳에도 문화적 욕구와 경험이 있는 50~60대 관객들이 전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관객층이 단순히 만들어진 기획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을 직접 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시니어 큐레이터 제도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영화를 보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수 있다. 같은 세대분들이 관객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그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 내주면 좋겠다.

 

관객에디터 혹시 과거의 예술영화 관객이 시간이 흘러 50~60대 관객이 된 것은 아닐까?

 

최낙용 그건 아닌 것 같다. 20년 전의 젊은 관객분들이 계속 영화를 보고 있다면 아마 지금은 40대가 많을 것이다. 짐작을 해보자면, 30대에 결혼하고 육아 등 가정일 때문에 문화생활을 할 여유가 부족했다가, 50대로 접어들며 다시 여가가 생기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이분들은 세대문화에 대한 경험이 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나은 문화에 대한 집단적 욕구가 있고, 그게 영화와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극장에 못 오시는 분들도 50~60대로 진입하면 시니어 관객층이 더 두꺼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뿐 아니라 문화 소비의 주력은 50대 이후의 여성분들, 그리고 일부 남성분이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지금의 20대 중후반 관객분들은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탓에 줄어든 것 같다.

 

관객에디터 영화를 상영할 때 ‘예술’영화관으로서 아트하우스 모모가 중점을 두고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최낙용 당대성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술영화 관객층이 다변화되면서 예술영화관들의 프로그램이 연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소재가 정치적이거나 반사회적일 경우, 그리고 급진적인 미학적 시도를 하는 영화들은 피해 가려 한다. 외화든 한국영화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영화를 상영하기에 앞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먼저 생각한다. 외화 중에서도 미학적 시도가 새로운 영화들은 상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흥행이 안 된다고 판단해도 꼭 봐야 할 영화는 상영하려 한다. <토리노의 말>처럼 단독 개봉을 하는 경우도 있다. 동시대 미학적 최전선에 있는 영화들은 놓치지 말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 독립영화 같은 경우에도 당대의 주요한 소재와 이슈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 <다이빙벨>, <JAM DOCU 강정>, 앞으로 상영할 <7년-그들이 없는 언론>까지 최근에 논란이 많이 된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상영했다. 미학적인 부분, 그리고 시대의 첨예한 문제들은 반드시 가지고 가면 좋겠다. 동시에 고전 반열에 들 만한 클래식한 영화도 연간 한 번 이상 소개하려 한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늘 하는 일일 텐데, 영화사의 정전을 상영하는 것이다.

 

관객에디터 외부 단체와 공동으로 기획전을 열 때 고려하는 점은 무엇이 있는가?

 

최낙용 우리 극장은 영화제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중 정식 개봉이 힘든 영화들을 상영하는 기획이 있다. 아랍영화제, 스웨덴영화제 등이 그렇다. 아랍 국가나 스웨덴의 영화들은 한국에 수입이 잘 안 되는 편이다.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보면 좋은 영화들이 굉장히 많은데 해외 다큐멘터리들은 잘 개봉이 되지 않는다. 예술영화관으로서 많은 영화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은 영화제를 통해서라도 상영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하려 한다. 또한 현재 어떤 공동체가 처한 중요한 문제를 다룬 영화들의 경우에는 어떤 소명 의식을 갖고 가급적 상영을 하려 한다. 난민영화제 같은 특정 소재의 영화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관객에디터 공동 기획전을 할 때 외부 단체와 모모 중 누가 먼저 제안을 하는지 궁금하다.

 

최낙용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나 아랍영화제의 경우에는 그쪽에서 먼저 제안을 주었다. 스웨덴영화제 같은 경우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따로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전작 수입해서 상영할 기획을 가지고 있었다. 고민하던 중 스웨덴대사관과 협의하면서 자연스레 기획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가 만들어질 때는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안 본다는 인식이 있었다. 영화제 측과 이야기하면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관람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아랍영화제도 처음에는 연간 행사가 아니었는데,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간 행사로 발전시켜 나갔다.

 

관객에디터 최근 ‘재개봉’이 잦다. 아트하우스 모모도 지난해 <블루벨벳>, <바그다드 카페>(디렉터스컷), <빌리 엘리어트>, <베티 블루 37.2> 등을 상영했다.

