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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네마테크에는 지속적인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이제는 행동이다"
2010년 3월 2일 화요일  신선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나는 민간이 운영하는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제집처럼 드나든 지 만 5년차에 이르는 열혈관객(?)이다. 비디오테크 시절부터 시네마테크에서 영화와 조우해온 이들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 시네필에 지나지 않지만, 게다가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그곳에서 본 수많은 영화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놓지도 못하지만 그 공간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십분 짐작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해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 보는 행위가 내 삶의 자양분, 양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 보는 행위가 좋아서, 그 시공간의 느낌이 마냥 좋아 자주 찾았던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놀이터이자 마음의 위안처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관객들, 영화의 친구들을 시네마테크에서는 손쉽게 만난다. 그래서 나는 내 머릿속에서 영화가 망각될지언정 계속 그 행위를 지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쭉 그러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그런데 최근 극장 안팎이 시끄럽다.
조용히 영화를 보며 곱씹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놈의 공모제 논란 때문이다. 내 삶의 황금 같은 5년이란 시간이 어려 있는 곳인데, 소위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파행적 공모제 강행으로 이곳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힘들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시네마테크 지키기 운동에 동참을 결의하고, 현재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더불어 지지난해부터 해왔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웹데일리팀에 결합해 친구들 영화제와 관련한 이러 저러한 소식을 전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온 한 달 반, 준비기간까지 거의 두 달여의 시간이 이제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다단하다. 앞으로의 행보도 명확하지 않다. 몇몇 매체에서는 영진위가 지원자가 없어 자동 유찰되었던 시네마테크 운영자에 선정에 관한 재공모를 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실상 공식적으로 재공모 일정이 공지되지는 않은 상태다. 한편으론 충무로 영화인들까지 공모 철회를 요구하고 나서며 파장이 커지고 있으니 영진위 스스로 사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지원을 계속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황도 상상해본다. 진정 그러하길 기대해보지만 사태가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영진위가 그간 행한 모든 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 불가능했고 웃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나는 그토록 보고팠던 영화, 기다리던 영화를 편히 보지 못했다. 영화를 봐도 피곤했고 안 봐도 피곤했다. 영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심정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이곳이 반드시 지켜지길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 자원 활동을 했으나 가끔은 이 분위기가 짜증나기도 하고, 내가 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 짓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했다. 결코 후회는 없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그 와중에도 얻은 것도 많다 생각한다.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이 있는 법이니까. 자원 활동을 하면서 한 줄기 희망을 다시금 느꼈다. 나, 우리, 그리고 시네마테크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잃었고 얻었을까.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면 그간의 상황을 다시금 돌이켜보며 또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하여 한달 반의 시네마테크 자원 활동을 돌아보며 일련의 사태에서 대해 다시금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함께한 시간에 관한 일종의 후기랄까. 뭐 그렇다.

일단 시네마테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시네마테크란 Cinéma와 thèque가 결합된 조합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영화 관련 자료를 보존하고, 이것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그 자료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영화 자료 보관소, 또는 영화 박물관의 공간적 개념이 크지만, 그보다 시네마테크는 극장 형태를 갖추면서 주로 고전 영화 또는 예술 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데에 더 큰 중점을 둔다. 시네마테크의 중요한 기능 중 또 하나는 필름 복원 작업이다.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된 고전 영화의 필름을 여러 복잡한 과정을 통해 비교적 깔끔하게 복원시키는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네마테크는 상업적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더 큰 목적을 두기 때문에 정부 산하의 기관 또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시네마테크는 가치가 있는 옛것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곳이며, 그 작업은 영화문화저변 확대와 교육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속성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시네마테크는 공간적 개념도 있지만 일종의 운동적 성격으로 시간성도 지니고 있다.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공공적 성격이 강하니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공모한다는 것이 얼핏 듣기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보다 다양한 영화보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시네마테크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는 운영자를 투명한 과정을 거쳐 선정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런데 왜 이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선 권리주체의 문제, 다시 말해 영진위가 그렇게 진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인지, 또는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운영하는 곳은 서울아트시네마가 유일하다. 그것은 시네마테크에서 보는 모든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나오는 리드필름에도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서울에서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치며 안정적이진 않아도 근간히 어렵게 전용관을 꾸려온 것은 민간 영역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지속적으로 운영해온 서울아트시네마 뿐이다. 영진위는 자체적으로 시네마테크 사업을 펼친 바도 없으며, 시네마테크에 관한 어떠한 자산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영진위는 약 3, 40%의 지원금을 지원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영진위는 고작 30% 정도의 지원금이 전용관을 꾸려 나가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금액이니만큼 주인행세를 해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영진위는 그간 자신들이 지원해줬던 지원금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종자돈이 되었으니 수익발생까지 고려한다면 거의 90%의 지원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밝혔다. 논리도 근거도 모르겠고 그저 헛웃음이 인다.

일반 기업체의 경영권을 가지려면 적어도 51%의 지분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영진위는 고작 30%에 달하는, 것도 자체 지분 자산이 아니라 보조 지원금을 가지고 주인이라고 말하는 거와 다름없다. 게다가 수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민간 비영리법인의 활동에 수익성을 운운하고 있다. 투명성을 위해 공모를 강행하는 것이라지만 스스로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는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뭐 정책입안자들이 그것이 원칙이니 그렇게 하겠다면 더 보탤 말은 없다. 작금의 사회는 경우에 따라서 그러한 논리가 통할 수 있는 세상이니.

