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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Interview

[만남] 서울아트시네마는 후회없는 선택이 가능한 곳이다

2012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들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다니엘 위예의 <화해불가>를 택했다. <화해불가>의 첫 상영 30분 전, 극장 로비에서 관객 김양미님을 만났다. 갑작스럽게 부탁한 게릴라 인터뷰에 ‘나보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낫다’며 주저했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서울아트시네마와 10년째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신 김양미님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2, 30대 때는 전공도, 직업도 영화랑 관련이 없었다. 40대 초반에 늦깎이로 영화에 입문해서 그때부터 재밌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도 보고, 세미나도 하고, 영화 관련 책도 읽고, 문화센터에서 영화 관련 강의도 수강을 했다. 덕분에 영화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최근에는 예술영화전용관에서 극장 운영을 돕는 일도 했다. 그러다보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만 보던 예전과 달리 극장 운영 방식도 눈에 띄는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다보면 익숙해지는 얼굴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에 대해 점점 궁금해진다. 이 시간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왜 서울아트시네마에 이렇게 자주 오는 걸까, 이런 것들 말이다. 본인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서울아트시네마를 처음 찾은 건 2003년에 주변 친구들 때문이었다. 같이 영화 강좌를 듣던 친구들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허우 샤오시엔 영화를 보러 가자, 스페인 영화제 보러 가자, 계속 가자고 해서 모르고 따라왔다. 그런데 와서 영화를 보니까 이제까지 내가 보던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화들이었던 거다. 90년대 초중반 집에서 비디오로 빌려 보던 영화들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 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이렇게 신기하고 재밌는 영화가 있나 싶었다. 그 이후에도 예술영화전용관들을 많이 찾아다녔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왔던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도 있다. 서울에는 예술영화관이 많이 있는 편이다. 다른 영화관에서 영화 10편을 봤다고 하면 5편 정도는 재미있고, 나머지는 재미없고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영화들은 8~9편 정도가 재밌는 거다. 어떤 때는 굳이 무슨 영화를 봐야지, 이런 게 아니라 시간이 비어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들이 더 재밌는 경우들도 있다. 예를 들어 8시에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를 보러 왔는데 시간이 남아서 좀 일찍 온 김에 <공포의 변호사>를 봤던 적이 있다. 그러면 오히려 <공포의 변호사>가 더 재밌는 거다. 무슨 영화를 봐야겠다, 이런 스케줄을 정해놓고 따라갈 수도 있지만, 시간 날 때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정보 없이 봐도 재밌더라. 여기서 골라주는 영화들이 내 취향에 굉장히 잘 맞는 것 같다. 여기 오면 일단 후회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영화관 갈 때는 검색을 많이 하고 가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냥 시간이 되면 간다.

2012년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선택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 다니엘 위예의 <화해불가>다. 상영작 선정을 위한 투표에 참여 했는지 궁금하다.
투표에는 참여 못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게, 지난 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스트라우브, 위예의 <로트링겐!>을 재밌게 봤다. 그래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화해불가>도 재밌을 것 같았다. 또 관객들의 선택이다 보니까 왠지 괜찮은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편이다.

올해로 서울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맞았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10주년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많이 늙었구나’ 이 생각밖에는 안 든다(웃음). 영화의 ‘영’자도 모를 때 서울아트시네마에 친구들 손잡고 와서 좋은 영화를 보고 감격에 겨워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주년이 됐다니까 내가 많이 늙었구나, 그 생각밖에 안 든다.

개막식 때도 그렇고 계속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문제가 언급되고 있다. 만약 전용관이 세워진다면 어떤 모습의 전용관을 바라는지 묻고 싶다. 예를 들어 카페라든지, 세미나실이라든지, 공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카페나 세미나실 같은 공간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모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모임 같은 건 있었으면 좋겠다. 관객들끼리 모이는 동호회, 시네클럽,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게 있으면 관객들끼리 얘기를 하게 된다. 예전엔 영화 보고 나면 관객들끼리 옆에 있는 떡볶이 집에서 얘기도 하고 친구가 됐는데, 여기선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 점이 아쉽다. 나도 관객들끼리 섞이고 얘기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를 못 건다. 아는 척 하기가 어렵다. 영화가 끝나고 가는 길에 뒤풀이나 토론하는 모임이 있다면 사람들이 서로 알게 되고, 얘기도 하고, 자주 오게 되고 그러지 않을까. 실제로 공간이 있어도 모임이 없으면 공간은 텅텅 비게 된다. 공간만 있는 게 아니라 모임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대해서 질문하겠다. 프로그램이 공개되었을 때, 이것만큼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뭔지 궁금하다. (질문을 받자 김양미 씨는 가방에서 리플렛을 꺼냈다. 리플렛에는 체크해놓은 영화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대답하기까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꼭 보고 싶은 영화 하나를 집기는 어렵고, 굳이 말하자면 특별 섹션 ‘유토피아로의 여행’의 8편이다. 그 8편의 영화들을 쭉 보고 나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지 않을까. 책자에 나온 글도 읽어봤는데, 영화가 유토피아를 찾으면서 어떻게 유토피아로의 여행을 그리는가, 그 주제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고 싶다.

인터뷰∙글 | 송은경 관객 에디터