 

최낙용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극장에서 만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관객과 현재의 관객이 만나면서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책을 재독, 삼독하듯 영화도 반복해서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무분별할 정도로 과거의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상영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 영화를 지금 이 시기에 다시 보아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과거에 개봉한 영화를 왜 다시 극장에서 상영해야 하는가? 우리는 작년에 타르코프스키를 상영했었다. 사후 30주년을 기념하며 학술 행사와 함께 영화를 상영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기획전과 비슷한데, 어떤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재개봉은 상업적 목적이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이윤을 위해 재개봉한다. 새로운 영화를 배급하고 홍보하는 건 일정 비용이 드는데,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영화의 경우에는 그 비용이 안 들기 때문이다. 최근의 재개봉 열풍에는 다소 왜곡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당대의 좋은 영화들, 보여줘야 할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묻힐 수 있다. 영화는 당대성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재개봉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관객에디터 시니어 관객층의 선호도와는 관계가 없을까?

 

최낙용 없다고 생각한다. 시니어들의 회고보다는 단지 비용을 최소화해서 이윤을 재창출하려는 자본의 욕망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국의 독립영화들과 외국의 좋은 영화들이 있는데 재개봉하는 영화들이 극장을 잡아버리면 다른 영화들을 볼 기회가 줄어든다. 적어도 예술영화를 오래 해왔던 분들이라면 신중해야 한다.



 

관객에디터 예전에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작품과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품의 종류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미술 분야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영화관에서 개봉하기도 한다.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낙용 그런 경향으로 가는 건 사실이다.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박물관에서는 과거의 문화유산을, 영화관에서는 영화만 보여준다는 구분은 이제 사라지는 것 같다. 문화예술뿐 아니라 타 분야에서도 통합, 융합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사회 전체의 흐름이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창작하는 쪽에서도, 향유하는 쪽에서도 여러 영역이 뒤섞이고 있지만 공간 본래의 고유성은 간직할 것이라 생각한다.

“음악 들려주는 영화관”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적이 있다. 매달 한 번 정도 음악 하는 분들이 와서 마치 콘서트홀처럼 연주회를 여는 거였다. 영화는 상영하지 않았다. 비슷한 기획으로 “책 읽어주는 영화관”도 있었다. 이대에 교환교수로 왔던 르 클레지오가 그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해서 극장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기획이지만 그런 욕구들이 있을 때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건 사실이지만 영역을 넓혀가는 추세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화를 베이스로 해서 다른 영역들에 접근해갈 수 있다. 건축영화제도 그런 흐름 속에서 기획했다. 포럼도 같이 열었었는데, 세상을 통합적으로 알고 싶다는 욕망이 구체화한 것이었다. 각 공간의 생존 전략과 맞물린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더는 특정한 것만 보여줘서는 관객들이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의 욕망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관객에디터 박찬경 감독처럼 미술계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의 작품이 영화관에서 정식 개봉을 하기도 하고, 차이밍량은 자신의 작품을 영화관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공개하기도 한다. 미술의 영화화와 영화의 미술화 중 어느 쪽이 더 파급력이 있을까?

 

최낙용 <만신>은 처음에 전시용 영상으로 시작했고, 그 작업물을 확장해서 영화로 개봉했다. 차이밍량 감독은 아예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당대의 예술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하면 영화가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생존의 전략도 깔린 것 같다. 차이밍량 감독이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건 기존의 방식으로는 관객이 더 안 오기 때문인 것도 있다. 그럴 때 예술가가 택할 수 있는 방향 중 하나는 새로운 관객과 만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인 방향이라 본다. 임흥순 감독의 작품은 미술관에도 가고, 비엔날레에서 상도 받는다. 예술가들이 계속 작업을 하기 위해서라면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관객에디터 현재 아트하우스 모모 홈페이지를 보면 “상영 영화의 화면비를 고려한 전문적인 마스킹”을 언급하고 있다. 멀티플렉스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염두에 둔 문구로 보인다. 오랫동안 새로운 영화를 발굴, 수입, 상영해온 입장으로서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트하우스 모모의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낙용 기본적으로 창작자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형태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감독은 2.35:1, 어떤 감독은 1.85:1 등 설정해놓은 게 있을 때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대한 창작자의 의도를 살리는 게 극장의 기본적 예의라고 생각한다. 멀티플렉스와 비교했을 때의 경쟁력이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극장을 처음 지을 때 사운드 시스템에도 비용과 노력을 굉장히 많이 들였다.