현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은 바로 공모를 둘러싼 논의의 과정, 절차상의 문제다.
원칙을 고수한다는 정책입안자가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공모한다는데 어떠한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상태다 재작년 국감에서 그저 한 단체에게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지원을 해주었냐는 지적사항이 제기되어 공모제 전환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시기적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1년을 유예한 뒤 올 들어 그 정책을 무리하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입안한 것이다. 공평성, 투명성 보장을 위해 공모제를 적용하려면 적어도 그간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에 대한 정당한 평가,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를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영진위는 그러한 절차 없이 무작정 실행에 옮겼고 원칙이기에 진행한 것이라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너무도 부당한, 모순덩어리의 처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귀를 열어두지 않는 곳에 이와 관련한 여러 목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다. 사회문화적 합의는 고사하고 시네마테크 자체, 사업의 성격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떨어진다 생각되니 말이다. 원론적으로만 치자면 지원중단으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8년간 그렇게 어렵사리 유지돼 왔고, 나를 포함해 많은 관객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자원 활동에 나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

하지만 문제의 복병은 또 다른 것에 숨겨져 있다. 바로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선정하는데 1년 단임제로 한다고 한다는 거다. 어떠한 평가절차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권리도 없는 자가 단지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돈을 위시하여 공모전환을 논하는 것 자체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데, 거기에 더해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1년 단임제로 매해 공모를 하겠다고 한다. 물론 연임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지 도대체 이해불능이다.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보존과 복원의 임무를 가장 크게 부여받은 시네마테크를 매해마다 갈아치운다는 심사. 어떻게 그런 발상이 가능한지 진정 납득하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이보다 더 재미있는 코미디가 없다”, “요즘 영진위 때문에 개콘이 별로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나 싶다. 이는 시네마테크의 의미, 활동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는 자라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문제인데 소위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화발전을 위해 무단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영진위가 이러한 정책을 내세운다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나는 단지 일반 관객에 지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시기에 배치되는지 잘 알지 못하나 먼발치에서 자부심 하나로 시네마테크 운동을 펼쳐온 사람들을 보면서 적어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금방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거구나‘라는 거다. 일례로 얼마 전 시네마테크에서 모스필름 회고전을 한 바 있는데 듣기엔 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데만 거의 3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다. 그런데 1년마다 공모를 한다면 과연 장기프로젝트를,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그것을 가능케 하려면 다음해에도 시네마테크 운영을 계속 할 수 있게 공모에 응해야 하고 그 공모에서 낙찰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게 되려면 온갖 비상식적인 수순으로 진행되는 이 사회체제 안에서는 또 다른 로비와 부정비리가 난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달리 말하자면 공평성을 위해 공모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이는 또 다른 비리의 전당이 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거다.

나는 그렇게 운영되는 시네마테크를 찾고 싶은 마음이 없다. 세계 곳곳의 유수의 시네마테크에서는 누벨바그의 거장 에릭 로메르가 타계한 후 앞 다퉈 로메르 회고전을 준비했다. 허나,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우리는 로메르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지금 여기의 지리멸렬한 현실탓이다. 만약 공모제 논란이 일지 않고 영진위의 지원이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상반기 내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며 회고전을 기획했을지 모른다. 소모적이고 어이없는 공모제 논란으로 나와 같은 관객은 그러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만약 새로운 운영자가 나타나 내가 원하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난 또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어 이런 영화를 하네,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라며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쓸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5년 간 제집 드나들 듯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것은 그만큼의 시간 동안 쌓아왔던 극장 운영자와 관객간의 암묵적인 지지와 신뢰, 신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의와 우정을 시네마테크의 파트너를 자처?해온 영진위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정 안타깝다. 영진위가 사태의 심각성을 빨리 인정하고 부당한 공모를 철회하고 꾸준한 지원을 약속해줬음 좋겠다.

다시 원점으로.

이 글 서두에 나는 시네마테크는 지속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주장했다. 그것이 관객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간의 성과에 대한 올곧은 평가가 먼저 수행된 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네마테크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보는 것이다.

아울러 그간 내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것은 내 마음이 그들이 선보인 수많은 영화들에 매혹됐고, 그러한 프로그램을 선정해 준 운영자에 대한 신뢰,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말을 다시금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난 오늘도 서울아트시네마에 간다. 영진위의 지원 없이도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굳건히 설 수 있길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후원활동을 하고자 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나와 같은 자원봉사자들이 스스로 후원모금 부스를 마련하고 제 시간을 쪼개고 희생해가며 한 달 여 동안 극장에 상주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해서 현재까지 모아진 현금 후원금은 약 3천5백만원. 월 자동납부하는 CMS 후원회원의 후원금은 월 3백만원 수준이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자를 통해 듣자니 영진위 지원 없이 자립하기 위해 최소 필요한 운영자금은 월 5천만원 수준이라고 하던데, 현재의 후원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고 여전히 앞일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는 건진 것 같다. 이를 불씨 삼아 시네마테크는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시네마테크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고, 더 많은 친구들을 얻었다는 것. 그렇게 시네마테크는 이곳을 사랑하는 관객과 함께 봄날을 기다리며 버티고 견디어나가고 있다. 스스로 서기 위해. 지금의 활동이 한층 더 진전되어 시네마테크가 진정한 영화인, 영화애호가의 온전한 집을 갖길 바란다.

그리고 항상 꿈꾼다. 그 역사적인 날이 빨리 오길!
하여 외쳐본다.
이 땅의 시네필들이여! 지금은 관객이 나서 시네마테크를 후원해야 한다고,
영화를 보는 행위만큼이나 중요하고 수반되어야 할 시네필의 윤리가 있다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다시금 곱씹어 보자고.
권리를 내세우려면 그에 합당한 의무를 해야 하지 않던가.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글_신선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출처] 무비스트 2010년 3월 2일 (http://www.movist.com/article/read.asp?type=24&type2=2&id=17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