 

관객에디터 현재 운영 중인 예술영화관들은 상영 전 기업 광고를 하지 않고, 극장 내 음식물 반입을 제한하는 등 상업성과 거리를 두면서 관객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는 운영 방침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예술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상영 정보를 확인하고 그 시간에 맞춰 극장에 가야 한다. 이렇듯 예술영화관에서 제공하는 영화 관람의 체험이 멀티플렉스에서의 경험과 차별화되는 지점들이 있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이런 성격을 더 차별화시키려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노력에 한계를 느낀 적은 없는가?

 

최낙용 영화를 만든 창작자들을 좀 더 존중하는 관람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처음 시도한 게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게 하는 거였다. 보통의 상업영화관들은 엔딩크레딧이 나오자마자 불을 켜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나가버린다. 우리는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다음 불을 켰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반발이 심했다. 사고가 난다는 거다. 하지만 굉장히 노력해서 어떤 사람들이 그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아보기를 관객들에게 권유했다. 그것이 심혈을 기울여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는 영화 관람의 쾌적함과 다른 관객들의 집중을 위해 물 외에는 음식물 반입을 금지했다. 적어도 예술영화의 경우에는 다른 예술 장르를 감상할 때와 같은 태도로 영화를 보면 좋겠다. 앞으로도 더 강화하고 싶은 부분이다. 

최근에는 이런 문화가 많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예술영화관 운영자들의 고민 중 하나다. 심지어 영화 상영 도중에 핸드폰을 보기도 하는데 창작자와 다른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집에서 TV,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건 다른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특정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특정한 ‘감정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2시간만큼은 서로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

 

관객에디터 2008년 아트하우스 모모가 개관할 당시 대학의 상업화를 우려하고 비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건 지금 아트하우스 모모가 있는 ECC에 대한 우려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때 모모는 스타벅스 등 외부 자본이 운용하는 다른 학내 시설들과 예술영화관의 차별점을 부각했다. 예술영화관의 비상업적, 공리적 성격을 주로 홍보했었다. 

 

최낙용 모모가 처음 이대에 들어섰던 당시에는 예술영화관에 대한 인지도가 지금보다 높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부 학생들이 우리 극장을 다른 영화관들과 같은 상업 시설로 단정 짓기도 했었다. 역설적으로 2008년 이후 멀티플렉스가 자리를 잡고 ‘CGV 아트하우스’ 등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예술영화관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7년 현재, 예술영화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달라졌다. 누구나 독립영화에 대한 개념은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극장 운영 방침을 특별히 바꾸지는 않았다. 우리는 예술영화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려 한다. 

 

관객에디터 2017년 현재 대학가의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한때 인기가 높았던 ‘일본 인디영화’는 예전처럼 많이 개봉하지 않는다. 예술영화에 대한 대학가의 취향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나?

 

최낙용 그 문제는 나도 모르겠다. 2008년 즈음만 해도 일본 인디영화를 유행처럼 많이 보았다. 지금은 취향이 달라진 것인지, 놀랄 정도로 일본 영화를 보지 않는다. 최근 젊은 관객들은 감동을 주며, 스토리가 뚜렷하고, 이국적 풍경을 가진 영화에 대한 선호가 뚜렷한 것 같다. 물론 완성도도 높아야 한다. 최근 작품 중에는 <라라랜드>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인 <라라랜드>가 과연 ‘예술영화’인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지금 관객들의 취향이 이런 영화들에 국한되다 보니 할리우드와 프랑스 등을 제외한 소위 ‘주변 국가’들의 영화는 소외된다는 것이다. 동유럽, 남유럽, 아랍, 아프리카, 아시아의 영화들은 잘 보지 않는다. 아시아 영화만 봐도 좋은 영화가 많지만 그중 일본과 중국 영화를 제외하면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 예술영화 관객들의 편식이 굉장히 심하다.

 

관객에디터 <라라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렇다면 ‘예술영화’라는 용어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하다. 

 

최낙용 일단 국내에는 세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다양성 영화’가 있다. 아마 다양성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일 것이다. 과거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예술영화 지원 사업을 했는데 ‘예술영화’가 학술적 개념이라서 그 범위가 모호했다. 그래서 실무적인 차원에서 ‘다양성 영화’라는 개념을 개발했다. 기존의 예술영화들에 국내 상영이 어려운 영화들, 이를테면 애니메이션이나 특정 국가의 영화까지 포함한 독특한 용어가 되었다. 디즈니 영화가 다양성 영화에 포함된 적도 있었다. <라라랜드>는 현재 거의 300개 관에서 상영 중이지만 여전히 다양성 영화로 홍보된다. 이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는 태생적으로 모호하며, 오직 행정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급적 폐기되는 게 좋다고 본다. 

특히 다양성 영화라는 말이 사용되면서 ‘독립영화’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지고 있다. 실제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뜻을 포함한 중립적인 용어인데, 한국에서는 반사회적, 반정부적인 영화라고 오해받는다. 그래서 영진위 같은 행정 부서에서 독립영화 대신 다양성 영화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고 본다. 이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예술영화’, ‘독립영화’라는 개념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맞춰 정책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관객에디터 아프리카나 남유럽, 아시아 국가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 굉장히 힘들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도 지금은 굉장히 유명하지만 미술계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기에 뒤늦게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생소한 지역의 영화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최낙용 우리나라에서는 영상문화에 대한 정보 교류와 담론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잡지나 언론들은 운영 자체가 어려우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에 관해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독자는 생소한 지역의 영화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결국 학자들을 통해서, 또는 영화제를 통해서만 이런 정보를 알 수 있는데 그것도 잘 공유되지 않는다. 누군가 외국의 영화제에 가서 어떤 영화를 보고 감탄하지만 그 경험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를 뿐이다.

그렇기에 영진위와 같은 기관에서 이런 정보를 수집, 수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영진위에서 이미 한 달 단위로 책을 내고 있다. 만일 소수의 통신원을 해외로 보내서 한국에 소개되지 않는 영화제에 다녀온다면 그것을 전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랜 기간 쌓이면 예술영화에 대한 정보가 축적될 것이라 생각한다. 경영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언론이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을 공공 기관이 진행하는 게 어떨까 한다. 물론 지난 9년간 영진위에서 이런 정책의 통과 자체가 어렵긴 했다.

 

관객에디터 예술영화관이 처한 현안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영진위의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후 어떤 대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최낙용 이 사업에 대해서는 2015년부터 골격에 문제가 많다고 예술영화관, 예술영화 수입배급 측, 독립영화 진영에서 많은 반대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에 1년간 시행이 되었는데, 질문의 표현대로 실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책은 몇몇 선정된 영화들을 ‘프라임 타임’에 2주간 의무적으로 상영하면 관객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예상 하에 시행되었다. 이 선정된 영화들을 많은 관객이 볼 것이란 예상이었다. 그러나 시행 결과 오히려 관객이 줄었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사실 검토 단계에서부터 이미 실패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판단되었다. 이 정책의 목표 자체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영화에 대한 지원 사업이면서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어야 하는데, 궁극적으로 이 정책은 극장의 프로그램 편성의 자율권을 침해했다. 지원 주체가 선정한 영화를 상영하라는 통제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극장의 프로그래밍 권한이 회복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양적으로 성장하고 질적으로도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독립영화 제작 지원 사업이 활발해져야 한다. 동시에 극장의 유통 관련 지원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단순히 이 실패한 사업을 취소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독립영화의 창작, 유통, 관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예술영화를 공공의 영역으로 대하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도 동반되어야 한다. 지원이 있어야 좋은 예술영화를 볼 수 있고, 그래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진위 한 해 예산 가운데 예술영화 지원 비율이 높지 않다. 주로 예산은 산업 지원 쪽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이제 예술영화의 지원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관객에디터 멀티플렉스의 예술영화 단독 상영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멀티플렉스 규제에 관한 법안, 즉 “영화(투자)배급·상영 겸업 금지법”이 제안되기도 했다. 이 두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낙용 과거에는 극장 체인별로 ‘단독 상영’이란 게 있었다. CGV 단독 상영, 롯데 단독 상영, 메가박스 단독 상영 등. 그러나 예술영화는 ‘CGV 단독 상영’이라 할지라도 나머지 예술영화관들에서 상영이 가능했다. 그런데 2016년에 두드러진 현상은 이제 다른 예술영화관에서도 단독 상영작을 상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묵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각 예술영화관의 프로그래밍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예술영화관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 역시 나서서 반대했고, 앞으로도 반대할 것이다.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반복된다면 영화계 차원이 아닌 독점 방지 차원에서라도 근절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이미 ‘영화 배급·상영 겸업 금지 법안’을 제안했다. 이는 한국영화제작협회를 비롯해 영화계 전반에서 굉장히 오래전에 제기했던 문제다. 상영과 배급의 분리는 CJ나 롯데, 메가박스 등 극장을 운영하는 곳이 영화 투자까지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상업적 입장에서 보면 쉽게 해결되기 힘든 문제이다. 하지만 영화계 공통의 견해는 한국 영화산업이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워낙 큰 문제라서 실행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단순히 하나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의 토론과 설득이 필요하다. 1940년대 미국에서는 이미 법으로 통과가 됐다. 그 당시의 미국과 2017년의 한국은 상황이 다르기에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아트하우스 모모 역시 배급과 상영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규모 자체가 산업에 영향을 줄 만큼 거대하지 않다. 이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얻기도 힘들다. 우리가 상영하려는 영화를 다른 곳에서 수입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가 직접 수입, 배급하는 영화의 수도 많이 줄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2010년까지는 연간 10편 내외를 수입했지만 2016년에는 3~4편 정도밖에 수입하지 않았다. 물론 겸업 금지안이 충분한 소통을 통해 통과된다면 수입, 배급과 상영을 분리할 생각이 있다.

 

관객에디터 여전히 등급분류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예술영화관만이라도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상영하는 안을 이야기한 지도 몇 년 전이다. 예술영화관의 사회문화적 지위와 관련해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최낙용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단 등급분류 자체를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예술영화관 내부에서 도덕적, 윤리적인 틀을 삭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율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 심의 기구에서는 소재는 물론 정치적, 성적, 문화적으로 파격적인 수준의 영화는 금지한다. 이들이 정해주는 기준을 따르다 보니 한국에서는 영화제에서만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다. 적어도 예술영화관만이라도 제약조건 없이, 모든 영화를 볼 수 있게 허용해달라는 것이 등급분류 문제의 핵심이다. 예술의 자율적 영역을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심의 기준뿐 아니라 시민들의 영역에서도 이 문제를 급진적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그렇기에 창작자들은 물론이고 이를 지지하는 관객들이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 김곡, 김선의 <자가당착>이 하나의 케이스다. 이 영화는 영화제에서는 상영되었지만 심의 통과가 힘들었다. 이는 국가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관객들이 본인이 관람 여부를 직접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등급분류는 문화적 상상력을 해치는 행위다.

결국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들이 공공의 영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들을 언제까지나 사적 영역에만 남겨둘 수는 없다.

 

관객에디터 디지털, 인터넷, 모바일의 등장이 전통적인 극장의 영화 관람과 영화 상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디지털 상영이 예술영화관의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최낙용 영화를 보는 행위, 영화 컨텐츠를 소비하는 행위의 경로가 굉장히 다양해졌다. 그런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감정의 공동체로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생판 모르는 남과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극장이 아닌 곳에서 영화를 보는 건 혼자 하는 관람이다. 

적어도 예술영화관에서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로 인해 관람 형태나 경험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보지 않는다. 여전히, 특히 예술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은 영화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기보다는 그 시간 동안 온전히 어떤 생각과 경험을 확인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상영은 예술영화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과거에는 오래된 영화들의 필름을 확보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러나 디지털 상영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아카이빙이 전보다 쉬워졌다. 상영본의 확보, 상영, 이동과 통관이 쉬워졌기에 필름 상영보다 풍부한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졌고 비용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운영에 도움이 된다.

물론 영화 체험의 차원에서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관객들 가운데는 필름을 선호하는 분도, 디지털을 선호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상영본을 확보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본다. 

 

관객에디터 최근 예술영화관 관객들의 관람 패턴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낙용 예술영화관을 찾는 새로운 관객들은 비교적 ‘편안한’ 예술영화를 선호한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미학적으로, 혹은 소재 면에서 ‘불편한’ 영화가 배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예술영화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지기에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를 ‘20대의 젊은 관객’으로 본다면 한마디로 기대가 높다. 작년에도 누벨바그에 대한 영화학교를 기획했다. 아무래도 60년대 영화라서 강의당 20명 정도 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80명이, 많을 때는 100명이 왔다.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이 20대 중후반의 젊은 세대에 속했다.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가 근본적인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20, 30대와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들은 영화에 대한 감수성도 다르지만 현상을 새로 바라보고, 공동체를 재조직하는 능력을 갖췄다. 촛불집회에서도 젊은 세대가 사회에 개입하는 방식에서 성실함과 진지함이 드러난다. 이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기획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보고 있다.

 

관객에디터 외국에서도 폐관하는 예술영화관들이 늘었다고 한다. 앞으로 예술영화관의 미래가 어떨 것이라 생각하고 또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최낙용 낙관도 낙담도 하지 않는다. 기계들이 인간을 대신할 미래에서도 영화처럼 감정과 지적인 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필요할 것이라고 보는데, 예술영화는 특히 이런 지점이 강화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의 개념에서 우리 사회가 예술영화를 키워나갈 수 있다면 미래가 밝다고 본다. 물론 이 과정이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희망을 품고 있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아까 언급한 상영과 배급의 분리라든가, 전국의 모든 영화관에 예술영화관을 필수적으로 한 관씩 만든다든가 하는 제도적 측면도 포함된다. 이처럼 여러 가지 도전 과제들이 있지만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고 본다.

아트하우스 모모의 생존 전략은 관객의 주체화라 할 수 있다. 영화관의 운영을 관객들과 함께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같이 해결하려는 목표가 있다. 철저하게 관객과 같이한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주체로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 

 

관객에디터 수입, 배급한 영화들 가운데 어떤 영화에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나.

 

최낙용 흔히 이럴 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이다. 백두대간에서 초기에 수입한 여러 외화 중 하나이자, 백두대간과 한국 예술영화의 시작을 알린 영화가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다. 지난 21주년 영화제 때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도 봤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지루하면서도 영감을 준다. 특히 국내 최초로 극장에서 상영된 된 예술영화이자, 예술영화를 대중적으로 알린 영화라는 점에서 <희생>을 꼽겠다.

 

관객에디터 지난해 5월, “백두대간 21주년 영화제”를 개최했다. 백두대간은 1994년에 창립해, 1995년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시네마텍 운영을 시작으로 시네큐브를 거쳐, 아트하우스 모모까지 이어져 왔다. 가장 오랫동안 예술영화관을 운영해온 주체다. 지난 21년간의 예술영화 수입과 예술영화관 운영을 되돌아보면 어떤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나?

 

최낙용 지금까지는 예술영화의 저변을 넓히고 관객층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예술영화를 공공성의 영역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예술영화관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은 영화 교과서에 나온 영화들을 정식으로 국내에서 볼 기회가 전무하다는 문제 인식에서 시작됐다. 당시에도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청년들,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예술영화를 보려면 외국에서 유학하는 지인이 보내준 비디오테이프에 직접 번역한 자막을 입혀서 복사를 해야 했다. 테이프 하나를 계속 복사하다 보면 컬러가 흑백이 되기도 했다. 사설 시네마테크인 ‘영화공간 1895’와 ‘문화학교 서울’을 거치면서 극장에서 제대로 된 상영본으로, ‘오리지날’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 해외의 주요 예술영화를 수입해서 극장에서 보고, 관객들과 관람 문화를 만들고, 이 관객들이 좋은 영화를 본 다음 한국에서 좋은 영화를 만드는 능동적 관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객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 자료실도 운영했다. 그러면서 21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그사이에 다른 예술영화관들도 많이 생겼고 대기업 멀티플렉스들도 생겼다. 이제는 일상적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좋은 예술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 큰 변화다. 이 20년은 예술영화의 외연을 확장해 온 역사였다.

물론 여전히 특정 소재, 국가, 경향성의 영화에 편중된 예술영화 내부의 양극화도 존재한다. 우려스럽다. 지금 예술영화 관객들의 영화 편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다. 한때는 중국의 감독들, 예컨대 지아장커를 비롯한 6세대 감독들, 일본의 독립영화 감독들의 영화가 일부 관객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서유럽과 미국에서 만들어진 극소수의 예술영화들만 선호한다. 이 편중의 극복이 예술영화 수입, 배급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애초에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할리우드의 영화만 유통되는 구조를 벗어나 다른 좋은 영화들로 성찰하고 경험하고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편식이 심해지는 역설이 일어났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술영화관과 독립영화관을 공공재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유사 공공재의 예로 책을 들 수 있다. 국가의 지원을 받은 번역원은 번역이 힘든 국가의 책이나 고전서들을 번역한다. 시장성의 문제로 출판되지 못하지만 제대로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시장에서 경쟁하기 힘든 예술영화들은 공공재의 개념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지금은 어딜 가도 도서관이 있다. 내가 어릴 때는 도서관 자체가 귀했는데, 지금은 누구나 비교적 쉽게 책을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영화도 누군가 보려고 할 때 볼 수 있다면 문화적으로 풍부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시민들마저 예술영화 역시 개인이 수입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결국 지원을 통해 예술영화를 공공 자산으로 삼고, 관객들의 편식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때 한국에서도 방글라데시와 아랍 에미리트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트하우스 모모도 한 회사로서, 수입·배급·상영의 주체로서 끊임없이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l 백지원, 이호정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